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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FATHER’S LOVE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Luke
Key verse:
“But while he was still a long way off, his father saw him and was filled with compassion for him; he ran to his son, threw his arms around him and kissed him.”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Good evening, and welcome to the 2008 UBF Summer Bible conference International!
안녕하십니까. 2008년 UBF 국제 여름수양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Tonight, I would like to share with you the most important message anyone can ever hear.
오늘밤 저는 여러분과 함께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It is the message that God loves the world.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Is it true?
정말로요?
Can an all-knowing God really love us?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실 수 있을까요?
Does God who created all people really care about each one of us?
모든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정말로 우리 각 사람에게 관심이 있으실까요?
Yes, it is true.
예. 그렇습니다.
In the passage we’ve just read, Jesus tells the parable of the prodigal son.
우리가 방금 읽은 본문에서, 예수님은 탕자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This parable is the most beautiful passage in the entire Bible.
이 비유는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부분입니다.
Through this parable Jesus illustrates how our Heavenly Father loves even the worst of sinners, and how his love extends to all people, righteous and sinners alike.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떻게 가장 흉악한 죄인까지도 사랑하시는가 또한 어떻게 그의 사랑이 자기 의로 가득찬 죄인들까지도 사랑하시는가를 보여주십니다.
Let’s listen to this message of the Heavenly Father’s love!
이 시간 이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에 귀를 귀울여 봅시다.
I. Jesus’ heart for the lost (
I. 잃은 자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 (
Luke
누가복음 15장 1절은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These sinners had done so many bad things.
이 죄인들은 수없이 많은 못된 짓을 했습니다.
But they heard in Jesus’ invitation to follow him the chance for a new life in God.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라는 초청에서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음을 들었습니다.
They were ready to face up to their past.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청산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They were ready to come home to their Father God.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올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And Jesus welcomed them.
예수님은 그들을 환영해 주셨습니다.
He sat down with them and ate dinner with them.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앉아서 식사를 하셨습니다.
He began teaching them many things.
예수님은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The tax collectors and prostitutes couldn’t believe it!
이는 세리과 창녀들이 믿기 힘들만큼 큰 은혜였습니다.
They went and told their friends, so that more and more “public sinners” began gathering around Jesus.
그들은 나가서 친구들에게 말했고, 그리하여 더 많은 “죄인” 들이 예수님께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It was a picture of the feast in the heavenly kingdom when God welcomes his children home.
이는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집으로 반갑게 맞아주시는 하늘 나라 잔치의 모습입니다.
What a beautiful and heart-moving story it is!
얼마나 아름답고 가슴 뭉클한 이야기입니까!
The Pharisees were strict observers of the Jewish law.
바리새인은 유대 율법을 철저히 신봉하는 자들이었습니다.
When they saw the kind of people gathering around Jesus, they were in shock.
그들은 예수님 주위에 몰려있는 부류의 사람들을 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The Pharisees would never associate with such people.
바리새인들은 결코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 사귀지 않았습니다. .
So they grumbled about Jesus (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불평했습니다. “이 사람은 죄인들을 영접하고 그들과 함께 먹는다!”
Jesus did not argue.
예수님은 그들과 논쟁하지 않으셨습니다.
Instead, Jesus told them three parables.
그대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세가지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Jesus’ first two parables had the same point:
예수님의 처음 두 가지 비유들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God rejoices over a lost sinner who repents, just as a shepherd rejoices when his lost sheep is found, or as a widow rejoices when she finds her lost silver coin.
목자가 잃은 양을 찾았을 때 즐거워하고, 과부가 잃어버린 은화를 찾았을 때 즐거워하듯,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죄인이 회개할 때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Of course, a person is different from a sheep or a coin.
물론 사람은 양이나 동전과 다릅니다.
So Jesus told them a third parable, the parable of the lost son.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세번째 비유인 잃은 아들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The man in Jesus’ parable is God.
예수님의 비유에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십니다.
His two sons represent the people of the world.
그의 두 아들들은 세상 사람들을 나타냅니다.
II. The younger son’s wild living (11-20a)
II. 둘째 아들의 방탕한 삶 (11-20a)
Look at verse 11.
11절을 보십시오.
“Jesus continued: "There was a man who had two sons.”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The father in Jesus’ parable had worked hard to build up his estate and his family from nothing.
예수님의 비유에서 아버지는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서 재산과 가정을 세우기 위해 매우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At first, he worked alone with his wife to plough the soil, plant his crops and harvest them.
