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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 문답
미는 무엇인가? : 아름다운 것, 매력적인 것, 멋있는 것, 좋은 것과 결부된다. 자기와 같은 것을 발견할 때 느끼는 감정이 아름다운 것
1. 예술이란? :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전달하는 미적 표현 활동이다.
2. 미술이란? :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시각적 방법으로 표현한 조형예술이다. 미술은 순수한 시각예술, 공간예술, 조형예술로 불려진다. 미술 최고 목표: 조화[調和]에 둔다. 우리나라에서는 1911년 서화미술협회가 생기면서 미술이란 용어를 사용함. 고희동 [高羲東, 1886.3.11~1965.10.22]한국 최초의 미술유학생으로 일본에서 서양화를 전공 귀국하여 휘문·보성학교 교사를 역임하였다.
3. 미학이란? :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감각의 의미이다.
4. 그림이란? : 그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표현이다. 쉽게 전달하는 미적 쾌감이 있다. 작가의 통찰의 눈으로 표현된 조화와 통일의 표현이다. 동양화는 문인화, 사군자, 수묵화, 채묵화, 채색화가 있다. 동양화는 자연을 모태로 하여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
5. 남종화와 북종화 문인화란? : 당나라 이후 산수화가는 남북양파로 나뉘었다. 남파는 왕유王維의 피마준을 사용한 수묵산수화를 위주로 한 계열을 남종화 남화라 한다. 북파는 이사훈李思訓의 부벽준을 사용한 채색산수화를 위주로 한 계열을 북종화 북화라 한다. 문인화는 남종화풍의 묘사에 시서화를 종합하여 학덕이 있는 선비들이 그렸다. 15세기 북종화가 절충된 형식을 취한 화가로는 김제, 김명국, 이징 등이 있다. 18세기에는 정선이 남종화법을 진경산수로 변모시켰다. 진경화가는 정선김홍도정충화김윤겸정수영최북강희언김응환 등이 있다. 조선 말 김정희전기조희룡허유김수철 등이 본격적인 남종화 산수화법을 익혀 과감한 생략과 과장, 파격적 소묘, 담채 등을 사용 한국적 남종화를 이룩하였다. 남종화가중에서 문인들이 많아서 남종화를 문인화라고도 불렀다. 차차 문인화가들은 전문 직업 화가로 변했고, 원래의 문인화가들은 여기로 그렸던 것이다. 그러나 북종화가 중 오도자이사훈처럼 조용한 은거 생활을 즐기는 풍유객도 있었다.
6. 한국의 미 : 한국적인 아름다움은 선이다. 고유섭은 한국미를 구수한 큰 맛으로, 유희순은 유기적 조화와 다양성의 통일로, 조요한은 소박미와 속기 없는 해학미로 보았다. 한국화의 미의식은 정통성의 본원을 찾는데 있다. 고유섭 [高裕燮, 1905.2.2~1944.6.26] 한국의 미술사학가. 경성대학 철학과에서 미학과 미술사를 전공 명승·고적·사찰을 답사·연구하였다.
7. 한국화란 무엇인가? : 앵두 같은 입술, 한국 여인! 그것은 분명 그런 모습이다. 그렇다면 한국화는 무엇일까? 한국적인 재료로 한국적 정서와 미감이 표현된 그림이 한국화이다.
1921년 제1회 협전(서화협회전, 1936년 제15회로 끝남) 때까지는 ‘서화’ 라고 칭하였다. 1922년 제1회 선전(조선미술전람회. 1944년 제23회로 끝남) 시기에는 조선총독부의 규약대로 ‘동양화’라 칭하였다. 1949년 제1회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 1981년 제30회로 끝남)을 시작으로 그림에서 한국적 주체성을 강조하려고 노력하였다. 동양화와 서양화로 양분하여 접수하였다. 1950년 1월 김화경은 신문 기고에서 일본화와 구별되는 그림으로 ‘동양화로서의 한화’를 부르짖었다. 김화경 (金華慶 ) 일본 동경 제국 미술학교를 수학했으며, 이당 김은호 문하에서 사사하였다. 세종 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1971년 청감 김영기는 ‘한국화’를 사용하자고 건의 발표하였다. 1982년 제1회 미술대전(대한민국미술대전. 1995년은 제14회) 때부터 ‘한국화’로 지칭케 되었다. 최근 미술평론가 최병식은 한국화를 수묵화와 채색화의 총칭으로 ‘채묵화’라고 칭하자고 제안하였다. 중국에서는 동양화를 동방회화라 하고 우리가 말하는 동양화를 중국화 또는 국화, 일본은 일본화, 북한은 조선화, 남한은 한국화라 부른다.
8. 수묵화와 채색화 : 수묵화는 바로 먹으로 그린 그림 세계다. 먹의 색은 기이며 우주의 유무를 조화시키는 유현의 뜻을 갖고 있다. 미술문화가 흥행할 때는 채색화가 더 발달하였고 시대가 혼란할 때는 수묵화가 발달했었다. 한국화법에서는 먹과 함께 약간의 채색을 하는 것을 담채라 하고 색을 진하게 칠하는 것을 진채라 부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동물화,화조화,탱화 등 진채를 하는 것을 채색화라고 부른다.
