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정보는 '크메르의 세계'가 기획한 <21세기 대중음악 사전>을 구성하는 항목으로서, <위키피디아 영문판>의 해당 항목을 '크메르의 세계'가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전편을 먼저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하라.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개론 (하)
Electronic dance music (EDM)
(사진) EDM 음악의 창작 및 공연에 사용되는 전형적인 장비들.
4. 전자음악용 제품들
1980년대에는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을 비롯하여 '대중적인 전자음악의 많은 장르들'이 신디사이저(synthesizers), 드럼 머신(drum machines), 시퀀서(sequencers) 같은 전자악기들을 이용해 음악을 만들었다. 또한 이러한 장르들은 일반적으로 그런 전자악기들의 독특한 사운드를 강조하는 특징을 보이면서, 심지어는 전통적인 어쿠스틱 악기들의 기악법을 모방하는 경우에조차 그러한 특징을 잃지 않았다.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신디사이저로는 '야마하'(Yamaha, ヤマハ株式会社) 사의 '디엑스 세븐'(DX-7), '코르그'(Korg, 株式会社コルグ) 사의 '엠원'(M1), '롤랜드'(ローランド株式会社, Roland Corporation) 사의 '주피터 에잇'(Jupiter-8) 및 '에스에이치 101'(SH-101) 등의 기종이 있다. 또한 가장 많이 사용된 '베이스 신디사이저'(bass synthesizer)는 '롤랜드 티비 303'(Roland TB-303)이었고, 가장 많이 사용된 드럼 머신은 '롤랜드'사의 '티알 808'(TR-808) 및 '티알 909'(TR-909)였다.
인터페이스인 '미디'(MIDI)의 등장은 퍼스널 컴퓨터(PC)가 모든 악기와 장비들을 통제하는 시퀀서로 이용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리하여 1990년대 중반이 되면, 멀티트랙 레코딩(multitrack recording: 다중 트랙 녹음) 스튜디오에서 컴퓨터는 일상적인 고정 장비로 설치되어, 레코딩이나 편집용 장비를 보완하거나 대체했다. 2000년대 초가 되면, 오디오 합성(audio synthesis) 및 사운드 조작(sound manipulation)을 위한 컴퓨터용 소프트웨어가 보급되어 소위 '침실 EDM 스튜디오들'(bedroom EDM studios: [역주] 아마추어 DJ들이 집안에 꾸미는 스튜디오 설비)이 완벽한 컴퓨터 기반 녹음실 기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현재의 음악들은 대부분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 이러한 소프트웨어들은 시퀀싱, 샘플링, 신디사이저, 이펙트(=이펙터 혹은 효과용 기기), 멀티트랙 녹음 기능 등을 제공해준다. 그에 따라 프로듀서들이 더 이상 대규모 장비들을 구입할 필요가 없어져, 음악 생산 능력이 경제적, 물리적으로 더욱 손쉽게 되었다. 때때로 이러한 음악들이 단순히 댄싱을 위한 음악들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스타일들에서 파생된 댄스 지향의 음악들까지 포함하기도 한다.(주8)(주9)
(동영상) 라이브 DJ가 컴퓨터 상에서 '무랩 5'(MuLab 5)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사운드 조작을 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컴퓨터 모니터 화면.
5. 공연장과 공연
대부분의 현대 음악의 경우, 아티스트나 프로듀서들은 청중들 앞에서 공연한다. 하지만 EDM의 경우, 아티스트들의 음악이 대부분 댄스 클럽들에서 DJ들을 통해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1970년대~1990년대 사이에, 클럽들은 때때로 라이브 공연을 위해 아티스트들이나 프로듀서들을 고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나이트 클럽에 춤을 추러 가는 사람들은 DJ들이 틀어주는 음악을 들으러 갔다. 뉴욕의 '파라다이스 개러지'(Paradise Garage)나 '스튜디오 54'(Studio 54), 그리고 시카고에 있는 '더 웨어하우스'(The Warehouse) 같은 나이트 클럽이나 디스코(텍)들은 영업일 밤에 일할 DJ들을 고용코자 했고, 그 음향 시스템 역시 라이브 공연보다는 DJ들의 퍼포먼스에 더욱 적합한 형태를 갖춰나갔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 무렵부터 DJ 자체가 고객 유치의 주요한 요소로 부상했다. 나이트클럽 방문객들은 DJ들이 군중들을 춤추게 만드는 능력이나 그루브(groove: 추진력있는 리듬감)를 유지하는 능력을 즐기기 시작했다. DJ들도 원래는 프로듀서(음악의 생산자)가 아니었지만, 그루브나 비트(beat: 템포, 운율, 박자 등을 포괄하는 음악적 요소)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이, 자신들이 독자적으로 창작한 음향을 미리 설정해두는 방식으로 독자적인 창작 음악의 비율을 늘려나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은 DJ들에게 리믹스(remixe) 음악들을 만들도록 유도했다.
