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1일 팔정도법회에서 하신 법문입니다.
안녕하세요. 월드컵도 며칠 있으면 끝나지요. 한국이 16강까지만 진출하고 더 이상 이기지 못해, 요즘은 별로 관심이 없죠? ‘저 스님은 법문할 때마다 월드컵 얘기만 한다’고 하실 것 같은데,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드리죠.
독일에 점쟁이 문어가 있답니다. 독일이 4강에 올라 3,4위 결정전에 나가게 되는 것까지 연속으로 쪽집게처럼 맞춘 점쟁이 문어랍니다. 파울이라는 이름의 이 문어 얘기가 인터넷을 달구고 있죠. 문어 점쟁이가 정말 능력이 있어서 이긴 거냐 아니냐 그런 이야기가 돌고 있습니다.
점(占)의 플라시보 효과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플라시보'란 심리적 약효입니다. 실제로는 약효가 없는 것을 약이라고 믿고 먹으면 병이 낫는 경우 같은 것이 그 예입니다. 문어가 진짜 맞추는 능력이 있든 아니든, 어쨌든 문어 점쟁이 말을 믿고 경기에 임하면 이익이 있습니다. 그래서 초미의 관심사가 되는 거죠. 심지어 문어가 어느 나라의 상자 속으로 들어가 홍합을 먹느냐 이것을 생중계까지 하더군요.
우리 삶에서도 이처럼 어떤 이익을 추구하며 사느냐를 생각해봅시다. '이렇게 하면 이익이 있을 거다'라고 판단하고 움직이는데 본질적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그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 귀중한 일요일에 선원에 와서 법회에 참여하고 법우들과 친교를 나누고... 그것도 여러분에게 이익이 있으니 그러겠지요? 만약 아니라면, 비도 오고 날도 더운데 집에서 '방콕'하자 하겠지요. 이익이 있기에 법회에 오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옛 선사님이 이것에 대해 시를 지은 게 있어, 여기서 읽어보겠습니다. 서산대사 휴정 스님의 제자인 청매 스님의 '십무익송(十無益頌)'입니다. 이익 없는 것 열 가지를 열거하였습니다. 제가 이 '십무익송'을 읽고 그간 공부한 것이 명쾌하게 정리된 기억이 있어서 이야기해드립니다.
1. 심불반조 간경무익 (心不返照 看經無益)
경을 읽을 때 깊이 반조함 없이 읽기만 하는 것은 남의 소를 세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은행에서 남의 돈만 세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경을 읽으며 계합될 수 있도록 비추어보아야 합니다.
지난 5일에 니까야 합송회 입재식을 했습니다. 상윳따 니까야를 읽기 시작하는 결사였습니다. 고불문을 읽고 일편단심으로 독송하겠다는 원을 세웠습니다. 경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겨서 체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오래 경을 읽어도 입으로만 읽는 것입니다. 진짜 경전은 마음의 경전입니다. 이런 선구(禪句)도 있지요.
아유일권경(我有一券經 - 나에게 한권의 경이 있으나)
불인지묵성(不因紙墨成 - 종이와 먹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개무일자(展開無一字 - 펼치면 한 글자도 없으나)
상방대광명(常放大光明 - 항상 큰 광명을 놓는다.)
광명을 뿜어내는 본성 자리에 경 말씀을 대입해 그 자리가 빛나도록 하는 것이 참된 간경 방법이라고 청매 선사는 이야기하십니다.
2. 불신정법 고행무익 (不信正法 苦行無益)
부처님 법을 믿지 않으면 고행을 해도 이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법을 확실히 믿고 해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불교 수행을 한다면서 고행을 합니다. 중도를 떠난 극단의 행, 양변에 치우친 행은 필연적으로 괴로움을 낳습니다. 중도, 연기의 정법에 대한 바른 견해를 세우고 확신이 생겨야 고통을 재생산하는 편견에 머무르지 않게 됩니다.
3. 경인망과 구도무익 (輕因望果 求道無益)
원인을 가볍게 여기고 결과를 바라면 도를 구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연기법 실천이 없으면 도를 구하는 게 아닙니다. 이 인식이 한국 불자들에게 공유되어야 합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정법이 뭐냐고 묻더라도 공통적인 답이 나와야 하는데, 지금 우리 불자들은 엉뚱한 답이 나오고 천차만별입니다. 이에는 스님들의 책임이 큽니다. 핵심 가르침을 전하려 노력을 안 했기에 이러한 것입니다.
