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고 나면 허망한 크로아상처럼
“내게 조국 방문은 먹고 나면 허망한 크로아상 같은 것이었다.” 이것은 어느 한인 여학생이 고국 방문을 마친 뒤 그 소감을 적은 작문의 한 구절이다. 참 맛깔스러운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어디 나도 한번 그리 해 보기로 했다. “내게 퇴근 시간에 차 안에서 듣는 한국어 방송은 갓 구운 머핀 맛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가끔 이 갓 구운 머핀 맛을 망치는 일이 일어난다. 뉴스를 보도하는 아나운서의 한국어 발음이 어색하고 부정확한 것까지는 여기가 뉴욕이니까 하고 양보(?)를 한다 쳐도, 보도문 자체를 잘못 읽거나 더듬거나 자신 없는 단어가 나오면 (그것도 한국어를) 아예 건너 뛸 때는 정말 입맛이 쓰지 않을 수 없다. 게다 사과도 없다. 상품으로 치면 불량품이다. 물건을 잘못 샀다면 교환도 하고 환불도 하고, 정도가 심하면 소비자 고발 센터에도 갈 수 있겠으나, 이런 경운 어디에 불평하여 교정을 요구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불평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경험으로 안다. 언젠가 한국어 신문을 취급하는 약국엘 갔더니, 그 약국 주인이 한 한국어 신문을 말아 쥐고 카운터를 내리치며, 신문 내용 중 틀린 곳을 그리도 지적하건만 여전히 오류를 범한다고, 자신을 그저 호사가 취급한다고 분개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소비의 천국인 미국에서 한국계 뉴욕인들은 그들의 한국어 문화 서비스를 이와 같이 받고 있다. 왜 그럴까? 소비자가 적극 개입하지 않아서? 그것은 소비자의 의견을 제시할, 즉 비평의 마당이 없기 때문이다. 근래에 와서 현상 문예에 비평 부문을 첨가한 일간지도 있긴 하지만 그 비평 대상의 작품 범주가 본국의 작품에 한정 되어 있어, 여기서 생산(?)된 작품들은 제외되어 있느니만큼 비평의 마당이 활성화 되었다고 보긴 어렵다. 언론의 비평 기능 없이 사회가 발전할 수 없는 것처럼 문화 또한 마찬가지인데, 게다 여기에서의 한글 문화는 독주(?), 아니 무관심하게 내버려져 있는 양상이니,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비평의 공개 마당을 열어야 하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시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런 관점에서 다음의 내용을 전개하고자 한다.
쓴 맛에 관하여
어느 일간지 일면 머리 기사 큰 제목에서 “야미 의사”를 본 적이 있다. 어느 유명 인사의 글에선 “푸마시” 를 읽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무면허 의사, 품앗이란 바른 말을 찾지 못한 것은 아마 사전을 소홀히 한 탓일 것이다. 영어 쓰기가 틀리면 부끄러워도 하고, 사전도 찾아 보지만, 한국어의 경우엔 무엇을 잘못해도 용서해 주시는 어머니처럼 믿는 구석이 있어서 소홀히 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럴수록 어머니를 소중히 모셔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본국의 어문 정책이 수시로 바뀌어 바깥에 나와 사는 우리는 그 시간이 오랠수록 정확하게 현행 모국어를 사용하진 못한다. 하지만 맞춤법 띄어쓰기야 그래서 그렇다 치지만, 통사라도 바르게 사용하려는 노력쯤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뉴욕 근교에서 한국어가 소비 되는 시장이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 TV, 라디오, 서점, 출판사, 한글 학교, 게다 문인협회, 기독교 문인협회 등 한글로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분들조차 있을 만큼 생각 밖으로 규모가 크다. 그러니 바른 말 사용, 바른 글쓰기에 관심을 게을리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한데 가끔씩 전문직으로 글쓰기 하는 분들로부터도 머핀 맛이 반감되는 일이 일어나곤 한다.
