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양 여운형 어록-나는 혼자요, 저놈들은 방대한 무력을 틀어쥔대적(大賊: 큰 도둑)이니 힘으로는 대비가 안 되지.그러나 생각해보면 나는 저놈들에게 빚진 것도죄진 것도 없는 정당한 사람이요저 놈들은 조선에 대죄를 지은 강도들 이다. 나는 정의요 저놈들은 부정의(不正義)이니내가 저놈들을 두려워할 까닭이 없었지.세상에 정의와 진리만큼 강한 무기는 없는 거야."조선독립운동은 조선인의 일시적 감정폭발에 의하여 시작된 것이 아니라,이것은 오로지 조선의 항구적 자유와 발전을 위해서이며,나아가서는 세계의 영원한 평화를 위해서이다.”"한국의 독립은 세계의 대세요 신의 뜻이요 한민족의 각성이다.어느 집 새벽닭이 울면 이웃닭이 따라 우는 것은닭하나하나가 울 때를 기다렸다가 때가 되어서 우는 것이오.남이 운다고 우는 것이 아니다.때가 와서 생존권이 양심으로 발작(發作)된 것이 한국의 독립운동이요.결코 민족자결주의에 도취한 것이 아니다."왕년에 필리핀에 여행할 때 여객선 항해실에 들어가서나침반을 자세히 구경한 일이 있소.파도가 심한 밤이었는데 나침반을 보니북쪽을 가리키고 있어야 할 바늘이 쉴새없이 움직이더란 말이오.그때 내가 크게 깨달은 것이 하나 있소.정작 움직인 것은 나침반이 아니라 파도에 흔들리는 배였소.배가 전후 좌우로 움직이니까 북쪽을 고수하기 위해 나침반이 쉴새없이 움직이더군.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나더러 왜 변덕이 죽 끓듯 하는가 하고손가락질하는 모양이나, 만일 배가 요동하는데 나침반이 계속한곳에 멈춰 있다면 그 바늘은 어디를 가리키는지 알수 없게 되고 마오.지금 파도처럼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오히려 나는 내 노선을 일관되게고수하기 위해 계속 움직이고 있는 것이오.바로 이러한 이치로 내가 좌우합작을 지지하는 것이오.""민족적 자존심, 독립심이 강한 우리 조선 인민은 나라가 병합됨을 통분 하고그몸이 망국의 백성이 된 것을 비탄하고 은인자중하여 10년,이번에 거국일치하여 민족적 독립운동을 개시하기에 이르렀다.이 자존심, 독립심이 인격의 요소이며, 전화의 근본이다.지금 일본은 무력으로써 우리들의 자존심, 독립심, 민족적 독립운동을 전압하려 하고 있으나 과연 무력이 그 정신마저 병합하고 이것을 전압하고, 멸망시킬 수가 있겠는가.""피를 흘리면서도 싸우고 다운되어도 다시 일어나 싸우는 권투정신은 우리 청년들이 의당 본받아야 할 훌륭한 정신이다. 남성답게 씩씩하게 싸우라, 비겁하지 않고 정정당당히 스포츠맨쉽으로 싸우라. 나는 청년은 누구를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 무릇 청년은 정의를 위해서는 목숨도 아끼지 않는 불가슴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젖은 사람은 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네. 내 뜻대로 살다가 잡혀죽을지언정 시골에 은신하고 싶은 생각은 없네.""절망은 마음의 자살이라고 하였네. 밤이 지새면 새날이 밝는다는 거야. 엄연한 진리가 아닌가.너도나도 작은 힘이나마 합쳐나가면 새날은 앞당겨질 거네."정의를 동반하지 않은 힘은 횡포일세.자네도 한때는 독립을 부르짖 으며 다니더니 어느새 일제의 횡포앞에 무릎을 꿇었나,생계를 위해 일본 기관에 복무하더라도 조선 사람 정신이야 버리지 말아야지.""원래 조선은 일본의 침략이 없으면 하등 위협이 없다.설혹 어떤 불행이 있다손 치더라도 국가의 실력은 족히 외타(外他)의 보호를 의뢰치 않고 자립하여 발전할 것이다.열대의 초목을 한 대에 옮겨 유리창 수증기 속에서억지로 그 생명을 유지한다고 하자.그것은 벌써 생명의 가치와 의미를 잃은 것이다.자연 공기 속에서 우로(雨露)의 혜택을 받을 기회를다시 얻을수 없으니 차라리 한풍냉설 속에 십사일생의 곤란을 받아가며 사는 것이 타인의 보호를 받아 자기 생존의 의의를 잃고 구차하게 기생적 생활을 하는 데 비하여 어느 것이 즐겁겠는가?""그대도 글을 읽는 사람이면 삼군지수(三軍之師)는 가탈(可奪)이언만, 필부지지(匹夫之志)는 불가탈(不可奪)이라는 말(삼군의 장수는 빼앗을 수 있어도 하찮은 한 지아비의 뜻은 빼앗을 수 없다)의 진의를 알것 이다. 2천만명을 일시에 다 죽일 수도 있고 여운형의 목을 일순에 벨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2천만명의 혼까지를 죽일 수는 없을 것이고 여훈형의 마음까지를 벨수은 더욱 없을 것이다.하물며 여운형이 지닌 굳은 조국애의 일편단심과 독립정신까지 벨수야 있겠는가?"(1919년, 11월 일본 동경에서, 회유하는'다나까'에게) " 범은 산을 두려워하지 않고 물고기는 깊은 물을 무서워하지 않아.머리를 짓눌리느니 차라리 다리를 꺽이는 편이 낫지."" 나는 이미 늙었다. 그러니 나는 너희들에게 부탁한다. 이미 썩은 기둥을 너희들의 손으로 뽑아 버리고 조선의 소나무를 정성껏 다듬어 청년들이 바라는 새 조선의 집을 지어라. 모든 영예, 모든 직위가 청년들의 것이니 내 한 줌 거름이 되어 조선의 소나무를 살찌운들 무슨 한이 있으랴." "나는 부자의 향수냄새보다는 노동자의 땀냄새를 더 좋아한다. '"만일 자기의 주장만을 고잡하여 독선배타적으로 임한다면 민족통일은 절대로 불가능하며이 기회를 놓치면 우리 역사위에 천추의 한을 남기는 일이 된다.""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평하든지 거기에 대해 기뻐하거나 노여워할 필요가 없다. 내가 정당한 사람이면 사람들이 나를 악평해도 내가 정당할 것이요. 내가 참으로 정당치 못한 사람이면 사람들이 나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찬양할지라도 사실은 내가 훌륭한 사람이아닌 것이다. 내 사람 됨됨이에 대해 참으로 알고자 한다면 나를 평하는 그 사람의 사람됨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라.자신의 정당성 여부가 문제이지 참새떼들의 입방아는그리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라네.""조선 사람을 죽일 수는 있지만 조선 민족은 없애지는 못한다. 조선 인민은 친일주구 몇놈 때문에 일시적 치욕을 당하고 있으나 우리 인민은 영웅들을 무수히 낳고 우리 힘으로 치욕을 씻게 될 것이다.이것은 진리다."
