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러면 내가 네 어머니를 만나러 한번 가야겠다. 여자 나이는 지금이 시집 갈
나이라 이 때 넘기면 노처녀가 되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도 늦기 전에 서두는 거야.
너 주소 써서 나한테 줘라.”
‘말을 잘못 했네. 야단났네. 큰일 났네요, 어쩌면 좋을까요, 엄마나 아버지가 기절
하지나 않을까? 우 째 야 좋을 가나~ 왜 노랫가락이 나오지? 으 휴.’
“정길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 나 사랑하는 것만 변하지 마라, 알았지?
참! 말해 봐, 너 정말 누나하고 그거 하는 거 때문에 사랑한다고 말하는 거 진짜,
진짜 아니지? 알았어, 그럼 됐어.”
‘어! 진짜 그런 거 아닌가? 누나만 떠 올리면 그것부터 생각이 나는데, 그러면 그것
때문에 내가 누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건가? 아유! 모르겠네. 무엇이 사랑인지
누가 나에게 좀 가르쳐줬으면 좋겠네.’
정길이가 결혼이라는 것을 생각할 나이가 안 된다는 것을, 지연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것은 성숙할지 몰라도, 외모와 달리 아직 어린 소년에 다름없는
정길이 지연은 야속하고 답답하게 생각될 뿐이다. 우선은 그래도 부모 보다는 먼저
정희에게 털어놓고 상의를 해보고 나서, 그 다음에 어떤 결정을 하던지 하기로 지연은
마음에 작정한다. 지금 자신이 정말 정길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지금 상황에서
누가 묻는다면 지연 자신 역시도 확실하게 대답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너 지금 저기 올라가서 누나 안아줄래? 아니면 오다가 다른데 가서 할래?
호호호 거기 봐, 지금 보니까 걔가 성이 많이 난 것 같다. 어때? 참을 수 있겠어?
교회에 가서도 그러고 앉아 있을래?”
“교회 시간 안 늦을까? 늦어도 몰라, 나, 누나 안고 싶어 진짜 못 참겠어.
누나 빨리 올라가자.”
“하여튼 싫다고 할 때가 한 번도 없지. 조심해, 먼저처럼 옷 찢지 말고, 천천히 걸어
올라가 저기 큰 무덤 있는 곳으로 가자. 돌 조심해. 이끼가 끼여 있어 위험해
저쪽으로 건너 뛰어.”
‘이것은 왜 하면 할수록 더 하고 싶은 거지? 하루에 열 번이라도 하고 싶으니
이러는 것이 혹시 병이 아닐까? 아이고! 급하다 급해, 이럴 때는 금방 하게 되던데,
헤 헤 헤 에이 나도 참.’
“자! 이리 앉아, 이 보자기 위에, 바지와 팬티를 무릎까지만 내리고! 가만히 다리 쭉
피고 편안히 앉아 있어, 내가 알아서 할게.”
“어! 이건 언제 배운 거야? 누나 너무 수상해, 요새는 이상스러운 것만 하자고 하고.”
“이 바보야! 누나 친구들이 시집간 애들이 좀 많으니? 고것들과 같이 모여서 얘기
할 때 나를 놀리는 재미에 벼라 별 말을 다 해서, 걔들한테 배운 거 써 보는 거야.
이제 앉는다. 어때? 이렇게 하니까 서로 얼굴 마주봐서 좋고 네가 내 젖 만져서 좋고
괜찮지? 어! 안 돼 아이, 얘! 조금만 참아, 안 되겠다, 이럴 땐 이렇게 하라고 하더라.
그러면 참게 돼. 아 아파, 너무 아프니까 살살 잡아, 꼬집는 거야, 비트는 거야. 젖이
얼마나 예민한데 아프다니까, 자! 이제 다시 해. 이젠 좀 참을 수 있지? 그렇지
이제는 천천히 해. 아직 시간 많으니까, 아 아~ 으 흠~”
‘이거 이 누나 친구들 대단한 여자들인가 봐! 우리 누나를 아주 제대로 교육
시켰네요! 이 누나가 웬일이지? 오늘 제대로 날 잡은 모양이야. 한동안 안 해서 너무
하고 싶었었나 봐.’