이런 경우를 <뉴욕 문학> 7집 (1997년 출판. 펴낸 곳; 도서 출판 마을 시대 문학. 발행;미동부 한국 문인 협회)에서 몇 가지 골라 보겠다. 우선 주어와 인칭의 문제다. ”나는 결코 그렇게 살 생각은 아니었으나 풍랑에 밀려 가는 난파선에서 구조선을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나는 그만 지쳤는지도 모른다.” (동서 P82) 이 한 문장엔 주어가 두 개다. 또 ”크리스틴은 손뼉을 치면서 좋아하였습니다.” (동서 P206)란 문장은 삼인칭 서술인데, 마지막 줄에 가면 “옆에서 웃고 계시던 할머니는 내가 하얀 종이에 쓴 <漢文>을 보시면서 매우 기뻐하셨습니다.”라고 일인칭 서술로 바뀐다. 다음은 어휘의 문제다. ”뭔가는 재미 있고 신나는 놀기를 하고 싶습니다.” (동서 P204) 이 문장에서 놀기의 -기는 명사형 어미다. 명사 놀이가 있는데 왜 구태여 명사형일까? “뭔가는 재미 있고 신나는 놀이를 하고 싶습니다.” 이게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다음 “맛있는 냄새가 그윽합니다.”에서 ‘그윽하다’는 깊숙하고 고요하다는 형용사이다. 냄새가 고요할 수는 없을 터이니 차라리 “맛있는 냄새가 납니다.”가 무난하지 않았을까? 또 “아빠는 외국 분이시고 엄마는 한국 사람이지만’에서 왜 ‘외국 분’이시고 ‘한국 사람’이어야 했을까?
이런 글쓰기의 예는 매일 읽는 일간지에서도 부지기수로 찾아낼 수 있다. 다음은 모 일간지에서 하루 이틀 사이에 뽑아낸 예문들이다. “미등록 차량 뺑소니 사고 / 베이사이드서 30대 여성 3세 유아 부상 / 16일 베이사이드에서 미등록 차량으로 인한 뺑소니 사고가 발생했다. 111경찰서는 16일
하지만 이 정도는 소비자에게 충실한 편이다. 오자와 탈자만이 아니라, 기사 짤라 먹기, 상관 없는 기사 꼭지 섞어 놓기, 사진 설명과 관련 사진 서로 바꿔 놓기, 틀린 사진 설명, 게다 묵은 특집 기사 재탕, 끝나지도 않은 연재 소설 도중 하차, 똑 같은 기사를 다른 면에 겹쳐 싣기, 틀린 맞춤법과 어법에 맞지 않는 말로 가득 찬 광고 문안들…… 이러니까 그 약국 주인이 화를 낼 만도 한 것이었다. 성의 없이 만든 제품을 불만 없이 받아들일 소비자가 어디 있겠는가.
여기에 더 한층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일간지도 뉴욕 근교 한국어 학교의 교재로 쓰인단 점이다. 한글 학교 학생들 문장 중에 “그 여자 아이의 엄마께서 쌍둥이 빌딩에서 일을 하고 계시는 중에 비행기와 부딪혔고 그 아이의 엄마는 아직까지 찾지 못했습니다.”와 같은 영어 번역 식 문장을 우리 말답게 다듬어 주려면 신문이 본보기가 되어야 하는 고로, 그 소임을 다 하기 위해 정말 신중하게, 적어도 맞춤법만이라도 정확하게 제작해야 할 일이다.