9.산수화 : 남경지방의 산수를 배경으로 한 동양 특유의 풍경화는 위진시대부터 이다. 장자의 현학과 자연과 인본의 친숙 관계로부터다. 노자의 무위는 “자연은 순환하고 사람은 자연을 찾아든다.”고 했다. 당말 오도자와 왕유 때 수묵산수화는 절정을 이룬다. 인격장자철학산수화가 동일시되었다. 최초의 산수화론은 고개지의 ‘화운대산기’가 있다. 당시 사대부들은 자연속에 은일하기 좋아했다. 당의 3대가는 이사훈왕유오도자다.
이사훈은 실경산수화를, 오도자는 사군자와 관념적 산수를, 왕유는 문인적 산수화를 잘 그렸다. 형호는 당말 화가인데 산수화를 정착시켰다. 왕정은 은일적인 기질로 산수화를 좋아했다. 그의 ‘역대명화기’에서 산수화를 독립시키려고 했다. 자연의 무한성을 강조했다.
형호는 작품에서 근육골기의 4勢道를 “필이 끊이지 않는 것, 기복이 성실한 것, 생사가 올바른 것, 화적에 실패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회화의 본질은 참이다. 산수의 상징성은유성비유성에서 자연과 우주와 인간의 삶의 지혜를 찾아보는 것이다. 그것이 산수화의 정신세계이다.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는 한국적 실경으로 생활 주변과 진경산수를 그렸다. 반면에 추사소치고람북산 등은 정신적 문인 기질로 절제와 일필의 정신세계를 그리려고 노력하였다. 소림 조석진과 심전 안중식은 조선 말 산수화가로 靑末 산수화의 형태를 답습하였다.
10. 사군자 : 사군자는 매, 란, 국, 죽을 지칭하며 군자에 비유한다. 진, 선, 미, 정의 미가 은은하게 숨어있다. 이들 중 국화를 제외하여 歲寒三友라 칭하기도 하고, 소나무를 포함시켜 五友라 부르기도 한다. 중국에서 묵매는 11세기 말 선승 仲仁에 의해 창시되어 이간, 가구사, 조맹부 등이 뛰어났다. 묵란은 남송대의 정소남이 난법을 창시하여 관도승, 명대 마수정 및 여류화가들이 많이 그렸다. 국화는 송대 범석호, 유준호를 시조로 북송의 황전, 서희 등이 유명했다. 묵죽은 사군자 중 가장 먼저 발전하였다. 당의 오도자나 소열로부터 시작했다. 우리나라 경우 菊은 정조, 강세황, 김수철, 유숙 등이 梅는 어몽룡, 신사임당, 이부인, 오달제, 허목, 조희룡, 장승업, 양기훈 등이, 竹은 이정, 유덕장, 임희지, 신위, 민영익, 정학교 등이, 蘭은 김정희, 조희룡, 이욱응, 신명횡, 김응원, 민영익 등이다.
11. 문인화 : 시, 서, 화를 즐기는 문인의 餘技的인 그림이다. 명말 董基昌은 문인화의 계보를 남종화로 직업화가의 계보를 북종화로 명하고 북종화를 배격하였다. 문인화는 “자오를 위해 그리는 것이지 팔아서 돈 벌려고 그리는 게 아니다.”고 했다. 고려 때 사대부 김부식, 정홍진 등이 畵竹으로 이름을 떨친다. 조선시대에 김제, 조속 등이 토속적인 화풍을 이룬다. 정조대왕은 파초를 잘 그린다. 정선, 심사정, 조영석 등이 본격적인 화가다. 당상관으로 그림을 그린 이재, 윤순 등이 있고, 김정희, 전기, 민영익 등 19세기 정점에 달한다.
12. 화조화 : 화훼화, 또는 영모화, 동물화, 절지 등을 총칭한다. 꽃, 새, 풀, 벌레, 동물 등을 소재로 한 그림이다. 대표적인 작가는 오대의 서희, 황전, 북송의 서승자, 황거채, 원의 전순거, 명의 변문진, 여기, 청의 황진, 운수평, 양주팔괴 등이 있다. 우리나라는 조선중기 이후새 그림에 김정, 신세림, 조지운, 심사정, 김양기, 홍세섭 등이 있고, 화훼와 초충도에는 신사임당, 이우, 남계우가 있다. 남견도는 이암, 김두량 등이, 고양이 그림은 변상벽이 유명하였다. 신윤복은 鷄그림 호랑이는 고운과 김홍도가, 소그림은 김제, 김식, 용그림은 석경, 심사정, 김응환 등이 포도는 성삼문, 신사임당, 황집중, 이계우, 황수주, 이인문, 심정위, 최석환 등이 잘 그렸다.
초화는 여성적, 목화는 남성적으로 그렸다. 모란꽃은 부려해야하고 해당화는 요요해야한다. 매화는 맑고 향화는 번성해야, 도화는 빽빽해야, 매실꽃은 듬성듬성해야, 장미화는 한들거려야 산중꽃은 외로워야, 野화는 미풍이 있어야 하고, 山茶화는 향기로워야, 월계화와 목련화는 더욱 향이 짙어야, 양유와 오동은 청아해야, 송백은 푸른 윤기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구염법은 황전이 쓰던 법으로 꽃송이는 구륵으로 잎은 점엽으로 그리는 방법이다. 몰골법은 서희를 시작으로 수묵이나 색채로 직접 꽃의 형태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현대에도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다. 묵필점엽법은 먹의 농담으로 꽃송이나 줄기 등을 그리는 법으로 문인화가들이 즐겨 사용했다. 백묘법이란 선염이나 채색을 사용치 않고 인물화처럼 붓을 유쾌하고 빠르게 놀려 꽃의 형태를 나타내는 화법으로 진산, 조맹부 등이 즐겨 사용한 법이다.
