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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도덕적 신 존재 증명
1. 도덕과 종교
본 장에서 다루게 될 주제는 칸트가 자신의 철학의 세 가지 과제로 설정해 놓은 물음 중의 세번째 것인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하는 문제와 관련한, 즉 종교와 관련한 신 존재 증명의 문제이다.1) 종교 철학의 핵심적인 주제는 신과 인간이다. 칸트 철학의 주제와 관련하여 보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종교 철학은 “신학과 도덕의 결합을 통한 종교”(KrV, B 395 각주)의 문제가 중심을 차지한다.
도덕과 종교의 관계를 다루는 모든 철학적 탐구는 플라톤의 대화편 ꡔ에우티프론ꡕ(Euthyphro)에서 소크라테스가 제기한 바 있는 소위 에우티프론의 딜레마(Euthyphro dilemma), 즉 어떤 행위가 도덕적으로 옳은 것은 신이 그것을 명령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것이 옳기 때문에 신이 명령하는 것인가, 말하자면 어떤 행위가 도덕적으로 의미를 갖는 것은 도덕 그 자체의 본질과 가치 때문인가, 아니면 신이 어떤 행위의 도덕성을 승인하고 또 신이 그러한 지시에 따를 것을 명령하기 때문인가라는 물음에 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또한 이러한 문제로부터 곧바로 제기되는 도덕과 종교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갈등이나 조화는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도 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칸트의 경우에 도덕과 종교 이 양자는 기본적으로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 영역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 양자간의 밀접한 관계를 통하여 종교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 칸트의 종교 철학의 근본 특징이다. 칸트의 이러한 접근 방식은 도덕과 종교의 관계를 해명하려는 철학적 시도들 중에서 하나의 독특한 전형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칸트는 진정한 종교란 그 근본에 있어서 도덕의 핵심적인 요소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칸트가 그의 ꡔ종교론ꡕ에서 다른 종교에 비해 기독교를 높이 평가하는 기준도 바로 종교가 갖는 도덕성에 대한 그의 견해로부터 정당화된다. 물론 이러한 사고 방식을 단순히 그의 도덕 이론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에서만 고려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의 도덕적 견해 뿐만이 아니라 그의 종교적 견해도 당시 루터교(Lutheranism)와 경건주의(Pietism)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도덕과 종교에 대한 그의 정신의 한 단면을 감지할 수 있다.2) 그러나 루소와 더불어 칸트가 자연 종교에 있어서 도덕을 강조한 최초의 근대인은 아니지만 그들은 계몽 시대의 비판 정신을 쫒아서 수용가능한 방식으로 기독교를 자연 종교의 형태로 만들려고 시도한 점에서는 최초의 근대인이라 부를 수 있다.3) 그 결과 칸트가 마침내 비판 철학의 세례를 받아 자신의 종교 철학적 견해를 집약시켜 놓은 ꡔ종교론ꡕ에서 제시한 이성 종교 또는 도덕 종교는 “전통적인 종교적 주제들을 실천 이성의 새로운 발견법에 따라서 해석함으로써, 기독교, 그의 경건주의적 유산 및 계몽 정신을 조화시키고자 하며, 그에 따라서 모든 교설들은 도덕적으로 해석되고 있다.”4)
이와 같이 전통적인 종교론과 달리 칸트는 종교의 문제를 이성적 및 도덕적 맥락에서 접근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거의 고백에 가까운 칸트의 확신은 이러한 자세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도덕적 규칙들이 동시에 나의 준칙이기 때문에 (이성이 그렇게 하기를 명령하기 때문인 것처럼) 나는 필연적으로 신의 현존과 하나의 내세적 삶을 믿게 된다. 그리고 나에게 아무런 것도 이 신앙을 흔들리게 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 왜냐하면 만약 이 신앙이 흔들린다면 나 자신이 혐오스럽게 느끼지 않고서는 그에 반대할 수 없는 나의 도덕적 원칙들 자체가 무너지기 때문이다.(KrV, B 856)
이러한 맥락에서 문제 해결의 관건이 되는 중요한 주제가 바로 도덕을 기초로 한 종교 문제의 중심에 놓여 있는 신 존재 문제이다. 칸트는 도덕과 종교의 관계의 중심에 놓여 있는 신 존재 문제를 ꡔ순수 이성 비판ꡕ과 ꡔ실천 이성 비판ꡕ에서 그 이론적 및 실천적 근거들을 점검한 다음, ꡔ종교론ꡕ에서 본격적으로 취급한다.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한다면, 칸트의 전 철학 체계를 고려해 볼 때, 신 존재와 관련한 종교 철학의 주제는 동시에 칸트의 전 철학의 주제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5) 그러나 본 장에서 보이려는 도덕적 신앙의 확신을 위한 칸트의 신 존재 증명 방식은 엄밀한 의미에서 증명이 아니라 논증의 성격을 갖는다. 칸트는 신 존재의 사실성을 증명하려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이해한다. 칸트의 증명은 모든 경우에 도덕적 신앙의 옹호와 관련한 요청으로서의 의미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증명이 아니라 하나의 논증이다. 이러한 의미의 신 존재 증명이 칸트의 주저들에서 어떻게 제시되고 있는지를 고찰하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2. 전비판기의 신 존재 증명의 음미
자유와 영혼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종교 철학의 근본 개념인 신의 존재 또한 칸트의 이론 철학이 그어놓은 한계 밖에 놓여 있는 대상이다. 즉, 그 존재를 경험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 ꡔ순수 이성 비판ꡕ에서의 칸트의 결론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종교 철학의 주제인 신 존재에 대한 칸트의 견해는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비판 철학적 차원에서 이론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ꡔ순수 이성 비판ꡕ 이전에도 이미 중요한 관심사로 다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적지 않은 부분들이 그대로 비판 철학적 입장과 조화를 이루거나 수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즉, 비판 철학적 테두리에서 검토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의 전조를 보여주는 주장들은 초기 저술에서부터 등장한다. 특히 1755년에 출판된 ꡔ보편적 자연사ꡕ에서 칸트는 신과 자연의 관계를 언급하면서 무신론자나 자연주의자들의 반대편에 서서 유신론적 철학자들의 주장을 옹호하면서 동시에 후자의 논변들이 지니는 약점을 보완하려는 태도를 취한다. 이 저술에서 칸트는 “신은 그를 우연의 원천으로 여기는 사고에서 보다는 그를 자립적이고 자기 안에서 자족하는 자연의 창조자라 여기는 형이상학적 이성의 사고에서 더 견고하고 확실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6)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칸트가 종교의 최고의 진리인 신을 이성 일반의 최고의 대변자로, 즉 신을 가장 이성적인 존재자로 파악함으로써 이성에 대한 믿음에 기초를 두는 그의 철학적 종교론에 부합하는 논지를 개진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더 나아가 이처럼 ‘신적 진리’를 순수 이성의 영역에서 찾고자 하는 칸트의 문제 의식은 후에 그가 비판 철학적 사고로 이행해 갈 때도 여전히 견지되고 있는 특징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칸트는 신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지는 않고 있으며, 다만 이를 감성의 세계로서의 자연이 보여주는 보편적 법칙에 대한 해명의 차원에서 주로 세계에 대해서 갖는 신의 지위에 관심을 기울인다. 따라서 칸트의 종교 철학의 근본 문제로서의 신 존재에 대한 칸트의 보다 세련된 주장은 좀 더 후에 등장하게 된다.