박목월 선생님은 김동리 선생의 예를 들어 늘 제자들을 경계하셨는 바, 그 말씀에 귀 기울여 보면 다음과 같다. “어느 날인가, 모임을 하나 만들 일이 있어 발기문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그때 마침 대표가 동리라. 그가 대문장가인줄 우리 모두 아는 사실이니 발기문이 금방 나올 것으로 기대했었지. 한데 동리는 몇 시간씩 들락거리며 쓰고 또 쓰고 고치고 쓰고 하기로 하루를 보냈어. 그래서 나는 생각했지. 그가 대문장가가 된 것이 우연이 아니구나. 작품 쓰는 것도 아니고 사소한 실용문 하나에도 저토록 정성을 쏟으니 그의 글이 훌륭할 수밖에. 따라서 문장은 욕심 내어 단번에 써지는 게 아니다. 또 어휘, 어법, 맞춤법 그 어느 하나도 (이때면 선생님은 ‘하낫또’ 라고 발음하셨는데, 그 음성이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소홀히 해선 안 된다.” 사소한 글일망정 정성을 다해 다듬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 일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음은 용어의 문제이다. 다시 <뉴욕 문학>으로 돌아와 내용을 살펴 보면 ‘이 규보의 문학 사상’ ‘고시조와 만해의 눈으로 보는 세계’ ‘신대륙 동인들의 어제와 오늘’ ‘97년 미국 문학의 흐름’ 들을 평론으로 분류해 싣고 있는데, 이 글들을 다 평론으로 묶기는 어려워 보인다. 앞의 두 글은 학술 논문에 가깝고 ‘신대륙~’은 회상기이며 ‘97년~’은 문예 흐름에 대한 보고이다. 굳이 사물의 가치 선악 등을 비평하여 논하는 것이 평론이라는 국어적 해석을 갖다 붙이지 않더라도, 이들을 한데 묶어 평론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 듣기로는 이 글들을 평론으로 묶은 것도, 오자 탈자 교정이 성의껏 되지 않은 것도, 본국의 책을 만든 출판사라 하였다. 정도가 너무 심했던 것은
이번엔 시각이 다른 학설을 소개한 경우이다. “거대하고 찬란한 동방 문화권의 중심인 중국에서 문화 전반에 걸쳐, 영향을 받았을 뿐 아니라, 시문에 이르러서는, 중국 글자인 한자를 빌려 (‘빌어’라고 해야 맞다.) 씀으로써 그 학문과 전통을 그대로 전승 받고 꽃피우다가 15세기 중엽 세종 대왕의 한글 창제의 계기로 뿌리 깊은 한시의 작법은 그대로 간직하면서 보다 새롭고 독창적인 형태로 발전 시킨 형식이 시조가 아닌가 합니다.” 이 글은
그러나 고
또 시조의 완성 시기를 살펴 보면, 우리는 모두 <하여가>와 <절개가>를 알고 있다. 고려 말엽에 의사 전달을 이와 같이 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 완성이 이미 그 당시에 이루어졌단 말이 아닌가. 더욱이 고려 시대는 고유한 우리 문학의 만화(滿花)기로, 향가 고려 가요 경기체가 시조 수필이 다 그 시대의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만개한 시조가 한글 창제 후 문자로 정착되자, 더욱 더 서민들의 애환을 읊어내는 수단으로 쓰여, 우리 고유 문학의 맥을 잇게 된 것인 바, 이 시기엔 사설 시조도 등장했다. 시조는 오늘날에도 읊어지며 이제는 형태도 다양해져 2행시 3행시 6행시 12행시 등 현대 정형시로서의 변화 형태도 보이며, 더욱이 종장 3,5,4,3 잣수만 맞추면 자유시 형태가 가능한 사설 시조는 서양 현대시 형태로도 손색이 없다. 이런 훌륭한 문화 유산에 긍지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엔 시조 작자에 대해 말해 보겠다. “간밤에 부던 바람”을 씨는 작자 미상이라 했는데, 고
이상, 시조의 작법이 한시의 영향을 받았으며, 한글 창제 후 형태가 발전하였다는
아무 커나 수필을 쓰는 이계향 선생이 우리 수필의 대가인