처음에 그는 오직 그의 아내와 더불어 흙을 갈고, 씨를 뿌리며 추수하였습니다.
Together, they also cared for the cows, chickens, goats and geese.
둘이서 함께 소와 닭과 염소와 거위도 키웠습니다.
When his wife was pregnant with their first son, he hired his first laborer.
그의 아내가 첫째 아들을 임신했을 때, 그는 첫번째 품군을 고용했습니다.
Step by step, he increased the extent of his lands, the number of his hired servants and, with the birth of his second son, the size of his family.
점차로, 그는 땅과 품군의 수를 늘렸고, 둘째 아들이 태어나면서, 가족 수도 늘었습니다.
His farms became the envy of the whole land.
모든 사람들이 그의 농장을 부러워했습니다.
Hired men on other farms tried to sign on to work for him as free agents, knowing that they would make good money, even as they worked hard under his watchful eye.
다른 농장의 품군들도 그의 감독아래 열심히 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돈을 벌것을 알기에 자유계약자로 그 밑에서 일하고 싶어했습니다.
As his sons grew older, he began to train them in detail to help in the operation of the estate.
아들들이 자라감에 따라, 그는 그들이 자산을 운영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상세한 면까지 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They learned about all phases of the business, keeping records, running the stables, barns, and overseeing the work in the fields.
그들은 장부 정리, 마굿간, 창고 관리, 그리고 논밭일 관리 등, 비즈니스에 대한 모든 것을 배웠습니다.
He also trained their minds and hearts through music training, art, mathematics, the sciences and especially, animal psychology.
그는 또한 음악 훈련, 미술, 수학, 과학과 특히 동물 심리학 등을 통해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훈련하였습니다.
He gave his whole life to build up his estate, so that he could give it to his sons, who would also make it grow, and thus be a source of blessing for his descendants forever.
그는 자신의 인생을 다 바쳐서 재산을 불려 이를 그의 아들들에게 물려주고 그들이 이를 더 번성케함으로써 이것이 자손대대로 복의 근원이 되기를 원하였습니다.
Look at verse 12.
12절을 보십시오.
“The younger one said to his father, 'Father, give me my share of the estate.' So he divided his property between them.”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In spite of his father’s thorough and loving care, the younger son was unhappy.
아버지의 섬세한 사랑과 관심에도 불구하고, 둘째 아들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Work on the farm and all of his parents’ training programs made him feel trapped.
농장일과 부모님들의 모든 교육프로그램은 그에게 덫에 걸린 느낌을 갖게 했습니다.
He dreamed all the time about the big world out there, beyond the hill at the end of the road.
그는 언제나 저 길 끝의 언덕 너머에 있을 큰 세상에 대해 꿈꾸었습니다.
But what really made him unhappy was his position in the family.
그러나 정말로 그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가족내 서열이었습니다.
In Jesus’ time, the order of a son’s birth was very important.
예수님 당시에는 아들의 출생 순서가 매우 중요했습니다.
The first son inherited the largest share of the father’s possessions and was next in line to the father as the authority in the family.
장자는 아버지 재산의 대부분을 상속받았으며 아버지 다음으로 집안에서 권위가 있었습니다.
The younger son would inherit at most one-third of the estate and always be under his older brother’s authority.
작은 아들은 잘 해봐야 아버지 재산의 3분의 1을 상속받을 수 있었고 또 언제나 큰 아들의 권위 하에 있어야 했습니다.
The younger son didn’t see why his inheritance should be less, or why he should have to live forever under his bossy older brother.
둘째 아들은 왜 자신의 상속금이 더 적어야 하는지, 왜 자신이 평생을 으스대는 큰 아들 밑에서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He resented his father’s training and discipline, feeling that he was trained the most for the least reward.
그는 훈련은 훈련대로 받고도 똑같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자 아버지가 주시는 훈련과 연단을 원망하였습니다.
How could he be happy if he was always under authority, always having to live up to his father’s expectations?
항상 아버지의 기대에 맞추어 살아가며, 언제나 그 그늘 아래 있다면 그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All he could think about was how to be free to live life his way.
다만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하면 자기방식대로 자유롭게 살 수 있는가였습니다.
So the younger son went to the father and said, “Father, give me my share of the estate.”
그래서 작은 아들은 아버지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This was like saying “Father, I wish you were already dead!”