DJ들은 리믹스 기법을 통해 기존에 존재하던 음악의 연주시간을 늘리거나, 원래는 댄스음악이 아니던 곡들을 댄스가 가능한 형식으로 변환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후 DJ들은 아티스트나 가수들과 공동으로 새로운 음악을 창작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DJ 듀오인 'DNA'는 포크 여가수 수잔 베가(Suzanne Vega: 1959~ )의 <톰스 디너>(Tom's Diner)를 리믹스했고,(주10) DJ 젤리빈 베니테즈(Jellybean Benitez: 1957~ )는 마돈나(Madonna: 1958~ )의 초창기 데모 테입들에서 공동 작업을 하여,(주11) 이 분야의 주요한 선례가 되었다.
(동영상) 위: 수잔 베가의 오리지널 <톰스 디너>(1987년작). 아래: DJ 듀오 DNA가 리믹스한 버전
마침내 나이트클럽 출입자들은 DJ 셋(DJ sets) 형식의 레코딩들을 찾게 되었다. DJ들은 몇 달러 정도를 받고 테입이나 CD를 팔았다. 이러한 레코딩들은 일반 판매되는 테입을 사용해 녹음했기 때문에, 그 음질은 항시 그저 그렇거나 변변치 못했다.
하지만 이러한 관행이 점점 보편화되자, 더 많은 나이트클럽들이 제대로 제작된 DJ셋 음악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미니스트리 어브 사운드'(Ministry Of Sound), '라임라이트'(Limelight), '그루브'(Groove) 같은 클럽들은 DJ셋 형식의 풀 CD들을 자주 발매했고, 미 전역의 레코드 가게들에서 상업적으로 구매가 가능하도록 했다.
이 모든 움직임들은 DJ들이 인기를 얻을 수 있도록 해줬고, 이제 DJ들 스스로가 공연자나 프로듀서의 지위로 올라서게 되었다. 1990년대부터 EDM 공연자들(DJ들+프로듀서들)은 '레이브'(rave)라 불리는 실내 및 야외 뮤직 페스티발에서 공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DJ셋을 '스피닝'(spinning: 돌리기) 하는 방식이든, 아니면 실제 라이브로 공연하는 방식이든, 이러한 흐름은 더 많은 DJ들과 EDM 공연자 및 프로듀서들이 전통적인 뮤직 페스티벌들에서도 공연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보다 최근에 들어오면 DJ들이 일일 관객 2만명 이상의 군중을 몰고 다니는 등, EDM의 세계 자체가 점점 더 주류적 위상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콘서트는 합법적이고 공적인 공연장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레이브'와는 차별성을 지닌다. 하지만 EDM 콘서트들 역시 종종 '레이브'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합법적인 EDM 콘서트는 대부분 최소 30달러 이상의 가격을 지불하고 입장권을 구매해야만 한다.
(주10) Beadle, Jeremy (1993), Will Pop Eat Itself?, Faber and Faber, p.207.
(주11) Butler, M.J., Unlocking the Groove: Rhythm, Meter, and Musical Design in Electronic Dance Music, Indiana University Press, 2006.
