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과 정열 그리고 소유욕 -
다 선
며칠 전 TV에서 변심한 애인을 살해한 끔찍한 사건이 보도된 적이 있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애인을 살해한 남자의 사회적 신분이었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닐 만큼 경제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전혀 문제가 될 만한 배경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살해동기를 묻는 수사관들의 질문에 그는 애인이 변심한 것에 대해 격분한 나머지 살해 했다고 했다. 나는 그 뉴스를 보면서 정말 그 남자는 자신의 애인을 사랑했던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져 보았다. 그리고 아니다 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사람은 자신의 애인을 사랑 했다기 보다는 그 여자에 대한 정열 혹은 소유욕에 넘쳐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소유욕이 남달랐던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에는 사랑과 정열 그리고 소유욕이 있다. 물론 이들 중 어느 하나를 떼어내어 독립된 감정으로 분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 경계는 설정할 수가 있다.
사랑은 빛깔도 냄새도 뜨거움도 없다. 그래서 사랑은 보이지 않고 다만 느낄 수 있을 뿐이다. 바람이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살갗을 스치고 지나갈 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정열(情熱)은 말 그대로 정에 열이 가해져 뜨겁다. 아마 청춘 남녀가 뜨겁게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 본질은 대부분 정열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모 드링크 선전광고에 ‘사랑과 정열을 그대에게’라는 문구가 있었다. 사랑을 그대에게 혹은 정열을 그대에게 라고 하지 않고 사랑과 정열을 그대에게 라고 한 것은 사랑과 정열은 별개의 개념이면서 바늘과 실처럼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감정이 나타날 때는 정반대로 나타난다는 것이 문제이다.
사랑은 늘 자신을 축소 지향적으로 만들거나 차갑게 만든다. 모 대중가수가 부른 애모라는 곡에 사랑을 아주 잘 표현한 가사가 있다.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늘은 울고 싶어라/세월의 강 너머 우리사랑은 눈물 속에 흔들리는데/ 얼만큼 나 더 살아야 그대를 잊을 수 있나/ 한마디 말이 모자라서 다가설 수 없는 사람아/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그대 등 뒤에 서면 내 눈은 젖어드는가/ 사랑 때문에 침묵해야 할 나는 당신의 여자/ 그리고 추억이 있는 한 당신은 나의 남자요/‘나는 왜 그대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가’그렇다. 바로 그것이 사랑이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서면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 보이고 작아 보인다. 왜 일까?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섰을 때 자신이 작아 보이는 것은 상대방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무의식적인 표현이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정말 내가 상대방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라는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던지는 질문이 있기 때문이다. 즉,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는데 상대방이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상대방이 더 행복해지는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행복까지를 염려하고 생각한 나머지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나 여자나 평소 다른 사람 앞에서는 말도 잘하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지내는데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서면 얼굴이 붉어지고, 말을 더듬고, 가슴이 방망이질을 하는 것이다.
정열은 사랑과 반대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열이 있어 뜨겁다. 뜨겁기 때문에 움직임이 있고 역동적이다. 용광로와 같다. 용광로의 특성은 모든 것을 녹이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상대방의 과거도, 흠집도 모두 녹일 수 있다. 그래서 정열이 불탈 때는 상대방의 과거쯤은 사랑에 장애가 되거나 문제가 되질 않는다. 정열이 불탈 때의 특징이다. 또 정열에 불타는 사람은 자신이 상대방을 녹여서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사랑보다 정열에 불타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내 목숨을 다해서라도 꼭 당신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그러니 나와 결혼 해달라고. 어찌보면 사랑에 넘치는 것 같지만 이런 사람은 사랑의 속성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다. 아마도 이런 사람은 행복에 대한 정의를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즉 행복이라는 것이 내가 상대방에게 잘해주고, 좋은 집에서 호의호식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정도일 것이다. 물론 이런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그런 사람은 정열에 넘치는 사람을 만난다면 행복해 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이 깊은 사람들은 행복의 가치가 다른데 있는 경우가 많다. 즉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이런 부류이다. 역사 속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하여 신분을 초월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왕위를 버린 사람도 있고, 모든 부귀영화를 버린 사람도 있다. 바로 사랑과 행복의 관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정열에 바탕을 둔 사랑을 한 사람들은 나이가 먹어 중년이 되었을 때 사랑하는 것이 젊을 때 같지 않다거나 젊을 때 보다 사랑이 많이 식었다고 말하거나 뜨겁게 사랑하는 것도 젊어서 한 때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사랑과 정열을 혼돈한 탓이다. 