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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정연승
마지막 버스를 갈아탄 A시를 떠난 직후부터 나는 심한 공복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66번․77번․88번․아니면 김양․오양․박양 등 그들은 언제나 땡을 좋아했고 성씨 뿐 이름이 없었다.
어제도 나는 새로 왔다는 싱싱한 칠땡을 데리고 밤이 늦도록 술을 퍼마신 채 그녀를 간질렀다. 까르릉거리며 갖은 교태와 아양을 떨며 간지러움을 참느라 잦아들던 그녀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곯아떨어지자, 나는 그녀의 간을 꺼내 먹어 버렸다. 이제껏 얼마나 많은 여자가 내 병을 치유하기 위한 재물로 도마 위에 올려졌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 잠재의식 깊은 곳에는 간에 대한 기억이 깊숙하게 박혀 있었다. 그 기억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쳐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거미줄에 걸린 하루살이처럼 몸부림을 쳐도 칙칙스러운 기억은 더욱 끈끈하게 달라붙을 뿐 나를 자유롭게 풀어주지 않았다. 그것은 고통이었다. 나는 그 고통 속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했지만, 언제나 아픈 기억의 한 가운데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 기억 속에는 조소 담긴 비웃임이 가득했다. 그것을 견뎌내기에는 많은 인내를 필요로 했다. 하지만 인내만으로도 조소 담긴 비웃음을 견뎌낼 수는 없었다. 단, 한가지 비웃음을 잊을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의 시선 밖으로 사라지는 것뿐이었다. 그들의 사정거리 밖으로만 벗어나면 고통스런 기억도 사라져 버렸다. 고통의 기억 속에서 벗어나면 거기에는 땡을 좋아하는 여자들과, 이름 없는 여자들이 바람에 날리는 꽃잎처럼 널려져 있었다. 그 많은 꽃잎 중 선택된 하나는 내가 준비해 놓은 도마 위에 반듯하게 뉘어져 난폭하게 난도질을 당해야만 했다. 그렇게 매일 밤 간을 먹으며 순간이나마 고통스런 기억 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젠 그 일이 일상생활의 일부분으로 자리잡혀 버렸다. 내 육체를 감당할 수 있다고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된 간을 먹는 행위가 도덕적․윤리적이란 단어까지 동원할 필요는 없었다. 한 순간 육체적 쾌락이라도 내 잠재의식 깊은 곳에 박혀있는 기억 속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나는 무슨 일이고 해야만 했다.
그러나 다시금 원초적인 고통의 기억 속으로 나를 밀어 넣은 것은 느닷없이 날아든 전보 통지 한 장에서 비롯되었다. 전보는 푸른 농원의 어떤 사람으로부터 보내진 것이었다. 나는 전보를 받고도 한참을 망설임 속에서 서성거려야 했다. 침대 위에서는 간을 빼앗기고 시들어 버린 꽃잎이 젖빛 같은 알몸을 드러낸 채 노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숨결에 따라 가볍게 미동하는 꽃잎의 젖가슴을 한참동안 내려다보았다.
벌써 삼 년 동안이나 소식 한 장 없이 내 거처를 은밀하게 숨겨왔다. 전보가 날아온 푸른 농원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내 스스로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은 매번 허사였다. 끊어진 듯 하던 관계가 다시금 되살아나서는 이제까지보다도 더 질기고 억센 끈으로 나를 얽어매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곧바로 거처를 옮겨 버리는 것이 내 생활 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그런데 이번 거처만은 요상스럽게도 삼 년이란 긴 시간을 푸른 농원의 어머니에게 발각되지 않은 채 지낼 수 있었고, 고통스런 기억도 줄어들어 이제는 바닥을 드러내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 나름의 성급한 단정에 불과했다. 새벽녘에 날아든 전보통지에 담긴 급박한 내용보다도, 내가 이제껏 어머니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감시의 눈 아래 있었다는 사실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은 처음으로 알몸을 남에게 보인 처녀처럼, 지금껏 지키며 간직해왔던 은밀한 그 무엇을 일시에 허물어 버린 허탈감을 내게 던져주었다.
벌써 오후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어제 저녁부터 꼬박 하루를 거른 채 세 번이나 버스를 갈아탔다. 그때마다 되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푸른농원까지 갈 필요 없이 또다시 거처를 옮겨버릴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방책일 뿐이었다. 이제껏 해왔던 방법처럼 더 이상 관계를 지속할 수는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둘러쳐져 있는 끈끈하고 칙칙스러운 관계에서 벗어날 마지막 기회였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궁리가 뒤엉켜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전보에 적힌 급박한 내용은 자식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자식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도리보다도, 어머니와의 관계를 끊어버리기 위해서 그곳으로 가야만 한다고 강한 유혹을 했다. 결국 기억의 늪에서 완전무결하게 벗어나기 위해서는 피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관계를 끊어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디 타관에서 오는 사람 같구먼!”
