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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IQ․EQ․SQ의 조화 삶은 나와 너라는 사람이 서로 마주하고 지켜보며 주고받는 가운데 일어나는, 앎과 느낌으로 뜻하는 바를 창조하고 경험하며 성취하는 우리 사람들의 사랑게임이다. 나와 너가 어우러져 하나됨이 우리이고, 우리들 사람과 사람이 너랑 나랑 어우러져 하나됨이 사랑이며, 우리 사람이 서로 사랑하며 잘 어우러져 어떤 모순이나 충돌이 없이 알맞게 고루어지고 맞춰진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의 조화인 것이다. 조화(調和)는 이것과 저것이 서로 잘 어우러진 것을 말하는데 사랑하는 우리 사람들의 사랑게임인 삶이 조화를 이룬다는 뜻은 서로가 잘 어우러진다는 뜻이다. 완벽한 자아를 실현하는 것,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 훌륭한 사회적 성공을 거두는 것 등도 다 어우러지기를 잘해야 이뤄지는 것이다. 앞으로 21세기의 태평양시대를 주도하며 인류공영에 기여할 한국인 특유의 홍익인간 이념인 <한 사상>에서는 『하나가 셋(또는 여럿)으로 변화하여도, 셋이 어우러져 돌아가면 그 근본은 다 함이 없다』라고 하였으며, 『저마다 다른 셋(또는 여럿)이 모여 잘 어우러져 돌아가면, 저절로 근본인 하나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이것이 위대한 한국인의 천경신고(주: 천부경과 삼일신고라는 한 사상의 근본원리가 담긴 옛글)에 나오는 삼태극론(三太極論)이다. 셋 또는 여럿이 어우러져 하나됨이 이뤄지는 곳에는 조화의 삶․사랑․ 우리가 아름답게 꽃피고 열매를 맺는다. 『하나가 셋으로 나뉘어서 어우러지고, 셋이 어우러져서 하나가 된다』는 <한 사상>의 세바름대(三極) 이념에서 인류평화에 기여할 <한빛정도 홍익인간학> 이론이 정립되는 것이다. IQ라는 두뇌지능 또는 지능지수는 인간의 지적인 마음이 지각하고 인식하는 앎으로 지적현상이고 지성적인 판단능력이다. EQ라는 감성지능 또는 정서지수는 인간의 정적인 마음이 반응하고 경험하는 느낌으로 정적현상이고 감정적인 조절능력이다. SQ라는 성공지능 또는 의지지수는 인간의 의적인 마음이 의도하고 실행하는 뜻으로 의적현상이고 의지적인 추진능력이다. 지성적인 판단능력인 IQ는 참(眞)을 지향하여 본래의 자아를 발견하기 위한 것이다. 높은 IQ로 참나(眞我)와 참 이치(眞理)가 무엇인가를 깨닫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와 나의 삶을 어둠(無明)에서 빛(光明)으로 깨어나도록 하는 것이 IQ 학습의 목적이고 보람이다. 감정적인 조절능력인 EQ는 아름다움(美)을 지향하여 온전한 자아를 성숙시키기 위한 것이다. 높은 EQ로 아름다운 사랑과 아름다운 행복이 무엇인가를 느끼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와 나의 삶을 죽음(死亡)에서 살음(生命)으로 거듭나도록 하는 것이 EQ 학습의 목적이고 보람이다. 의지적인 추진능력인 SQ는 좋음(善)을 지향하여 온전한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높은 SQ로 좋은 성공과 좋은 세상이 무엇인가를 이루고 즐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와 나의 삶을 부족의 심리에서 풍요의 심리로 전환하는 것이 SQ 학습의 목적이고 보람이다. 빈곤에서 풍요로움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세 가지 Q의 개념에서도 밝혔듯이 IQ와 EQ와 SQ는 어느 Q를 버리고 어느 Q는 높여야 한다는 식으로 편견을 갖고 치우쳐서는 안 된다. 오직 조화를 이루는 것이 최선이고 최상의 정도(正道)다. IQ와 EQ와 SQ가 서로 하나로 어우러지는 균형잡힌 학습이 가장 바람직한 정도의 학습이며, 조화의 균형 속에서 상승효과가 확실하게 나타나도록 삼위일체식으로 학습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IQ와 EQ와 SQ의 어느 한쪽을 버리고 무시한다면 반드시 그곳에 엄청난 결격사유가 발생하게 된다. 예를 들자면, 열심히 학문에 정진해야 할 학생들에게 IQ를 버리고 EQ를 높여라, 학교의 우등생이 꼭 사회의 우등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그 가르침을 학생들에게 주입시킨다면 과연 학생들은 어떻게 될까? 물론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는 EQ적 인성교육을 중시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IQ적 학습에만 치우치지 말자는 의도라면 몰라도, 일방적으로 두뇌지능계발 학습을 버리도록 유도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심리학회가 주최한 <정서지수와 지능지수에 대한 오해와 이해>라는 세미나에서 숙명여대 하대현교수는 『IQ만으로 모든 재능과 성공 가능성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보완기능으로 정서지능 EI개념이 90년대 들어 등장했으나, 골먼이 “IQ가 사회적 성공을 설명하는 변량은 20%이며 나머지는 EI에 좌우된다”고 과장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고 발표하면서, 『EQ는 IQ에 대응해서 언론이 만든 용어일 뿐 이것으로 정서지능을 판별할 수 있다는 생각은 IQ가 곧바로 지능이라는 생각만큼 어리석다』 고 