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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죽의 300자 칼럼 (2008년 12월)
□ 12월 1일 : 원시문명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하고 신화부터 음식까지 온갖 주제를 인류학에 담아낸 프랑스 지성사의 최고의 학자 중 한명으로 꼽히는 『슬픈 열대』의 저자 구조주의 거장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100회 생일을 맞아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직접 댁을 방문해 “온 국민을 대신해 당신에게 경의를 표하러 왔다.”고 인사를 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부럽습니다. 우리의 전 현직 대통령도 이렇게 나라의 거장들을 찾아다니는 하심(下心)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네요. 12월입니다. 한 해의 모든 것들이 마지막 결정(結晶)하는 12월 속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힘찬 출발 되십시오. -서가에서 슬픈 열대를 다시 꺼내며!!!-
□ 12월 2일 : 시인 박재삼은 《12月에》란 시에서 “욕심을 털어버리고 사는 친구가 내 주위엔 그래도 일할은 된다고 생각할 때 옷 벗고 눈에 젖은 나무여! 네 뜻을 알겠다 포근한 12월을 친구여! 어디서나 당하는 그 추위보다 더 한 손해를 너는 저 설목(雪木)처럼 견디고 그리고 이불을 덮는 심사로 네 자리를 덥히며 살거라”라고 했지요. 오늘은 포근하지만 추운 계절입니다. 마지막 연이 참 좋군요. 내가 사는 자리를 덥히며 살아야 할 겨울에 생각나는 시입니다.
□ 12월 3일 : 시를 읽다가 혼자서 쿡쿡 웃을 때가 있습니다. 시인의 기발한 시어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을 때죠. 얼마 전 읽은 윤희상의 ‘소를 웃긴 꽃’이란 시가 그랬습니다. “나주 들판에서 정말 소가 웃더라니까 꽃이 소를 웃긴 것이지 풀을 뜯는 소의 발밑에서 마침 꽃이 핀 거야 소는 간지러웠던 것이지 그것만이 아니라 피는 꽃이 소를 살짝 들어 올린 거야 그래서, 소가 꽃 위에 잠깐 뜬 셈이지 하마터면, 소가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것이지” 이런 맛에 시를 읽는 것 같습니다. 이생진 시인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라는 시집 속엔 이런 표현도 나옵니다.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한다” 역시 시인입니다.
□ 12월 4일 : 매년 겨울이 오면《연어》, 《관계》와 같은 어른을 위한 동화를 쓴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란 시가 생각납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아주 짧은 시입니다. 겨우 3행에 불과하지요. 글자로도 32자밖에 안됩니다. 그런데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면서 긴장이 됩니다. 왜 그럴까요? 그러면서 돌아보게 되네요. 나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는가라고요. 냉기로 가득찬 현대에 연탄보다 더 검고 차가워진 우리들의 마음 밭을 덥히라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뜨거운 사람’으로만 살고 싶습니다.
□ 12월 5일 : 날씨가 춥습니다. 이럴 땐 시골에서의 겨울전경들이 떠오르네요. 헛간의 나무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얼었던 손을 녹이며 활활 타오르던 장작의 따뜻함을 잊지 못합니다. 방안에 들어서면 뜨거웠던 아랫목을 뺏기지 않으려 작은 쟁탈전을 벌이던 기억도 어제 같습니다. 친구네 집에 가면 아랫목이 까맣게 타서 색이 변했던 생각도 나네요. 하나둘 잊혀져가는 그 시절의 아련함이 커다란 그리움으로 종종 회상에 젖게 합니다. 제 고향의 겨울은 집집마다 김(해태)을 했었는데, 썰물이 되면 갯가에서 채취 해다 집에서 한 장 한 장 뜨고 건장에 말렸었습니다. 커다란 먹(철)솥에 쪄낸 고구마에 김칫국물은 지금생각해도 ‘천상의 맛’이었지요.