다음은 영어 사용의 문제이다. 동서(同書)의 다수 작품 속에 흰쌀 밥에 팥알 섞이듯 영어 단어들이 들어 있는데, 여기서 한번 짚고 넘어 갈 것은 우리가 왜 이 땅에 와서까지 한글로 글을 쓰고 있는가 이다. 이 점을 진달래와 아젤리아를 비교해 말해 보겠다. 똑 같은 대상을 나타내는 두 낱말이 한국인에게 주는 이미지는 엄청나게 다르다. 아젤리아, 하면 서양식 정원에 피어 있는 그저 화려한 색깔의 꽃 무더기 이미지 밖엔 떠오르지 않으나, 진달래, 하면 한국인 누구나 전국 방방곡곡 봄이면 피어나 한을 토하듯 피빛으로 강산을 물들이던 그 꽃,
하긴 영어 섞어 쓰기는 본국에서 더 심한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본국 일간지에서 정리되지 않은 채 소멸되어 가는 우리 문화를 보존하자는 내용을 몇 회에 걸쳐 특집 연재를 했었는데, 그 제목이 “우리 문화의 인프라를 세우자”였다. “우리 문화의 보존 기반을 세우자” 이랬으면 너무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탓일까? 하지만 모순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도 이 모순을 지적하지 않은 채 그 연재는 끝났다. 그래서 그때 우리 말은 우리나라 신문쟁이 글쟁이들이 다 망치고 죽이는구나(?)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영어 쓰는 고장에서도 안 통하는 영어 조어 만들어 쓰는 노력은 하면서 왜 우리말로 된 조어 만들어 쓸 노력은 하지 않는지. 태권도인들은 우리말을 세계에 보급하고 있는데, 글 쓰는 당사자들은 왜 우리말의 입지를 좁혀, 우리말을 서양 언어의 보조 언어로 전락 시키려 하는가. 서양의 정신과 언어로 우리 고유 문화를 재포장하는 것, 이것이 국제화이고 문화 발전이며, 우리 문화 우리 언어 사랑인가.
이렇게 쓰다 보니 전문 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분들께 일개 백면서생(?)이 얄팍한 지식으로 누를 끼치는 게 아닌가 더럭 겁이 난다. 그러나 객지에 오셔서 고생하고 계신 어머니(?)를 뵈오니 어찌 말을 아낄 수 있겠는가. 감회가 치받쳐 불만을 토로하였으니 혜량으로 받아들여 주시기 바란다.
머핀 맛을 쓰게 하였던 불만들에 대해 이만큼 소회를 풀었으니 이제는 이 책에 들어 있는 맛깔스런 맛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맛깔스런 맛들에 대하여
여러 가지 맛 가운데 우선 심상한 맛부터 느껴 보도록 하겠다. “웨이터는 얼음 물이 담긴 높다란 두 개의 유리 컵을 그들 앞에 놓았다.” 이 첫 문장에서 내용의 분위기는 버터 냄새가 날 터이고 (웨이터, 얼음 물, 유리 컵의 이미지로 해서) 주인공들은 대립 상태에 있고 (높다랗게 놓인 두 개의 유리 컵) 그들은 그들 앞에 제시된 삶의 (그들 앞에 놓았다.) 합의점을 찾지 못할 것이다 (얼음 물 유리 컵의 차가운 이미지) 라고 암시를 주고 시작한 임혜기 씨의 소설 <지붕>은 정말 그 첫 문장에 충실하도록 이야기를 끌어 가고 맺는다. 평행선을 그을 수밖에 없는 남녀, 아니 인간의 만남. 그러기에 인생은 쓸쓸하다. 얼음 물처럼 차갑게, 유리 컵처럼 분명하게, 푸르스름한 불빛 속을 떠도는 녹인 버터 향 같이 나른하게. 과거의 사랑을 확인해 보려는 것만큼 쓸쓸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사간과 공간을 공유할 수 없고, 서로의 지붕이 되어줄 수 없는 남녀. 그래서 이 작품의 반전은 여 주인공의 배앓이다. 일정한 기대를 갖고 읽어내려 가던 독자의 허 찌르기-작가의 김 빼기 작전(?)은 드디어 주효해서 남자 주인공은 “코를 골기 시작했다.”로 끝을 맺는다. 따라서 주인공들도 독자도 심상하게 일상으로 돌아오며, 아울러 이 작품은 삶의 보편성을 얻는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감동 쪽 보다는 인생에 대한 사실적 사고를 하게 하며, 이것 또한 분명 문학의 기능 중의 하나이다.