“…….”
A시에서 마지막 버스를 갈아탄 이후 옆 좌석의 사내가 몹시 신경을 쓰이게 했다. 색이 날려 후줄근하게 보이는 작업복을 입은 중년의 사내는 온갖 것을 내게 물어왔지만 나는 왠지 대답을 하고 싶지 않았다. 사내와 이야기를 나누며 무료함을 달랠 정도로 내 가슴속은 편안하지를 못했다. 사내가 뭐라 또다시 말을 붙여왔지만 나는 창 밖으로 시선을 옮긴 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평지에서는 그런대로 달리던 버스가 고갯길을 들어서자 거북이 걸음을 했다. 하늘은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금방이라도 진눈깨비가 쏟아져 내릴 듯 우중충하던 하늘이 고갯마루를 올라서자 두터운 구름을 헤집고 한 줄기 햇빛이 차창을 넘어 쏟아졌다.
“저어기 문댕이덜이 사는 데라고.”
사내가 차창 밖으로 보이는 능선 너머를 가리켰다. 사내의 입에서 튀어나온 문댕이라는 말은 폭주를 한 이튿날 아침처럼 흐리멍덩하던 기운을 일시에 몰아가 버렸다.
“저기 골짜기로 모여들 때만 해도 자갈과 가시나무 투성이었는데 이젠 아주 큰 동네가 되었다구. 문댕이덜이 터를 잡고 살다니 증말 좋은 세상이여.”
“그래, 뭘 하며 산답니까?”
시종 입을 다물고 있던 나의 갑작스런 반응에 사내는 의외라는 듯 빤하게 쳐다보았다.
“달구도 치구, 도야지도 치구, 채마도 가꾸지, 인근에서는 문댕이덜이 기른 것이라고 먹지도 않지만 도회지로 나가는 모양이여. 도회지에서야 누가 기른 것인지 알게 뭐여.”
앙상하게 알몸만 남은 미루나무 사이로 부강 4㎞라고 쓰여진 이정표가 지나갔다.
“하나, 둘 모여들던 예전하고는 아주 달라졌다구. 가끔 읍내까지 장을 보러 나오는데 성한 우리보다두 더 말쑥하게 입성을 차리고 나온다구.”
나는 차창을 스쳐 가는 바깥 풍경으로 시선을 옮겼다. 겨우내 내린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우뚝한 봉우리들이 순백색을 띠고 있었다.
“첨엔 봉변도 많이 당했구먼. 내쫓아 버리려고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서는 닥치는 대로 부수고…….”
사내는 역전의 용사처럼 무용담을 떠들어댔다.
부강에서 내린 사람은 사내와 나, 둘 뿐이었다. 나는 의식적으로 그 사내를 피했다. 사내에게 내 자신의 은밀한 고통을 한 자락 끝이라도 보이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였다. 이러한 나의 대인기피 증상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소주 한 병 주십시오.”
버스에서 내린 나는 길을 가로질러 상점으로 들어갔다. 맑은 정신으로는 도저히 그곳으로 들어설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알코올의 힘을 빌려 잠재된 또 다른 힘을 동원해야 했다. 술은 고통의 강도를 약화시키고, 미세한 감각세포를 잠재우는 역할을 아주 잘해냈다.
“푸른 농원은 어디로 갑니까?”
상점 주인은 푸른 농원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뜯어보았다. 쓰레기통에서 뜯다만 뼈다귀라도 발견한 개처럼 눈에 불을 켜며 침을 흘리는 듯한 주인의 표정이 싫었다. 지금 저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생각들이 만들어지고 있을까. 온갖 추측으로 자신의 고객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는 마음 내키는 대로 토막질을 하고 있겠지. 언제나 나는 도마 위에서 그들이 하는 대로 토막이 쳐졌고, 피투성이가 된 채 그들의 시야에서 도망을 쳐야 했다.
“가지고 갈 거요, 안주는 필요 없습니다.”
나는 주인의 눈빛이 송곳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그들 마음대로 추측을 하고 단정을 내렸지만 나는 그런 불합리한 단정에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저쪽으로 가다 보면 입구가 있소!”