외곽선을 가느다란 쌍선으로 먼저 그리면 백묘, 그 가운데를 색이나 먹으로 채우는 법을 구륵법이라 하고 발묵으로 단번에 물체의 형태를 그리는 법을 몰골법 이라 한다.
13. 선면화 : 고대 중국의 순임금은 현명한 사람을 구하고자 오명선이랑 부채를 만들었다 한다. 부채는 쥘부채(접는 부채)와 방구부채(둥근 부채)가 있다. 방구부채는 모양새나 그려진 그림에 따라 오엽선, 연엽선, 파초선, 학선, 태극선 등이 그것이다. 쥘부채(접선)는 합죽선, 소선, 반죽선, 외각선, 내각선, 승두선 등이 있다. 장가 갈 때 얼굴을 가리는 차면선은 청색이다. 선면화는 시원해야 좋다. 보통 합죽선은 6호 정도의 크기이다.
14. 십장생도 : 열개의 불사장주의 해, 구름, 산, 물, 돌, 솔, 불로초, 거북, 학, 사슴을 그림으로 그린 것을 말한다.
십장생도의 개념은 중국 도교와 관계가 있고 고구려 벽화에 선례가 있다. 조선대에 도화서원은 20명 정도의 화원들인데 대나무를 잘 그리면 1등, 2등은 산수, 3등은 인물과 동물, 4등은 화훼를 잘 그리는 자로 선발되었다. 계회도, 놀이도, 의궤도 같은 기록화를 그렸다. 서민들도 마치 양반처럼 책을 많이 그려 붙여 두었다. 그것을 책걸이 라 한다. 사대부를 본받아 서민들이 즐겨 그린 이런 그림들을 민화라고 한다. 민화는 기쁨과 소망, 감성과 신념, 신앙, 장수와 화복, 악귀를 막는 벽사의 뜻을 담고 있다. 유종열은 한국 민예품의 소박미에 감동하여 민중그림을 민화라 창하였다.
15. 스케치 : 대상을 신속히 직접 묘사하는 것이 스케치이다. 사생 또는 실사라고도 한다. 실경에서 의경으로의 전환이다. 스케치는 주제를 살린다.
16. 문방사우 : 지, 필, 묵, 연 문방사우라고도 한다. 종이는 東漢의 채륜이 발명하였다. 재료는 죽, 저, 산 닥나무, 벼짚, 마, 훤, 인삼 등이 쓰인다. 추운 겨울에 만든 것은 上品으로 친다. 중국 선주와 복주에서 볏짚과 대로 만든 선지와 대나무에 닥나무를 섞어 만든 당지가 있다. 발묵이 잘되는 것은 옥판선지와 본 화선지이다. 신라시대 범한 다니리경은 백무지, 고려 때는 아청지가 쓰였다. 전통한지는 질 좋은 저피로 만들었다.
붓은 진의 몽념이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붓은 보통 대나무에 필모를 부착시켜 만든다. 모는 사슴, 말, 살쾡이, 이리, 염소 털 등이 쓰인다. 붓은 호의 길이에 따라 장봉, 중봉, 단봉필 등으로 나눈다. 강호필은 말, 돼지, 족제비, 살쾡이 털을 쓰고 겸호필은 여려가지 털을 섞어 만든 붓이다. 광주 백운동의 진다리붓이 유명하다. 털끝은 가지런하고 성형이 둥글고 붓대가 튼튼하게 잘 불어 있고 탄력 있는 붓을 말한다.
먹은 BC.2세기 漢대의 송연묵이 최초다. 먹은 그을음, 아교, 향료를 섞어 만든다. 먹은 자연산인 석묵, 먹색이 좋은 송연묵 채종유로 만든 유연묵, 먹 속에 紅을 넣어 만든 홍화묵, 수은과 유황과 납을 섞어 만든 주묵도 있다. 벼루는 한대에 제작되어 송대 유행한다. 남포벼루가 유명하다. 연적과 문진 깔개 등이 쓰인다.
17. 낙관 : 인주는 빨강색이다. 서화가 완성되었을 때 작가가 아호나 성명, 제작일, 발문 등을 적고 도장을 찍는 것을 낙관이라 한다. 000 서, 사, 록 이라고 쓴다. 남에게 보이거나 줄 때에는 서여, 서증, 서기 라고 쓴다. 남에게도 드림의 뜻으로는 청감, 아감, 박찬, 정지, 교지 등이 있다. 윗사람의 부탁에 의해 쓰는 경우 ‘奉爲 000書’ 라고 쓴다. 남의 수연에는 자작시를 써 보냈으나 요즘은 賀 000화갑, 수연 이라 쓴다. 어린이 돌날은 수시睟時라고 쓴다.
18. 보통 호는 그 사람의 심경, 지향, 환경, 출생지, 서재 등에 의해 짓는다. 스승이나 윗사람, 사회인, 또는 본인이 짓는다. 자는 본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던 시대에 장기간 뒤 본이름 대신 부르던 이름이다. 회화에서 낙관은 제, 발 그리고 인장 이다. 제는 품평하는 시문으로 화첩이나 화권의 전면이나 머리에 쓴다. 인장 이름자는 음각, 호는 양각한다. 남의작품을 모방했을 때는 방 000라 쓴다.