□ 12월 6일 : 예전 같지는 않다지만 연말 모임이 많은 때입니다. 잦은 술자리에 괴롭다는 사람들도 많지만, 한해를 되돌아보며 내 인생의 소중한 사람들과 행복한 만남은 큰 의미가 있다 하겠지요. 특히나 같은 고향출신이라는 인연으로 만나는 만남에는 늘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자신이 얻은 사회적 지위나 부를 내세우며 시종일관 과시만한다면 모처럼 만의 만남의 자리는 어색해 지고 말겠지요. 모임엔 단지 만날 수 있음으로 기뻐하고 지난날 선 조 대 부터 함께 해온 좋은 이웃과 선후배 및 동료로서의 잊지 못할 추억과 삶의 희로애락, 그리고 모두들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인 고단한 오늘을 허심 없이 풀어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 12월 7일 : 때때로 선택이란 많은 것을 포기하게 합니다. 선택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삶은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되지요. 사고 싶던 책이 단 한권 있을 때는, No Choice!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간단하지요. 그러나 여러 권이 있을 때는 표지부터 전체를 살피게 됩니다. 선택은 늘 책임을 지게 합니다. 선택의 폭이 넓으면 그만큼 책임을 져야 함도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높은 산에 오를수록 넓게 볼 수 있음은 진리겠지요. 저는 공부를 선택했고 평생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가’의 답을 알고 싶기 때문이지요. 인생은 자기 발견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존재에 대한 계속적인 물음만이 삶을 깊게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 12월 8일 : 몇 년 전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있었던 얘기입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의 낯선 언어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작가의 작품을 두 시간 가까이 귀 기울여 듣고는 행복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는 참석자들의 전언을 글로 읽었을 때, 가슴이 찡했어요. 느낌은 언어보다 훨씬 더 소중하다는 것을 그 때 확실히 알았죠. 이웃엔 외국에서 시집와 살고 있는 새댁이 있습니다.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아요. 어떻게 사나 싶지만 아이 낳고 잘 살더라고요. 주변엔 농인들도 많습니다. 한마디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그들은 마음으로 느끼고 세상을 봅니다. 생각해 보니 부끄럽네요. 소통보다 느낌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 12월 9일 : 일주일에 네 번 복지관에서 성인대상 생활영어를 강의 하고 있습니다. 그 중 두 번은 원어민강사의 통역과 강의를 병행하는데 수강생들의 실력이 날로 나아질 때 큰 보람을 느끼지요. 원어민선생은 때대로 ‘퍼픽’을 외치며 환호를 하곤 합니다. 오늘도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살아있다는 것이 그렇게 좋고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지없이 행복했습니다. 모두들 어렵고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이지만, 내 가슴속의 소중한 사랑을 한줌씩만 더 꺼내면 이깟 추위와 시대의 고통쯤은 너끈하게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맘먹기에 달렸지요. 내가 할 수 있는 것 하나로 세상을 덥히는 몫(사명)의 아름다움을 한 아름 전합니다.
□ 12월 10일 : 평균적으로 3일에 책한 권씩을 읽습니다. 이달에 읽는 책들은 지난달에 골랐던 것들이지요. 책일 읽다가 이 책은 꼭 읽어야겠다 싶으면 다음 달 구입목록에 기록해 뒀다 월초에 한꺼번에 구입을 하지요. 그렇게 십여 권을 읽은 후 그 중 몇 권에 대한 독후감을 씁니다. 가급적이면 책의 내용이나 저자에 대한 설명보다는 느낌을 많이 쓰려고 하지만 생각만큼 그렇게 되지 않더군요. 책을 고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그렇게 한 달을 숙성시켜 책이 배달돼 오면 만선 어부처럼 뿌듯한 희열에 젖지요. 과연 어떤 책을 먼저 읽을까 마음 떨리는 행복한 고민을 하는데 이번 달엔 정끝별시인의 시집 2권으로 출발했습니다. 요이땅!!!