칸트의 이러한 사고는 1763년에 씌어진 ꡔ신 존재 증명ꡕ에서 보다 주제적으로 다루어지게 된다. 이 저술에서 칸트가 문제삼고 있는 주제는 사물의 모든 가능성 전체를 포섭하는 최고 존재자로서의 신 존재 증명에 관한 것이다. 칸트는 여기서 그 당시에 형이상학자들이 신 존재를 증명하던 세 가지 방식들을 검토하면서 자신의 결론에 도달한다. 그 세 가지 방식이란 신 존재의 존재론적 증명, 우주론적 증명, 자연 신학적 증명이 그것이다. 칸트에 따르면, 우주론적 증명은 세계의 존재로부터 그것의 최고 원인으로서의 신의 존재를 추론해 내기 때문에 이 증명은 사고와 존재의 대립을 해명하지 못하고 단순히 뛰어넘어 버리며, 따라서 비록 세계가 현실적으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실재성 여부는 확인할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존재론적 증명도 신의 개념을 가장 완전한 존재로 규정해 놓은 다음 신 존재의 필연성을 부여하므로 사고와 실재 사이의 한계를 뛰어넘어 버린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직접적인 자연 경험에 속하는 세계의 미와 질서로부터 세계 창조자를 논증하는 호소력 있는 방식 때문에 칸트가 가장 호감을 갖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자연 신학적 증명 또한 그 형식에 있어서 완전성이나 조화, 미 따위를 우연적인 것으로 돌려버리기 때문에 “수학적 확실성”(DDG, 729)과 같은 것을 신 존재 증명에서 구하고자 하는 자신의 철학적 사고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결국 칸트가 여기서 옹호하는 신 존재 증명의 유일 가능한 논거는 개개 사물의 내적 가능성을 결과로 하여 그 가능성의 근거로서의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라고 결론짓는다. 즉, “모든 가능성은 그것 안에서 그리고 그것에 의해서 모든 사고가 이루어지는 어떤 현존하는 것을 전제로 하며”(DDG, 643) 또 “만일 사물의 내적 가능성이 어떤 존재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연적인 것이 되므로”(DDG, 644), 모든 개개의 사물의 본질이 현존하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자 중의 존재자로서의 신이 필연적으로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 시기의 칸트가 옹호하는 견해는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에 의존하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즉, 이성을 통하여 현실 속에서 그 가능성의 실현을 파악할 수 있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던 시기였다고 하겠다. 칸트가 신의 이념이 그 가능 근거로서의 최고의 존재자를 생각하도록 만들어 준다 할지라도 곧 그것이 신의 현실을 포함하고 있지는 못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해 둔 것은 ꡔ순수 이성 비판ꡕ에 와서의 일이다.
3. 비판기의 신 존재 증명의 음미
ꡔ순수 이성 비판ꡕ에서의 신 문제는 형이상학적 이성의 변증적 가상을 해소하는 “선험적 변증론”의 선험적 신학 부분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이성 비판의 시각 위에서 다루어지게 된다. 초기의 저술에서 칸트는 합리적 신학의 원리들을 다루면서 세계에 대한 신의 지위에 대해서 주로 관심을 기울였으나, 이제는 그런 신의 존재가 비판 철학적으로 검토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 양자를 상호 배치되거나 거부되는 관계로가 아니라 자신의 이전의 단초들을 더욱 발전시키고 있는 관계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관계를 단적으로 우리는 ꡔ신 존재 증명ꡕ과 ꡔ순수 이성 비판ꡕ의 선험적 변증론에 담겨 있는 신학에 대한 그의 구분법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으며, 내용면에서도 이들 각 신학의 신 존재 증명 방식에 대한 비판적 검토는 한결같이 인간 이성이 갖는 지위를 문제삼고 신 문제에 대한 기존의 왜곡된 형이상학적 주장들을 새롭게 조명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변증론의 선험적 신학 부분에서의 신 존재 증명에 대한 비판적 고찰은 ꡔ신 존재 증명ꡕ에서 들고 있는 당대의 전통적인 신 존재 증명의 세 가지 방식에 대한 고찰과 궤를 같이 한다. 그러나 이 양자 간의 연관성을 우리는 그의 사후에 최초로 출간된 강의록 중의 하나인 ꡔ종교학 강의ꡕ(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sche Religionslehre, 1817, 1830)7)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다. 비록 이 강의록이 적어도 ꡔ순수 이성 비판ꡕ(1781)의 출간 이후 그리고 ꡔ도덕 형이상학 기초ꡕ(1785)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좀 더 정확하게는 ꡔ형이상학 서설ꡕ(Prolegomena, 1783)이 출판되던 해와 비슷한 시기인 1783년에서 1784년 겨울 학기의 것으로 추정되지만,8) 이것은 칸트가 ‘종교 및 그 원리인 신학’의 문제들을 다루는 그의 철학적 종교론의 시각에서 신의 존재 문제를 아주 체계적으로 다루어 놓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여타의 저술들에서 보여준 논의들의 일관된 흐름을 읽게 해준다.
ꡔ종교학 강의ꡕ에서 칸트는 신학을 ‘자연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을 통찰하고, 누가 자연의 법칙을 견고하게 확립했으며, 그것의 작용을 제한하고 있는가를 물어, 신이 바로 이성과 자연의 모든 것에 대한 최상의 원인임을 알아내는 것’9)으로서의 “최고 존재자에 대한 우리의 인식 체계”10)로 정의한다. 이러한 정의를 통해 칸트가 의도하는 것은 이를 단순히 사물을 조화나 통일과 상관없이 다른 사물과 나란히 나열해 놓은 것으로 이루어진 집합체를 뜻하는 일상적 지식과 구별하면서, 신에 대한 인식 체계란 신에 대한 모든 가능한 인식의 총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인간 이성이 신의 존재와 마주치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파악하려는 데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칸트는 신학을 우선 서로 대별되는 경험 신학과 이성 신학으로 구분하고, 자신의 철학적 신학관에 맞추어 이성 신학만을 가능한 신학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으로 규정한다. 칸트는 이성 신학과 관련한 신학에 대한 가능한 몇 가지 구분을 시도해 본 다음, 최종적으로 이성 신학을 선험적 신학 혹은 사변 신학과 도덕 신학으로 구분짓고, 전자를 다시 존재 신학, 우주 신학, 자연 신학으로 분류한다. 이러한 분류법은 결과적으로 ꡔ신 존재 증명ꡕ과 ꡔ순수 이성 비판ꡕ에서 칸트가 의존하고 있는 것에 부합한다. 그리고 ꡔ종교학 강의ꡕ는 적어도 신 문제에 관한 칸트의 논의에 있어서 결코 전비판기의 사고가 비판 철학의 확립 이후의 그것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특히 칸트가 신의 존재 문제를 인간 이성의 문제와 관련하여 문제삼을 때 더욱 분명해진다.
그러나 ꡔ순수 이성 비판ꡕ의 이성 비판을 통해서 이제 선험적 신학의 오류가 구체적으로 다루어진다. 여기서는 이전에 세계에 대해서 갖는 신의 존재 자체를 가장 이성적인 존재자로 파악하던 방식에서 신의 존재에 대해서 인간 이성 자체가 갖는 지위를 이성 비판의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문제삼는 방식으로 전환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장차 ꡔ실천 이성 비판ꡕ을 거쳐서 ꡔ종교론ꡕ에 이르러 인간에게 있어서 신이란 진정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종교 철학의 주제들을 위한 이론적 기초가 마련된다.
ꡔ순수 이성 비판ꡕ의 “선험적 변증론”에서 칸트는 선험적 신학의 문제를 ‘순수 이성의 이상’ 또는 ‘선험적 이상’에 대한 논의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이에 앞서 신은 선험적 이념 중의 하나라는 것이 밝혀져 있다. 순수 오성 개념 혹은 범주와 대비되는 순수 이성 개념 혹은 선험적 이념은 오성의 모든 개별적이고 제약하에 놓여 있는 조건들을 포괄하는 가능한 경험의 영역을 넘어서 있는 무제약자를 추구하려는 인간 이성의 본성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성은 인식 가능한 영역인 경험의 한계를 망각하고 초경험적인 무제약자를 마치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대상인양 착각한다는 것이다. 칸트는 이러한 이성의 본성으로 인해서 필연적으로 야기되는 오류를 선험적 가상(transzendentaler Schein)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렇게 인식 불가능한 무제약자를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추구하는 순수 이성이야말로 선험적 이념들을 오류에 빠지게 하는 “선험적 가상의 소재지(所在地)”(KrV, B 355)이다. 선험적 변증론은 바로 이 가상을 폭로하여 이성의 올바른 사용에 입각한 엄밀한 학으로서의 형이상학의 정초를 위한 예비적인 고찰인 셈이다.