명대 하진의 자학도법이 있고 문징명의 아들 문팽이 전각을 잘하여 두 사람을 문, 하라 칭하고 전각의 시조라 일컫는다.
19. 한국화의 채색 : 동양화는 공백을 전면색채로 덮었다고 한다. 이 화법은 唐의 이사훈이 청록산수화라고 칭하였고 유행하였다. 그러나 당의 왕유는 수묵산수화를 주창했다. 즉 공간을 공백으로 남겨놓는 일이다. 그것을 수묵공백론이라고 한다. 그후 양광은 그대로 두고 음광, 즉 어두운 부분에 채색하였다. 그것이 수묵담채화다. 안료는 호분( 백색의 대표적 안료다. 조개껍질로 만든다.)동황 (황색안 쉽게 퇴색한다.), 대자 (밤색이다. 산화철과 망간 성분이다.), 남 (천연염료다.), 록청 (암채색으로 공작석을 미세하게 분말한 것이다.), 군청 (암채색으로 남동관에서 생산된다.), 연지 (연지색은 동물 피에서 채취했다.), 주색 (유화수은의 인주색이다.)이다
20. 선 : 한국화는 선의 예술이다. 서양화는 색과 색, 면과 면이 만나는 접점이 선이지만 한국화는 선 그 자체가 면과 면을 구분 짓는다. 공선은 명암이나 깊이를 느끼게 한다. 의재 허백련은 그칠 듯 이어지는 선에 먹을 아끼는 갈필선을 즐겨 사용했다. 선화법에 일획법이 있다. 그림의 시작이 일획이요, 끝이 일획이다.
21. 여백 : 그려진 밖의 부분 여백은 예부터 기의 표상으로 여겼다. 10세기 산수화가들은 ‘산수의 기상’을 그리기를 의도하였고 여백은 빛과 기의 뜻을 가졌다. 송, 원대의 선종 화가들은 수묵화를 자신들의 종교 이념을 표명하는 도구로 간주하여 일획법을 강조하였다. 한국인의 여유는 문인화와 산수화의 여백이다.
22. 사혁의 화6법 : 南齊시대(475~501년)의 초상화가 사혁은 화론가였는데 동양회화론의 시조라 할 수 있다. 사혁은 화6품론을 주장하였다. 기운생동 골법용필 응물상형. 수류부채 경영위치 전이모사이다.
23. 산수화의 준 : 준은 선이다. 명말 왕가옥은 산호망(1643)에서 14준을, 청초 왕개는 계자원화전(1679)에서 18준을, 석도는 화어록에서 13준을 장대천은 장대천화보에서 12준을 강조했다.
1) 피마준: 마의 껍질을 줄기로 가르는 것처럼 같은 방향으로 길게 긋는 선, 남당시대 거연과 원의 황공망이 사용하였다.
2) 부벽준: 도끼로 나무를 찍었을 때 생긴 면처럼 수직의 단층이 부서진 산석이나 바위를 그리는 선, 남송의 이당과 마하파가 사용했다.
3) 해색준: 노끈을 갈기갈기 풀어놓은 것처럼 그리는 선, 원대 조맹부가 사용하였다.
4) 절대준: ㄱ자처럼 수직으로 내려 계단처럼 층을 이루는 선, 원의 예찬이 창시했다.
5) 미점준: 쌀 모양으로 점을 옆으로 다소 굵게 찍어 그리는 준, 북송의 미불이 사용했다.
6) 우점준: 빗방울처럼 찍은 타원형의 점준, 화북지방의 황토암석을 그리는데 사용하였다.
7) 몰골준: 선이나 구륵의 사용없이 먹의 농담으로 그린 준, 황전이 사용하였다.
24. 구륵법과 몰골법 : 구륵법은 구륵진채법 이라고도 한다. 형태의 윤곽을 선으로 먼저 그리고 그 안을 먹이나 채색으로 메우는 기법이다. 황전이 전형적으로 사용해온 기법으로 ‘황씨체’라고도 부른다. 백묘법은 선염이나 채색 없이 선으로만 그린 인물이나 화조를 말한다. 진상과 조맹부가 즐겨 사용한 방법이다. 몰골화법은 바로 채색이나 먹으로 그린 그림이다. 외곽선이 없기 때문에 뼈 없는 그림이라 뜻에서 몰골법이라고 한다. 몰골법은 본래 서역의 승 들이 불화에 많이 사용해온 방법이었다. 장승요(480?~549)는 서역을 여러 차례 왕래하면서 중국화 발전에 공헌하였다. 중국 청조에 활약한 명의 유량민 화가 팔대산인(1626~1705)은 몰골법의 수묵화에 능한 사람이었다.
25. 한국화 기법 : 붓을 중봉으로 바르게 쓰는 것을 직필, 옆면으로 쓰는 것을 측필, 가늘게 쓰는 세필, 거칠게 사용하면 조필, 거꾸로 뒤집어쓰면 역필 이라 한다. ‘남농’은 입으로 붓을 쪼개어 쓰는 파필을 즐겼다. 발묵이란 물과 먹의 양을 잘 조절해서 먹색을 내는 것을 말한다. 발묵은 수묵화의 생명이다. 용묵법은 크게 선염법과 적묵법이 있다. 선염은 바람법이다. 적묵법은 먹을 칠하고 마른 후 진한 먹을 칠한다거나 거기를 먹으로 바른다거나 하여 먹을 층층이 바르는 방법이다.
