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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솔
빵의 기원과 역사
고대에 있어서 빵의 기원은 이집트, 서남아시아, 지중해연안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이 지방에서 야생 보리와 밀이 수확 저장이 용이해 고대문명의 경제활동의 기초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있어서 밀은 기원전 6, 7천년에 이미 재배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대에는 발효란 개념이 없이 거칠게 빻은 밀 또는 보리를 이용한 무발효빵이 기원전 4천년 경에 이미 바빌로니아 지방에서 편편하고 얇은 상태로 만들어졌다. 이는 현재 우리가 빵이라고 불리우는 것과는 다른 것이지만 무발효 빵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기원전 3천년 경에는 맥주와 비숫한 발효음료가 생겨나 발효빵의 역사가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이란, 이라크 등지의 중동지방에는 지금도 고대의 무발효 빵인 평평하게 밀어서굽는 빵이 만들어지고 있어 그 지방 민족의 주식으로 되어 그 제법은 약간의 개량이 되었을 뿐 고대의 그것과 거의 다른 것이 없다.
<제빵법의 발달>
제빵법은 제분의 발달에 따라 변하게 되어 고대 이집트에 있어서의 제분은 평평한 장방형는 타원형의 얇은 돌위에서 몇 번이고 문질러 부수어 트리는 형태로 행하여졌다. B.C 3000년경에는 맷돌처럼 바닥은 고정되고 윗부분을 움직이는 돌로서제분이 행하여졌다.이처럼 제분은 식품가공분야에서 가장 오래된 형태라 할 수 있겠다.
고대 이집트의 신왕조기에는 물과 소맥분을 커다란 통에 부어 발로 충분히 이긴 다음 반죽을 작업대에 올려 되기와 부드러움이 손으로 조절되도록 정성을 다하여 반죽을 했다. 이러한 방법은 이집트 제빵법의 기본으로 빵소비량이 많아짐에 따라 손으로 하는 것보다 편했던 것이다.
무발효빵을 굽고 남은 반죽에는 잡균이 번식하게 되어 반죽은 상해서 세균과 야생효모 균에 따라 거품을 내게 되어 초보적인 발효빵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유산균과 초산균의 작용에 따라 시큼한 맛을 내는 오늘날의 사우어와 비슷한 형태였다.
이러한 발효에 의해 상한 것 같은 반죽이 구워지면 보다 향기롭고 부드러운 빵이 되었므로 빵반죽 하는 사람을 마술사와 같다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이집트는 고온지대로서 발효속도와 제조과정에 높은 온도가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빵제법의 다양화가 이루어지고 수십 가지의 형태 변화 및 향료, 약초의 사용이 시작되었다.
빵을 굽기 위한 열을 보존하기 위해 뜨거운 돌을 겹쳐 놓는 것이 간단하고 좋은 방법으로 생각되어 초보적이기는 하지만 빵을 굽는 가마라는 것이 고안되어 종모양인 벨형가마라 하는 것이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중앙아시아, 중국등에서 사용되어졌으며 이는 지면에다 평평하고 큰돌을 놓고 양측변과 뒷면에는 점토라든가 또는 돌로서 열을 가두게 하는 벽을 만들었다.
지면에 깔은 돌에 나무로 불을 붙여 뜨겁게 달군 다음 충분히 뜨거워졌으면 불을 끌어낸 다음 그 위에 수분이 많은 반죽을 밑판의 열과 천장에서 복사되는 열에 의해 구워지게한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굽는다기보다는 건조구이에 가까운 것으로 빵이라기 보다는 비스켓과 비슷한 형태였다.
그리이스 사람들은 그 문명의 초기에는 빵을 불속이나 또는 뜨거운 재속에서 구웠는데이는 이집트의 제빵법에 비하면 퍽 뒤떨어진 방법이라 하겠다.
고대 그리이스에서 발전된 발효빵의 제법과 그 상업화는 고대 로마시대에 와서 황금기를 맞게된다.
기원전 300년경에는 이미 로마시대에 200여 점포가 성업을 이루는 등 제빵업이 크게 번성했다. 해외출병등으로 수요가 증가되어 제빵의 양산화가 필요함에따라 사람의 손이부족해지면서 빵을 만드는데 노예가 충당되었다. 또한 종교의식에 따른 빵이나 과자의 공급이 이루어졌으며 당시의 빵은 원형이 많았고 중앙으로 두쪽이 나뉘는 선이 있거나 윗면에 십자형으로 자른 선이 있는 것들이 많았으며 이는 빵을 떼어먹기 쉽게 한 합리적인 면도 엿볼 있고 그리스도 교회에 있어서는 신께 신앙심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다.