이는 “아버지, 당신이 벌써 죽었다면 좋겠어요.” 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In his desire for human freedom, the son didn’t care about anyone.
자신의 자유를 향한 욕망으로 인해 그는 다른 어느 누구에게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He didn’t care how his father had prayed for him or loved him.
그는 아버지가 얼마나 자기를 위해 기도하고 자기를 사랑하고 있는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The father was so hurt and torn inside.
아버지는 너무나 속이 상하고 심장이 찢어질 것 같았습니다.
Should he punish the son and force him to stay?
이 아들을 벌하고 강제로 남도록 해야 할까요?
Should he disown him and send him away forever, empty-handed?
족보에서 지우고 빈손으로 영원히 쫓아내야 할까요?
But see what the father did!
그러나 아버지가 무엇을 했는지 보십시오!
He decided to yield to the younger son’s demands and divided his estate between his sons. In this way, he gave both of his sons true freedom.
그는 작은 아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결심하고 아들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런식으로 그는 두 아들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었습니다.
As the Bible describes it, real freedom is ownership – taking full responsibility for how we use the blessings we have received.
성경에 따르면, 진정한 자유는 우리가 받은 축복을 어떻게 사용하든지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는 소유권입니다.
The father loved his sons and respected their desires.
아버지는 자기 아들들을 사랑했고 그들의 욕구를 존중했습니다.
But the younger son didn’t realize what the father had given him.
그러나 작은 아들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준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Look at verse 13.
13절을 보십시오.
“Not long after that, the younger son got together all he had, set off for a distant country and there squandered his wealth in wild living.”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The younger son didn’t wait long.
둘째 아들은 오래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He got together everything his father had given him.
그는 아버지가 주신 모든 것을 한데 모았습니다.
Soon enough, he was ready to go, and out the door he went.
얼마 지나지 않아 준비가 되자 그는 집을 나섰습니다.
Where should he go?
어디로 가야할까요?
He was tempted to go back and ask his dad.
그는 돌아가 아버지께 여쭈어 보고 싶었습니다.
Then he remembered. Ha!
그때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From now on, no one would tell him where to go or what to do.
이후로는 누구도 그에게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Ahhh!” he said. “Now this is freedom!”
“아!” 그는 말했습니다. “이제 자유다!”
He had seen the advertisements, “What happens in Vegas, stays in Vegas.”
그는 예전에 보았던 광고를 기억했습니다. “라스베가스에서 생긴 일은, 베가스에 남는다.”
So he set out to enjoy the world and not look back.
그래서 그는 세상을 즐기고자 떠났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He ate the best foods.
그는 최고의 음식을 먹었습니다.
He drank the best beer.
그는 최고의 맥주를 마셨습니다.
He enjoyed any woman he chose.
그는 어떤 여자든지 골라서 즐겼습니다.
He broke every rule and restriction he could.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규칙과 규제를 무너뜨렸습니다.
His motto was, “why not?”
그의 좌우명은 “왜 안돼?” 였습니다.
He made a lot of friends.
그는 많은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They enjoyed his huge parties.
그는 큰 파티를 즐겼습니다.
They admired his extreme behavior.
사람들은 그의 극단적인 행동에 감탄하였습니다.
They laughed when he ate goldfish live, drank whole bottles of whiskey in a single swallow or dated five woman at once.
사람들은 그가 금붕어를 산채로 삼켰을 때, 단숨에
“He’s crazy!” they said.
“미친 녀석!” 그들은 말했습니다.
There wasn’t anything he wasn’t willing to try.
그는 무엇이든지 기꺼이 시도했습니다.
He imagined that there wasn’t anything he couldn’t do.
그는 어느 것도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But after a while, things started to change.
그러나 얼마 후, 세상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The younger son had been so healthy under his father’s care.
아버지의 돌보심 아래 있을 때 작은 아들은 매우 건강했습니다.
But now, he began to get sick a lot.
그러나 이제 자주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Once he really hurt his back falling down the stairs, drunk.
한번은 술에 취해 계단에서 떨어져 심하게 등을 다쳤습니다.
Another time, this girl pretended that she loved him, laughing at all his jokes.
다른 한번은, 어떤 여자가 그의 농담에도 웃어주며 그를 사랑하는 척하였습니다.
Suddenly, she disappeared along with his wallet!
그러다 갑자기 지갑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And he became addicted to drinking, drugs and sex.
그는 술과 마약과 섹스의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He imagined he was in control.