이 작품과 정반대의 독후감-뒷맛을 오래 남기는 작품은
이야기는 발전하여 주인공의 그 불안은 할로윈 데이의 풍습과 엇갈리며 새로운 불안을 낳는다. 악령! 그 악령은 인간의 손에 의해 존재한다. 돈과 이익을 위해 지르는 방화가 그 실체이니까 말이다. 그 방화에 의해 주인공이 가족을 잃은 것이 밝혀지면 주인공의 불안감과 상실감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가 분명해진다. 악령의 정체는 인간 내부에 있는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욕망 그 자체였다. 그러나 한 개인이 거대한 집단-욕망의 집단에 대항하여 싸워 이길 수 있을까? 당연히 그 다음은 절망이 따른다. 절망 뒤엔 포기가 온다. 주인공은 가진 것 모두, 개 한 마리와 현금 얼마를 월남 박씨에게 주고 그 곳을 떠나려 한다. 그러나 운명은 예정대로 가진 않는다.
이게 작품의 반전이다. 방화의 현장에서 잃은 아들의 모습이 재현되자 주인공은 자신의 상실 불안 절망의 실체에 정면 도전한다. 오래 동안 몸 속에 응축된 채 차마 불러 보지 못했던 그 이름을 토혈하듯 부르며 불길 속으로 몸을 던진 것이다. 통이 터지며 허연 우유가 솟구쳤듯이 그의 절망은 뻘건 불길 속으로 시커멓게 분출되어 나갔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 작품은 절정에서 장면을 마감했다. 다음 결말은 독자의 몫이다. 상실감에 빠져 오늘도 시스톤에 살고 있는 독자들은 일상 생활 속에서도 시시때때로 그 불안과 절망을 떠올리며 작가 대신 그 결말을 마무리해 보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작품 읽기는 끝이 났으나 책을 덮고도 덮지 않은 상태가 된다. 절정에서 끝맺음하기의 매력이다.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인상을 심기에 충분하며, 이런 것이 독자의 문학적 체험이다.
후일담을 가짐직한 작품들도 독자들의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긴 마찬가지다. 알라스카 오지에서 첫 여인을 다시 만난 최 목사,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알고 보니 이복 동생이었다는 상규, 아버지가 극력 반대한 동생의 결혼에 알고 보니 올케가 이복 동생이었다는 하영, 비행기에서 우연히 치료해준 위급 환자가 알고 보니 극력 결혼을 반대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던 첫 여인의 어머니였다라는 닥터 X. 이들의 후일담은 어떠했을까? 이 책에 실린 여섯 편의 소설 중 네 편이 이와 같이 기연을 담고 있는데, 그야말로 기연(奇緣)이 아닐 수 없다. 여러 사람의 작품을 한 책에 모아 놓았을 때의 단점이 금방 드러나는 좋은 예이다. 기연이란 소재에 하나로 묶여, 작품 하나 하나가 갖는 독립된 긴장감이 한 순간에 와해되고 마니 이렇게 맥 빠지는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리하여 이 작품들은 그저 그렇고 그런 맛을 남기고 말았다.
다음엔 엉뚱한 맛에 관한 얘기를 해 보겠다. 독자는
그런 면에서 이전구 씨의 작품들은 4,4조의 가락 속에 우리 민족만이 갖는 해학도 있었고, 유머도 느껴졌고, 더욱이 우리말의 재미도 느낄 수 있어 구수한 맛이 느껴졌는데,
이 작품들과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하는 것은
간결한 맛은
그러나 옥에도 티가 있다고,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신앙에 대한 표현이 문학으로 여과되지 않고 육성 그대로 지상 중계(?)된 작품들이 있었던 점이다. 문학이란 신을 갈구하는 자세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배우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신앙 고백은 문학의 재료일 뿐, 문학적 장치 없이 지면에 나열되어졌을 땐 문학이라 부르기 어렵다. 왜 문학을 창작이라 하는가. 신앙 고백이 문학적 언어와 장치로 재 배열되었을 때, 비로소 그것을 창작이라 한다. 그래서 그런 작품을 읽으며 좀 떫은 맛(?)은 느꼈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이곳-객지, 타향, 오지, 오랑캐 땅에까지 와서 한국어로 된 창작물을 읽게 될 줄이야. 그저 기쁘고 즐거울 따름이다.