□ 12월 11일 : 햄릿의 고민은 ‘죽느냐 사느냐 To be or not to’ 였습니다. 그런데 시대는 변하여 이제는 ‘가졌느냐 못 가졌느냐 To have or not to have’의 시대가 됐지요. 인간을 그의 됨됨이being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having으로 저울질한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독일 출신 유대인 철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이 말년에 저술한 ≪소유냐, 존재냐≫는 현대사회 인간존재의 문제에 대한 그의 사상을 총결산한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유로 인간의 존재가치를 말한다면 대체 현대사회에서 얼마를 가져야 할까요? 나눔 없이 100억을 가졌다 한들 대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인간은 소유가 아닌 존재 그 자체로 평가돼야함은 영원한 진리입니다.
□ 12월 12일 : 질병도 삶의 한 부분이긴 하지만 병을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지요. 그렇지만 질병 속에 바라보는 세상은 훨씬 더 잘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자신의 생(生)과 더 가까워졌기 때문이겠죠. 시인 김선우는 ‘세상에 영원히 내 것인 것은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이 몸도 실은 빌려 쓰는 것, 빌려서 쓰는 것이니 잘 돌봐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네요. 연말, 연이은 모임 등으로 지친 몸을 한번쯤 되돌아 봐야 할 때입니다. 도처에 아픈 것투성인 세상에서 오늘도 내 몸은 많이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술은 조금 덜 마시고 새벽공기처럼 상쾌하게 출발합시다.
□ 12월 13일 : 우리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통합적 지식인이었던 『목민심서』의 저자 다산 정약용(1762-1836)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신영복, 그리고 『야생초 편지』의 황대권 등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이 모두 감옥에 있을 때 절망할 틈없이 촌음과 같이 시간을 아껴 자신의 삶을 갈고 닦으며 성찰의 시간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다산은 18년 동안의 유배지에서 무려 5백여 권의 책을 쓰면서 “기억을 믿지 말고 손을 믿어 부지런히 메모하라”, “메모 중에서 쭉정이는 솎아 내고 알맹이를 추려 계통별로 분류하라”고 권했다지요. 정민교수가 쓴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은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책입니다.
□ 12월 14일 : 이 세상에 혼자서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 뭣일까 하고 생각하다 보면 저는 서슴없이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은 아무렇게나 놓아도 최고로 멋있기 때문이죠. 어떤 사람들은 수백만 원씩 하는 가구나 액세서리를 구입한다지만 어느 집안에 들어섰을 때 책이 한권도 보이지 않으면 “영혼 없는 집”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책이 단 한권도 없는 집의 주인이 이 글을 읽으면 나무라 실지도 모르겠지만, 청죽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군요. 책은 주변에 의지해서 멋있게 보이는 그런 존재가 아님은 물론입니다. 책은 의미의 결정체지요. 저에게 책은 가히 신앙의 대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유명한 바슐라르처럼요!!!
□ 12월 15일 : 듣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리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태어나 자란 고향이지요. 술뚱, 앞장벌, 전마술동, 밤섬, 벌판, 땅둥문이, 수루미(수룸재), 면삽지, 진너머, 거멀너머, (요강시, 딴뚝), 뒷면(천두멍), 뚱말, 훗마탕, 윗말, 장골, 납대기 제 고향 보령 앞바다 삽시도의 마을과 바닷가 이름들입니다. 저는 뚱말에서 태어나 장골에서 잠시 살았고, 전마술동에서 20대 초반까지 3년을 살다 고향을 떠났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 가는 곳이지만 맘으로는 하루도 가지 않은 날이 없네요. 고향을 사랑하지 않은 이 누가있을까요만 고향의 이름만으로도 늘 가슴이 설렙니다. 보고 싶은 사람은 왜 또 그리도 많은지요. 이름만으로도 그리운 곳입니다.
□ 12월 16일 : 법정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읽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하고 내내 생각하게 되네요. 좋은 글이란 그런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스님의 책을 읽을 때마다 깨닫게 됩니다. 때로 힘겨운 세상살이에 이만큼의 맑음과 향기를 내 영혼 속에 쏟아 부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세상에 책은 많습니다. 그러나 내 영혼을 맑게 하는 책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삶은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라고 스님은 말씀하시네요. 순간을 허투루 살은 삶이 어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네요. 정신이 번쩍 듭니다. 한껏 맑아진 행복을 전합니다.