그는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But he couldn’t stop drinking.
하지만 술을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He couldn’t stop going to prostitutes.
창녀에게 가는 것도 멈출 수 없었습니다.
He kept telling himself, “tomorrow I’ll stop.”
그는 늘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내일은 끊을거야.”
Finally, one day tomorrow came.
그러다 마침내 그 내일이 왔습니다.
Look at verse 14.
14절을 보십시오.
“After he had spent everything, there was a severe famine in that whole country, and he began to be in need.”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The world had lured him on.
세상은 그를 유혹했습니다.
Now, he was caught.
이제, 그는 사로잡혔습니다.
His health was poor.
그의 건강은 좋지 않았습니다.
He was broke.
그는 파산했습니다.
All of his friends had left him.
모든 친구들도 그를 떠났습니다.
And the economy was really bad, with many people out of work.
그리고 경제가 매우 악화되어,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었습니다.
The only jobs left were below minimum wage.
그나마 남은 직업들로는 생계유지도 힘들었습니다.
Still, he said to himself, “I can do this.”
하지만 그는 “나는 할 수 있어.” 라며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Look at verses 15 and 16.
15, 16절을 보십시오.
“So he went and hired himself out to a citizen of that country, who sent him to his fields to feed pigs. He longed to fill his stomach with the pods that the pigs were eating, but no one gave him anything.”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Pigs are despised by the Jews as dirty animals.
돼지는 유대인들이 혐오하는 부정한 짐승입니다.
Now, the younger son envied the pigs and tried to steal their food.
이제 둘째 아들은 돼지들을 부러워하며 그들의 음식을 빼앗아 먹기 위해 투쟁해야 했습니다.
But they were stronger than him.
그러나 돼지들이 그보다 더 강했습니다.
He had lost every last shred of human dignity.
그는 마지막 남은 인간의 존엄성 조차도 잃어버렸습니다.
He was humiliated and alone.
그는 창피스럽고 외로웠습니다.
This is the fate that awaits everyone who rejects the Father God’s love in pursuit of sinful human freedom.
이것이 바로 죄악된 인간의 자유를 좇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배반한 모든 자들에게 주어지는 운명입니다.
At last, the son realized what he had done.
마침내, 그 아들은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깨달았습니다.
Look at verses 17-19.
17-19절을 보십시오.
“When he came to his senses, he said, 'How many of my father's hired men have food to spare, and here I am starving to death! I will set out and go back to my father and say to him: Father, I have sinned against heaven and against you. I am no longer worthy to be called your son; make me like one of your hired men.'”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Humiliation and hunger turned his thoughts to his father’s house.
수치와 배고픔은 그로 하여금 아버지집이 생각나도록 하였습니다.
In his father’s house, there was food to spare.
아버지 집에는 음식이 넘쳐났습니다.
Even the hired men had plenty.
일꾼들에게 조차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And he had been a son, enjoying the very best from his father’s table.
그는 아버지의 식탁에서 최고의 것만을 즐기던 아들이었습니다.
He realized how much he was blessed to be his father’s son.
그는 아버지의 아들로서 자신이 얼마나 축복받았었던가 깨달았습니다.
He remembered how his father gave him his share of the estate with tears.
그는 아버지께서 눈물을 흘리며 재산을 나누어 주시던 것을 기억했습니다.
He had wronged not only his father, but all of heaven.
그는 아버지에게만 아니라 하늘에게도 잘못했습니다.
How could he make things right?
그가 어떻게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요?
The only way to do that was to go back to his father, confess his sins and ask to be restored, if not as a son, at least as a hired hand.
그 유일한 길은 아버지께 돌아가 죄를 고하고, 아들이 아니면, 적어도 품군으로라도 받아주시도록 간청하는 것이었습니다.
Look at verse 20a.
20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So he got up and went to his father.”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Repentance requires a decision to get up out of our despair and make things right.
회개는 절망 가운데서 일어나 잘못을 되돌리겠다는 결단을 필요로 합니다.
III. The father runs to his son (20b-32)
III. 아들에게로 달려간 아버지 (20b-32)
As the prodigal son entered his home country and neared his father’s lands, he began to be afraid.
탕자가 조국에 돌아와 아버지 집에 다다르자, 걱정이 찾아왔습니다.
What would his father and brother do when he came home?
그가 집에 돌아갈 때 아버지와 형이 어떻게 나올까?
Look at verse 20b.