26. 한국화 구도 : 조선시대 산수화는 실과 여백을 다 같이 중시했다. 반분구도 또는 편파구도는 사각형 화선지의 좌우, 상하 어느 한 변 쪽에 그림을 치우고 나머지는 여백으로 남겨 놓았다. 대각구도는 이정의 산수도, 김명국의 설경산수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정선의 박연폭포(18세기)나 인왕제색도, 김홍도의 사인암도(18세기) 등은 화면을 가득 채워 주제를 강화시킨 전층구도 이다. 조선 말기(19세기) 추사 김정희나 소치의 제자들은 남종화를 그리는데 전경, 중경, 후경 삼단으로 나눈 삼단구도도 즐겨 사용한다.
27. 그림의 주제 : 주제는 그림의 핵심이다.
28. 그림의 소재 : 소재는 그림이 표현해내는 예술적 형상에 대해 그 원료나 매체, 또는 주제를 표현키 위한 매개물이나 수단을 말한다.
29. 한국화 제작법 : 그림은 사랑이다. 예술도 사랑이다. 인간과 자연을 사랑하는 것은 그림이다. 형, 상형, 의상 중 어느 것을 기호로 취하든 미적 형식의 기본은 조화다.
30. 한국화 감상법 : “보기에 좋더라.” 우선 그림은 마음으로 읽는다. 머리로 판단하거나 논리를 내세우지 않는다. 그냥 느껴보는 것이다. 진실의 표현, 참 느낌, 자신에게 솔직함 등이 있다가는 보아야한다. 내가 새가 된다면? 어디를 가고 싶나? 무엇을 하고 싶나? 거기에 대한 답이 그림의 세계다. 내가 화가라면 무엇을 그리고 싶나? 화가는 새도 되고 천사도 되고 방랑자도 된다. 그러니까 새의 말도 하고 천사의 노래도 부르고 방랑자의 사도 읊는다. 그리고 작가의 고층이나 의도를 상상해 보기도 한다.
그림은 쉽든 어렵든 객관적인 즉 보편성과 공통성도 갖는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기능과 화론으로 해석된다. 즉 그림으로 갖추어야 할 기본인 셈이다. 그러한 요소들은 작가의 의도인 주제, 창작성, 시대성, 기능중의 텃치, 화필의 운용, 화면전개, 구도, 색상이나 먹의 운용, 이론적 배경, 작가가 추구하는 철학 등이다. 그런 것이 보통 말하는 ‘잘 그렸다’ ‘못 그렸다’의 외적 요소도 되고 그것의 융화와 총체가 내적인 ‘훌륭한 그림’의 요인이 된다. 그림의 주제, 구도, 필치, 설채, 느낌, 창의력, 성실성, 화면 전개, 작가의 가능성 등을 조심스럽게 살핀 다음 내 마음과의 결합 등도 살핀다. 그것이 재미있다면 일단 감상자가 된 셈이다.
31. 구상과 추상 : 우리가 알 수 있는 구체물을 그린 그림이 구상화다. 추상화는 비구상 또는 비대상화라고 부른다. 사랑, 평화 등을 어떤 요소로 표현했다 하자. 색채, 질감, 선, 창조된 형태 등 추상적 요소로 작품을 하게 된다. 1890년 모리스 드니는 “회화란 질서를 가진 색채로 덮여진 평면이다.” 라고 말 한데서 기인한다. 20세기의 포비즘과 고갱의 색채해방론, 사물을 분해하여 구성하는 큐비즘 등이 그 시발이다.
추상화는 그 표현에 있어 요소주의와 자유추상으로 나눌 수 있다. 한국에 있어 구상과 추상 대립은 60년대에 뚜렷해진다. 60년대 각 미술대학 출신 신예들의 태반이 추상을 시도하였다. 장두건의 ‘미술에 있어서의 구상과 추상’, 박서보의 ‘사실과 구상’, 이열모의 ‘현대미술과 전위’, ‘추상은 예술이 아니다’ 등이다. 1960년 제 9회 국전에 최초로 추상미술이 참여한다. 70년대에 뚜렷하게 부상한 한국화의 비구상 작가는 서세옥, 안상철, 권영우, 안동숙, 김기창, 백내현 부부 등이었다. 1974년 23회 국전부터는 한국화에도 봄 국전은 비구상경연장으로 하였다. 1993년 제12회 ‘미술대전’부터 옛날 국전처럼 ‘비구상’ 부분이 생겼다.
32. 한국화의 크기는 어떻게 정하나? : 전지는 화선지 한 장의 크기이다. 전지 크기는 (68~70cm)*(136~140cm)이다. 서양화의 45호 정도이다. 전지의 가로:세로는 2:1정도이다. 전지의 절반은 반절, 삼등분한 크기는 삼절이라 한다. 3절의 크기는 45*70cm 정도이다.
33. 호의 크기는? : 서양화에서 그림의 크기는 프랑스식 크기를 사용하는 한국은 한국화에도 적용한다. 1호F 크기는 22.7*15.8cm다. 즉 1호는 관제 엽서 두장보다 더 크다. 영호(OF)도 있다. 18*14cm니까 보통 엽서한장크기가 0호에 해당한다. 홋수는 인물형을 F(Figure)라 하고 풍경형은 P(Paysage), 해경형은 M(Marine)이라 한다. 10호 F는 53*45.5cm이고, P는 53*40.9cm, M은 53*33.4cm로 해경으로 갈수로 옆으로 길다.