이를 위해 먼저 칸트는 감성적 직관에 주어지지 않는 것마저 인식하려는 이성의 능력을 오성과 대비적으로 고찰한다. 먼저 “오성은 규칙에 의하여 현상을 통일하는 능력이라면, 이성은 오성의 여러 규칙들을 원리의 밑에 통일하는 능력이다”(KrV, B 359). 즉, 오성은 “규칙의 능력”이며, 이성은 “원리의 능력”(das Vermögen der Prinzipien)이다(KrV, B 356). 이 말은 곧 이성은 오성처럼 경험이나 경험 가능한 대상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개념에 의해서 오성의 다양한 인식에 선천적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오성에 관계를 가지는 바, 통일을 추구하는 이성 자신의 본성과 능력에서 기인하는 것임을 뜻한다. 그러므로 오성이 가능한 경험의 대상에 대한 판단의 능력임에 반해서 이성은 이 오성에 의한 판단을 간접적으로 통일하고 체계화하는 추리의 능력을 갖는다. 이러한 오성의 작용을 통일하고 통제하는 것이 바로 이성의 규제적 사용이다. 이성의 이러한 사용은 정당한 것이지만, 감성적 직관에 포착되지 않는 대상을 이성 자신이 구성하려는 것은 그릇된 것으로서 칸트는 이러한 이성의 쓰임을 이성의 구성적 사용이라 부른다(KrV, B 672). 이처럼 추리의 능력으로서의 이성은 감성의 한계를 넘어서까지 무제약자를 추구하게 되는 바, 칸트는 전통적 논리학의 추리론에 따라 추리를 정언적 추리, 가언적 추리 및 선언적 추리로 분류하여 그 각각에 세 종류의 무제약자를 상정하고 있다. 동시에 그에 대응하는 어떠한 직관의 대상도 주어져 있지 않은 이들 무제약자들의 구체적 명칭을 일러 “이성 추리의 형식을 범주의 예에 따라서 직관의 종합적 통일에 적용하면 그 형식이 특수한 선천적 개념의 근원을 포함하게 되는 순수 이성 개념 또는 선험적 이념”(KrV, B 378)이라 부른다. 이들 이념은 경험 중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인식의 한계 너머에 있는 단지 이성의 선천적 개념에 불과한 데, 마치 객관적인 실재로서 인식 가능한양 취급해 버리는 데서 전통적인 형이상학의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 오류가 이성 자신의 본성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데 선험적 가상은 바로 이를 두고 부여한 명칭이다. 따라서 이성 추리의 분류에 따라 각 계열에 있어서의 무제약자를 추구해가다 보면 도달하게 되는 선험적 이념에는 세 종류가 있듯이, 이 각각에서 생기는 오류에 해당하는 세 종류의 선험적 가상이 있다. 첫째가 선험적 심리학의 대상이 되는 사고 주관의 절대적(무제약적) 통일(영혼)으로서의 선험적 이념에는 선험적 오류 추리, 둘째는 선험적 우주론의 대상이 되는 현상의 제약의 계열의 절대적 통일(세계)로서의 선험적 이념에는 순수 이성의 이율 배반, 끝으로 선험적 신학의 대상이 되는 사고 일반의 모든 대상의 제약의 절대적 통일로서의 선험적 이념에는 순수 이성의 이상이 그것이다. 이 가상의 정체를 폭로하여 선험적 이념이 갖는 타당한 지위를 귀속시키려는 것이 바로 선험적 변증론이 주제로 삼고 있는 이성 비판의 기본 목표이다(KrV, B 390-398).
칸트가 ꡔ보편적 자연사ꡕ와 ꡔ신 존재 증명ꡕ 등 초기 저술에서 보여준 이성 신학의 원리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적 검토가 이러한 선험적 신학의 문제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칸트에 의하면, 신이라는 선험적 이념 자체는 인간 이성의 본성상 불가피하고 필연적인 것이다. 그것은 선언적 이성 추리를 쫓아서 이성이 무제약자를 추구하게 될 때, 모든 개념의 분류를 가능하게 하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사고 일반의 절대적 통일로서 상정하게 되는 바의 것이다. 그러나 이 이념은 그것이 “단지 이념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과 일치하게 주어질 수 있는 그 어떤 객관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KrV, B 393)으로서 오로지 규제적으로만 사용되어야 할 주관적 원리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구성적으로 사용하게 될 때, 즉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대상으로 실체화되는 순간에 이 이념은 선험적 가상으로 등장하게 된다. 칸트는 이 모든 존재자 중의 존재자로서의 신에 대한 선험적 가상을 “순수 이성의 이상”(Ideal der reinen Vernunft)이라 부른다(KrV, A 567/B 595).
ꡔ종교학 강의ꡕ에서 칸트는 이념(Idee)과 이상(Ideal)을 구별하여 “이념은 추상적인 하나의 보편적 규칙이며, 반면에 이상은 내가 이 보편적 규칙에 귀속시키는 하나의 개별적인 경우이다”11)라고 정의내리고 있다. 말하자면 이상은 이념으로서의 존재를 현실적으로 실재하는 존재로 실체화시켜 버리는 것을 이른다. 즉, 인간의 이성은 자신이 그것에 따라서 무엇을 결정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표준으로서 가장 완전한 것에 대한 이념을 필요로 하는 바, 칸트는 이 이념을 일러 “그 자신의 실재와는 무관하게 이런 저런 상황에서 보다 낮고 높은 등급의 표준으로 요구되는 개념”12)이라 규정하고, 인간은 이성의 욕구에 따라서 가장 완전한 이념을 필요로 하게 되고, “이 이념을 실체화시켜 더 추구해 보면, 우리는 이 근원적 존재자를, 단지 최고의 실재성이라는 개념에 의해서 하나의 유일하고 단순하고 자족적이고 영원한 존재자, 즉 한 마디로 말해서 기타 모든 술어에 의해서 무제약적 완전성을 갖는 존재자로 규정할 수 있으며”(KrV, B 608), 이와 같은 최고 존재자의 개념이 바로 칸트가 말하는 선험적 의미에서의 신의 개념이다. 칸트에 의하면, 우리의 이성은 확실히 신의 존재 혹은 비존재를 직접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인간 이성의 본성상 가장 실재적인 존재자를 모든 사물의 가능성의 근거로서, 즉 “순수 이성의 이상”으로서 상정하는 것은 사변 이성의 “필연적 가정”13)이라는 것이다.
칸트의 선험적 신학의 중심 내용은 바로 “단지 하나의 표상에 지나지 않는”(KrV, B 611 각주) 최고 존재자의 존재, 가장 실재적인 존재자로 실체화된 理想의 정체를 밝히는 대목이다. 소위 ‘신의 존재를 추리하는 사변 이성의 논거’, 즉 ‘사변 이성에 의한 신 존재 증명 방식’에 관한 비판적 고찰이 그것이다. 칸트는 신 존재를 추리하는 인간 이성의 자연적 진행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인간의 이성은 첫째로 그 어떤 필연적 존재자의 현존재를 확신한다. 이성은 이 필연적 존재자에게서 무제약적 실존을 인식한다. 이성은 여기서 모든 제약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 개념을 찾으며, 그것을 모든 다른 것에 대한 충분한 제약, 즉 모든 실재성을 내포한 것 속에서 발견한다. 그러나 무제한적인 전체는 절대적 통일이며, 그리고 유일한 존재자, 즉 최고의 존재자라는 개념을 갖는다. 그래서 이성은 만물의 근원인 최고 존재자가 절대필연적으로 존재한다고 추리한다.(KrV, B 614-615)
그리고 사변 이성의 이러한 진행 방향을 따라 이루어지는 신 존재 증명 방식에는 다음의 세 종류만이 있다고 칸트는 주장한다. 이러한 칸트의 사고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체로 이성 비판 이전 시기에 행한 이성 신학적 논변들과 궤를 같이 한다. 이 의도에서 (사변적 이성에 의한 신의 현존재를 증명하려는) 취해진 모든 길은 특정한 경험과 이 경험을 통하여 인식된 우리의 감성계의 특수한 성질에서 출발하여, 여기서 인과성의 법칙에 따라서 이 세계 밖에 있는 최고의 원인에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거나, 다만 막연한 경험, 즉 그 어떤 존재를 경험적 기초로 삼거나, 모든 경험을 사상하고 최고 원인의 존재를 한갓 개념에서만 선천적으로 추리하거나 이다. 첫째가 자연 신학적 증명(der physikotheologische Beweis)이고, 둘째가 우주론적 증명(der kosmologische Beweis)이며, 세째가 존재론적 증명(der ontologische Beweis)이다. 그 이상의 증명은 있지 않으며, 또 그 이상 있을 수도 없다.(KrV, B 618-619)
이들 세 증명은 모두 가장 완전한 존재자라는 개념에 입각하여 존재론적 증명은 우리의 이성으로부터, 우주론적 증명은 현상의 피제약성으로부터, 자연 신학적 증명은 현상의 합목적성으로부터 신의 존재를 도출해 낸다. 이 중 존재론적 증명은 오직 신의 개념에 의해서만 그 존재를 논증하는 방식을 취한다. 즉 우리의 이성은 가장 완전한 존재자로서의 신의 개념을 요구하고, 동시에 이 가장 완전한 존재자라는 개념에서 그런 존재자가 필연적으로 존재함이 추론된다. 왜냐하면 그 자신 존재를 갖지 않는 신이라 함은 신이라는 개념에 모순되므로 신은 가장 완전한 존재자로서 현실적으로도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주론적 증명은 자연의 경험 가능한 현상의 세계로부터 출발한다. 세계 내의 모든 것은 선행 원인에 의해서 제약되어 있기 때문에 그 자체가 무제약적인 궁극적 원인이 존재해야 하고, 이 무제약적 필연성으로부터 여타의 현실적으로 실재하는 것들이 존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궁극적인 원인으로 생각할 수 있는 존재자는 신 뿐이므로 신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자연 신학적 증명은 자연의 조화와 질서가 보여주는 합목적성의 경험에서 출발하여 이러한 징표들은 세계 내의 사물들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어서 자연의 작용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으므로 명백히 최고의 지혜를 가진 자의 의도가 표현되어 있는 것이며, 따라서 세계의 근저에 예지적인 세계 창조자로서의 신이 존재해야 함을 도출한다.