이처럼 로마시대에서는 빵의 수요가 많아지자 제분도 사람의 손에서 우마를 이용한 회전식 제분법이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제분법과 제빵법은 로마제국의 멸망후에도 수백년간 그들의 식민지였던 지방 즉, 서유럽, 영국 등에서는 계속해서 이용되었다. 그러나 빵을 굽는 가마에 있어서는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공학적 원리는 이용되지 못했다.
중세에 있어 13세기를 빼면 정체와 혼란의 시대였고 여러나라에서도 군웅이 활거하던 전국시대였기에 제빵 또한 그 영향을 면할길 없어 시대에 따른 발전과 진보가 없었으나 중세의 기나긴 역사의 흐름속에서 서서히 기본적인 형태와 특징을 갖추어 지역의 빵으로 출발되어진 각지의 빵이 이태리빵이라든가 불란서빵 같은 내쇼날 브레드로 확산되어 정착되게 되었다.
이처럼 중세로부터 근세로 그 전통기법이 이어지고 전해져 딱딱한 유럽풍의 빵을 형성시키고 신대륙인 아메리카로 건너간 빵은 여러 전통으로부터 탈피하여 합리화 양산화를 추구하여 설탕이나 유지를 많이 사용하는 부드러운 아메리카 빵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지역에 따른 제품의 특성은 밀의 재배가 어려운 추운지방인 북부 독일이나 스칸디나비아 제국, 러시아에서는 호밀을 사용하여 만든 흑빵을 구워내었다.
근대에 들어서는 급속히 질적개선이 진행되고 눈부신 기술적인 진보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질적, 기술적 진보의 원천은 전동식믹서와 굽는 가마의 진보라 할 수 있다.
20세기초에 석유 발동기에 의한 기계식 믹서가 사용되었고 1차세계대전후 기계의 급속한 발전이 이루어지게 되어 전동식믹사도 속도 변화를 줄 수 있게 되어 제빵에 있어서 시간단축과 제품의 부피, 균일성 등에 질적 향상을 가져오게 한 요인이 되었다. 가마 역시 20세기 초에 들어서는 석탄 또는 장작에 의해 구워지는 가마가 이미 가스가 있는 곳에서는 가스 가마를 만들어 썼고 그렇지 못한 곳에서는 등유가마가 보급되었다.
<우리나라의 제빵 발전사>
우리나라는 쌀과 찹쌀을 주재료로한 한과가 꿀이나 엿과 같은 감미재료와 결합하여 전통적으로 만들어온 강정, 산자 등의 유과류와 유밀과, 다식, 엿강정 등이 있었으나 빵은 구한말 선교사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소개되었고 가마는 숯불을 피운 위에 시루를 엎고 그 위에 빵반죽을 올려놓은 다음 다시 오이자배기로 뚜껑을 덮어 빵을 구워내었다한다.
그후 일본인에 의해 빵제조업소가 국내에서 생산 판매를 하였으나 제과 기술면에서 제대로 전수되오지 못하고 제빵제과 재료면에서도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어 왔으나 70년대 초에 이르러 적극적인 분식 장려정책에 의해 급속한 빵류의 소비증가로 양산 체제를 갖추어 오늘날에 이른다.
< 케이크의 어원>
케이크(영국:Cake, 프랑스:Gateau, 독일:Kuchen, 이탈리아:Focaccia, 에스파냐:Pastilla, Bollo, 포르투갈:Bolo,네덜란드:Koek)
주재료인 밀가루, 계란, 설탕, 소금에 부재료인 우유, 생크림, 베이킹파우더등의 여러재료를 혼합하여 일정한 팬에 구운후에 장식을 하기도 한다.
고대 튜튼어 Kaka →고대 아이슬란드어 Kaka →13세기 영어 Kake → Cake로 변천 하였고, 같은어원 Kak에서 나온 것이 독일의 Kuchen이다. 프랑스어인 가토(Gateau)는 라틴어 astare →Gater → Gaterie → Gateau의 변천을 밟은 용어이다. 또, 에스파냐어인 Pastilla는 카스테라의 어원이 된다
<케이크의 유래>
동양에서 쌀을 가공한 밥 → 떡 →과자가 만들어졌듯이 서양에서는 밀가루를 가공한 빵→케이크가 만들어졌다. 서양 케이크가 동양의 과자와 다른 점은 일찍부터 단맛을 내는 꿀, 계란, 동 ·식물성 기름, 버터, 치즈를 사용했을 뿐 아니라 발효 반죽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처음 케이크 형태를 갖춘 케이크가 출현한 곳은 이집트, 과당(Fructose)과 꿀을 넣어 설탕절임한 과일, 천연 얼음으로 만든 셔벗이 바로 그것이다. 8 ~ 9세기의 그리스 시대에는 이미 계란, 유지를 넣어 만든 케이크가 100종류에 달해 있었다.