□ 12월 17일 : 세밑입니다. 열심히 산다고는 해도 지나고 보면 늘 아쉬움이 남지요. 삶이란 본시 다 그런 거라고 가볍게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 세상에서 허락된 나의 생애 중에 일 년은 결코 가볍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주어진 몫(사명)을 하며 산다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삶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언행을 통해 살아있는 아름다움을 향기로 드러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돌이켜보면 하루하루가 결전을 앞둔 선수처럼 그렇게 긴장하며 살아온 듯합니다. 때로 이 긴장이 좋고 타이트한 현실이 행복합니다. 이만큼의 건강에 학문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는 것도 감사하고요. 더 뜨겁게 새해를 맞고 싶습니다.
□ 12월 18일 : 너나없이 유난히 어려운 연말을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변엔 살기가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뿐이네요. 장사하시는 분들은 장사가 안 된다고 아우성이고, 언제부턴가 모든 직종의 일들이 어렵고 힘들다고 해요. 시대가 그런 것 같습니다. 세계적인 불황이 곧 우리의 현실이 되는 글로벌시대의 특징인 듯싶기도 해요. 한쪽이 이기고 한쪽이 지는 그건 시대가 아니고 이제는 모두가 잘사는 윈윈시대로 가는 전환의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 옛날 가난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장기적인 불황이 아닌 다음에야 조금만 참고 절약하면 곧 좋은 시대가 오겠지요. 뜨거운 마음 밭에 불씨만 끄지 않는다면 이깟 불황을 못 이기겠습니까. 힘냅시다.
□ 12월 19일 : “전투기 조종사도 사고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밝혀 얼마 전 미국사회를 감동시켰던 비극의 주인공이 있었습니다.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고 에서 발생한 미군 전투기 추락사고로 온 가족을 잃었던 윤동윤씨 얘기지요. 그는 이번 사고로 온가족을 잃었습니다. 그는 후원금에 대해 “이 후원금은 나를 위해 쓰라는 게 아닌 것 같아 아내가 생전에 매달 기부해 오던 미국과 한국에 있는 자선단체들에게 절반씩 보낼 계획”이라고 했다 합니다. 지상에서 겪은 최고의 슬픔을 최고의 사랑으로 꽃을 피우네요. 이제 나이 37세! 그가 한국인이라는 게 자랑스럽고, 춥지만 그가 전해온 소식이 대한민국을 덥히는 것 같습니다.
□ 12월 20일 : 한국의 문인(文人)들과 국어학자들이 다하지 못한 한글 사랑은 통일꾼 백기완님이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한겨레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백기완-나의 한살매’는 읽을 때마다 감동을 줍니다. 그가 걸어온 형극의 발자취는 곧 한국의 현대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하겠으며, 특히 그가 아끼고 사랑하는 우리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겠습니다. 그는 우리의 언어인 한글을 최고로 아끼고 사랑하고 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요즘처럼 우리글이 세계 언어에 혼탁해진 때는 없었을 겁니다. 뜻을 알 수 없는 국적불명의 언어들이 아무런 제재도 없이 난무하는 꼴을 오늘도 세종은 지하에서 아프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 12월 21일 : 한국에 문학상이 너무 많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수상자들 대부분이 젊은이들이라는데 의아해 하는 중에 70대인 소설가 이제하씨와 시인 허영자씨가 동리·목월문학상의 첫 수상자가 됐다는 소식에 반가웠습니다. 우리의 문단에도 젊은 70~80년대들이 대거 출현하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김태용, 박형서, 백가흠, 윤이형, 이기호, 한유주, 김경욱, 김애란, 김연수, 김중혁, 윤성희, 전성태, 천운영, 편혜영, 황정은 씨 같은 분들이지요. 하지만 ‘세대교체’가 빠르면 안되는 곳이 문단 아닐까요. 중진과 젊은 세대들이 서로를 격려하며 한국문단을 이끌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12월 22일 : 어제는 8학기 마지막 시험을 봤습니다. 이 늦은 나이에 왜 공부를 할까 하고 자문할 때가 많아요. 솔직히 성적이 좋지 않아 내년 봄 졸업도 못하는데 공부랍시고 계속 하고 있습니다. 함에도 졸업은 못하지만 하고 있다는 것이, 또 할 수 있다는 것이 여간 행복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있어 공부는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고, 자존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첩경이 바로 평생학습인 공부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저는 평생 대학을 3번은 졸업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오늘도 공부에 매진합니다. 좋아하는 분야의 학문을 탐구한다는 것은 나를 찾은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요. “공부가 곧 생활”인 삶이 행복합니다.