이상의 세 가지 증명은 공히 가장 완전한 존재자의 개념과 사물의 존재와의 필연적인 관계를 논리적으로 입증하려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칸트의 비판의 요지는 존재는 결코 논리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개념의 징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들 증명은 논리적인 비약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양자 간을 연결할 수 있는 직관적인 내용이 개입해야 하지만, 신의 존재는 결코 우리의 직관에 주어지는 그런 존재가 아닌 다만 순수 이성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의 가능성에 기초해 있는 선험적 신학 내지는 사변 신학은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올바른 방도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신 존재 증명 방식에 대한 비판을 통하여 칸트가 주장하는 것은 신 존재 가능성에 대한 인식은 인간의 이성 능력을 넘어서 있기 때문에 우리는 신 존재의 가능성도 불가능성도 선천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곧 사변적 이성은 가장 실재적인 존재자에 대해서 ‘종합 판단’을 형성할 수가 없기 때문에, 신 존재에 대한 선천적인 증명의 가능성을 무비판적으로 주장하는 것도, 신의 존재 가능성을 단적으로 부정하는 것도 이성의 권위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독단적인 유신론이든 독단적인 무신론이든 똑같이 오류를 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신학을 “근원적 존재자(Urwesen)의 인식”(KrV, A 631/B 659)으로 이해하는 칸트는 “어쩔 수 없이 일련의, 가장 완전한 그리고 이성적인 근원적 존재자로 이끄는 사변 신학”(KrV, B 842)에서는 사변 이성에 입각한 이들 각각의 증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이성 신학이 걸어갈 진정한 방도를 위한 이론적 초석을 다져 놓게 된다. 말하자면 칸트의 진정한 목표는 신학 자체를 파괴하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저러한 독단적 신학을 비판적 신학으로 대체하려는 데 있었다.14) 그것은 곧 아직 그 가능성이 열려 있는 도덕 신학에로의 길을 터놓기 위한 예비적인 작업으로서의 성격 또한 갖는다. 다음과 같은 글은 칸트의 생각을 아주 잘 드러내 준다.
여기서 내가 주장하는 바는 신학에 관해서 이성을 단지 사변적만으로 사용하려고 하는 모든 시도는 전연 아무런 성과도 거둘 수 없으며, 그러한 시도의 내적인 성질로 보아 무의미하다는 것, 그러나 이성의 자연적 사용의 원리들은 전연 어떠한 신학으로 이끌어 가지 못하고, 따라서 도덕 법칙에 근거를 두지 않고서는, 또는 그 지도를 받지 않고서는 결코 이성 신학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 이유는 오성의 모든 종합적 원칙은 경험 내부에서만 사용되는 것이고, 최고 존재자의 인식을 위해서는 이성의 초험적 사용이 요구된다. 그러나 우리의 오성에는 그러한 초험적 능력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KrV, B 664)
이러한 이성적 도덕 신학은 칸트에 의하면 세계와 자연에 대한 우리의 표상을 전체에서 종결짓고, 자연 신학과 선험적 신학을 포함하여 자연의 합목적적인 통일성에 대한 우리의 자연 탐구에 모든 목적들의 체계적 통일에로의 방향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 도덕 신학은 어떠한 이론적 인식도 아니며, 주관적 확실성을 가지나 어떠한 객관적 지식도 포함할 수 없는 실천적 이성 신앙이다. 이 이성 신앙의 근거는 도덕 법칙의 확실성이지 신 존재의 이론적 인식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덕 법칙에 기초한 최고선의 실현을 그 종교적 가능성에서 도모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칸트의 도덕적 신 존재 증명은 그의 주요 저작들을 중심으로 크게 세 가지로 구분지을 수 있다. 그 각각에 제 1, 제 2, 제 3 도덕적 증명이라는 명칭을 부여하여 살펴보자.
4. 제 1 도덕적 증명
제 1 증명의 대강은 최고선을 매개로 한 실천 이성의 이율배반 및 요청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상관한다. ꡔ순수 이성 비판ꡕ에서의 신 존재의 인식 불가능성은 감성론에서 감성적 직관의 의의를 언급할 때 이미 예정되었던 사실이었다. 인식 주관에 감각적으로 주어지는 것만을 인식할 수 있는 우리의 인식의 한계가 이론적 인식의 가능성과 범위를 결정지어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론 이성과는 달리 실천 이성은 이렇게 외부로부터 감각적으로 주어진 것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 자신이 스스로 제시한 것과 관계를 맺는다. 바로 이성적 존재자의 주관에 주어져 있어 이성 자신이 선천적으로 인식하기만 하면 되는 “도덕 법칙”이 그것이다. 칸트는 이것을 “순수 이성의 사실(Faktum)”(KpV, 161)로 파악했다. 우리는 이를 간접적으로 ꡔ실천 이성 비판ꡕ의 체계를 통해서 엿볼 수가 있다.
ꡔ순수 이성 비판ꡕ에서는 감성론에서부터 분석론으로, 즉 감관들으로부터 출발하여 원칙들에로 나아가는데 반하여 ꡔ실천 이성 비판ꡕ에서는 원칙들에서 출발하여 개념들에로 나아가고, 또 이 개념들을 다룬 후에야 비로소 감관들과 연관을 문제삼는 방식을 취한다(KpV, 121). 그러나 무엇보다 이 사실로서의 도덕 법칙은 자유와의 연관 하에서 그 존재 근거를 보장받는다. 왜냐하면 자유를 고려하지 않은 도덕 법칙의 전제는 근거없는 독단적인 전제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바로 이 양자간의 이러한 관계를 일러 칸트는 “자유는 도덕 법칙의 존재 근거이며, 도덕 법칙은 자유의 인식 근거이다”(KpV, 108 각주)라고 말해 두고 있다. 칸트가 영혼의 불멸을 포함해 신의 존재에 적극적으로 그 객관적 실재성을 부여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도덕 법칙의 존재 근거로서의 자유’와 ‘자유의 인식 근거로서의 도덕 법칙’의 연관을 파악함으로써 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연관 하에서 칸트는 자유의 개념을 사변 이성의 체계를 망라해서 “순수 이성의 전 체계의 요석(要石, Schlußstein)”(KpV, 107)으로 파악하고 있다.
나아가 칸트의 방식을 따라 자유의 문제를 통하여 이론 이성과 실천 이성 모두의 공통된 관심사와 체계적 연관을 파악해 두는 것이 이성 비판 일반의 우선적인 과제이자 핵심이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동시에 우리는 먼저 ꡔ실천 이성 비판ꡕ에서 이루어지는 신의 존재 규명에 접근해 갈 수가 있다. ꡔ순수 이성 비판ꡕ에서의 자유는 선험적 이념으로서의 자유, 즉 선험적 자유였다. 이는 “그 인과성이 자연 법칙에 따라서 시간적으로 규정하는 다른 원인에 다시 종속되지 않는 그런 상태를 스스로 시작하는 능력”(KrV, A 533/B 561), 즉 시간에서의 시작이 아닌 “자연 법칙에 따라서 진행하는 현상의 계열을 자기 스스로 시작하는 원인의 절대적 자발성”(KrV, B 474)을 뜻한다. 그런데 자유가 이러한 수준에만 머물러 있으면, 이는 사변 이성이 인과성의 개념을 사용할 때 이율 배반에 빠지지 않고자 필요로 했던 ‘시간 제약성과 자연 필연성을 넘어서는 부정적인 한계지움’이라는 소극적인 의미만을 갖고 만다. 그런데 이제 이 자유가 인간의 실천적 행위와 관련해서는 적극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실천 이성은 이론적 한계지움으로서의 선험적 자유를 넘어서 실천적 행위에 있어서는 감성적 충동의 제약에 의존하지 않고서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규정(결단)하는 능력이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감성의 충동에 의한 강제로부터의 의지의 독립성”(KrV, B 562)이라는 실천적 자유의 의미이다. 그러나 이 때 실천적 자유를 우리는 직접적으로 의식할 수 없다. 우리가 이 자유를 의식할 수 있는 것은 도덕 법칙을 통해서 이다. 즉, 도덕 법칙이 우리에게 “자유의 이념을 알려주기”(KpV, 108) 때문이며, “최초로 자유를 깨닫게 해주기”(KpV, 108 각주) 때문이다. 또 반대로 이 자유가 있음으로 해서 도덕 법칙의 존재가 우리에게 인식될 수가 있는 것이다. 즉, 도덕 법칙이 요구하는 행위 자체가 자유가 없다면 무의미한 것으로 되고 만다. 그 때문에 ꡔ실천 이성 비판ꡕ이 첫번째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이 바로 칸트가 “자유의 원인성” 또는 “자유에서의 인과성”이라 부르는 실천적 행위의 주체이자 그 원인으로서의 의지(실천 이성)의 규정 근거에 대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의지의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규정 근거로서의 도덕 법칙을 다루는 가운데에서 비로소 ꡔ순수 이성 비판ꡕ에서 그것의 경험적인 제시를 할 수 없었던 자유가 인간의 의지에 속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근거들을 발견하게 되고, 또 경험적으로 제약된 이론 이성이 아니라 무제약적으로 타당하기를 요구하는 실천 이성의 법칙들이 확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유를 매개로 해서 도덕 법칙의 존재를 밝힌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칸트가 도덕적 경험의 현상적인 구체적 상황에 도덕 법칙이 어떻게 관계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 가운데에서 최고선과 그 가능 근거로서의 영혼의 불멸과 신의 존재에 대한 성격이 규명되기에 이른다.