6. 미국에서 주류로 부상한 EDM
6.1. 개 요
1990년대 중반,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이 '일렉트로니카'(electronica)란 명칭으로 미국 시장에 나타났을 때, 그 인기는 제한적이었다.(주12) 당시엔 '더 프로디지'(The Prodigy), '더 케미컬 브라더스'(The Chemical Brothers), '팻보이 슬림'(Fatboy Slim), '언더월드'(Underworld) 같은 영국 댄스뮤직 무지션들의 물결이 "미국의 일렉트로니카 혁명"(American electronica revolution)과 미성숙된 형태로 결합되었다.(주13)(주14)
하지만 EDM은 보다 폭넓은 주류적 성공을 추구하기보다는, 스스로를 좌천시켜 산업적 변방에 위치했다.(주13) 1990년대 후반에 미국의 음악 매체들은 "일렉트로니카"에 관심을 가졌지만, 미국의 '하우스'(house)나 '테크노'(techno) 장르 프로듀서들은 DJ나 프로듀서로서의 경력을 확장하기 위해 여전히 해외로 나가고 있었다.(주13)
<스핀>(Spin) 매가진은 그로부터 약 15년이 지난 2011년에 발행한 기사에서, 미국의 댄스뮤직이 "새로운 레이브 세대"(new rave generation)를 주류 소비층으로 출현시키면서, 마침내 [주류로 부상하기 위한] 임계질량(critical mass)에 도달했다고 보도했다.(주13) EDM과 그 시장이 광범위하게 열리게 되자, 이제 미국 및 해외의 뮤지션들은 더 이상 미국을 "최후의 변방"(final frontier)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주13) 오늘날 음악차트의 '탑 40'에 들어간 아티스트나 프로듀서들의 음악에서 EDM의 요소를 결합시키는 일은 일반적 현상이 되었다.(주9) <타임 아웃 시카고판>(Time Out Chicago)에 따르면, EDM은 "신세대들이 선택할 팝 뮤직, 음악 판매, 사운드트랙 등의 배후에 있는 '드라이빙 비트'(driving beat: 추진력을 부여하는 비트)가 되었다".(주15)
오늘날 '라이브 네이션'(Live Nation: 공연전문 기업)의 전신을 창립했던 미국의 미디어 사업가 로버트 F. X. 실러맨(Robert F. X. Sillerman: 1949~ )은 2012년 6월의 발표를 통해, EDM 산업 투자를 위한 기업인 'SFX 엔터테인먼트'(SFX Entertainment)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이 사업은 설립 첫해에만도 10억 달러를 지출하는 계획을 동반했다. 실러맨이 이전에 설립했던 사업체들의 방식과 마찬가지로, 'SFX 엔터테인먼트'는 EDM 전문 온라인 뮤직스토어인 '비트포트'(Beatport)와 마이애미(Miami)에 있는 2곳의 주요 나이트클럽들과 더불어, 여러 지역적 프로모터들과 뮤직 페스티발 주최자들을 확보했다.(주16)(주17) 이 기업은 또한 세계 최대 광고홍보 기업인 영국의 'WPP'로부터도 1,0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주18)
(동영상) '팻보이 슬림'의 '2013년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 마이애미'(Ultra Music Festival Miami 2013) 라이브 공연.
2012년 10월 1일, 'MTV'는 <EDM의 침입: 레이브 물결은 어떻게 미국을 정복했나>(EDM Invasion: How the Rave Wave has conquered America)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표하여, EDM 음악이 현재 미국을 정복 중이며, EDM이 풀스윙을 휘두르며 미국을 미치게 만들고 있다고 서술했다. 이 기사는 EDM이 점점 더 대세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EDM 음악 청취자 대부분은 마이애미, 뉴욕, 라스베가스를 '미국 EDM 음악의 수도'라고 생각한다.