정신없이 정길을 물고 빠는 지연의 입에서 나오는 신음소리로 인해, 정길이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누나가 웬 일이지? 하는 정길의 표정을 보고나서야
지연이 자제를 한다. 그러다보니 꽤나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이렇게 오래 시간을
끈 적이 없었기에 두 사람이 다 지쳐서 누워서 하늘을 쳐다보며 숨을 고른 후 뒤처리를
하고나서 지연이 정길의 팔을 베개 삼아 다시 하늘을 쳐다보며 드러눕자 정길이 몸을
비틀어 지연의 입술에 키스 한다, 지연이 정길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어떡하든지
결혼하고 말리라 자신의 마음을 다 잡는다.
진혁의 회사는 천진 기업사로 이름 짓고, 동양시멘트회사의 용수로 공사와 사원
주택의 설비공사로 첫 발을 내딛었다. 순조로이 진행되어가는 가운데, 서울의 큰
기업에서 강릉의 공군비행장 건설을 일부 맡아서 할 하청업체를 구한다는 정보를
얻게 된다. 소개를 책임진다고 하는 사람이 믿을만한 고향 선배라, 진혁은 솔깃해져서
일단 현장을 먼저 찾아보기로 한다. 정길이 퇴근하자 저녁식사를 하고나서 둘이 마주
앉았다. 현장에서 귀염을 받고 용접도 수준급이라고 반장이 칭찬한다는 말을 들어서
진혁의 마음이 흡족하다. 이제는 자신의 회사로 부른다 해도 한 사람의 몫을 충분히
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일하는 현장 분위기에서의 처신과 대인관계, 또 기술을 배우며
많이 성장한 정길이 못내 자랑스럽다. 내일 회사에 사표를 내고 모레부터 자신의
천진기업사 소속으로 일하라하며, 정길의 얼굴을 보자 기다렸다는 듯 반색을 한다.
문득 강릉의 현장에 같이 가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길은 요즘 하루하루가 너무 즐거웠다. 자신이 지연으로 인해 어엿한 남자가 된 것
같았다. 어린 남자이지만 어른으로 대우해주는 지연으로 인해 무언가 자신이 대단한
존재같이 느껴지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정길이 원하면 아무 소리 없이 몸을 열어주는
지연과, 정길 자신의 상대에 대한 신뢰와, 하나 된 밀접함으로 인해,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를 정도로 서로에게 취해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다. 하루라도 몸을
안 섞으면 무언가 손해를 본 느낌이 들고, 둘이 서로 바라보기만 하여도 불이 붙을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는 진도가 너무 앞서가고 있었다. 진혁의 첩 정희에게 들키지
않고 여기까지 이른 게 신기할 정도다.
“정길아 군사 혁명이 난 것 알고 있지? 그 혁명 위원장이신 박 정희 장군이 강릉공군
기지를 시찰 한다며 모레 그 기지에 온다는데, 같이 가볼래? 비행장을 대대적으로
보수한다고 하는데, 거기 공군 비행장 공사가 시작되면, 우리 회사도 일을 맡을 것
같다. 공사를 맡을 서울의 큰 회사에서 하청을 받는 거지. 내 고향 선배가 소개해서
아마 맡을 수 있을 것 같다. 한 일 년 반 정도 걸리는 공사가 될 거다. 맡게 되면
그렇단 말이지. 어때? 같이 가볼래?”
‘5, 16 군사혁명을 일으킨 군인이잖아? 대통령보다 그 분이 더 권력이 세다고 하던데,
보고 싶다.’
“갈려면 준비해라. 모레 오후에 출발하면 열흘 가까이 걸릴 거니까, 옷 하고
세면도구도 준비하고, 참! 작업복도 두 벌 정도 같이 싸고, 거기서 그 선배를 보고
내가 한다고만 하면 아마 곧 공사 준비하라고 할 거다. 우리 회사의 네 입사는 모레
일자로 한 것으로 할 것이니까 그리 알고 있어라. 아직은 회사 사람들이 몇 명
안 되고, 거의 노가다들이니 따로 인사하거나 할 필요는 없을 거다. 일이 잘 풀리면
넌 아예 거기에 남아야 할 것 같으니 유념해라.”
‘아버지 그렇게 서두르지 마세요! 나도 이제는 나 혼자가 아니 랍니다. 상의를 해야
하거든요, 저도 어엿한 부인이 있다고요! 히 히 히.’
“예, 갈게요! 지연이 누나와 저녁에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 못 지킨다고
말해야 되겠어요.”
‘괜히 갔다가 누나를 너무 오래 못 만나는 거 아닐까 몰라. 이 녀석 보채기 시작하면
참을 수 없기 때문에 곤란 한데.’