34. 도가사상과 한국화 : 한마디로 무위자연론이다. 무위란 ‘있는 그대로’이다. ‘있는 그대로’의 본성에 돌아가는 것 이다. 한국화는 어둔하게 소박하고 순수한 감정의 기쁨이 있고 심금을 울리는 교가 있어야한다. 그것이 道도다.
35. 선화 : 깨달음의 체험. 완전한 자유인, 그것이다. 선에서는 우주를 사대배공, 즉 사방이 모두 비어있는 공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선은 생각하지 않는 곳에 있다는 것이다.
36. 전신사조 : 인물의 인격과 정신, 혼까지 닮게 표현해야 한다는 이론을 傳神寫照라한다. 진대의 고개지는 산수화와 초상화를 모두 잘 그렸다. 실물을 닮게 그리는 것을 화정이라고 하고, 인격이나 혼을 닮게 그리는 것을 전신이라고 한다.
37. 작가정신 : 화가가 갖추어야 할 인품과 소양을 말한다. 작가정신은 맑고 밝은 바른길을 말한다. ‘떳떳함’이다. 부끄럽지 않는 인격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38. 한국화의 방향 : 중국화는 장엄한 승고미가 있는 일본화는 섬세한 화사미가 있고 한국화는 소박한 자연미가 있다. 하늘과 땅과 川가 하나 되어, 이르는 조화다.
39. 전통과 현대 : 문화는 흐른다. 현대는 과거의 연속이다. 즉 전통의 부단 없는 흐름이다. 인간의 삶에 활력소와 행복이 되는 ‘인간성회복’에 두어야 한다. 전통과 현대를 잇는 실험과 작업은 한국적 전통 속에 흐르는 정통 찾기에 있다.
40. 공짜그림 : 한국의 1만여 명의 미술인 중 순수하게 작품으로만 생계를 유지하는 인구는 0.5%인 500명 미만이다.
41. 그림 값 : 그림은 희소성이 강하다. 특히 명화의 경우 그렇다. 이중섭의 그림도 희소성이 강한편이다. 그래서 비싸다. 그림은 정신과 물질이 합일된 작품이다.
42. 좋은 그림이란? : 마음에 품고 있던 고향 같은 그림, 그림 안에서 수많은 변화와 균형이 이루어지고, 색채 좋고, 먹색 좋고, 필력 좋은 그런 그림이다.
43. 한국화의 맥 : 조선 초기(1392~1550)에는 안견 화풍이 크게 유행한다.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꿈에 거닌 도화원을 그린 현실과 환상의 낙원을 그린 그림이다. 조선 중기에는 안견 화풍과 절파계 화풍이 유행한다. 특히 김제가 그린 동자견려도가 유명하다. 조선 후기(1700~1850)는 한국화의 르네상스시대다. 한국화의 큰 맥인 안견→정선, 김홍도→장승업으로 이어지는 시대다. 3원 3재가 출현하는 시대다. 3원(이란 단원김홍도, 해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을 말한다. 3재가 공재 윤두서, 겸재정선, 현재 심사정이다. 조선 말기 (1850~1910)는 국내가 시끄러웠다. 석창 홍세섭 같은 현대적 화가도 등장한다. 우선 조선대 말 3원3재가 있고 그중 오원 장승업(1843~1897)이 근대와 이어진다. 그를 사사한 심전 안중식(1861~1918)과 소림 조석진(1853~1920)이 근대 한국화의 토대가 되었다. 심전 안중식과 소림 조석진의 문하에서 심산 노수현(1899~1978), 청전 이상범(1897~1972), 소정 변관식(1899~1976), 이당 김은호(1892~179)가 배출되었다. 한편 조선 말기 추사 김정희(1786~1856) 영향을 받은 남종화가로는 우봉 조희룡과 전기, 권돈인, 초의선사, 헌종, 흥선대원군, 소치 허유, 등이 있어 호남화단의 남화와 예향의 초석이 된다.
오늘날 한국화단의 큰 두 맥을 짚을 수 있다. 즉 심전과 소림의 문하와 추사 김정희의 문하다. 거기서 사사 받은 문하생들이 대학 강의도 하고 화단을 이루었다. 서울 중심의 북화와 산수화, 전라도 중심의 남화와 문인화 발전되어 온 것이 김은호의 수많은 제자와 청전과 심산의 제자들, 의재 허백련 남농 허전(1907~1981)의 제자들이 현대한국화단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1971년 서울신문사 주최로 동양화 6대가전을 개최하였다. 허백련, 김은호, 박승무, 이상범, 노수현, 변관식으로 오늘날에도 6대가라 부른다.
김은호 의 영향을 받은 화가로는 백윤문, 한유동, 장운봉, 운보 김기창, 월전 장우성, 조중현, 현초 이유태, 오당 안동숙, 숙당 배정례, 혜촌 김학수, 현당 김한영, 정홍거, 김화경, 정완섭, 이규옥, 이남옥, 한유동이 많다.
청전 이상범의 영향을 받은 작가도 많다. 제당 배렴, 심은택, 이현옥, 정용회, 이건영, 지호 이건걸, 청재 장철야, 남정 박노수, 석운 하태진 등 부지기수다.
심산 노수현 영향을 받은 화가 석성김형수, 심경박세원, 지목 이영찬, 이석 임송희, 백계 정탁영 등이다.