ꡔ실천 이성 비판ꡕ에서 신 존재의 도덕적 증명은 이처럼 도덕 법칙과 최고선 개념을 통해서 비로소 확고한 지반을 갖추게 된다. 칸트에 의하면, 도덕 법칙은 실천 이성의 궁극 목적으로서 최고선의 실현을 명령한다. 이러한 명령은 도덕 법칙에 일치하는 결과로서의 행복을 요구한다. 그러나 도덕 법칙과 행복은 본래가 서로 결합할 수 없는 이질적인 요소들이다. 따라서 유한한 이성적 존재자인 인간의 자력으로는 그러한 결합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도덕 법칙은 가장 완전한 존재자의 의지에 대해서는 신성성의 법칙이지만, 모든 유한한 이성적 존재자의 의지에 대해서는 의무의 법칙이자 도덕적 강제의 법칙이며, 법칙에 대한 존경에 의해서 그리고 자신의 의무에 대한 외경(畏敬)에서 자신의 행위를 규정하는 법칙이다.(KpV, 204)
이처럼 도덕 법칙은 “감성적 동기의 참여가 전혀 없는, 순전히 순수 이성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실천 과제”(KpV, 254)인 바, 도덕 법칙의 무조건적인 준수가 의무인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에게는 그 결과로서의 행복마저 스스로 기대한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과제이다. 물론 우리가 행복 자체를 의욕할 수는 있지만, 칸트에 의하면, 그것은 도덕 법칙의 존재를 왜곡시키거나 그 존재 의의를 무가치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왜냐하면 굳이 도덕 법칙이 우리에게서 발견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며, 더우기 도덕 법칙이 명령으로 우리에게 나타난다는 것 자체가 모순된 요구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성 자신이 이러한 양자의 결합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해결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실천 이성은 제 스스로 의지와 도덕 법칙간의 합치를 도모하지 않으면 안된다.
칸트에 따르면 유한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최고선의 촉진은 의무”(KpV, 256)이다. 그러나 행복 자체도 우리가 의무로서 추구해야 하는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최고선이 실현 가능하기 위해서는 “도덕성에 적합한 행복의 가능성”을 보증해 줄 근거, 즉 내가 도덕 법칙을 무조건적으로 준수하기만 하면, 우리 자신에 의해서는 불가능하더라도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서 이를 보증해 줄 수 있어야만 한다. 만일 그것이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불가능하다면, 최고선의 실현을 추구하는 이성 자신의 요구는 거짓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모든 것이 원인이자 근거일 수 있는 최고 존재자가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신의 존재’이다. 이러한 논증의 전체적인 구조를 다행히 칸트 자신의 설명을 통해서 직접 들어 볼 수 있다.
자유의 법칙인 도덕 법칙은 자연에서 독립한 규정 근거에 의해서 명령하고, 또 자연과 (동기로서의) 우리의 욕구 능력의 합치에서도 전적으로 독립해 있어야 하는 규정 근거에 의해서 명령하지만, ․․․․ 세계에 의존적인 존재자의 도덕성에 비례하는 행복간에는 필연적 연관에의 근거가 조금도 없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 이성의 실천적 과제, 말하자면 최고선에의 필연적 추구에 있어서는 이러한 연관은 필연적으로 요청된다. ․․․․ 그러므로 자연의 최상의 원인은, 그것이 최고선을 위해서 전제되어야 하는 한에서, 오성과 의지에 의해서 자연의 원인(따라서 창조자)인 존재자, 즉 신이다. 따라서 최고의 파생된 선(최선의 세계)의 가능성의 요청은 동시에 최고의 근원적인 선의 현실성, 즉 신의 현존이다.(KpV, 255-256)
이와 같이 길게 인용한 글에서 칸트의 신 존재 증명 방식의 면모를 분명하게 파악할 수가 있다. 이는 단적으로 도덕적 필연성에 근거하여 최고선으로부터 신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도덕적 필연성이란 무엇보다도 인간의 도덕적 의무에 기초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최고선을 촉진하도록 지시받는 의지를 규정하는 근거는 행복이 아니라 도덕 법칙이며, 따라서 도덕 법칙은 그 자신 최고선이 실현될 것을 명령하지만, 인간에게는 도덕 법칙은 마땅히 의무로서만 준수될 수 있는 것으로서 최고선의 촉진 또한 우리에게는 의무인 바, 최고선의 가능성을 전제하는 것은 이 의무와 결합된 필연성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의무에서 행하는 인간이 최고선이라는 목적에 도달하고자 노력할 때, 이 목적에의 도달 가능성을 보장해 주고 또 도덕성에 적합한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약속을 도덕 법칙 자신이 해줄 수는 없다. 또 유한한 인간의 입장에서는 최고선의 실현이란 하나의 불가능한 이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보증해 줄 수는 그 무엇, 즉 신의 존재를 필연적으로 요청해야만 한다.
그러나 칸트는 요청된 신의 지위에 대해서 그것이 하나의 가능성으로 요청된 것인지 아니면 실제적 현존으로 요청된 것인지를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칸트의 이러한 두 가지 주장에 대해서 Beck 및 그의 견해를 암묵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은 신의 가능성에 대한 칸트의 주장들을 안중에 두지 않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15) 이러한 태도를 지적하면서 Ferreira는 신의 요청의 이념을 가능성으로서의 요청으로 보는 것이 무시되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칸트의 도덕적 논증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라고 주장한다.16) 그러나 논자는 그 어느 쪽이든 칸트의 요청으로부터 결과하는 것이기 때문에 양자 모두 칸트의 정당한 견해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칸트는 신 존재나 영혼불멸과 같은 요청을 일러 “이론적인 교리(Dogma)들이 아니라 실천적인 전제들”(KpV, 264)로 규정하고 있으며, 그리고 이러한 전제들은 오로지 도덕 법칙으로부터 나아가 최고선의 가능성으로부터, 말하자면 “세계[현실]에서 가능한 최고선의 존재를 명령하는 실천 법칙이 순수 사변 이성의 객관들의 가능성, 즉 순수 사변 이성이 보증할 수 없었던 객관적 실재성을 요청한다”(KpV, 266-267)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사변적 사용에서의 순수 이성의 ‘요구’는 ‘가설들’(Hypothesen)에 도달할 뿐이지만, 순수 실천 이성의 요구는 ‘요청들’에 도달한다”(KpV, 276)고 보아야 하는 것처럼, 신 존재의 실재적 현존이든 실재적 가능성이든 그것은 요청으로서의 지위를 넘을 수 없으며, 동시에 요청과 관련해 볼 때 그것은 가능성이면서도 동시에 현존해야 하는 이념 이외의 다른 것일 수 없다.
무엇보다도 칸트의 “신의 개념은 근원적으로 자연학 즉 사변 이성에 속하는 개념이 아니라 도덕에 속하는 개념이다”(KpV, 274). 칸트의 말대로 이러한 도덕적 필연성은 “주관적인 요구”(KpV, 256)에 머물고 만다. 신이라는 최고 존재자가 있어 의무에 따른 결과에 대한 우리의 기대와 희망을 충족시켜 주리라 믿고자 하는 바램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신 존재의 요청은 이론 이성의 관점에서는 하나의 “가설”에 속하지만 도덕 법칙이 우리에게 부과하는 최고선을 실현해야 할 의무 의식과 결합되어 있는 실천적 관점에서는 “신앙”, 순수한 “이성 신앙(Vernunftglaube)”(KpV, 257)이다. 따라서 결국 도덕 자신은 종교를 필요로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게 “순수 실천 이성의 대상이며 궁극 목적인 최고선의 개념을 통하여 도덕 법칙은 ‘모든 의무를 신적인 명령으로 인식하는 종교’에 이르게 된다”(KpV, 261).