5. 16 군사혁명이 성공하자 박 정희 혁명위원장은 자신의 새로운 정치집단을 국가
재건위원회로 이름을 바꾸고 정권을 쥐게 되자, 경제와 국방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인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특히 국가방위에 관한 염려로 북한에서 가장 가까운 강릉
공군 기지의 복구와 확장을 결심하고, 그 현장을 찾아 폐허가 되어있는 강릉 공군
기지를 몸소 방문했다.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게 된 정길이 강렬한 지도자의
위엄과, 남자로서의 그의 절대적인 강인함에 이끌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존경의
염을 갖게 된다, 위대한 영웅의 정신을 정길이 감응 했다고 볼 수 있다.
‘저렇게 조그만 분이 장군님이시라고, 아휴! 장군이 아니고 영화에서 무슨 왕 보다
더 하네. 이상 한데? 저 작은 분이 왜 이렇게 크게 보이고 위엄이 느껴지지?
저분에게서 저분 자체의 빛이 나는 것 같네.’
한국의 유수한 대 기업들의 경쟁가운데, 선택된 현, 삼우 주식회사의 하청업체로
천진기업사가 결정되었다. 큰 업체의 그늘에 들어간다는 것은 앞으로 일거리 때문에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것이라 몇 안 되는 간부들이 좋아 했다. 삼척에서 큰 도시로
첫걸음을 떼는 것이라 회사의 전 전무도 마음이 들떴다. 지방업체로서 큰 회사의
눈에 든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강릉의 공군기지 근처 여관에 남아
있던 정길에게 며칠 간 삼척과, 서울에 다녀온 진혁이 기쁜 얼굴로 그 소식을 전하며,
공군부대 기지 안으로 같이 들어가서 여러 가지를 설명한다.
“정길아 우리가 이번에 배선, 배관공사와 레이다 기지의 부속건물, 또 활주로주변에
관한 시설 중 일부를 맡게 됐다. 아버지가 말하던 그 선배가 아는 회사라 힘을 써준
덕에 하청 받을 수 있었다. 잘됐지? 어려운 공사는 아니라서 좋은데, 큰 회사의 인정을
받는 것 외에 돈은 그다지 안남을 것 같아 그게 걱정이다.”
“예, 정말 잘 됐네요. 여기는 경치도 너무 좋은데요. 예? 그런데 왜 돈을 못 벌어요?”
“본사에서 앞으로의 정부공사를 따기 위해 입찰을 낮게 해서 수주를 했기 때문에,
우리 역시 공사단가가 낮아서 잘 못하면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너는 당분간
여기 있어야겠다. 저기 하고, 여기가 창고와 네가 잘 숙소 겸 사무실이다. 공사 발주한
회사에서 자재를 갖고 올 테니 네가 수령 장도 처리해야 하고, 자재도 받아서 지켜야
하니까, 아니 아니야, 너 혼자가 아니고, 경험 있는 사람 둘을 붙여 줄 테니 어려운
일은 익숙해질 때까지 그 사람들에게 배우면서 하면 된다, 알았지?”
‘경치 하나는 너무 좋다, 바다 쪽에 아직 철조망을 걷지 않아서 위험물을 제거하고,
철조망을 걷은 후에 가보려면 시간이 한참 후에나 되겠네.’
드디어 공사가 시작되었다, 당시만 해도 마땅한 일자리 구하기가 힘든 시기라 인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본사에서 보낸 감독관과 외국 감독관의 지시를 받아야
하고, 회사 자체의 기술자들도 관리해야 해서 아버지는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정길이 창고지기를 하면서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부수입이 생겨 입이 벌어졌다.
예전에 공군 근무병들이 집토끼 암수 두 마리를 기르다가 제대하면서 풀어 놓았더니,
공군기지 안에는 온통 토끼들의 세상이며, 기지 군데군데 작은 연못들은(폭격으로
인해 생긴 물두멍) 가물치와 미꾸라지로 가득해서 일군들의 간식 먹 거리로 부족함이
없었다. 거기에 적의 전투기의 공습과 폭격, 또 비행장을 적군에 빼앗겼을 때에
미군의 전투기들이 공중에서 사격한 기관총의 탄환들과, 땅 속에 묻혀있는 굵은
전선들은 값 비싼 부수입으로 인부들과 용돈으로 나누어 쓰기에 풍족했다. 물론
경비하는 헌병들에게 일정 분을 나누어 줘야 했지만 말이다. 당시에 구리는 무척
귀해서 값이 좋았다. 또 일군들이 헌병들과 친해져서 먹을 것을 서로 나누어 먹고는
했다. 인근의 마을 청년들이 일군으로 서로 들어오려고 경쟁이 갈수록 심해졌다.