로마제국 시대에 비로소 빵과 케이크가 분류되고, 그 각각의 직업별 조합이 생겼다. 5 ~ 15세기에 걸친 1,000년동안은 종교과자가 득세한 시대였다. 그때는 교회, 왕후 귀족들만이 빵 ·케이크 오븐을갖고 있으면서, 평민들에게 그 사용료를 물게 하는 특권제도가 있었다.
11 ~ 13세기는 십자군 원정으로 동방에서 설탕, 향신료가 들어오게 됨으로써 케이크의품질이 높아졌다. 또 15 ~16세기에는 포르투갈, 에스파냐가 중심이 되어 지리상의 발견이 이어졌다.
동양으로 가는 뱃길이 열리고 신대륙이 발견됨에 따라 동양에서 유입된 설탕,
향신료로써 케이크의 질을 높였다. 그와 동시에 인권존중의 분위기가 고조되어 빵 ·케이크 오븐을 교회에서 독점하는 제도는 무너 졌다.
18세기에는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그 결과 증기기관을 갖춘 공장에서 여러 가지 케이를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반면 대량 생산에 알맞지 않은 생과자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19세기가 되면 유럽 전체에 첨채(사탕무우)가 보급되어 첨채당의 공급체제가 이루어짐으로써,이 때 비로소 케이크가 대중화 되었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 점차 다양화 국제화되고 있다.
케익은 서양에서 전래된 음식 중 이제는 우리 문화에서도 매우 친숙해진 것 중의 하나이다.
흔히 "축하", "무병장수에 대한 기원", "약혼 및 결혼등의 경사" 등에서 빠뜨릴 수 없는 필수 음식이 된 케익은 대중예술의 총아인 영화에서도 극 중 긴장감이나 사실감을 부각시켜 주기위해 아주 요긴하게 쓰이기도 한다.
생일 케익을 촛불로 장식해서 생일파티를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인류학자들은 "중세 독일 농민들 사이에서 '킨테 페스테'라고 하는 어린이를 위한 생일 축하 행사가 기원이 되었다'라고 주장한다.
'킨테 파스테'는 생일을 맞은 아침에 눈을 뜨면 촛불로 장식된 케익을 아이 앞에 놓으면서 시작되며, 이 촛불은 저녁 식사 때 온 가족이 케익을 먹을 때가지 계속 켜 놓았다. 특히 촛불은 아이나이보다 하나 더 많게 하여 밝혀 놓았는데 하나 더 많게 밝힌 그 촛불은 "생명의 등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생일을 맞은 아이들은 선물과 음식을 나눠 먹고 소원을 빌며 촛불을 끄는 오늘날의 관습도 바로 독일의 '킨테 페스테'에서 유래된 것으로, "촛불은 단숨에 끌 것" "소원은 곡 비밀에 부쳐야 할 것"등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요즈음 청소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케익 크림 씌우기 등은 '루킹래징(Rooking Razzing)'이라 불리우는 서양인의 오랜 관습 중 하나이다.
이것은 "신체에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벌이는 장난으로상대방에게 호의적인 태도로 받아들어져 웃고 즐기며 친분관계를 확인하는 풍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빵의 종류
재료에 따라 밀가루빵 ·보리빵 ·옥수수빵 ·호밀빵 ·혼합빵 등이 있고, 빛깔에 따라 흰빵 ·흑빵으로 나눈다. 밀기울이 혼합된 빵과 전립분(全粒粉)만으로 된 그레이엄(graham)빵이 있다.
재료 배합에 따라 밀가루 ·이스트 ·식염만으로 만든 프랑스식 빵과 설탕 ·우유 ·유지 등을 배합한 미국식 빵이 있다. 겉쪽을 두껍게 구운 유럽식 빵과 겉을 얇고 부드럽게 구운 미국식 빵이 있다. *
용도별로 식빵 ·테이블빵 ·과자빵 등이 있고, 과자빵은 빵반죽에 유지를 층 모양으로 속까지 깊이 넣은 파이 모양의 페이스트리로 만든다. 식빵은 빵의 뒷부분을 산 모양으로 부풀린 영국식과 눌러서 판판하게 구운 미국식이 있는데, 이 미국식을 샌드위치형이라고도 한다. 테이블빵에는 겉을 바삭하게 구운 것과 부드럽게 구운 롤형의 것이 있는데, 어느 것이나 식사 코스에 곁들이도록 작은 모양으로 만든다.
그 밖에 특징 있는 빵으로 프랑스의 대표적 빵인 막대 모양의 바게트, 독일의 아침 식사용 빵인 둥근 브뢰첸, 스틱과 같이 긴 이탈리아의 그리시니, 달걀과 버터를 넣어 컵 모양으로 구운 브리오시, 간간한 소금맛이 있는 둥근 햄버거빵, 호밀 흑빵인 픈파니켈, 호밀가루에 신맛이 있는 야성(野性) 이스트를 사용한 사워 라이 브레드(sour rye bread)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