20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But while he was still a long way off, his father saw him and was filled with compassion for him; he ran to his son, threw his arms around him and kissed him.”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But while he was still a long way off, his father saw him.”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Even after such a long time, the father was still waiting, hoping against hope that his son would return.
그토록 긴 세월이 지나도록, 아버지는 아직도 자식이 돌아올 것이란 희망 아닌 희망속에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His wife and oldest son told him to give up.
그의 아내와 큰 아들은 포기하라고 하였습니다.
But he wouldn’t.
그러나 그는 그렇게 못했습니다.
He scanned the horizon, looking for any sign.
그는 일말의 기미라도 찾고자 지평선을 살피었습니다.
One day, he saw a man of his son’s height coming up along the road at the top of the hill.
어느날, 그는 길 저편 언덕 위에서 아들의 키만한 사람이 걸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He ran to him.
그는 그에게 달려갔습니다.
It was a refugee fleeing from the famine in the distant country.
그것은 먼 나라에서 가뭄을 피해 온 난민이었습니다.
“Yeah, I saw your son,” he told the father.
“예, 저는 당신의 아들을 보았어요,” 그는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Last I heard, he lost everything and was dying from trichinosis. Sorry.”
“마지막으로 듣기로는 모든 것을 잃고 돼지를 통해 감염되는 선모충병에 걸려 죽어간다고 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The father was crushed.
아버지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Still he kept looking each day.
그래도 매일마다 계속해서 내다 보았습니다.
It was his love that sustained him.
그를 붙들어 주었던 것은 그의 사랑이었습니다.
Love never gives up hope.
사랑은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Then, one day, this day, there was his son, struggling to stay on his feet, dressed in rags.
그리고 어느날, 바로 이날, 누더기 옷에 두발로 서있기 조차 힘들어하는 자신의 아들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He knew it.
그는 알았습니다.
It was his son.
자신의 아들인 것을.
“…and was filled with compassion for him.”
“측은히 여겨”
The father did not judge his son for the life he had lived in the past.
그는 아들의 과거의 삶을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He felt sorry his son had suffered so much and learned his lesson so painfully.
그는 아들이 고생을 많이 하고 매우 고통스럽게 교훈을 얻은 것으로 인해 마음이 아팠습니다.
He wished it didn’t have to be that way.
그는 일이 이렇게 되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He wished to take all that suffering upon himself.
자신이 그 모든 고통을 겪기를 바랐습니다.
“He ran to his son, ..”
“아들에게 달려가”
It is so undignified for a middle-eastern man to run.
달리기는 중동의 남자들에게는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동입니다.
But the father chose to humiliate himself rather than see his son humiliated any more.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의 창피한 모습을 더이상 보느니 차라리 자신이 창피를 당하는 것을 택했습니다..
“…threw his arms around him,…”
“목을 안고”
The son stank like a pig and his face was smeared with something brown.
아들은 돼지와 같이 악취가 코를 찌르고 그의 얼굴은 똥색으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But the father threw his arms around him, shouting and crying for joy.
그러나 아버지는 기쁨으로 울부짖으며 그의 목을 끌어 안았습니다.
He embraced him tightly, erasing all the distance the boy had put between himself and his father.
그는 아들이 아버지와 그 사이에 만들어 놓았던 모든 간격을 없애고자 그를 꼭 끌어안았습니다.
“…and kissed him.”
“입을 맞추니”
The father kissed his son on the face again and again.
아버지는 계속해서 그 아들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In this way, the father took all of the son’s shame and disgrace upon himself.
이런식으로 아버지는 아들의 모든 수치와 불명예를 자신이 감당했습니다.
In this way, he covered over all of his son’s sins with love.
이런식으로 그는 아들의 모든 죄를 사랑으로 감쌌습니다.
The prodigal son remembered what he had come to do.
탕자는 자신이 무엇을 하러 왔는가 기억했습니다.
Look at verse 21.
21절을 보십시오.
“The son said to him, ‘Father, I have sinned against heaven and against you. I am no longer worthy to be called your son.’”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담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He couldn’t finish his rehearsed speech.
그는 준비했던 말들을 끝낼 수가 없었습니다.
He realized the debt he owed his dad was too big ever to pay off.
그는 아버지에게 진 빚이 너무나 커서 결코 갚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Look at verse 22.
22절을 보십시오.
“But the father said to his servants, 'Quick! Bring the best robe and put it on him. Put a ring on his finger and sandals on his feet.”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The father had already forgiven his son.