‘이게 비행기 폭격으로 생긴 연못이라고? 가물치가 널려있네, 뭐야! 못을 구부려서
낙하산 줄의 실로 묶고 개구리를 통 째로 못 낚시에 꿰어서 연못가의 연 줄기에 감아
던져 놓으면 끝난다고? 차라리 밖에서 흙에 뒹구는 것을 몽둥이로 때려잡는 것이 더
빠르겠네, 잡아 보라고? 에 라 요놈아 한 대 맞아라. 어라? 요것 봐라!
어디 더 피해봐라, 에잇 이얏 와! 되게 빠르네.’
“저 나무 위에 있는 것도 가물치라고요? 무슨 물고기가 나무 위에서 낮잠을 다
자는 거야? 저 비린내 나고, 징그럽고 끈끈한 걸 어찌 먹는다고, 생각만 해도 비리네,
저 징그럽게 생긴 게 남자들의 정력제로 최고라고요? 후후후.”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요령을 알고 나니, 창고 관리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외우는 것은 본래 자신이 있었고, 일제와 미제로 수입품이 대부분인 물품명은 따로
한글로 적혀있어 구분해서 보관하니 배우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 능숙하게 입고와
출고처리를 했다. 진혁도 정길의 일하는 것을 보고는 만족했다. 창고를 본래 관리하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다른 부서로 가고 한 사람만 남았다 남아 있어 같이 관리하게
된 수철과 정길은 낮에는 별로 할 일이 없어 인부들이 거두어 놓은 총알이나 전선
들과,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공사 현장의 부서진 비행기 활주로의 주변을 돌아다니며,
고물을 캐 놓은 것들을 모아서 고물상에 팔아 짭짭할 정도의 부수입을 올렸다.
“수철 형, 많이 받았어? 이번에는 굵은 전선도 많이 있어서 구리가 꽤 많았었는데.”
“작은 사장님 여기 있습니다. 일군들의 십장들과, 본사의 파견 경비들에게 나눠 주고
나머지야 이게 전부다.”
“셋으로 나누어서 정문 경비대 헌병 반장에게 하나 주고, 채취한 인부들에게도 하나
주고 형하고 나하고 나눠가져요. 아직 많이 묻혀 있겠지요? 이거 돈이나 마찬가진데,
하하하 그렇지만 이런 게 무한정 땅 속에 있을 리 없지.”
“장비들이 들어와서 평탄 작업하기 시작하면 꽤 많이 나오겠지만 우리는 국물도
없다. 자기네들 끼리 다 해 먹겠지.”
“전투기 총알 뿐 아니라 전선도 많이 묻혀 있을 텐데, 차라리 우리가 장비를 빌려서
하는 게 더 낫지 않을 가요? 장비 빌린 값 주고도 많이 벌수 있지 않을까? 헌병대
사람들도 부수입이 많아져서 좋아할 텐데.”
“요렇게 조금씩 캐내 파는 것은 괜찮지만, 너무 많이 나온다면 소문이 나고 일단
국가 재산이라 반납해야 할 걸.”
“쳇! 그까짓 것이 나라에 얼마나 도움이 된다고, 그냥 일하는 사람들 간식이나 먹게
부수입으로 놔두지.”
“레이다 기지 건물공사도 다음 월요일부터 시작한다고 하던데, 기술자는 섭외가
다 됐고, 사장님과 간부들이 일을 시켜달라는 인근의 마을 청년들이 너무 많아서
골치아프신가봐. 주변 동네에서 서로 자기네 사람들 써 달라고 졸라서, 난리도
아니라고 하더라. 농사 지어봤자 식구들 의 입에 풀칠하기 바쁘니까 그럴 수밖에
더 있어? 이런 공사장 일은 그 사람들에게 일이라고 할 수도 없지.”