불교를 믿어도 이익이 없으면, 사람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종교를 바꿉니다. 평생을 믿어온 말기암 환자가 임종시 기독교에서 와서 정성으로 기도해주면 마음을 바꿔버립니다. 그때 개종하면 거기에 따라 다음 생이 결정됩니다. 이런 일이 생기는 근본 이유는 정법에 대한 인식과 교육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에 건실한 청년이 카페에 글을 올려, 한국 불교의 개선점에 대해 자세히 건의를 했습니다. 21세기 정통 종교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불교가 개선해야 할 점들을 50~60페이지 써서 올려놨습니다. 어제 저녁에 선원으로 저를 찾아와서 이야기 나누었는데, 거의 다 맞는 말이었습니다. 젊은이의 열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글이고 생각입니다. 불교에 젊은이 불자층(20~30대)이 거의 없습니다. 이 청년의 주위 친구들도 불교에 관심조차 없고, 불교 얘기를 하면 아주 생소하게 느낀다고 합니다. 20대 후반이니 이제 결혼도 해야 하는데 불자인 배우자감을 고르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그 글을 써서 총무원 사이트에도 올려보고 했으나 반응이 없었답니다. 이번에 그래서 상도선원 카페를 찾아와서 올렸습니다. 선원에 와보고 현대식 수행처라고 생각되어, 여기다 싶어서 오셨다고 합니다.
불자들의 수행 지침이 중구난방이고 천차만별입니다. 법문 때마다, 연기 중도 실상을 체득하기 위해 삶 속에서 팔정도를 행하는 것이 정법이라고 강조합니다. 수행법으로는 간화선이 연기 중도 실상을 바로 드러낼 수 있는 탁월한 수행법이어서 장려하고 있습니다.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봅니다. 분별심이 사라진 무아의 자리에서 모든 존재 현상을 무념, 무심으로 볼 수 있는 힘이 증장됩니다. 무념은 분별심이 붙지 않은 생각입니다. 분별심은 염려, 불안, 우비고뇌(憂悲苦惱), 이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에 생각을 붙여 끊임없이 댓글을 달고 살게 됩니다. 그러니 무념이 안 되고, 중도 자성이 드러나지 않아 늘 괴로움 속에 사는 것입니다.
분별망상이 사라진 상태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면 무심의 자리에서 행복하고 안락합니다. 무념, 무심이라 하여 불교가 착 가라앉고 수동적이고 비관적일까요? 아닙니다. 완전히 반대입니다. 무념, 무심이 되면 훨씬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삶이 펼쳐집니다. 왜? 본성 중도 자성 자리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 삶을 지향하며 법회도 듣고 수행도 하는 것입니다.
4. 심비신실 교언무익 (心非信實 巧言無益)
믿음과 실천이 없으면 말을 잘 해도 이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80~90 년대 대불련(대학생 불교 연합회) 출신 젊은 불자들의 경우, 행(行)으로 불교를 배우지 않아 공경심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경우는 학식도 많고 잘 알려진 불자인데 스님 앞에 찾아와 삼배도 하지 않고 바로 마주앉아 대화에 들어가기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분들은 불교에 대한 애정은 있는데 한 쪽이 비어 있습니다. 실천이 중요한, 날개 없는 새와 같습니다.
들은 대로 실천하는 것이 제 삶의 모토입니다. 아무리 후배의 말이라도 맞다고 생각되면 실천하면 삶에 이익이 됩니다.
5. 부달성공 좌선무익 (不達性空 坐禪無益)
본래 공함을 요달(了達)하지 못하면 좌선을 해도 이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본성의 공(空)함을 체득하는 것이 연기 중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간화선은 의심이 목에 걸려 꽉 차야 한다고 하죠. 묵조선은 앉아서 중도 자성자리를 묵묵히 드러내는 것으로, 화두가 없습니다.
오는 8월 12~13일에 동국대 중강당에서 세계 간화선 학술대회가 열립니다. 진제, 고우, 혜국, 수불 스님이 양일에 나누어 기조 법문을 하시고, 저도 지금 여기에 발표할 논문을 쓰다가 내려와 법문을 하고 있습니다. '간화삼요(看話三要)' 즉 의심, 분심, 신심 이 세 가지와 부처님 초기 가르침의 37조도품(助道品)에 나오는 5근(5력) - 신, 혜, 정진, 선정, 그리고 염(念, 사띠) - 이것이 어떠한 상관 관계가 있는지를 전에 쓴 논문 내용을 다시 고쳐서 발표하려고 합니다.
“스님은 왜 맨날 집착을 떼라는 법문만 하세요? 속인인데 집착을 해야지, 집착이 없으면 어떻게 돈 벌고 세상을 사나요?” 하고 물으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근본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선 먹기에는 곶감이 달고 사탕이 맛있지만, 자꾸 먹고 나면 갈증이 나고 당뇨병에 걸립니다. 진리는 아무리 먹어도 병이 나지 않고 일시적이 아닌 지고한 행복을 줍니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십무익송’의 나머지 다섯 가지는 다음 법회 때 이어서 이야기해드리죠. 연속극도 재미있을 때 끝나고 다음 회에 하지 않습니까? (웃음)
그리고 자애명상에 들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