EQ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근래에 갑자기 사회일각에서 EQ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감성지능 계발이 두뇌지능에 우선하여 성공만능을 가져올 것처럼 선전하고 있는데, 성균관대 한덕웅 교수는 『정확한 연구없이 EQ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들이 많다』 고 염려하면서 『바람직한 인성을 갖추라는 EQ를 성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EQ의 개념에 반하는 일』이라고 지적하였다. EQ의 창안자인 샐로베조차 골먼의 EQ론에 대해 ▶ 끈기 낙관성 같은 개념을 기술하는데 EI를 사용하고 ▶ EQ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 EI의 요소들이 상호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잘못 해석하고 ▶ 개인진술로만 측정하는 점을 들어 우려를 표시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EQ 테스트의 타당도가 IQ의 20%선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일부학계의 시각에 기인하여 EQ를 외면하고 IQ에 대한 과신을 가져서도 안될 것이다. IQ가 높으면 성공하고 IQ가 낮으면 불행한 것이 절대로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인슈타인은 어린 시절에 낙제생으로 형광등이라고 놀림을 받고 자랐어도 상대성원리를 발견하고 노벨상을 받았으며, 미국의 대통령을 두 번이나 연임한 레이건도 머리가 좋아서 대통령이 된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의 가장 두뇌좋은 수재들만이 모인 서울대학 상대․법대생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저마다 출세하고 성공하여 행복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그들 중에도 한 평생 백수건달 실업자를 못 면한 사람들이 있다. 재수 삼수를 하고도 대학을 못간 낮은 IQ의 젊은이가 사회에 진출해서는 사업으로 성공하여 명문대학 상대 법대출신의 직원을 거느린 기업가들을 우리는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지능검사란 개인이 집단 내에서 어느 범위에 속해 있는가를 일러주는 상대평가이므로 IQ가 높다고 해서 그가 곧 모든 분야의 특성이 다른 집단에서까지 우월하다고 볼 수는 없다. 운동지능과 음악지능이 서로 다르듯이 두뇌지능과 감성지능도 서로 다르며 전문분야별로 IQ를 측정하는 방법도 다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주로 학교에서 받는 IQ검사를 가지고 우쭐대거나 기가 죽어서는 안 된다. 일반적으로 학교에서 실시하는 IQ검사는 학생이 영재냐 지체아냐를 판별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므로 평범한 학생은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학교에서 두뇌지능지수 IQ가 높다고 해서 언제나 일등만 하는 것도 아니다. 인구의 1% 이내로 추정되는 IQ 148이상 <머리 좋은 한국인들>의 모임인 멘사코리아(Mensa Korea)의 임시회장(1997년 3월)인 조각가 박태동(36)씨는 IQ 테스트에서 160을 기록한 수재인 데도, 동대문 중학교 때는 전교에서 20등 안에 들기도 했지만 한성고교 때는 70명의 학급에서 50등까지 밀리는 등 기복이 심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물론 지금만 IQ가 높은 것이 아니라 중․고교 때도 IQ는 140~150대를 유지했다고 한다. 『IQ가 높다고 모든 면에서 뛰어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데는 아무런 차이가 없고 다만 전문분야에서 어느 정도 두각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내 경우에는 조각작품을 만들 때 다른 사람들이 미처 생각해내지 못한 아이디어를 많이 발굴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수재 박태동씨를 통해 IQ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실을 지각하고 사고하는 지성과, 감정을 조절하고 경험하는 감성 두 분야가 잘 개발된 사람은 과연 어떨까? IQ와 EQ가 높은 사람은 모든 분야에서 완벽하게 앞서가고 성공하여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인간일까? 여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IQ와 EQ가 높으면 대개의 경우 IQ와 EQ가 낮은 사람보다 유리한 입장에서 자아와 가정은 물론 사회생활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그러나 두뇌지능과 감성지능이 높다고 해서 누구나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예를 들자면, 머리 좋아 명문대학 법대를 나왔고 인품이 좋아 언제나 원만하고 다정하며 어떤 경우에도 미소를 잃지 않는 집안 아저씨가 있다. 