이와 같이 실천 이성의 요청으로서 요구되었던 신 개념은 도덕성과 행복의 일치와 조화라는 단순한 논리적 장치를 넘어서 최고선을 촉진하고 싶다는 또는 신의 왕국를 실현시키고 싶다는 도덕 법칙에 기초를 둔 도덕적 소망이 각성됨으로써 이제 종교의 도덕적 기초에 대한 입론을 거쳐서 도덕에서 종교에로의 진행을 정당화시켜주는 구심점이 되며 종교의 영역에서도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에로의 진행을 통해서 우리는 종교에 대한 칸트의 보다 상세한 논의를 ꡔ실천 이성 비판ꡕ에서는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다만 여기서 칸트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자연]형이상학에 의한 이 [현실] 세계의 인식으로부터의 확실한 추리를 통해서 신의 개념과 신 존재 증명에 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KpV, 272)는 것이며, 오로지 도덕을 통해서만 종교에 그리고 신의 현존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보다 분명히 해두는 일이다. 그러나 “신의 현존을 가정하는 것이 도덕적 필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도덕적 필연성은 주관적 요구”(KpV, 256), 따라서 하나의 요청 또는 신앙에 불과할 뿐이다. 본래 순수 이성(의지) 자신이 최고선을 추구할 것을 필연적으로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같은 자신의 불가피한 과제로서 최고선의 실현 가능성에 상관하는 근원적 존재자인 신을 가정하는 도덕적 필연성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5. 제 2 도덕적 증명
앞 절에서 살펴보았듯이 ꡔ실천 이성 비판ꡕ에서의 신 존재의 도덕적 증명과 종교에의 연관은 최고선의 개념을 매개로 해서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직접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인간과 도덕 법칙의 도덕적 관계 뿐이다. 도덕 법칙의 준수가 의무인 인간에게 있어서 신의 존재가 요청되는 것은 최고선의 실현 가능성을 보증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도덕 자신은 종교에 근거할 필요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게 “순수 실천 이성의 대상이며 궁극 목적인 최고선의 개념을 통하여 도덕 법칙은 ‘모든 의무를 신적인 명령으로 인식하는 종교’에 이르게 된다”(KpV, 261)는 것이 이미 밝혀졌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는 ꡔ판단력 비판ꡕ에서 다시 한번 강조되고 있다. ꡔ실천 이성 비판ꡕ이 신 존재의 문제를 주로 도덕 법칙과 최고선을 중심으로 하여 실천 이성의 요청을 통하여 전개되고 있다면, 이제 여기서는 도덕적 목적론과 관련한 증명 방식이 도입된다. 물론 제 1 증명과 제 2 증명은 기본적으로는 모두 동일한 논리에 입각해 있다. 왜냐하면 최고선과 도덕적 목적론은 근본적으로 도덕성이라는 하나의 동일한 원리에 근거해서만 성립할 수 있는 개념들일 뿐만 아니라 이를 자연과 역사의 차원으로 확대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동일한 것의 양면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차이점도 제 2 증명은, 제 1 증명처럼 최고선으로부터 단순히 오성적 존재자로서의 신 존재의 요청으로 직접적으로 비약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도덕적 목적론로부터 출발하여 창조의 궁극 목적에 도달하고, 다시 이로부터 오성적 존재자의 상정을 넘어서 도덕적 존재자로서의 세계 창조자인 신이 상정되지 - 그것은 통찰이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도덕적 최고 존재자를 결코 통찰할 수 없다 - 않으면 안된다는 점에서 생겨난다.
이러한 제 2 도덕적 증명의 기본 구조는 ‘도덕 법칙에 입각한 궁극 목적의 필연성으로부터 도덕적 세계 원인으로서의 신 존재의 필연성을 상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때 실천 이성의 궁극 목적은 인간을 포함한 자연 세계의 궁극 목적이요 최종 목적으로서 도덕적 목적론에 의해서 정당화된다. 이러한 정당화로부터 궁극 목적의 실천적 필연성이 그리고 신의 현존의 주관적 필연성이 추론된다. 이러한 증명 방식에 대해서 칸트는 다음과 같이 해명하고 있다.
이러한 도덕적 논증은 신의 현존재에 관하여 객관적으로 타당한 증명을 제공하려는 것도, 회의적 신앙가에게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도 아니다. 만일 그가 도덕적으로 모순없이 일관된 사유를 하려고 한다면, 그는 이 명제의 상정을 그의 실천 이성의 준칙 가운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 또한 이 논증이 주장하려는 것은, 모든 이성적 세계 존재자들의 행복을 그들의 도덕성에 따라 상정함이 도덕성을 위하여 필연적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상정이 도덕성에 의해서 필연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도덕적 존재자들에게 주관적으로 충분한 논증이다.(KU, 413 각주)
이와 같이 인간의 현존재의 “내면적 도덕적 목적 규정”으로부터 도출되는 도덕적 목적론에 의해서 “모든 사물들의 현존재의 궁극 목적에 대하여 전 자연을 저 유일한 의도(이 의도에 대하여 자연은 단지 도구일 뿐이다)에 종속시킬 수 있는 특성을 가진 최고의 원인(즉 신성성으로서)을 생각하도록 지시함으로써 자연에 대한 지식의 결함을 보충한다”(KU, 409).
결국 도덕적 목적으로부터의 신 존재 증명은 제 1 증명을 자연과 역사의 영역에까지 확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도덕 법칙의 필연성으로부터 최고선의 실현 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로서 신의 존재를 요청하고, 나아가 도덕적 신앙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면, 제 2 증명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하나의 역사적 과제로서 주어져 있으며, 따라서 역사적 실현의 가능성을 보장할 지고한 원인을 가정할 당위성으로서 신 존재의 필연성을 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목적론은 인간이 자신을 포함한 자연의 의도를 읽어내기 위해서 자연 질서를 합목적적으로 조망하고자 하는 반성적 판단력에 근거를 둔 규제적 원리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것이 신 존재에까지 추론되는 것은 인간의 도덕성 내지는 도덕 법칙에 따른 최고선을 실현해야 할 당위성 때문이다. 그것은 곧 최고선이 현재 불가능한 것이라면 그리고 그것은 언젠가 실현되어야 할 것이라면 역사적 시간 속에서 그것의 가능성이 확립되어야 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칸트는 제 1 증명이 보여주듯이 이미 실천 이성의 이율배반에서 만일 최고선의 실현이 불가능하다면 그 때 그것을 명령하는 도덕 법칙이란 환상적이고 공허한 상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므로 그 자체가 거짓이 되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말하자면, 어떤 명령에 복종하기 위해서는 애초부터 실현이 불가능한 목적을 추구해야 한다는 명령은 불합리하며, 전혀 타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모순이다. 즉, 도덕 법칙은 나에게 내가 실현 불가능한 목적을 추구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최고선의 실현이 도덕 법칙의 당연한 명령이라면 그리고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 그것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실현 가능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까지 아직 달성되지 않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연 속에서 또 역사적 과정 속에서 실현되지 않으면 안되며, 결국 언젠가 이루어져야 한다. 자연이 보여주는 합목적성도 최종적으로는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도록 계획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신이 자연의 섭리처럼 역사 속에서 그것을 가능하도록 보장해야 한다. 만일 인간의 도덕성이 필연적인 사실이라면 당연히 신은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 합리적이다.
칸트는 목적론을 크게 자연적 목적론(die physische Teleologie)과 도덕적 목적론(die moralische Teleologie)으로 구분한다. 이 중에서 자연적 목적론은 경험적 원리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이로부터는 유일한 지성적 원인이라는 개념을 도출할 수가 없다(KU, 401). 칸트에 의하면 신 존재를 정당하게 도출할 수 있는 것은 도덕적 목적론 뿐이다. 물론 도덕적 목적론은 근본적으로 그 자체가 오성적 존재자로서의 신 존재를 증명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와 같은 세계의 어떤 의도적으로 작용하는 최고의 원인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우리의 인식 능력의 성질상, 따라서 경험을 이성의 최고 원리와 결합시킴으로써는 그와 같은 세계의 가능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이상은 아무 것도 증명하지 못한다”(KU, 351)는 것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말하자면, 이러한 관계 설정으로부터 비로소 자연을 신의 섭리의 표현인 것처럼, 나아가 신이 궁극적으로 최고의 도덕적 목적의 실현을 의도하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추론에 의하여 신 존재에 도달한다.