상점 주인이 찬찬하게 나를 뜯어보며 신작로 끝을 가리켰다. 나는 상점을 달아나듯 빠져나왔다. 내가 숨기고 있는 은폐된 사실을 남들이 알까 두려웠고, 은폐된 사실이 한 꺼풀씩 벗겨질 때마다 나는 고통스러운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걷자, 푸른 농원이라고 씌어진 부조물이 나타났다. 부조물의 여인은 푸른 농원을 이마에 붙이고 힘에 겨운 듯 곱사등처럼 앞으로 조금 구부러져 있었다. 마치 자신들의 모습을 자위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버스에서 만났던 후줄근한 사내의 ‘세상 좋아졌지. 어디라고 문댕이덜이 터를 잡고…’ 하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나는 부조물 여인의 손끝이 가리키는 산등성이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해는 서쪽 능선을 사이에 두고 한 뼘 남짓하게 남아 있었다. 종일을 굶은 탓인지 허기가 심하게 느껴졌다. 어려서부터 나는 배를 참 많이도 곯았다. 그 때문인지 지금까지도 허기만 지면 무엇으로든 주린 배를 채워야 했다. 철이 들어가면서부터 조금씩 내 자신의 처지에 대해 의식하게 되자 배가 고파도 참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깨우치기 전까지는 배만 고프면 막무가내로 떼를 썼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내게 매질을 했다. 미친 듯 휘두르는 손에 닥치는 대로 맞았지만 배고픔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어머니는 나를 부둥켜 안고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퍼지게 울어댔다. 몸부림을 치며 통곡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잠시나마 허기짐을 잊게 했지만, 대신 서러움을 싹트게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어머니의 서러운 울음소리가 그치고 내 손목을 끌어 어디론가 걷기 시작하면 또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그러면 무엇이라도 얻어먹기 위해 어머니에게 또다시 떼를 썼다.
나는 지금도 공복감을 느낄 때마다 대여섯 살 때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여기저기 거처가 없이 떠돌며 살 때였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은 고사하고 사람들이 서넛 모여 있는 곳이라도 피해야만 했다. 언제나 사람이 있는 곳은 피해서 한적한 길만을 따라 다녀야만 했다. 사람들은 어머니와 나만 보면 돌팔매질을 하며 몰아냈다. 우리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동구 밖으로 줄달음쳐야 했다. 어떤 마을에서는 개처럼 묶어서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다시 마을에 나타나면 죽일 것처럼 모질게 대했다.
여느 날처럼 그날도 나는 배가 고파 떼를 썼다. 어머니는 몇 번이나 나에게 매질을 하다가 지쳤는지 벌떡 일어섰다. 눈물이 고여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한참이나 내려다보던 어머니는 스산하게 바람이 일고 있는 풀섶을 따라 마을 쪽으로 내려갔다. 나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다보며 계속 울어댔다. 그러다 아마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풀잎 스치는 바람소리에 깜짝 놀라 깨어보니 움막 밖으로 허연 달이 불쑥 솟아 있었다. 그때까지도 어머니는 움막에 돌아와 있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가 나를 떼어놓고 아주 멀리 달아난 줄로만 알고 갑자기 울음보가 터졌지만 소리를 내어 울 수가 없었다. 마을과 멀리 떨어진 산비탈의 움막은 대여섯 살 된 어린 사내아이에게는 너무나도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바람은 온갖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바람소리만 풀잎을 스칠 뿐 무서운 정적뿐이었다. 숨소리조차 마음놓고 낼 수가 없었다. 움막 구석에 웅크린 채 어머니 오기만 기다렸다. 무서움을 잊으려고 다른 생각을 해 봐도 소용이 없었다. 시간은 멈춰버린 듯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 날 따라 달빛은 유난히도 섬뜩하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런 중에도 배고픔만은 달아날 줄 모르고 허기를 느끼게 했다.
달이 아주 밝던 그날, 내 성화에 못 견뎌 마을로 내려갔던 어머니는 밤이 이슥해서야 움막으로 돌아왔다. 풀잎을 흔드는 바람소리에 실려 어디선가 신음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머리끝이 쭈뼛 솟아올랐다. 오줌도 마려웠지만 움막 밖으로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움막 밖에서 무엇인가 시커먼 것이 불쑥 나타날 것 같은 두려움에서였다. 그만 앉은 채 싸버리고 말았다. 오줌 냄새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신음소리는 계속해서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그렇게 한참을 망설이다 겨우 용기를 내어 움막 밖으로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허연 달빛이 뱀처럼 꼬불꼬불한 산길에 쏟아져 빛나고 있었다. 어머니는 길 위에 엎어져 벌레처럼 조금씩조금씩 움막 쪽으로 기어오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두려움이 일시에 사라져 버렸다. 쏜살같이 움막 밖으로 달려나갔다. 어머니 손에는 막과자 한 봉이 들려 있었다. 낚아채듯 빼앗아 들고는 순식간에 부스러기까지 먹어 치웠다. 그러고도 모자라 어머니 몸을 여기저기 뒤적거리다 어머니의 행색이 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내려갈 때와는 전혀 다른 몰골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옷은 갈기갈기 찢겨져 넝마처럼 흩날렸고, 군데군데 핏자국이 파편처럼 묻어 있었다. 마을에서 움막까지 기어오다시피 한 모양이었다. 언제인가 동구 밖까지 쫓아오며 돌팔매질을 하던 사람들에게 붙잡혀 개처럼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살려달라고 빌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을에서 봉변을 당한 것이 틀림없었다. 어머니는 고통에 가득 찬 신음소리만 연신 낼 뿐 죽은 듯 땅에 달라붙어 아무리 흔들어도 움직일 줄을 몰랐다. 그 위로 백옥같이 하얀 달빛만 보석처럼 쏟아져 내렸다.