첫댓글 사상때문에 독립유공자가 인정 못받는 일이 없어야 될텐데....
....
그렇습니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실리주의적 합의를 하려던 분이지요.
묵념...
박헌영의 비타협적이고 투쟁적인 노선은 조선공산당 간부파중 중앙당의 일부의 노선 이었지 전국적 조선공산당 조직의 간부들이 지향한 노선은 결코 아니었다. 몽양 여운영 선생의 사상 역시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박헌영은 조선공산당 초기 부터 인지도가 높았던 몽양 여운영 선생과 조봉암 선생 등과도 분란을 일
으키고 이분들과 결별한뒤, 조선공산당이 미군에 대하여 도전하게 하려는 의도로 강경 일변도의 노선을 추구 하였던 것이다. 이는 바로 미 군정의 의도에 따른 것이었고, 10,1 인민대 항쟁은 박헌영의 이러한 의도와는 별도로 철도 노동자들에 의하여 시작되었고, 경북도당에서 노동자와 농민의 편에서서 결정한 집회로 시
작된 것이다. 2개월 이상의 기간 동안 남한 민중이 270만 명정도가 참여 하였고, 북조선의 수십군데 에서도 지지 집회를 하였다. 미군정의 엄격한 언론 통제에도 불구하고 AP 통신의 기자를 통하여 전세계에 알려진 그러나 우리에게는 폭동으로 축소 왜곡된 대 항쟁 이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퍼갑니다..
이 분이 비명으로 돌아가시지만 않으셨다면 역사의 물줄기는 바뀌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나라를 걱정하고 계실것입니다 고이 잠드소서?
공산당도 좌파도 아니라 그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며 민족주의자였던 분입니다. 더이상 이념으로 여운형선생을 매도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이 글을 보다 많은 분들께 알리기 위하여 이곳으로 모셔 갑니다! http://blog.daum.net/hblee9362/11302675
이 글을 보다 많은 국민들께 알리기 위하여 이곳으로도 모셔 갑니다! http://blog.korea.kr/app/log/hblee9362/40604063;jsessionid=4GqJKQnXYvGdQJChSkLrLtLXJVHl7WGdCqD0plclyty2LrjL6y7V!-368221838
첫댓글 사상때문에 독립유공자가 인정 못받는 일이 없어야 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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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독립을 위해 실리주의적 합의를 하려던 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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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의 비타협적이고 투쟁적인 노선은 조선공산당 간부파중 중앙당의 일부의 노선 이었지 전국적 조선공산당 조직의 간부들이 지향한 노선은 결코 아니었다. 몽양 여운영 선생의 사상 역시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박헌영은 조선공산당 초기 부터 인지도가 높았던 몽양 여운영 선생과 조봉암 선생 등과도 분란을 일
으키고 이분들과 결별한뒤, 조선공산당이 미군에 대하여 도전하게 하려는 의도로 강경 일변도의 노선을 추구 하였던 것이다. 이는 바로 미 군정의 의도에 따른 것이었고, 10,1 인민대 항쟁은 박헌영의 이러한 의도와는 별도로 철도 노동자들에 의하여 시작되었고, 경북도당에서 노동자와 농민의 편에서서 결정한 집회로 시
작된 것이다. 2개월 이상의 기간 동안 남한 민중이 270만 명정도가 참여 하였고, 북조선의 수십군데 에서도 지지 집회를 하였다. 미군정의 엄격한 언론 통제에도 불구하고 AP 통신의 기자를 통하여 전세계에 알려진 그러나 우리에게는 폭동으로 축소 왜곡된 대 항쟁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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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이 비명으로 돌아가시지만 않으셨다면 역사의 물줄기는 바뀌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나라를 걱정하고 계실것입니다 고이 잠드소서?
공산당도 좌파도 아니라 그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며 민족주의자였던 분입니다. 더이상 이념으로 여운형선생을 매도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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