남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해결해 주는 그 아저씨는 IQ․EQ가 매우 높은 데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우등생은커녕 낙제생에 가까운 사람이다. 원만한 인품과 해박한 지식으로 남의 일이나 도와주고 문중(門中)일이나 살피는 아저씨는 자신의 가족들에게는 완전히 무시당하고 경원 당하며 남들이 도와주는 잔돈 몇 푼으로 궁핍하게 살고 있다. 이것을 볼 때 인간의 사회적 성공과 가정적 행복은 IQ와 EQ가 높다고 반드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라는 사실에 동의하게 된다. 역경을 극복하는 인내력과 새로운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추진력, 뜻을 세워 실천하는 의지력은 SQ에 해당하는 성공의지로써 IQ와 EQ가 높다고 하여 갖춰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영원히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으리라』 는 민주주의 지침을 연설하였고 『어떤 사람에게도 악의를 품지 않는다』 고 민중에의 뜨거운 사랑을 연설한 저 유명한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나, 병으로 두 살 때에 귀머거리 소경에 벙어리가 되었어도 <하겠다는 일념>으로 뜻을 세우고 훌륭한 문필가로 성공하여 남을 위한 사회사업까지 펼친 헬렌 켈러 여사 등은 성공의지지수 SQ가 매우 높은 위인들이었다. 자랑스러운 금호인으로 자랑스러운 한국인이기도 한 윤생진(1957년생)씨는 고등학교만 나오고도 자기 분야의 최고가 된 사람이다. 『저는 고등학교 때 성적이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에 애정과 흥미를 가지고 보다 나은 방법을 찾다 보니 방법은 하늘만큼 땅 만큼 무한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라고 말하는 윤생진씨는, 생산직장에서 하루에 7건씩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여 6년 동안 1만 5천 7백여 건이나 제안하였으니 참으로 에디슨을 앞지르는 대단한 것이었다. TV도 보지 않고 공부하고 연구한 그는 공장의 생산작업자에서 회장 부속실 간부사원으로 출세하였으며, 품질관리금상․석탑산업훈장․대통령금상 등 52회나 큰상을 탔고, 화목한 가정생활을 누리면서 <세계 최고를 향하여> 라는 책까지 펴낸 의지의 성공인이 되었다. IQ가 낮아도 EQ와 SQ를 높이면 누구나 자기 분야에서 최고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장애인도 SQ가 높으면 헬렌 켈러처럼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불우한 환경 속에서 몸무게 38kg의 1급 지체장애인으로 휠체어에 몸을 싣고 재수 삼수 끝에 제주대에 겨우 입학한 고운산씨는 93년 서울대 미대에 재도전하여 뜻을 이루고 <97년도의 서울대학 최우수 졸업생>이 되었다. 94년에는 아버지마저 뇌졸중으로 쓰러진 역경과 불운 속에서 그는 오로지 불굴의 성공의지SQ 하나로 극복하고 성취하였던 것이다. 얼마나 눈물겹도록 장한 일인가! 지금 여기의 나를 제약하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도 한 번 자신을 냉철하게 돌아다보고 생각해 보자. 두뇌지능지수 IQ와 정서지능지수 EQ와 성공의지지수 SQ는 반드시 서로 조화를 이뤄야 한다. 어리석은 짧은 생각으로 인간은 모름지기 IQ가 높아야 한다, IQ를 버리고 EQ를 높여라, EQ가 높아도 SQ가 낮으면 소용이 없다, SQ가 높아도 EQ가 낮으면 비인간적이라는 등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연구관점에서 다양한 이론과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IQ와 EQ와 SQ는 인간의 한 마음(一心)이 세 마음(三心)으로 작용하듯이 그 바탕(體)은 하나이나 쓰임(用)이 셋으로 나타난 것뿐이다. 그러므로 IQ와 EQ와 SQ는 하나이면서 셋이고, 셋이면서 하나인 <한 사상>의 세바름대(三極) 조화인 것이다. 상호 연관성을 지닌 유기적 관계로써 성공적 자아의 행복한 인생을 창조하는데 꼭 필요한 것들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도 안되고 어느 한쪽이 이지러져도 안 된다.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고 지탱하는 삼위일체 협력으로 시너지(synergy)효과를 기대하는 것이 가장 최선이다. 모든 지수Q는,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것이므로 올바르게 학습되고 다루어져서 ‘원만한 조화’를 이뤄야 한다. IQ․EQ․SQ가 하나로 어우러질 때 나와 너 우리의 삶도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이다. 자아의 앎IQ․느낌EQ․뜻SQ가 잘 어우러지면 자아가 지향하는 인생의 참(眞)․아름다움(美)․좋음(善)이 잘 어우러지므로, 자아가 원하는 삶을 뜻대로 지어내고 느끼면서 즐기는 것이다. 본서의 제3장에서는 IQ와 자아의 발견, 제4장에서는 EQ와 자아의 성숙, 제5장에서는 SQ와 자아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다루고 있다. 전체를 하나로 꿰뚫어 보는 지혜로 큰 깨달음을 얻어, 깨어나고 거듭나고 이뤄내는 자기의 삶을 의도대로 창조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