숨이 목까지 차 오르는 고갯마루에서 소주를 한 모금 마셨다. 고갯마루에는 온통 해가 지고 있었다.
낮이 지나고 밤이 다가온다는 것은 하루 일과가 종결된다는 의미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쓰여졌지만, 내게 있어서는 새로운 하루의 시작이었다. 매일처럼 밤은 내게 새로운 신선함을 주었고 환희에 넘치는 세상의 시작이었다. 일시적이나마 밤은 내게 안식이라는 선물을 제공했다. 밤으로 깊숙하게 들어가면 그곳에는 감미로운 샘물이 쉴 사이 없이 넘쳐흘렀고, 땡과 이름 없는 여자들이 나를 고통스런 기억의 늪에서 건져 올려 주었다. 그곳에서 나는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절대자처럼 군림했고, 그런 나를 보필하듯 꽃들은 온갖 향기를 뿌리며 시중을 들었다. 그러고 나면 나는 그날 그 중에서 제일 짙은 향기를 뿌리며 고통을 잊도록 공헌을 한 꽃 한 송이를 사기 위해 화장기가 덕지덕지한 꽃집 주인에게 꽃값을 치뤘다. 새벽이 되어서야 깨닫게 되는 일이었지만, 언제나 그런 꽃은 몇 번이나 꺾였던, 시달릴 대로 시달린 꽃이었다. 한 번은 그런 꽃들과는 좀 다르다 싶은 여자를 만나기도 했다. 내게 비쳐진 그녀의 모습은 밤에만 피는 그런 꽃이 아니었다. 부끄러운 듯한 그녀의 해말간 미소는 향기가 짙은 여느 꽃들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러한 느낌은 그녀와 깊은 곳까지 빠져들게 했다. 떠돌아다니며 방황만 하던 내게 가정은 정착이었다. 정착은 새로운 생활의 시작이었다. 한동안 나는 고통스런 기억 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만 모든 향기를 쏟아 부었다. 더 이상 그녀를 속일 수는 없었다. 그런 그녀를 속인다는 것은 죄악이었다. 나는 내 어린 시절과 어머니에 관해 그녀에게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내 의도는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가 나를 더 이해하고 감싸줄 것이라는 확신에서였다. 하지만 그런 나의 확신은 ‘예쁜 선녀를 놓쳐버린 나무꾼’처럼 크나큰 실수였고 착각이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선녀가 나뭇꾼을 믿지 않았듯이 그녀는 나를 믿어주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이해하지도 않았고 감싸주지도 않았다. ‘나 같은 년이 무슨 살림을 차린다고…….’ ‘만나도 저런 남자를 만났나.’ 그녀는 강한 독소를 송곳처럼 품고 있었다. 그녀의 독소는 내 가슴속의 고통과 비슷한 한탄이 섞인 푸념이었다. 그러나 나와는 달리 그녀는 고통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비통에 가득 찬 푸념을 늘어놓았고 거미줄처럼 치밀하게 쳐져있는 내 고통은 어느 쪽으로 탈출해도 벗어날 수 없음을 절망적으로 말했다.
“제발 같이 있어 줘. 우리 서로 기대며 살아보자.”
그녀가 떠나려 했을 때, 그녀를 붙잡기 위해 나는 이렇게 애걸했다. 하지만 그녀는 무표정했다. 위로를 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는 따위의 일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가슴에 고통만 깊게 했다.
“난 당신과 달라요. 나에게는 얼마든지 좋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단 말이예요.”
그녀는 자신의 확신대로 나와 함께 동참하기를 거부하고 자유로운 들판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 해말간 미소와 함께. 결국 나는 고통의 늪 한가운데 서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또 다시 조소 섞인 비웃음 속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나는 잠시나마 고통을 잊기 위해 절대자처럼 군림할 수 있는 밤을 또 다시 찾아가야만 했다.