□ 12월 23일 : 우리만큼 칭찬에 인색한 나라가 있을까 싶습니다. 서양에서는 살 맞대고 사는 부부끼리도 매일 아이 러브 유를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지만 우리나라는 말로 못하니 마음으로 느끼라고 항변(?)합니다. 문화와 인류사적인 차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제 견해는 조금 다릅니다. 그런 차이보다는 나와 다른 걸 인정 못하는 습성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행인 세 사람 가운데 반드시 스승으로 삼을만한 사람이 있다.”(三人行 必有我師)란 말씀이 아니더라도 우리 민족은 너무 타인을 인정할 줄 모릅니다. 종교만 하더라도 자기 것만 옳고 남의 것은 틀렸지요. 인정을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 칭찬에 인색할 밖에요. 새해엔 더 많이 칭찬합시다.
□ 12월 24일 : 시대가 어렵고 힘들다고는 해도 5천년의 역사 이래 오늘날처럼 물질적으로 풍요롭던 시대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정신은 어떤가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거꾸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온 이후 예수는 하루가 다르게 냉각돼가는 우리 모습에 오늘도 가슴을 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인간의 가슴속에 사랑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게 하려 자신도 없는 교회 밖에서 슬피 울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예수 없는 교회’를 이 땅에서 온전히 몰아내는 날 예수의 울음은 그칠 것입니다. 이제는 진정 교회 안에 예수님을 들어오시게 해야 합니다. 성탄이브에 아기예수가 이 땅에 오신 뜻과 성육신(Incarnation)의 의미를 생각합니다. -한완상의 『예수 없는 예수 교회』를 읽으며-
□ 12월 25일 : 인도의 독립운동가 하면 흔히 간디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제2의 간디라고 하는 비노바 바베(1895-1982)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철학자, 명상가였던 비노바 바베는 브라만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스스로 육체노동의 길을 선택, 최하층 사람들과 어울리며 평생을 함께 생활했다지요. 간디를 만나 삶을 꽃피웠고, 세계 모든 종교에 대한 연구에 정진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네요. “당신이 부자라면 베풀어라. 당신이 가난한사람일지라도 베풀어라, 못 가진 자는 아무도 없다. 어떤 사람은 재산을, 어떤 사람은 지식이나 육체적 힘을 가지고 있다. 더 나아가서 모든 인간은 사랑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모두 베풀 것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베풀고 또 베풀어야 한다.” 성탄의 아침에 생각하는 청죽의 단상입니다.
□ 12월 26일 : ‘거룩한 자’ 혹은 ‘신이 부르는 노래 또는 가르침’이라는 뜻을 가진 인도 철학의 꽃이라 불리는 『바가바드기타-The Bhagavad Gita』는 제일 좋아하는 책 중의 한권입니다. ‘정신적 지침서’이기 때문이지요. 바가바드기타는 베다, 우파니샤드와 더불어 힌두교의 3대 경전 중의 하나지요. 그러나 힌두교도인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등을 쓰신 제가 제일 좋아하고 존경하는 함석헌 옹의 번역본이기 때문에 더 애착이 가지요. 함옹이 살아계셨을 때 보내준 한통의 편지를 가보처럼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데, 책을 쳐다만 봐도 흐뭇합니다.