고교 시절에 읽었던 <제 7지하 호>에서 지금껏 기억에 남는 대목은 핵이 가동되어 지상이 파괴되고, 지하 호에 남아 있던 사람들만 존재하게 되었을 때, 등장 인물 중의 하나가 동화를 만들어 내던 부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문학이 존재할까, 또 필요할까, 또 동화가 그만큼 가치 있는 것일까? 어린 그때 무척 의아해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답을 분명히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기까지 와서도 이 나이에 한글로 글을 쓰고 있다. 만일 지구가 황폐된 뒤, 지구를 떠나 우주로 간다 치자. 그때 우리는 쓰는 일을 멈출 것인가? 우리는 그때도 분명 글을 쓸 것이고, 한글로 쓸 것이다. 따라서 해외에서 한글로 글을 쓰는 분들은 우주에 한국의 전진 기지를 만드는 분들이다. 미동부 한국 문인 협회원들 중엔 당장 영어로 작품을 발표해도 충분히 능력을 인정받을 분들이 있다. 그럼에도 그분들은 왜 한글로 쓰는가? 한글에 대한 사랑, 그밖에 다른 이유는 없다.
그러므로 이제 한국 내에서, 해외에서 한글로 글 쓰는 사람들의 작품을 한국 문학 범주에 넣어야 할까에 관한 논의는 그만 끝냈으면 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글’로 쓴 글을 ‘우리나라 땅’에서 쓰지 않았다고 문제 삼는다면 그것은 장자(長子)의 우선권 주장이요 편협한 사고에 불과하다. 국적을 문제 삼을 수도 있겠으나 그들의 정신적 정서적 국적은 분명 한국이다. 이에 우리는 이제 우리의 어머니(?)와 함께 기쁘고 즐겁게 대동(大同)의 길로 나가야 할 것이다.
사족
이 독후감을 쓰고 난 뒤의 느낌은 참담하다. 가당치도 않은 오기를 부린 건 아닌가 하는 자괴감마저 들어 부끄럽기조차 하다. 하지만 뉴욕의 양대 일간지에서 현상문예를 모집해 온지 오래고, 미동부 한국 문인 협회와 기독교 문인 협회에서 신인상을 주고 있는데, 이처럼 양적으로 성장한 만큼 내실을 기하기 위해서라도 이 작품들을 애정을 갖고 읽어 줄 독자, 그리고 비평을 해 줄 독자들이 있어야만 한글 문학이 발전할 수 있단 생각에 졸필을 들어 보았다. 작가는 즐비한데 독자가 없는 기현상 속에선 아무리 글을 써 봐야 작가는 고도에 갇힌 수인이다. 애정어린 관심과 비판을 가할 독자들이 있어야 작가도 존재할 수 있다. 이에 이 졸고의 부끄러움을 면해 볼까 한다.
사족 하나 더, 덧붙여 보면 먹고 나면 허망한 크로아상 같은 맛이 아닌 우리말의 맛을 찾으려면 사전 찾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영어 사전과 똑같이 한글 사전도 책상머리에 나란히 놓아, 더 이상 어머니(?)를 객지에서 고생 시키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우리와 민족성이 많이 비슷한 이탤리언들의 이민사는 우리보다 훨씬 더 긴데, 그들의 모국어 신문인 Oggi는 아직도 소비가 여전하다. 우리의 모국어 문화 소비도 이처럼 더 많은 세월을 여기에서 이어 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국어 문화를 부지런히 갈고 닦고 다듬을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