‘참! 누나한테 전화 해야지. 그런데 벌써 몇 번째인데 왜 안 받는 거지? 자주 안 해
화가 났나? 전화가 사무실 안에 있어 헌병대에 가서 하려니 얼굴이 화끈 거려 자주
못하는 건데, 벌써 통화를 해본지 오십 일이 되었어. 일 배우느라 정신없어서인지
요놈도 그간 얌전해졌네. 하하하 누나가 화낼 만도 하지, 안 되겠다 너무 보고 싶어서
갔다 와야지. 아버지에게 졸라봐야겠다. 다른 일이야 없겠지? 하하하 가면서 누나가
좋아할 만한 선물도 좀 사 가야겠다, 후후후 이 녀석이 벌써 알아들었네’
지연과 전화로 가끔 사랑의 밀어를 속삭였었지만, 요즘 바쁘다보니 통화를 너무 오래
안한 거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든다. 지연이 정길에게 먼저 전화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은 이유를 정길은 모르고 있었다. 실인즉 지연이 정길의 아이를 임신함으로 인하여,
정길과의 결혼문제를 상의 해보려는 생각에 정희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자, 정희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동안 두 사람이 정도에 지나치게 다정하게 지내서 조금은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진행 된 줄은 모르고 있었다. 지연이 요즈음 약간은
거칠어진 얼굴로 다니기에 왜 그런가? 어디가 아픈가? 했었던 생각이 났다. 여자의
직감은 무서운 것이라 지연의 그런 모습을 보는 순간 무언가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에,
따로 조용한 곳에서 자리를 함께했다. 지연의 임신 소식에 정희는 놀라서 펄쩍 뛰었다.
정길이 아직 어린 나이라는 것을 지연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것이, 이런 대형
사고가 날 줄은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 지연이 소리 없는 울음을 계속하는 동안,
정희는 두 사람이 함께할 수 없는 이유를 조목조목 들어가며 이야기 했다. 그걸
모르는 지연이 아니다. 정희가 잠시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리를 비우자, 한참을
허공을 쳐다보며 시름에 잠겨있던, 지연이 정희가 들어오자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을 상의한다. 결과는 자명한 것이다. 정길이 이 사태를 알면 소년의 치기로 무슨
일인가 저지를지 모르니, 당분간 연락 없이 지내면서 태아의 낙태 문제를 해결하고,
원주에 있는 지연의 언니 집에 가 있으면서 정길에게는 비밀로 하기로 했다. 지연이
그렇게 헤어지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을 정길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무언가
열중하면 다른 것은 잊어버리는 성격과, 갓 배운 술, 일군들 중의 사귄 친구들로
인해, 또 물품수령과 반출을 하느라 바쁘다 보니 시간이 흐르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지연의 말을 새겨서 들을 수 있는 정도로 조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남녀 관계에 대해
연애소설이라도 읽었었더라면, 지연이 왜 다급해 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눈치라도
채었으련만, 너무 어렸고, 직장생활 하느라 공부도 못하는데, 취미도 없는 책과는
거리가 멀었던 탓이다. 강릉에 있는 학원으로 옮기고 나서는 공부에 더 등한시 하게
되었었다. 진혁에게 삼척에 다녀올 핑계를 댈 궁리를 하고 있는데, 진혁이 먼저
정길을 찾아 창고로 왔다. 진혁은 당분간 삼척과 강릉에서 동시에 일을 해야 하는
관계로 몸이 고단했지만, 삼척의 일도 동업자에게만 맡길 수 없었다. 이것은 어쩔 수
없이 진혁이 담당해야 할 부분이었다. 집에 들어온 진혁에게 정희가 심각한 얼굴로
정길과 지연의 문제를 꺼냈다. 자초지종을 들은 진혁은 아들이 어느새 한 남자로
성장했다는 사실과, 이 일이 그들 두 사람에게 안 좋은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리 끝에 자신이 선수를 쳐 이야기 하는 것이 오히려 정길이 빨리 안정을
찾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별 것 아닌 듯 시치미 떼고 말해 보려는 것이다.
다음날 날이 밝자, 진혁은 다른 일을 제쳐두고 강릉 공군부대 현장으로 향했다.
삼척과 강릉의 공사보다, 자신의 아들 문제가 더 시급한 것이다.
“정길아 오늘 나하고 얘기 좀 하자. 너무 바빠서 너도 쉴 틈이 없지? 요전에 삼척에
다녀온다 했는데 보내주지 못해서 미안 하구나. 공사 자재가 모두 비싼 물건들이고,
한국에서 구하기도 힘든 것이라 곁에서 지키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어쩔 수 없었다.
자! 이쪽으로 와서 앉아라.”
첫댓글 잘~감상~~~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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