아버지는 벌써 아들을 용서했습니다.
However, others were ready to condemn him.
그러나 다른 이들은 그를 정죄하려고 하였습니다.
So he made the restoration of his son official.
그래서 그는 공식적으로 아들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He called for his servants to get the best robe and put it on the prodigal son.
그는 종들을 불러서 제일 좋은 옷을 가져다 탕자에게 입히도록 하였습니다.
He looked ridiculous wearing such a beautiful robe.
그가 그런 아름다운 옷을 입으니 우스워 보였습니다.
But it testified that in spite of his wasteful life, he was still an heir.
그러나 이는 그의 방탕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직도 상속자임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The father also called for the servants to put a ring on his finger and sandals on his feet.
아버지는 또 종들을 불러서 아들의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그 발에 신을 신기도록 하였습니다.
Honestly, who could respect the son now?
솔직히 말해서, 이제 누가 그 아들을 존경할 수 있습니까?
The ring and sandals signified, however, that he had all the authority as master in his father’s house.
그러나 반지와 신은 그가 아버지 집에서 주인으로서의 모든 권위를 지니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The prodigal son could not make things right, no matter how elaborate his repentance.
그가 아무리 철저히 회개한다고 해도, 탕자는 지난 일들을 바로잡을 수 없었습니다.
But the father completely restored his son as master and heir.
그러나 아버지는 그 아들을 상속자요 주인으로 완전히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Look at verses 23-24.
23-24절을 보십시오.
“Bring the fattened calf and kill it. Let's have a feast and celebrate. For this son of mine was dead and is alive again; he was lost and is found.' So they began to celebrate.”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In these verses we can learn the father’s heart.
여기서 우리는 이 아버지의 마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The fattened calf was the very best food the father had in his store.
살진 송아지는 아버지 집에서 최고의 음식이었습니다.
It was being saved for a special occasion, like a wedding or the birth of a grandson.
이는 결혼 잔치나 손자를 보았을 때와 같이 특별한 경우에만 쓰려고 아껴두었던 것입니다.
But when this prodigal son who had wasted everything returned, he did not judge his son for his sins.
그러나 재산을 탕진한 탕자가 돌아왔을 때, 그는 아들의 죄를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He killed the fattened calf in order to rejoice that he had come home alive.
그는 아들이 살아서 돌아온 것이 너무 기뻐 살진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He ordered there be music and dancing.
그는 음악과 춤도 주문하였습니다.
He wanted everyone to share in his happiness.
그는 모두가 그의 행복을 나누기를 원했습니다.
He wanted everyone to know that he was happiest of all to have his prodigal son back safe and sound.
그는 탕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돌아와 너무나 기쁘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기를 원했습니다.
In the same way, our Father God does not condemn the lost for their lives of sin.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잃은 자들의 죄악된 삶을 정죄치 않으십니다.
He seeks them out and waits for them to return to him safe and sound!
그들을 찾으시며 그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And as each lost sinner repents and comes back, God will rejoice and celebrate, without any shame or regret.
그리고 잃어버린 죄인 하나 하나가 회개하고 돌아올 때마다, 수치심이나 후회없이 잔치를 열고 기뻐하십니다.
Not only so, he completely restores each one as his beloved son or daughter.
그뿐아니라, 한사람 한사람을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과 딸로서 온전히 회복시켜 주십니다.
No matter how far we have wandered away in sin, God is ready to cover over our sins and exalt us as his beloved children!
우리가 죄로 인해 얼마나 방황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덮어주시고 자신의 사랑하는 자녀들로 높여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십니다.
No matter how ashamed we may feel, God wants the whole world to know how happy he is when we return and how much he loves us.
우리가 얼마나 수치스러워하든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돌아올 때 당신이 얼마나 행복하시며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는가를 온 세상이 알기를 원하십니다.
God loves the world!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God loves each and every one of us.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모두와 한분 한분을 사랑하십니다.
Lord, thank you for your father’s love for all people of the world!
주여, 세상 만민을 향한 당신의 아버지의 사랑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Help us overcome our sinful pride and come to you just as we are!
저희가 죄악된 교만을 회개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당신께 나아오도록 도와 주십시오.
The older son was out in the field when the younger brother came back.
작은 아들이 돌아왔을 때 큰 아들은 밭에 있었습니다.
When he came near the house by chance, he heard music and dancing, especially his father’s singing out of tune.