월전 장우성 받은 화가로는 산정 서세옥, 산정 서세옥의 영향을 받은 화가는 현송 정치환 등이 있다. 남농허건 아산 조방원, 도촌 신영복, 백포 곽남배, 우남 이옥성, 청당 김명제 등이 있고 조카인 임전 허문과 손자 허진, 전정 박항환, 임농 하철경 등이 있다.
의재 허백련의 영향을 받은 작가는 많기도 많다. 근원 구철우, 목재 허행면, 동강 정운면, 구당 이범제, 백양 조정규, 소산 정규원, 우산 허정두, 손자인 허달재, 희재 문장호, 녹설 이상재, 매정 이창주, 취련 허의득, 옥산 김옥진, 계산 장찬홍, 춘원 허규, 우계 오우선, 풍곡 성재휴, 치암 남경희, 연당 이계원, 금봉 박행보, 월아 양계남 등이다.
벽천 나상목은 묵로 이용우의 제자이고 청강 김영기는 부친인 해강 김규진에게 배웠다고 한다. 그림은 지극히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향해 몸부림치는 노작이어야 한다.
44. 공재윤두서 : 아들 윤덕희와 순자 윤용에게 화법이 이어졌다. 조선 중기(1550~1700)에는 화업으로 대를 잇는 집안이 많았다. 김제- 김기- 김식- 김집의 집안, 이경윤- 이영윤- 이징의 집안, 이상좌- 이숭효- 이흥효- 이정의 집안, 윤의립- 윤정립의 집안이 그것이다.
45.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 : 정선(1676~1759)과 김홍도(1745~1818)는 조선후기(1700~1850)의 대표적 작가다. 한국적 화풍을 세운 자들이다. 조선시대 4대가는 안견, 정선, 김홍도, 장승업이다.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남종화법에 토대를 두고 발전한 것이다. 정선을 추앙하던 많은 화가들은 그의 영향을 받아 실경적인 진경산수를 그렸다. 강희언, 김윤겸, 최북, 김응환, 김석신, 정수용, 등이 그렇다. 단원 김홍도(1745~1818)는 화원 화가로 정조 초상을 그리는 어진 畵師였다. 김홍도 화풍은 그의 아들 긍원 김양기, 친구 김응환의 조카 김득신 등에게 이어진다.
46. 추사 김정희 : 자는 원춘, 호는 완당, 추사, 과파, 노과, 노격이다. 추사는 다산 정약용과 박초정에게서 실학을 공부했다. 부친 김노경과 24세 때 청의 연경에 들어가 완원, 옹방강을 스승 삼아 금석학과 비첩, 문인취를 공부했다. 헌종 6년(1840) 제주에 귀양 가서 9년을 살았다. 추사는 금석학에 능하였는데 31세 때 북한산순수비를 발견하고 ‘예당 금석 과안록’을 저술하였다. 추사의 이런 정신과 회화는 제자인 권돈인, 초의선사, 소치허유, 우봉조희룡, 헌종, 흥선대원군 등에 이어진다.
47. 운림산방의 주인들 : 전라도는 예향이다. 학포 양팽손, 공재 윤두서, 추사 김정희, 소치 허유, 의재 허백련, 남농 허건 등 한 국화의 맥을 잇는 대가들이 줄을 잇는다.
소치 허유 - 미산 허형 - 남농허건 - 임전 허문 - 허진 운림산방 5대 주인들이다. 운림산방은 진도에 있는 소치의 당호이다. 허유는 허균의 후손으로 소치는 황공망의 아호 대치에서 따온 이름이다. 원말 4대가란 황공망, 오진, 예찬, 왕몽을 말한다. 미산 허형은 소치 허유의 4남이다. 모란을 잘 그렸다. 미산허영의 아들 남농(1907~1987)은 전통산수를 재해석한 실경 산수를 그렸다. 제자로는 아산 조방원, 도촌 신영복, 청당 김명제, 백포 곽남배, 전정 박항환, 임농 하철경 등이다. 임전 허문과 손자인 허진이 운림산방의 대를 잇고 있다.
48. 소림 조석진과 심전 안중식 : 심전과 소림은 한국화에 있어 근대회화의 어머니다. 비록 청대의 영향을 받아왔으나 한국현대화단의 효시를 이루기 때문이다. 안중식과 조석진 문하에서 심산 노수현 청전 이상범, 소정 변관식, 이당 김은호 등 한국의 대가들이 배출된다. 소림은 임전 조정규의 손자다. 화원 집안의 혈통으로 직업적인 화가의 생애를 보냈다. 심전은 천진에서 받은 서양문화의 충격으로 진취적이고 개화적 사고와 그림을 그리려 하였다.
49. 청전 이상범과 소정 변관식 : 청전(1897~1972)과 소정(1899~1976)은 일제 식민지하의 근대 한국화 1세대다. 둘 다 동일시대 실경산수를 그렸다. 청전과 소정은 815해방 후에야 자기양식을 찾고 실경산수에 관심을 갖는다. 1922년 동연사를 조직하고 신구 미술을 함께 연구한다. 1924년 소정이 제3회 선전에 출품한 ‘가을의 산가 분위기’나 1923년 청전에 제2회 선전에 출품한 ‘모연 ’ 등은 일본풍의 번지기나 소재주의에서 한발 앞서고 있다.