온 고갯마루를 붉게 물들이던 해가 순간 짧은 빛을 발하며 산너머로 떨어졌다. 나는 일어서서 푸른 농원을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삼 년 전, 지금의 거처로 옮기기 직전 무렵이었다. 어머니 곁을 떠나 독립을 하기 위해 도회지로 도망을 친 후에도 어머니는 끈질기게 나를 찾아왔다. 사실 독립이라는 의미보다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끊기 위해서라고 표현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내가 떠나겠다는 말에 어릴 적 배가 고파 떼를 쓰던 때처럼 매질은 하지 않았지만 대신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만류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눈물 따위로 내 결심을 깰 수는 없었다.
그 무렵, 나와 어머니는 푸른 농원에서 살았다. 지금에 와서야 푸른 농원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그때만 해도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군에서 마련해 준 자활촌에는 몇몇 나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전부였다. 움막같은 집이었지만 어머니와 나는 매일처럼 떠돌아다니지 않는 것만으로도 날아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생활도 쉽지만은 않았다. 마을사람들의 온갖 횡포 때문이었다. 자활촌에 정착해서 개간을 하던 때였다. 성하지 않은 몸으로 종일 자갈을 주워내고 온갖 잡목들을 뽑아내느라 자활촌 사람들은 저녁이 되면 모두들 쓰러져 버렸다. 그날도 하루 일을 끝내고 지쳐서 움막으로 돌아온 어스름 무렵이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떠들썩거리는 소리에 밖으로 나온 자활촌 사람들은 어쩔 줄 모르고 당황했다. 횃불이 앞산 등성이를 넘어 반디불이 떼처럼 내려오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었다.
“이 드러운 문딩이덜, 여기서 떠나지 않으면 모조리 쥑일 거야!”
횃불을 들고 서 있던 사람들 중에서 한 사내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우리들에게 떠날 것을 강요했다.
“떠날 곳이 없습니다요.”
모여 있던 우리들 중 누군가가 사정을 했다.
“뭐야! 이 문딩이가 어디서 말대꾸여!”
사내의 목소리에는 독기가 철철 넘쳐흐르고 있었다. 말대꾸하던 사람이 끌려나갔고, 그의 등을 향해 몽둥이가 날았다. 외마디 비명소리가 나고 그 사람은 앞으로 폭 고꾸라졌다.
“야! 니들 지금 당장 떠나버려!”
마을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몽둥이 끝으로 어머니를 찌르며 소리쳤다. 어머니는 아무 소리도 못한 채 두 손만 싹싹 빌었다. 사내가 어머니를 내리쳤다. 개구리 뻗듯 어머니가 땅바닥에 털썩 엎어졌다. 나는 그 사내의 다리에 매달렸다.
“이 문딩이 새끼가!”
사내가 몽둥이를 번쩍 쳐들었다.
“살려 주세유!”
어머니가 나를 감싸며 애걸했다.
“야! 다 부숴 버려!”
사내가 고함을 질렀다. 한 패거리의 사람들은 자활촌을 휘돌아 치며 닥치는 대로 부수었고, 또 한 패거리는 움막에다 불을 질렀다. 깜깜하기만 하던 주위가 대낮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자활촌 사람들은 누구 하나 대거리도 못하고 그들이 하는 대로 바라보기만 했다.
“엄마, 왜 우린 아버지가 없어?”
타오르는 움막을 보고 있던 어머니에게 내가 물었다. 어린 생각에 아버지만 있어도 이렇게 봉변을 당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머니는 갑작스런 내 물음에 순간 흠칫 놀라며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어머니의 얼굴 위로는 벌건 불꽃이 바람에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얼룩덜룩한 상흔 투성이의 어머니 얼굴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더 이상 물어 볼 수가 없었다.
마을에서 몰려왔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것을 보며 나는 두 손을 꼬옥 쥐었다. 사내가 내뱉었던 ‘문딩이 새끼가’ 하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차츰 나이가 들어가면서부터 어머니와 내가 당했던 봉변은 하늘로부터 받은 형벌의 피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천형!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먼 곳으로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때 내 나이 열두 살이었다.
어머니로부터 관계를 끊기 위해 도회지로 탈출을 한 후에 나는 한동안 일자리를 잡을 수 없었다. 나이가 너무 어렸고, 학교라고는 문턱도 가보지 못한 나를 기다리는 곳은 아무 곳도 없었다. 우선 당장 입만 버는 것도 어려웠다. 여러 날 떠돌기만 하던 나는 우선 밥만 얻어먹기로 하고 잔심부름을 하는 잡화가게의 점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어머니와의 끈끈한 관계를 가위질하고 나 혼자 사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어머니만 천형을 받았을 뿐 나는 전혀 외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매번 어머니로 인해 일어났다. 점원으로 일을 시작한 지 얼마가 지나자 어머니는 상점으로 나를 찾아왔다. 주인의 시선이 묘하게 빛나고 있음을 감지했고, 나는 그 곳에서 쫓겨나 도망치듯 거처를 옮겨야만 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끈질기게 나를 찾아다녔다. 마치 어머니의 세포 하나 하나가 살아 움직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무리 깊은 곳으로 자취를 감춰도 소용이 없었다. 어머니가 한번씩 다녀가고 나면 나를 쳐다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차갑기만 했다. 동료점원들은 나를 의식적으로 피했고, 소문은 삽시간에 주변으로 퍼져 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문 밖으로만 나서면 사람들의 눈요기 대상이 되었다.