사랑과 정열은 다른 것인데 말이다. 이것은 사랑이 식은 것이 아니고 정열이 식은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 가면 대부분 관심의 대상이 배우자에게서 아이들이나 사회 활동 쪽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젊어서 정열이 넘칠 때는 보이지 않던 상대방의 흠집도 보이는 경우가 생기면서 중년에 와서야 과거문제로 불화를 겪기도 하고 심지어는 헤어지는 경우까지도 생기게 된다. 사랑이 식은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녹일 수 있었던 정열이 식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열은 적절해야 한다. 열이기 때문이다. 열은 지나치면 자신을 태울 수도 있고 더러는 상대방까지 태워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은 다르다. 진정으로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들의 특성은 나이를 먹어 가면 갈수록 상대방으로 인해 안타까와 하는 일들이 많아진다. 그렇게 곱던 얼굴에 주름살이 늘어가는 것을 안타까와 하고, 힘이 넘치던 근육에 힘이 쇠퇴하여 감을 안쓰러워하고, 잘 먹던 음식을 소화 시키지 못함을 안타까와 하게 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아픔까지도 함께 아파하게 된다. 그래서 마음이 늘 아프다. 하지만 행복이 깃든 아픔이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서로 돌보고 아끼는 마음이 더욱 깊어지게 된다. 사랑은 처음부터 뜨겁거나 열을 포함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도 식지가 않는다. 그래서 사랑은 영원한 것이다. 거기에 비해 정열은 영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열을 만들어 내야 하는데 그것이 현실적으로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불꽃을 피워 올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소유욕은 사랑하는 사람을 내 물건 소유하듯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욕망이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 소유로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은 소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불행하게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경우 소유는 불가능하다. 설령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사람을 소유했다 하더라도 몸은 소유했을지 모르지만 그 사람의 영혼은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가슴 아프고 비극적인 일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보다 큰 사랑이다. 왜냐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어떤 것을 그 사람에게 해주어도 그 사람은 행복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야 행복한 법이기 때문이다. 아마 변심한 애인을 살해한 사람은 소유욕만 앞섰지 사랑에 대한 이 평범한 진리를 깨닫지 못했던 듯싶다. 옛말에 용감한 사람이 미인을 얻는다는 말이 있지만 몸은 소유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영혼까지를 소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했느냐 아니냐 혹은 누구에게 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 마음 속에 품은 사랑이다. 비록 내가 그 사람을 소유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마음속으로 평생 품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진정한 사랑을 아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일평생 단 한번도 자신의 모든 것을 주어 사랑해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죽어 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 사랑학개론 6강을 마치면서 ♡
당신은 지금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당신 혼자서만 짝사랑하고 있는 사람을 당신이 소유했을 때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믿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행복은 당신이 느끼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이 느끼는 주관적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
첫댓글 그 사람을 소유하지 않으려 하면서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글 잘읽었습니다 다선님!^^
사랑과 정열, 소유욕 그렇군요. 그래서 운명이 허락하지 않아 몾맺어진 사람들도 서로 사랑할 수 있느거군요. 세월이 흘러흘러도요. 좋은 글 감사, 감사 합니다.
아, 이런 사랑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사랑학개론이란글을 읽을수 있게 해주심 감사합니다 늘 좋은글로강의해주세요
계속 사랑학개론 부탁드려요. 이제야 사랑에 대해 조금씩 생각하게 되어요.
다선님!~ 마음이~ 아프고 ~저린~사랑을 가슴에 품고 평생 살아야 하는것은 ~지독한 고통이지 않나요?
그리움이 가슴속에 있으면 바람소리에도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지요. 하지만 사랑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 아닐까요. 닉네임이 참 예쁘시네요
사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공감이 참 많이 됩니다...
요즘에서야 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흔히 사람들이 사랑을 시작하고 진행하면서 겪는 과도기나 침체기 저는 그것이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느끼지 않도록 하려구 노력할려구요 근데 쉽지는 않지만 한번 해보려구요 저의 평생사랑을 위해서요^^기도해 주세요 ^^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작아지는 마음이 든다는 말이 참 공감이 됩니다. 열정만으로 소유욕을 갖는 것이 아닌 상대의 아픔을 함께 아파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데이트폭력이 많이 이슈 되는 요즘 참 공감이 되는 글입니다 . 소유욕이 아닌 함께 공감하는 사랑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