□ 12월 27일 : 네이버에 “지식인의 서재”란 아주 좋은 공간이 있습니다. 영화감독 박찬욱, 건축가 승효상, 대중음악가 이적, 클래식 음악가 장한나, 사진작가 배병우의 서재 이렇게 몇 분의 서재지만 책을 선택하는데 아주 귀한 공간이라고 생각됩니다. 한해의 끝자락에서 내년도에 읽을 100권의 책을 고르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네요. 역시 책을 좋아하는 막냇동생의 소개로 알게 됐는데, 동생에게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좋은 책을 만나는 행복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지요. 책이 청죽을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53살이 되는 내년에는 어떤 책을 읽을까 행복한 고민 중에 있습니다. 삶의 동반자를 만나는 것이기에 신중에 신중을 더합니다.
□ 12월 28일 : 어머니께서 병석에 누우신지 벌써 3개월이 지났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은 7남매 모두의 큰 고통이 아닐 수 없지만, 한편으로는 일주일에 거의 한두 번씩 각지에 흩어져 있는 형제들이 모여 어머니와 살아온 숱한 얘기들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은 여간 행복하지 않군요. 명절 때도 다 하지 못했던 지난 세월의 겹겹한 얘기들은 아직도 또렷한 어머니의 회상 속에 올올히 살아 잠시 동안이지만, 통증을 잊게 하고 벌써 40여일 넘게 잡숫지 못하는 밥맛을 돌아오게 합니다. 당신이 낳은 자식들을 만나는 것만으로 암의 통증도, 떨어진 입맛도 돌게 하는 것을 보면 부모와 자식이란 어떤 관계일까 싶습니다.
□ 12월 29일 :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에 해야 할 계획을 세워야 할 때입니다. 목표는 미래지향적은 것 보다는 구체적인 것이 훨씬 더 좋겠지요. 또한 실현가능한 것부터 세부적인 계획을 마련하는 것이 보다 더 현명하단 생각도 해봅니다. 저는 내년에도 한 단계 높은 영어실력을 갖추는 것과 매월 10권의 책을 읽고 쓰는 것, 그리고 주어지고 맡겨진 강의를 열심히 하는 것으로 잡았습니다. 물론 결혼도 해야 하고요. 나이가 들었지만 결혼에 대한 열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모든 것에 ‘더’와 ‘가장’을 붙여 생활하고자 합니다. ‘열심히’였다면 ‘더 열심히’, ‘더 열심히’였다면 ‘가장 열심히’로 살아야겠죠. 뭣보다 가슴이 따뜻한 새해를 살고 싶습니다.
□ 12월 30일 : 생각에는 2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생각과 -생각이 바로 그것이지요. 인생사 부딪는 모든 것에 대해 어떤 사람은 플러스로 생각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마이너스로 생각합니다. 단적인 예로 어젯밤 마시다 만 소주병을 들여다보면서도 어떤 사람은 ‘아직 이만큼이나 남았네.’라고 하지만 어떤 사람은 ‘요것밖에 남지 않았네.’라고 합니다. 작은 것 같지만 결과는 실로 엄청난 차이로 나타나지요. 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렸다고들 합니다. 한해의 끝자락에서 이제 움츠린 어깨를 펴고 힘을 내봅시다. 모든 것에 아이 캔 두 에브리씽 긍정의 마음으로 더 아껴주지 못하고 더 사랑해주지 못한 미안함만 간직한 채 새해를 맞아봅시다. 세상은 여전히 살만합니다.
□ 12월 31일 : 한해의 끝날 입니다. 차암 열심히 달려왔다는 생각이드네요. 돌이켜 보면 크고 작은 일들이 엄청 많았던 해이기도 했습니다. 인생사 다 그런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생로병사의 이별은 또 얼마나 아프고 슬프던 지요. 하지만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라고 시인 랭보는『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라는 시집에서 노래했고, 소설가 양귀자는 “슬픔도 힘이다”라고 했으며, 시인 허수경은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라고 했습니다. 올해의 아픔과 슬픔을 거름삼아 새해엔 더 건강히 굽어진 삶의 꽃을 활짝 피워봅시다. 마음을 아프게 했던 기억들은 훌훌 털어내고 좋았던 기억들만 가슴에 깊이 담아 모두에게 가장 소중한 새해를 소망해 봅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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