내가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삼 년 전이었다. 그날도 어머니는 또 나를 찾아왔다. 그날 어머니는 울면서 돌아갔다. 끝없이 계속되는 어머니의 추적 속에서도 십여 년이 흐르자 나는 손바닥만 하기는 했지만 내 가계를 하나 가질 수 있었다. 한동안 뜸하던 어머니가 그 날도 나를 찾아왔다. 끈끈한 관계의 지속을 위해서였다. 나는 상점에서 거래상과 물품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는 내 어머니를 보자 금세 얼굴표정이 달라졌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나가 버렸다.
“제발 저를 찾아오지 마세요.”
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얘야, 미안하구나. 이 에미에게는 너 밖에 누가 있냐?”
어머니가 어쩔 줄 몰라하며 매달렸다.
“어머니, 제가 찾아가고 싶으면 갈테니 제발 저를 그냥 놔주십시오.”
“얘야, 자활촌으로 같이 가자. 거기 가서 남의 눈치 살필 것도 없이 우리끼리 마음 편하게 살자. 자활촌도 예전과는 다르다.”
“싫습니다. 제가 왜 그곳에 갑니까? 나는 어머니와 다르단 말입니다.”
“나와 다르다니?”
“나는 문둥이가 아니란 말입니다.”
“뭐라고? 문둥이!”
어머니는 몹시 놀란 표정이었다.
“어머니만 없으면 아무도 제가 문둥이 자식인 줄 모를 것 아닙니까?”
순간 어머니가 손을 치켜들었다. 금방이라도 내 뺨을 향해 내리칠 기세였다. 어머니의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힘없이 손을 떨구었다.
“못된 놈!”
어머니의 목소리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어머니의 흉한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지만 내 생각에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어머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렸다.
그 이후 어머니는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것이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가끔씩 그날 어머니의 화난 모습이 허공에 맺히곤 했지만, 단 한 번도 어머니를 찾아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자신에게는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가슴에 깊은 못을 박았다는 일말의 죄책감은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둠이 완연하게 짙어진 후에야 나는 푸른 농원에 도착했다. 산비탈로 이․삼십여 호쯤 됨직한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었다. 마을 입구에서 한동안을 서성거렸다. 도무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였다. 마을 분위기는 여느 시골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난, 한 아이를 앞세우고 전보의 발신지를 찾아 따라갔다. 대문을 들어서자 마당 한가운데 세워진 장대 끝의 백열등이 눈을 부시게 했다. 낯선 사람이 나타났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은 화톳불 주변에서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었다.
“어서 오시오. 기다리고 있었소.”
방문이 열리며 초로의 한 사내가 더듬거리며 봉당으로 내려섰다. 나는 사내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향내가 질식을 할 정도로 진하게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영정을 바라다보았다. 내가 상흔이 전혀 없는 깨끗한 어머니의 얼굴을 본 것은 영정의 사진이 처음이었다. 왠지, 내 어머니가 아닌 다름 사람처럼 느껴졌다.
“저녁은 드셨소? 우선 저녁부터 드시지요.”
“별 생각이 없습니다.”
술에 취한 이튿날은 종일 먹지 못하는 습관 탓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어떤 막연한 거리낌 때문에서였다.
“원래 우리는 외부에서 손님이 오시면 식사대접을 잘 하지 않습니다. 손님들이 탐탁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지요.”
사내는 내가 사양하는 이유를 나보다 더 날카롭게 간파하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그 사람과 나는 한 삼 년 전부터 살기 시작했지요.”
그제서야 내게 전보를 친 사람이 바로 초로의 이 사내란 것을 알았다.
“부부라기보다도 내가 앞을 보지 못하니까 서로 의지나 하며 살자는 것이었지요.”
“아니, 그럼 앞을 볼 수 없단 말입니까?”
아이를 따라 대문을 들어섰을 때 사내가 더듬거리며 봉당을 내려서던 것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스물이 갓 넘어 발병을 했으니까 일본에서 학교를 다닐 때였소. 그때 눈을 잃고 말았소.”
사내는 앞을 보지 못하는 내상 외에도 얼굴 곳곳에 상흔이 남아 있었다.