이와 같이 근본적으로 칸트의 제 2 도덕적 증명 역시 기본적으로는 제 1 증명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신 존재를 통찰할 수 없으며, 다만 “우리의 이성 능력의 성질상, 우리는 도덕 법칙과 그 객체에 관계하는, 그리고 이러한 궁극 목적 속에 존재하는, 그러한 합목적성의 가능성을 세계 창시자이자 통치자요 동시에 도덕적 입법자인 하나의 존재자를 떠나서는 이해할 수가 없으며”(KU, 419), 따라서 “최고의 도덕적-입법 창시자의 현실성은 단지 우리 이성의 실천적 사용에 대해서만 충분히 입증되고 있을 뿐이요, 그러한 창시자의 현존재에 관해서 어떤 것이 이론적으로 규정된 것은 아니다”(KU, 419-420)는 비판적 입장에 기초하여 있다. 즉, 이 두 가지 모두 “이성은 그의 도덕적 원리를 매개로 하여 최초로 신의 개념을 산출할 수 있었으며”(KU, 409) “도덕적 증명은 신의 현존재를 단지 실천적으로 순수한 이성에 대한 신앙의 사상으로서만 증명한다”(KU, 443)는 공통점을 갖는다.
여기서도 칸트의 신 존재에 대한 비판적 사고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마디로 칸트에 있어서 “신학이란 과학적인 것일 수 없으며, 그것은 전적으로 실천적 신념의 문제일 뿐이다.”17) 그리고 그러한 신념의 정당성은 오로지 인간 이성의 본질로부터 즉 도덕성으로부터만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 따라서 칸트는 이러한 도덕적 증명은 증명이 아니라 일종의 논증일 뿐이며, “새로이 발견된 증명 근거가 아니라 다만 새로이 구명(究明)된 증명 근거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증명은 인간의 이성 능력이 최초에 싹트기 이전에 이미 이성 능력 속에 있었고, 이 이성 능력이 계속해서 전개됨에 따라 점점 더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KU, 422)라 하여 자신의 증명의 성격과 한계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신은 다른 한편으로 칸트의 실천 철학 내에서 이미 최고선의 개념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칸트는 “우리는 최고선으로서의 신 개념을 어디로부터 갖게 되는가? 그것은 이성이 선천적으로 도덕적 완전성에 관해 구상해서 자유 의지의 개념과 분리되지 않도록 결합하는 그런 이념에서 부터인 것이다”(Gr., 36)라고 말하고 있다.
6. 제 3 도덕적 증명
ꡔ실천 이성 비판ꡕ에서의 신 존재는 유한한 인간 자신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며 다만 가능성으로서 주어져 있는 최고선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필연적 조건으로서 영혼불멸과 자유와 더불어 요청된 것이었다. 최고선의 실현이 인간의 의무이면서도 근본적으로 그 실현 자체는 인간에게 주어져 있지 않다는 이 모순된 상황이 도덕 법칙 자신이 실현되기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실천 이성 자신에게서 발생하는 것이라면 이 역시 그 자신이 해소해야 할 도덕적 필연성을 인식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신의 존재는 따라서 실천 이성의 당연한 요청일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신 존재에 대한 도덕적 증명은 오로지 도덕 법칙에 기초한 최고선의 이념을 매개로 해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이 최고선의 실현 가능성을 근거짓는 가운데에서 도덕은 종교의 영역과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연관 때문에 칸트의 종교는 성격상 도덕적 종교일 수밖에 없으며, 동시에 모든 종교 문제에 관한 논의가 도덕의 바탕 위에서 음미되고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이러한 칸트의 종교 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 및 그 해결책들은 ꡔ종교론ꡕ에 이르러서 ꡔ실천 이성 비판ꡕ에서 보다도 더욱 구체적이고 풍부하게 그리고 강조점을 달리 하며 전개되기에 이른다.
ꡔ실천 이성 비판ꡕ에서와는 달리 ꡔ종교론ꡕ은 도덕적 증명의 문제를 근본악(das radikale Böse)이라는 인간 본성에 대한 고찰로부터 접근한다. 칸트에 의하면 인간의 도덕적 악이란 인간의 성향(propensio, Hang)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이 성향의 의미를 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대비될 수 있는 또다른 개념이 소질(Anlage)이다. 칸트는 성향을 “인간에 대해서 우연적인 것으로서 경향성(Neigung)(습관적인 욕망)의 가능성의 주관적 근거” 또는 단순히 “쾌락의 욕구로 향하는 경향(Prädisposition)”(Rel., 675-676)으로 정의내린다. 그리고 소질은 “그 존재자에게 필요한 구성 요소이자 그 존재자를 존재하게 해주는 요소들의 결합 방식”(Rel., 675)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인간에 갖추어져 있는 자연적 소질을 “생물로서의 인간의 동물성(Tierheit)의 소질”, “생물이면서 동시에 이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의 인간성(Menschheit)의 소질” 그리고 “이성적이며 동시에 책임질 능력이 있는 존재자로서의 인격성(Persönlichkeit)의 소질”의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Rel., 672-673).
이러한 구분에 따르면, 인간의 소질이란 인간 본질을 규정하는 필연적 요소라면, 성향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의 감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는 경우에 발휘되는 일종의 우연적인 요소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성향은 인간의 자연적 소질에 의탁하지 않고서도 이루어지는 성질을 갖는다. 그런 점에서 이 성향을 우연적 소질 또는 제 4의 소질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이러한 소질은 넓은 의미에서는 다같이 인간의 본성에 갖추어져 있는 요소들이지만, 성향은 각각의 소질에 있어서 그것을 어떤 경향성에 더욱 적합하도록 하려고 선택 의지에 영향을 미치는 성향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이 갖고 있는 성향은 자연적 소질은 아니면서도 행위에 앞서 그 무엇을 자신의 주관적 근거로 선택할 수 있는 의지의 규정 근거에 양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행위자 자신의 선택에 따라 악이나 선을 행하고자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악은 인간의 본성 자체가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성향에 의해서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행위자로서의 주관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다”(Rel., 683). 그렇다고 인간의 본성이 악하거나, 악이 실재하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인간의 본성 중에서 분명한 자신의 자리를 갖지 못하는 이상야릇한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성향 자체는 악의 소질을 갖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악은 어떻게 우리에게서 발견되는지를 물을 수 있다. 칸트에 의하면, 악은 악에의 성향에 물들기 쉬운 선택 의지와 도덕 법칙 사이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그러한 악은 악에의 성향이 도덕 법칙에 위배되는 이기적인 감성적 동기를 자신의 행위의 근본 동기로 채택하는 데에서 비롯한다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인간의 악은 “그가 동기를 그의 준칙 안에 채용할 때 동기들의 도덕적 질서를 전도시킴으로써”(Rel., 685)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상호 관계에 근거했을 때, 결국 칸트의 악의 개념은 그의 순수 윤리학의 범위 안에서 보자면, “인간의 ‘본래적 자아’에서도, 인간의 경험적-자연적 존재자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말하자면 두 세계 사이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18)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칸트가 말하는 도덕적 악이란 그 어디에도 실재하지 않지만,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로서 생겨나지 않을 수 없는 악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러한 전도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면 악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은가? 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칸트는 그 가능성을 용인하면서도 이러한 전도가 인간의 자연적 성향이기 때문에 근절시킬 수 없다고 본다. 이 때문에 그것은 이미 인간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 인간의 의지가 이미 “죄없는 것(res integra)이 아닌 것”(Rel., 710 각주), 이미 죄를 짓게 되는 상태에 놓여 있다는 의미에서 근본적인 것, 즉 “근본악”이다. 칸트는 “우리의 선택 의지의 탈선, 즉 악에의 성향의 이성적 근원은 우리에게 파악 불가능한 것으로 남는다”(Rel., 693), 즉 “도덕적인 악의 최초의 발생 근거로서 파악될 수 있는 어떤 근거도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Rel., 693)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도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그렇지 않을 가능성을 허용한다. 따라서 칸트 역시 근본악을 극복 가능한 것으로 파악한다. 이러한 악은 모든 준칙들의 근거를 부패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것이다. 동시에 자연적 성향이기에 인간의 힘으로는 근절시킬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선한 준칙들을 통해서만 일어날 수가 있는데 모든 준칙들의 최상의 근거가 부패한 것으로 전제된다면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에의 성향은 자유롭게 행위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므로 그것의 극복은 가능한 것이다.(Rel., 686)
말하자면, 악이 악에의 성향 자체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라, 악에의 성향이 있는 그리고 선을 택할 수도 있는 자유(의지)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만약 악이 악에의 성향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라면, 인간 자체가 근본에 있어서 죄를 지은 존재라는 말이 될 것이므로, 악의 극복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되고 말 것이다. 그러면 악의 근원의 파악불가능성에 불구하고 극복이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전도된 질서를 어떻게 바로 잡을 수가 있는가? 이 가능성을 칸트는 단적으로 “선으로부터 악으로 타락하였다는 것은 악으로부터 선으로의 전향 만큼이나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그러므로 악으로부터 선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도 역시 반박될 수 없는 것이다”(Rel., 695)라고 비유적으로 말하고 있다. 칸트에 의하면, 악의 근원의 파악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악의 극복의 가능성은 스스로 악을 초래했던 바로 그 인간이 악의 성향과 더불어 자신의 본성 안에 갖고 있는 “선에의 근원적인 소질을 자신의 힘으로 회복시키는 것”(Rel., 694)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이 소질은 무엇보다도 “무조건적으로 법칙을 부여하는 이성에 근거를 두고 있는 인격성의 소질”(Rel., 675)로서 이미 인간의 본래적인 가능성으로 주어져 있는 것이므로, ‘회복’은 상실된 것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다시 세운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그것은 점진적인 회복이 아니라 일거에 이루어지는 “인간의 심성의 혁명”(Rel., 698)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의 근원적인 도덕적 소질에도 불구하고 악에의 성향에 굴복하는 주관적 근거가 이미 부패해 있는 상태에서 그리고 스스로 그러한 악을 선택한 인간이 자력으로 그것도 일거에 전도를 역전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칸트 역시 “인간이 그의 준칙의 근거에서 타락해 있다면 과연 어떻게 자신의 힘으로 이 혁명을 수행하여 스스로 선한 인간이 될 수 있단 말인가?”(Rel., 698)라고 자문한다. ꡔ종교론ꡕ에서의 칸트의 도덕적 증명이 제시되는 곳이 바로 이 부분이다. 칸트의 증명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근본악에 처해 있는 인간의 근본 상황에도 불구하고, 도덕 법칙의 준수가 인간에게는 의무로 부과되어 있듯이, 이로부터 선한 도덕적 소질을 발휘하여 전도된 도덕적 질서를 회복함 또한 인간의 당연한 의무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무를 위한 인간의 노력은 자력으로는 그 목적에 도달할 수 없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고 도덕적 완전성의 이념을 성취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장해 줄 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이러한 의무는 그것의 극복 가능성을 믿고 있는 인간의 신 존재에 대한 신앙 즉 도덕적 신앙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이는 곧 도덕과 종교의 칸트적 결합을 의미한다.
