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 형의 블로그에서 옮겨 왔습니다)
사단법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제주도지회 2006 정기총회가 지난 12월 30일 오후4시 제주민예총 대회의실에서 있었다. 작가회의 홈페이지에 올려 놓으려고 찍었던 사진이 갤러리 용량 부족으로 싣지 못해 할 수 없이 이곳에 올려 놓으니, 필요한 부분 원하는 게 있으면 메일로 원본 크기로 보내기로 한다. 사진만은 너무 딱딱하여 가까이 있는 시 한 편씩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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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의를 진행하는 시인 오영호 회장
♧ 일몰 앞에서 - 오영호
서귀포 보목리 늦가을 저녁 바닷가
졸고 있는 문섬까지 불러놓은 시인 몇이
썰물에 빠져나가는 시어들을 낚고 있다.
햇덩이,
새섬 섶섬 그 너머 수평선 위
서서히 떨어지는 장엄한 순간 앞에
시인들 가슴을 닫고 숨소리도 멎었다.
그 때,
하혈(下血) 번진 바다가 하는 말씀
초심(初心)으로 돌아가라 초심으로 돌아가라
허영의 검정 옷을 벗고 태우고 살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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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과보고를 하는 시인 이종형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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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업평가를 하는 시인 허영선 부회장
♧ 겨울비 오는 날의 서정 - 허영선
통로도 없는 곳으로부터
직선 보다 더 냉정한 한줄기 겨울이
내리꽂힌다 갇힌 곳에서 더욱
푸르러지는
아직 빛은 한 정지된 지점에서
난시현상을 일으키며 간격을 두고 서 있다
가장 독한 술로 몸을 덥히고
가장 흐린 모래의 그늘 뒤에 서서
섬을 따로 떼어놓고 보자
누군가
한낱 우화일 따름인 세상을 굽어보고 있다
떠돌다 떠돌다 돌아와
우리의 바다 위로 또 다시 비가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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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제주작가회의 신인상 수상자들. 왼쪽부터 동화부분 김진철, 시조부분 김진숙, 시부분 김순선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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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의 노래 - 김순선
숨죽이다 하얗게 질려버린 산벚나무 한 그루를 만났다
아직 이른 봄날
바람이 검붉은 허리를 내려칠 때마다
연분홍 비늘꽃을 무량무량 떨군다
하늘도 적막 속에 조각보를 잇는 선흘리 곶자왈
코흘리개 아이들 병정놀이인 듯
토벌대 총성 앞에 무참히 고꾸라진
목시물굴 속 영혼들
은신처라 숨어든 어둠 속 그늘집이
불꽃을 잠재운 합묘로 떠올랐다
내 어머니 가슴에 용암으로 굳어버린
덩어리 덩어리
바람도 쉿! 큰 소리 내지르지 못하던 절망을 딛고
말더듬이 반백 년을 훌쩍 넘어
암갈색의 산벚나무 저리 키를 높였는가
소름은 저리 돋아 살비듬을 떨구는가
해원으로 떨어지는 연분홍 비늘 하나 내 몸에 꽂혀
쥐도 새도 모르게 들려주던 어머니 사설 속
징용으로 끌려간 외삼촌의 서슬 푸른 눈을 만난다
꽃 진 자리 연두빛 잎으로 돋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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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인문학상 수상 모습과 기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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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 '세상에 하나뿐인 멜로디언'을 써서 당선된 김진철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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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소감을 피력하는 김진숙 씨
♧ 쑥부쟁이 씨를 받다 - 김진숙
세상을 배우기 전에 세상을 알아버린
인적 드문 길가에 눈빛 순한 쑥부쟁이
늦가을 마른 하늘에
향기 몇 점 풀어놓았을
마취된 무명의 하늘 별빛들을 깨우던
호스피스 병동의 눈 푸른 수녀님처럼
미완의 일기장 펴고
꽃 지는 소리 듣는다.
내 나이 마흔에도 성장통을 앓는 게지
흰 봉투 절반쯤 채운 이 땅의 어진 씨앗들
새벽녘 젊은 바람이
자꾸 나를 흔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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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작품집 발간 축하패를 받는 오른쪽부터 시인 김상신, 시조시인 이애자, 평론가 강영기 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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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경(詩經) - 김상신
쌍거풀 진 눈으로 오신 지 엊그제
훌쩍 자라버린 손톱을 물들이며
초이레 달이 현관문 풍경을 흔드시네
육십 촉으로 환해진 달빛 마당
애기단풍 물들며 허리를 뒤트는데
문득 발밑에서 먹 가는 소리
여린 뿔을 곧추세우고 민달팽이
일 획을 긋고 있는데,
깊은 밤 푸르도록
아직 ㅇ 받침 하나 완성치 못해
풀지 못한 체위로
제 몸통을 더욱 단단히 조이며
글이란
오체투지로 모셔야 할
부처라 말씀하시네
아침,
마당 질펀한 육경(肉經)들을 더듬으며
입으로만 염불 외던 비구는
이른 햇살에
등짝까지 옮겨온 은물결을 따라
흔들리며
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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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작품집 발간 축하패를 받는 모습과 기념사진
♧ 송악산 들국(菊) - 이애자
늦가을 산등성이
산천어 같은 별이 돋아
일급수 청천 하늘에
손끝 시리도록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
샛노란
똥기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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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집 발간 축하의 꽃다발을 받은 왼쪽부터 평론가 김동윤 교수와 시인 허영선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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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예총으로부터 민족예술공로상을 받은 시인 문무병 박사와 허영선(왼쪽), 김동윤 교수
♧ 돌하르방 - 문무병
나는 돌하르방이다
아니, 제주의 자연과 역사와
삶의 저주와 증오,
그리고 제주의 실체, 무덤, 절망, 죽음
그런 것들을 한꺼번에 가지고 있는 돌의 영이다.
제주사람들이 마을의 허한 부분에 갖다 세워놓으면
나는 탑이 되었고, 석장승이 되었고, 거욱대가 되었다.
나는 신이면서 종이었고, 할아버지면서 순진무구한 아이였다.
내 눈에는 수 천년 슬픔이 고여 있다.
그래서 절망의 역사를 눈으로만 전달하는
영혼이 숨쉬는 돌이기 때문에
시를 쓰지 않는다.
눌변이 진실임을 알기 때문에 천년을 침묵으로 살아,
움직이지 않는 광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