청전은 온화하고 차분한 분위기로 그렸다. 이와 반대로 소정은 몇몇 농가풍경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 나름의 이상향을 담아간다. 소정은 금강산을 비롯한 절경과 전가 풍경을 이상향으로 정형산수를 그렸다. 청전의 산수가 관조하는 것이라면 소정의 그것은 현장에서 느끼는 감정을 강조한 움직임이 큰 산수이다.
50. 심산 노수현 : 심산 노수현(1899~1978)은 황해도 곡산에서 태어나 심산은 청전, 소정 등과 비슷한 길을 걸었다. 결국 자신의 방법에 의한 ‘암벽산수화’를 창출하였다. ‘세상에 대한 울분을 푸는 산수화.’ 그는 이상산수를 관조하던 대가였다.
51. 이당 김은호 : 이당 김은호(1892~1979)는 미인도, 신선도, 화조도를 특유의 채색화로 다양하게 표현하였다. 스물한살 때 경성서화미술원에 정식으로 입학한다.
52. 의재 허백련 : 의도인 의재 (1891~197787세)는 춘설헌 주인이다. 1922년 제1회 선전인 동양화부에서 수석상, 묵매를 그렸던 미수 허목(1595~1682)이 가계의 중맥이고, 허소치가 방조이다. 의재는 완당과 소치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어려서 진도에 유배 왔던 무정 정만조 문하에서 한학을 공부하였고 의재라는 호도 정만조에게서 받았다. 1939년 연진회를 창설하였다. 정회원은 허백련, 구철우, 정상호, 정운면, 김동곤, 최한영, 허행면, 이범제, 정소산, 허정두 등이 이었다.
53. 재미있는 그림 : 안견의 몽유도원도, 윤두서의 자화상, 쑤케는 여인, 정선의 금강전도
54. 전시회 : 미술품을 한 장소에 모아 보이거나, 공개하는 전람회가 전시회다. 1911년 서화미술회 작품전이 교수와 학생, 합동전으로 열렸다는 기록이 있다. 1916년 일본에 유학했던 김관호는 귀국하여 고향인 평양에서 서양화 개인전을 갖는데 그것이 최초의 개인전인 듯하다. 1918년 고희동이 만든 서화협회는 1921년에 제 1회 협전을 개최한다.
우리니라 최초의 원색화집은 1938년 자연주의적 구상회화론을 제창했던 오지호가 만든 화집이다. 그는 오지호, 김주경 2인 원색 화집을 만들었다. 미술관이나 큰 화랑 또는 미술단체등에서 신예작가의 등용문으로 공모전을 개최하기도 한다. 공모전은 작품경연장이다. 따라서 비매전이다. 전시회의 목적은 작품을 보여주는데 있다. 서양에서 전람회는 1725년 이후 살롱(전시실)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전시회가 개최된다.
55. 국제미술축제 : 1995년 광주 비엔날레가 열렸다. 경계를 넘어가 주제다. 50개국 100여명의 작가가 초대 됬다. 비엔날레란 2년마다란 뜻을 이태리 말이다. 격년제로 열리는 전시회다.
파리 비엔날레: 1959년 파리에서 창설되었다. 파리 청년작가 국제 비엔날레 였다.
베니스 비엔날레: 1895년 이태리의 베니스에 생긴 세계 최초의 국제미술 전시회다.
상파울로 비엔날레: 1951년 브라질의 프란시스코 마타라조 소브리뇨가 창설했다.
카셀 도큐멘타: 1955년 독일 아놀드 보데가 개최한 독일 최대의 현대미술제다.
아바나 비엔날레: 1984년 쿠바에 아바나에서 창설된 제3세계 현대미술제다.
리용 비엔날레: 1991년 프랑스의 티에리프라, 티에리라스파 등이 시작했다.
56. 관청 화가 : 삼국시대 채원, 고려, 조선대의 도화서 화가, 불화장인 금어
57. 미술대학 : 4년제 미술학과가 있는 대학이 65개 이상이다. 거기에서 해마다 최소한 5천명 이상의 미술학사가 배출된다. 거기다가 12개의 교육대학에서 미술교육을 하고 있고, 4년제 대학의 사범대에도 미술교육학과가 있다. 122여개의 대학이 있다.
58. 협전과 선전 : 협전은 고희동이 근대적인 의미의 미술활동을 펼치고자 노력한다. 제1회 서화협회전(1921년)은 계동의 중앙학교 강당에서 열린다.
선전은 1922년 제1회가 시작되고 1944년 제 23회로 마지막 전시를 갖는다.
59. 후소회와 연진회 : 1923년 창립된 동연사가 구체적 전시활동을 실현치 못하고 좌절 되었었다. 이용우, 이상범, 노수현, 변관식에 의해 창립된 동연사였다. 그러나 후소회는 해방전까지 6회의 전시회를 갖는 최초의 한국화 그룹이었다. 1936년 이당 김은호의 문하생들에 의해 창립된 한국화 그룹이 후소회다. 후소회가 이당 김은호의 제자들이 만든 스승에 대한 보답 차원의 동양화 그룹인데 비해, 연진회는 서화를 통한 인격도야에 목적을 둔 전국적인 동양화 동호인들의 모임이다.
60. 국전과 미술대전 : 국전은 1949년 문교부고시 제1호로 대한민국 미술전람회가 창설되어 1981년 30회를 마지막으로 끝난다.
미술대전은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미협)에서 미술대전을 맡게 된다. 한국미술협회는 1961년 창립되었다. 미협은 1982년 제1회 미술대전을 개최하였는데, 동양화라고 명명하였던 것이 한국화라고 명명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