결국 근본악과 관련한 신 존재의 도덕적 요청을 통해서 칸트는 악에의 성향을 극복하고 선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자력으로는 불가능하므로 초자연적인 신의 도움이 필요하게 된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신이 존재한다고 해서 인간이 선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이 도덕적 존재일 수 있고, 선한 존재로 태어났고, 결국 악을 극복하고 선이 승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도덕 법칙의 준수가 의무인 선한 도덕적 소질의 소유자이고, 이 존재자의 의지가 알 수 없는 근원에 의해 악에 물들어 있으므로, 이 악을 극복하고 선한 인간이 되어야 하는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먼저 근원적인 도덕적 소질을 발휘하도록 노력함으로써 자신을 신의 도움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로 만들 때에만 신의 도움을 희망할 수 있으며, 오직 그 때에만 신의 존재가 의미를 갖게 되는 그런 것이다.
7. 요약과 평가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ꡔ순수 이성 비판ꡕ을 통해 칸트가 밝혀 놓은 것은 이성 신학의 원리들의 탐구에 있어서 사변적 신 존재 증명의 원천적인 불가능성이었다. 이러한 성과 위에서 칸트에게 남은 것은 이성 신학 중의 실천적 부분에 속하는 도덕적 신 존재 증명이었다. 그리고 칸트가 제시하는 도덕적 증명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었다. 이 각각의 도덕적 신 존재 증명이 직접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대표적인 저술은 ꡔ실천 이성 비판ꡕ과 ꡔ판단력 비판ꡕ 그리고 ꡔ종교론ꡕ이다. 첫번째로 살펴본 ꡔ실천 이성 비판ꡕ의 기본 의도와 목적은 ꡔ도덕 형이상학 기초ꡕ에서 도덕의 최고 원리의 근원으로서의 순수한 실천 이성이 있음을 전제하고 이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사용을 바로잡음으로써 실천 이성의 근본 성격을 올바로 해명하려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최고선의 개념이 정립되며 이를 매개로 하여 요청으로서의 도덕적 신 존재의 증명이 등장한다. 반면에 ꡔ판단력 비판ꡕ에서의 도덕적 신 존재 증명은 최고선 실현의 당위성을 도덕적 목적론의 차원에서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등장한다. 나아가 ꡔ종교론ꡕ에서는 최고선과 관련한 실천 이성의 필연적인 요청이 아닌 근본악이라는 인간의 자연 본성에 대한 고찰로부터 출발하여 그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자구적인 노력과 결부되는 신 존재와 그 증명이 등장한다.
칸트는 자신의 신 존재에 대한 도덕적 증명은 새롭게 발견된 것이 아니라, 그 기초만이 새롭게 해명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의 도덕적 증명은 바로 그 기초를 자신의 비판 철학적 조망 하에서 신 존재를 실천적 차원에서 합리적으로 옹호할 수 있는 길을 확고히 하고자 했다는 점에 부인할 수 없는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
지금까지 인간의 도덕성을 중심으로 파악한 칸트의 세 가지 도덕적 신 존재 증명은 전통적인 사변적 신 존재 증명과는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성격을 갖는다. 칸트의 도덕적 증명은 모두 도덕적 신앙을 겨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한결같이 도덕적 기초 위에서 그리고 그 한계 안에서 신 존재의 타당성과 필연성을 논증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칸트가 도덕적 신 존재 증명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신이란 신앙과 이성 모두를 필요로 하는 유한한 이성적 존재자로부터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칸트의 증명과 관련하여 Wood가 밝히고 있듯이 그의 저술들로부터 신 존재와 이에 대한 도덕적 신앙의 정당화를 꾀하는 추론 과정이 보여주어야 할 하나의 단일하고 정합적인 설명 방식을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19) 나아가 Wood는 이러한 사정 때문에 적지 않은 칸트 학자들은 대부분 도덕적 신앙에 대한 타당한 논증을 칸트의 저술들로부터는 전혀 추출해 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하였다고 평가한다.20) 심지어 칸트의 ꡔ유작ꡕ(Opus Postumum)의 편집과 해석에 있어서 선구적인 업적을 쌓은 Adickes도 ꡔ유작ꡕ에서 칸트가 자신의 비판기의 도덕적 증명을 거부했으며, 그것을 주관적 체험(subjectives Erleben)에 입각한 신에 대한 보다 “개인적”(personal)이면서도 “주관적인”(subjective) 신앙으로 대체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21) 그리고 더불어 그의 이같은 결론을 많은 권위있는 칸트 주석가들이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Wood는 그들이 Adickes가 그러한 결론에도 불구하고 칸트의 ꡔ유작ꡕ이 보여주는 단편적이고 해석하기 어려운 언급들이 갖는 문제점들 및 그러한 해석들이 이미 출간되어 상대적으로 보다 명료한 저작들에 대한 그 나름의 독해에 입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음을 덧붙이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서 Wood는 칸트는 그의 ꡔ유작ꡕ 이전에는 결코 도덕적 논증을 거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줄곧 계속해서 그의 비판적 저술을 통하여 옹호하고 있으며, 따라서 만일 ꡔ유작ꡕ에서 그것을 거부하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놀라운 일이며,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보다 강력하고 결정적인 증거에 의해서 뒷받침되지 않는 한 이를 칸트 자신의 최선의 견해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22)
그러나 이러한 평가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칸트의 도덕적 신앙의 옹호와 확신을 다지기 위한 도덕적 신 존재 증명은 오로지 이성의 유일한 사실로서의 도덕 법칙의 확실성으로부터의 증명인 이상 우리의 시각은 이러한 전제적 사실로부터 정당화될 수 있는 도덕적 증명의 건전성에 모아져야 할 것이다. 신의 현존재에 대한 칸트의 저 세 가지 유형의 도덕적 증명도 바로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증명들이다. 따라서 어떠한 경우이든 칸트의 도덕적 신 존재 증명이 갖는 고유한 의미는, 비록 그것이 성공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또 ꡔ유작ꡕ과 관련하여 심지어 칸트 스스로 그것을 거부했다는 주장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는다 하더라도, 도덕적이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정당화하려는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시도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칸트가 신 존재의 도덕적 증명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유일한 그리고 변함없는 사실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