우연히 집 근처에 왔을 때, 그는 음악과 춤소리를 들었는데, 특히 아버지의 낯익은 노래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He called a servant over who told him that his brother had come and his father had killed the fattened calf for him.
종 한 명에게 물으니 동생이 돌아와 아버지께서 그를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으신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What? He had been keeping his eye on that calf for nearly a year!
뭐라고? 그는 거의 일년동안이나 그 송아지를 점찍어 놓았습니다.
The older brother was furious and refused to go in.
큰 아들은 심하게 화를 내며 집에 들어가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The father understood and went out to plead with him, but the older son was too bitter to be comforted.
아버지는 이해하시고 밖에 나가서 간청했지만, 큰 아들은 화가 누그러들지 않았습니다.
When he compared himself to his younger brother, he looked like a saint.
자신과 동생을 비교해보니, 자신이 마치 성자처럼 보였습니다.
At the same time, he looked like a fool for having served his father so faithfully and obediently.
동시에, 아버지를 그렇게 신실하고 순종적으로 모신 자신이 바보처럼 보였습니다.
What was his reward?
그의 상급이 무엇이었습니까?
Look at verse 30.
30절을 보십시오.
“But when this son of yours who has squandered your property with prostitutes comes home, you kill the fattened calf for him!”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The older son called his brother, “your son” and spoke of his brother’s inheritance as “your property.”
큰 아들은 그 동생을, “당신의 아들” 이라 불렀고 동생의 유산을 “당신의 재산” 이라고 말했습니다.
The older brother condemned not only his younger brother, but also his generous father for welcoming him home.
큰 아들은 작은 아들뿐 아니라 그를 환영해 준 관대한 아버지조차 정죄하였습니다.
The father said to him, “My son, you are always with me and everything I have is yours.”
아버지는 그에게 말합니다. “아들아,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The older son had failed to recognize his true reward.
큰 아들은 진정한 상급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He was together with his father and could share everything with him.
그는 아버지와 항상 함께 하면서 그와 함께 모든 것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Verse 32 says, “But we had to celebrate and be glad, for this brother of yours was dead and is alive again; he was lost and is found.”
32절을 보십시오.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The father wanted his older son to be happy, too.
아버지는 큰 아들 또한 행복하기를 원했습니다.
But he could not be happy unless he accepted his younger brother back from his heart.
그러나 그는 돌아 온 동생을 마음으로부터 영접할 때까지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The father’s encouragement to his older son was Jesus’ invitation to the self-righteous Pharisees, and to self-righteous Christians of today.
아버지가 큰 아들을 독려하듯이 예수님께서는 독선적인 바리새인들과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을 초청하십니다.
Don’t be sorry that God loves his prodigal children!
하나님께서 탕자들을 사랑하신다고 기분 나빠하지 마십시오.
He loves you, too!
하나님은 당신도 사랑하십니다!
Rejoice to see all the Father’s children back safe and sound!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돌아오는 것으로 인해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Rejoice, and all of heaven will rejoice with you!
기뻐하세요, 그러면 하늘도 당신과 함께 즐거워할 것입니다.
As the youngest son in my family, I loved my father and studied physics to make him proud.
막내였던 저는 아버지를 사랑했고 물리학자가 되어 그가 자랑스러워하는 아들이 되고 싶었습니다.
But when I was 17, I decided that life had to be more than just pleasing my dad.
그러나 17세때, 저는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In College, I worked hard to change my image from being a physics nerd to a romantic poet.
대학 시절에 저는 물리학만 아는 바보에서 낭만적인 시인같이 보이고자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I drank, used drugs and pursued many girls.
저는 술마시고 마약을 하며 많은 여자들을 꼬셨습니다.
I became a national prodigal son.
저는 전국적인 탕자가 되었습니다.
But part of me hated what I was becoming.
그러나 저의 일부에서는 이런 저를 미워했습니다.
Fear and condemnation filled my heart.
두려움과 정죄의식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Finally I dropped out of graduate study and came home to teach at my old high school.
마침내 대학원을 자퇴하고 집에 돌아와 모교에서 고등학교 선생이 되었습니다.
I felt trapped by immoral desires.
저는 정욕에 사로잡힌 느낌이었습니다.
So I accepted the invitation to study the Bible one to one.
그래서 저는 일대일 성경공부 초청에 응했습니다.
Bible study was God’s way of showing me what the Heavenly Father’s household was like.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어떤 곳인가를 보여주셨습니다.