“그 사람은 참 기구한 사람이었소.”
그 사람이란 내 어머니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한 삼 년 전부터는 거의 실성한 상태였소. 쉬지 않고 중얼거리며 마을을 돌아다녔는데 그것은 ‘몹쓸 놈’이라는 말이었소. 나중에야 그가 누구라는 것을 알았소.”
사내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내게 내민 것은 퇴색한 한 장의 사진이었다.
“그게 누군 줄 아시오?”
“……”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주 갓난아기의 사진이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 사진의 어린 아기가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사람이 죽기 전에 남긴 유일한 유품이오.”
그제서야 나는 사진을 자세하게 들여다보았다.
“그 사람은 당신을 무척 보고 싶어했소. 그렇게 보고 싶어하면서도 가지를 못했소. 읍내까지 갔다가는 되돌아오고, 되돌아오고, 언제나 가겠다고 집을 떠났다가는 되돌아왔소. 그런 날은 이 사진을 꼭 쥔 채 당신 이름을 불러대곤 했죠.”
원망하는 듯한 사내의 말투였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어머니가 날 어떻게 낳았는지 알고 있습니까?”
나는 이제껏 궁금하게 생각해왔던 내 출생에 대해 물었다. 사내는 잠시 망설이는 듯했지만, 곧 입을 열었다.
“그날도 당신에게 가겠다며 읍내까지 갔다가 되돌아 왔던 날이었지요. 이제껏 누구에게도 입을 연 적이 없다며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털어놓더군요. 스물이 되던 해 시집을 갔는데 서너 해가 지나도록 아이가 없어 성화가 대단했나 봅디다. 더구나 남편은 집안의 장손이었으니 집안 어른들이 손주 하나 얻기를 얼마나 기다렸겠소. 그러던 중 발병을 했다고 하더구려. 대도 못 잇는 처지에 그런 병까지 얻었으니 좋은 구실거리가 생긴 거지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미 그때 당신이 그 사람의 뱃속에 싹트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요양소에서 당신을 낳았는데 같이 있을 수 없는 처지였으니 연고자를 찾아 당신을 아버지에게 보냈답니다. 보내고 난 뒤에 당신이 보고 싶어 도무지 견딜 수가 없더랍니다. 병이야 치유되든 말든 당신이나 한 번 보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몰래 요양소를 빠져 나왔답니다. 시댁으로 가니 남편은 이미 새 장가를 들었고, 당신은 천덕꾸러기가 되어 있더랍니다. 아이를 한 번만 보게 해달라고 며칠을 빌며 애걸을 했지만 시댁에서는 대문도 들어서지 못하게 하더랍니다. 결국 당신을 몰래 업고 그 길로 달아나서 떠돌기 시작했다고 합디다.”
그때 밖에서 어수선한 소리가 들려왔다. 밖에는 철 이른 새우비가 내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우르르 마루로 몰려들었다.
“권사님, 집터 자리를 덮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많이야 내리겠는가. 더구나 이 밤중에 거기까지 올라가는 것도 문제고, 그냥 놔둬보게.”
사내가 마루에 몰려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집터라니요?”
“어머니 묏자리 말입니다. 상주가 따로 있으니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는 일이고 해서 당신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사내가 말끝을 흐리며 내 의향을 물었다.
“화장을 하겠습니다.”
“화장을 하는 것보다는 집터를 쓰는 것이 더 낫지…….”
“아닙니다. 산소를 쓰지는 않겠습니다.”
내가 사내의 말을 자르며 단호하게 말했다.
“왜?”
“그것을 어머니가 더 원하실 것 같아서였습니다.”
나는 어머니 핑계를 댔다.
내 자신을 속이는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솔직하게 내 가슴속을 들춰냄으로써 남들에게 천륜까지 무시하는 ‘짐승같은 놈’이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하기야, 그 사람도 당신이 하자는 데로 하라고는 했지만 집터를 쓰지 않겠다니 좀 섭섭하구려. 평생 남의 눈치만 살피며 떠돌아 살았는데 죽어서라도 남들처럼 집을 마련해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사내는 내 결정을 번복하기 바라는 듯 했지만, 이미 나는 이곳에 오기 전부터 마음을 굳힌 터였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참견하지 마십시오! 제 어머니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사내는 못내 서운한 눈치였지만 내 결심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래도 사내는 자신과 몇 년 동안 살을 섞으며 살아온 내 어머니에게 일말의 애정이 남아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를 화장해야만 한다. 그것은 어머니와의 관계를 말끔하게 끊어버리기 위한 것이었다. 번거롭게 산소를 쓰고, 그 산소 때문에 어머니가 죽은 후에도 계속 고통스런 기억 속에서 허우적거릴 수는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이제까지 지속되어왔던 끈끈하고 칙칙스러운 관계를 영원히 끊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어머니와의 관계만 말끔하게 끊어진다면 나는 완전한 보통의 사람이었고, 그 누구에게도 천대받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매일 밤 고통의 늪에서 헤어나기 위한 필사의 노력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 괜한 일을 했구만. 우리는 미리 집터를 마련해뒀는데.”