'클리어 채널 커뮤니케이션스'(Clear Channel Communications)가 소유한 클래스A 급 FM 방송국인 'WHBA'는 보스턴 광역시 일원에 전파를 송출한다. 2012년 12월 20일, 이 방송국은 기존의 성인 음악 방송 프로그램 하나를 <에볼루션 101.7>(Evolution 101.7)이란 댄스뮤직 프로그램으로 갑작스레 변경한 후, 자사가 "미국 최초의 EDM 전문 방송국"이라고 주장했다. 이 방송국은 이후 곧 사명도 'WEDX'로 바꿔버렸다. 'WEDX'는 '클리어 채널 커뮤니케이션스'의 인터넷 라디오 부문 자회사인 '아이 하트 라디오'(iHeartRadio)의 <에볼루션>(Evolution: '진화'라는 의미) 프로그램의 운용 플랫폼 역할도 맡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제작과 기획을 위해 영국 '비비시 라디오 원'(BBC Radio 1)의 DJ이자 영향력 있는 EDM 아이콘인 피트 통(Pete Tong)이 이사로 초빙됐다.(주19)
1995년, <프로젝트 엑스>(Project X) 매가진은 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어워드'를 시상하기 위해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투표를 실시했다.(주4) <프로젝트 엑스> 매가진과 '너버스 레코드사'(Nervous Records)가 공동으로 주최한 시상식에서 '윙스'(Winx), '더 퓨처 사운드 오브 런던'(The Future Sound of London: FSOL), '모비'(Moby), '주니어 바스퀘즈'(Junior Vasquez), '대니 테나글리아'(Danny Tenaglia), '디제이 커키'(DJ Keoki), '트라이블 아메리카 레코드사'(TRIBAL America Records), '문샤인 레코드사'(Moonshine Records)가 트로피를 받았다.(주4)
2005년, '그래미 상'(Grammy Awards)은 '최우수 일렉트로닉 및 댄스 앨범'(Best Electronic/Dance Album) 부문을 신설했고, 2012년에는 이 부문의 명칭을 '최우수 댄스 및 일렉트로니카 앨범'(Best Dance/Electronica Album)으로 변경했다. 지금까지 '베이스먼트 잭스'(Basement Jaxx: 2차례 수상), 마돈나, '다프트 펑크'(Daft Punk), 레이디 가가(Lady Gaga), 라 루(La Roux), 스크릴렉스(Skrillex)가 이 상을 받았다.
2012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erican Music Awards)는 '최다 선호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Favorite Electronic Dance Music) 부문을 신설했다.(주20) 이 부문의 후보 아티스트들은 판매량과 방송횟수를 기반으로 선정되며, 최종 수상자는 팬들이 온라인 투표를 통해 결정한다. 2012년 수상자는 데이비드 게타(David Guetta)였다.(주20)
(동영상) 레이디 가가의 논란의 히트곡 <원래 이런 식으로 태어났어>(Born This Way).
6.3. EDM 뮤직 페스티벌
미국에는 EDM 음악 중심의 정례적 '뮤직 페스티벌들'(music festivals)이 여럿 존재한다. 여기에는 매년 장소를 바꿔가며 순회공연 형식으로 개최되는 '일렉트릭 데이지 카니발'(Electric Daisy Carnival: 1997~현재), 뉴욕에서 개최되는 '일렉트릭 주 페스티벌'(Electric Zoo festival), 플로리다에서 출발한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 1999~현재), 미시간에서 개최되는 '일렉트릭 포레스트 페스티벌'(Electric Forest Festival: 2008~현재)이 포함된다.
'롤라팔루자 뮤직 페스티벌'(Lollapalooza Music Festival)과 '코첼라 뮤직 페스티벌'(Coachella Music Festival) 등 여타 페스티벌들도 점차로 EDM 계열의 음악들을 늘려가는 추세이다. 특히 '코첼라 뮤직 페스티벌'은 기존에 주력을 형성하고 있는 락 밴드들과 함께 티켓 판매를 하므로, EDM 음악 순서에 대한 예약율이 저조함에도 불구하고, EDM 음악 공연을 주요 시간대에 배치하는 모험적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MTV 소속의 유능한 음악 프로그래머 롤리 본스타인(Rawley Bornstein)은 '롤라팔루자 뮤직 페스티벌'의 창설자인 '페리 페렐'(Perry Ferrell: 1959~ )과 마찬가지로, EDM을 "새로운 락앤롤"(the new rock and roll)(주9)이라 묘사했다.(주21) <빌보드>(Billboard) 매가진의 투어링(touring: 순회공연) 부문 편집자 레이 와델(Ray Waddell)은 한 발언을 통해, 페스티벌 주최자들이 '브랜드 알리기'(branding)에서 훌륭한 능력들을 발휘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주9)
첫댓글 미스테리랜드 뮤직 페스티벌 2012년 행사를 보니..
오늘날 거대 공연에서의 음향이나 조명의 테크놀로지들이 어디까지 왔는지 실감나네요..
가상의 현실화가
엄청나게 진행됐군요..
레이저 조명과 폭죽의 사용이
양적으로 상상을 초월하네요..
더구나
현장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춤을 춘 수만명의 관객들은
정말 환상적이었을듯 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