Through God’s word, God wanted me to know him as my Heavenly Father by faith.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제가 믿음으로 그분을 하나님 아버지로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However, in the spring of 1988 my dad killed himself.
그러나 1988년 봄 제 아버지가 자살을 하였습니다.
I became sorrowful.
저는 너무나 슬펐습니다.
I went to
그해 여름 저는 단기 선교사로 모스크바에 갔습니다.
But I was too weak.
그러나 저는 너무나 약했습니다.
Instead of serving God’s mission, I was caught by a Russian woman desperately looking for a way to go to the
하나님의 사명은 섬기지도 못하고 도리어 애타게 미국으로 가는 길을 찾던 한 러시아 여자에게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I had become an international prodigal son.
저는 국제적인 탕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When I returned home, my church and family were in shock.
제가 집에 돌아왔을 때, 저의 교회와 가족들은 너무나 충격을 받았습니다.
I had restarted graduate study in Physics at UIC, but could hardly focus on classes.
저는 UIC에서 물리학 박사과정을 다시 시작했지만, 도저히 수업에 집중을 할 수 없었습니다.
I quickly went into debt.
저는 금새 빚더미에 올랐습니다.
I ate only sardines and crackers and slept in my office.
저는 통조림 정어리와 과자만 먹으면서 사무실에서 잤습니다.
One night, I couldn’t take it anymore.
어느날 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I fell down on my knees, weeping, and asked God for mercy.
저는 엎드려 울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습니다.
Strangely, in my prayer, Romans
이상하게도 기도 중에 로마서 8장 1절 말씀이 대낮같이 선명하게 들려왔습니다.
“Therefore, there is now no condemnation for those who are in Christ Jesus.”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더 이상 정죄함이 없나니.”
I had done wrong.
저는 수많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But Jesus had come not to condemn me.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저를 정죄하러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He came to defend me as his own child.
그는 저를 자신의 자녀로 변호해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He came to show the way to make things right.
그는 제게 올바른 길을 알려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I would submit to Jesus as my Lord and Savior, and let him work in my life according to his good purpose.
저는 나의 주님과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께 그분의 선하신 뜻대로 내 인생에서 역사하시도록 나 자신을 그분께 드리기로 작정했습니다.
Just as God promised, in Jesus my sin was forgiven and completely covered.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예수님 안에서 저의 죄는 완전히 용서받았습니다.
What is more, my life in God was restored beyond my wildest dreams.
더 나아가 하나님 안에서 저의 삶은 꿈에서 조차 상상치 못할 정도로 회복되었습니다.
He blessed me to marry sh. Jennifer Rabchuk, a beautiful woman of faith and heart, and gave us three lovely and active children.
하나님께서는 제가 믿음과 심정이 있는 아름다운 제니퍼 랍챡목자와 결혼하게 하시고 또 세명의 사랑스럽고 활기찬 자녀들도 축복으로 주셨습니다.
He helped me finish my Ph.D. program and become a full professor of Physics at
하나님께서는 제가 박사과정을 끝내고 서부 일리노이 대학에서 물리학 정 교수가 되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He trained me in love until I could become an international shepherd, bible teacher, disciple-maker and messenger for lost and lonely college students.
하나님께서는 또한 저를 훈련하셔서 잃어버리고 외로운 대학생들을 섬기는 국제적인 목자요 성경 선생이요, 제자 양성가요 말씀 강사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It is ridiculous that such a washed-up sinner should be blessed so much.
그처럼 소망없는 죄인을 이처럼 축복해 주시다니요.
It is the amazing love of my Father God!
이것은 제 아버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입니다.
Let’s read verse 20b.
20절 하반절을 읽어보겠습니다.
“But while he was still a long way off, his father saw him and was filled with compassion for him; he ran to his son, threw his arms around him and kissed him.”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The Heavenly Father is still waiting for each one of us to come to him as we are.
하늘의 아버지께서는 저희 각자가 있는 모습 그대로 당신께 나아오기를 지금도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When we come to him by faith, he welcomes us and restores each of us as his precious child!
우리가 그분께 믿음으로 나아갈 때, 그분께서는 우리를 환영하시며 당신의 귀한 자녀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Let’s enjoy sharing God’s heavenly feast with all of his prodigal sons and daughters!
우리 모두 하나님의 천국잔치를 탕자 탕녀들과 함께 나누는 기쁨을 누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