“그리고 어머니 유골은 제가 가지고 가겠습니다.”
“집터를 쓰지도 않는다면서 유골은 뭣 하러? 인근에 뿌려버리지.”
사내가 의아한 듯 물었다.
“내일 화장할 준비나 해주십시오!”
나는 사내의 물음에 대답을 회피하며 매정하게 잘라 말했다.
내가 어머니의 유골을 가지고 가겠다고 한 것은 아주 원초적인 소유욕에서였다. 아니, 소유욕이라고 하기보다는 그 사내에게서도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말끔하게 거두어가기 위한 것이었다. 그 누구라도 어머니를 기억해 내어서는 안 된다. 이 세상에서 어머니의 존재를 깨끗하고 말끔하게 씻어버려야 했다. 어머니가 이 세상 어느 곳에 티끌만큼이라도 남아 있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나와 어머니와의 관계를 깨끗하게 끊어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어머니의 유골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 뿌려버릴 작정이었다.
간밤에 뿌린 비 때문인지 이튿날 아침은 제법 쌀쌀했다.
어머니의 관은 꽃으로 곱게 쌓여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어머니의 관을 들고 묘지가 있는 뒷산으로 올라갔다. 간단한 추모기도가 끝나고 관을 둘러싸고 있던 꽃들이 벗겨졌다. 시커먼 관은 다시는 열리지 않을 것처럼 단단해 보였다. 사람들에 의해 관의 뚜껑이 열려졌다. 어머니의 시신은 석고상처럼 들려 장작더미 위로 올려지고 다시 장작을 쌓아 올렸다. 장작더미 위로 기름이 부어졌다. 기름 냄새가 강하게 코끝을 타고 스며들었다.
“당신이……”
사내가 내게 성냥을 건넸다. 성냥을 그어댔다. 진한 화약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화약 냄새 탓인지 눈물이 눈꼬리를 타고 찔끔 흘렀다. 내 손끝이 바르르 떨렸다.
“어서!”
사내가 재촉했다.
나는 어머니의 시신에 불을 붙였다. 뒤이어 서넛의 마을 사람들이 기름 방망이로 장작더미 곳곳에 불을 당겼다. 기름이 밴 장작더미는 진한 연기를 내뿜으며 금세 불길이 휩싸였다. 매운 연기 탓인지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활활 타고 있는 불기둥이 뿌옇게 흐려졌다.
어머니는 불 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아이들의 돌팔매질과 사람들의 봉변에도 아랑곳 없다는 듯 두 손을 허우적거리며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어머니의 표정이 얼마나 천연덕스럽게 보였는지 전혀 죽음이라는 검은 그림자를 느낄 수가 없었다. 이제 어머니와 나는 고통의 늪에서 풀려나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되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은 어머니의 육신과 함께 천형의 고통도 태워버렸다. 사라져 가는 어머니의 육신과 함께 천형의 고통도 연기로 날아가고 있었다. 사라져 가는 어머니의 육신과 함께 나를 끈끈하게 얽어매고 있던 칙칙스런 관계도 불길 속에서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끊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완벽하게 감싸고 있던 거미줄 같은 관계가 힘없이 끊어지기 시작하자, 나는 갑자기 허탈감이 들었다. 이 관계를 끊어버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날들의 밤을 태워버렸던가. 이제는 정말 끈끈하고 칙칙했던 관계가 완전하게 끊어져 버렸다. 나는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머니의 시신은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완전하게 꺼져 버렸다. 나는 어머니와의 마지막 관계가 끊어질 때까지 흔적을 지켜보았다. 사람들은 모두들 내려갔고, 나와 사내만 남아 사라지는 어머니를 마지막까지 바라보았다.
“이제는 정말 어머니와의 관계가 완전하게 끝이 난 거야.”
나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마지막 가는 겨울의 싸늘한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며 지나갔다.
“눈이 내리는 구만.”
잿티 같은 눈발이 성성이자 사내가 손바닥으로 눈을 받으며 말했다.
“…….”
“올 겨울 마지막 눈일 거구만.”
“아마 그럴 겁니다. 마지막 눈이 될 겁니다.”
영글어 가는 눈발 탓인지 시야가 점점 뽀얗게 흐려졌다.
첫댓글 도도야. 어케해서 쏘스가 나온거야? 이걸 우리 프로그래머들은 내장 보인다고 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