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밤하늘엔 저마다의 빛을 내며 모여든 별들이 소곤대느라 바쁘다. 그 유난스러운 소곤댐에 귀가 간지러워 소리를 따라갈라 치면, 이내 어느 빛좋은 베란다 창가에 다다르게 된다. 그집 창가에서 가만 귀기울여 보면 그곳으로 이끌어준 별 하나가 귀에 대고 살짝 소곤댄다.
“김석만.현정화씨 집에 새식구가 늘었대요. 우리, 서연이네 집으로 놀러갈래요?”
서연이 세상 빛보던 날
“고민하다 한소리 들을까봐 분만실에 들어갔어요. 아내가 네 번인가 힘주는데 순식간에 애가 쑥 나와 많이 놀랐지요.”
현정화씨 출산하던 날 분만실에서 있었던 김석만씨의 추억담이다. 탯줄 잘라주려고 분만실에 들어갔다가 순식간에 아이가 나와 처음엔 당황했다는 그는, 그러나 이내 한마디 덧붙인다. “얼마나 가슴뭉클하던지… 뭉클하다는 그 말이 정말 실감이 나던데요.”
자연분만하지 못할거라는 얘기들도 많았다. 정말이지 지쳐서 나중엔 수술생각까지 났다. 하지만 현정화가 누군가? 세계 최고의 탁구여왕이 아니던가. 악다구니로 버텨냈다. 남편 김석만씨도 그녀가 진통을 겪는 내내 곁에서 응원해주었다. 아내의 아픈 팔다리를 주물러주며 그들의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 그 벅찬 순간을 함께 맞이했다.
그렇게 김석만씨는 아빠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새 이름이 생긴 것이 김석만씨 뿐만은 아니다. 엄마라는 이름을 얻은 현정화씨, 할머니라는 이름을 얻은 김말순씨(현정화씨 모친), 그리고 서연이라는 고운 이름을 갖게 된 두 부부의 아이까지.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게 된 지금의 설레임 만큼이나, 앞으로는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해내야겠지. 그래서일까. 두 부부는 엄마, 아빠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그들의 보금자리를 가꿔나가고 있었다.
서연이 엄마, 서연이 아빠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다고 대뜸 말하는 현정화씨다. 하지만 서연이가 생긴 요즘은, 아이들이 모두 예뻐보인다며 느긋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서연이 엄마는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에 한번, 저녁에 돌아와서 한번 서연이에게 모유를 먹인다. 얼마전 무역센터 유아박람회서 분유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입수, 무조건 안먹이는게 상책이라고 결심한 그녀다. 그렇지 않아도 분유를 끊으려고 마음먹고 있던 터, 바로 이유식 단계로 돌입(?)했다고 말하는 그녀는, 아이의 일거수 일투족에 목숨거는(?) 영락없는 이웃집 아줌마다. 늘 여유로운 것만은 아니어서 자주 쓰지는 못하지만, 종종 훗날 서연이에게 남길 육아일기를 한자 한자 정성스레 채우고 있다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새내기 엄마의 풋풋함마저 느껴진다.
현정화씨는 서연이를 낳고 보니 어머니 마음을 그 어느 때보다 잘 알 것 같단다. 서연이 낳기 전부터 지금까지 집안일을 맡아 도와주시는 어머니가 계시기에, 아직도 탁구인으로서의 빛을 발할 수 있는 그녀다. ‘이런 마음으로 날 키우셨겠구나…’ 요즘 어머니에 대한 심정이 사뭇 예전과 다름은, 엄마가 되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애틋함이다.
그리고 서연이 아빠. 놀아주는 모양새가 이미 잡힐대로 잡혀 있어 심히 예사롭지가 않다. 딸사랑은 아빠라 하지 않았던가. 서연이와 놀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이 간이고 쓸개고 다 내주고 말 모양새다. 그만큼 딸사랑이 깊은 그다.
그는 아이가 잘 클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단다. 말없이 서연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 아직도 숫기없는 총각만 같은데, 아이사랑 아내사랑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리고 탁구사랑까지.
탁구 다시 시작하니 어때요? 라는 질문에, 내내 말없이 서연이만 보던 김석만씨의 말문이 트였다. 이윽고 줄줄 이어진다. 탁구얘기 나오자마자 얼굴에 이내 활기를 띠는 그는 천상 탁구인이다.
결혼하고 나더니 여유까지 생겼다. 조금은 무뚝뚝해 보이던 그의 표정이, 이젠 카메라 앞에서 썩 잘 웃기도 한다. 그러면서 “생활에 안정감이 생겨서 그렇다”고, 은근히 장난끼있는 투로 말한다.
알콩달콩 서연이네 사는 이야기
“우리남편요? 백점이에요, 백점~!!”
남편에게 거침없이 주는 후한 점수다. 어디 그뿐인가. 남편 자랑이 술술 막힘이 없다.
“장모님한테도 잘하고 우리 서연이한테는 더없이 좋은 놀이터에요. 다른 남편들하곤 얼마나 다른데요. 제가 밥할 땐 옆에서 설거지하고, 목욕갔다 오면 밥해놓고 기다릴 때도 있어요”
이쯤되면 신혼부부 못지 않은 금술의 위력을 엿볼만함직도 하다. 옆에서 듣기만 하던 김석만씨 더이상은 안되겠다 싶은지, “으이그, 자랑이다 자랑이야” 그러자 현정화씨 한술 더 뜨는 재치가 여간이 아니다. “그럼, 자랑이고 말고~”
결혼을 하고 나서 더욱 든든하고 안정된다는 그들 두 부부. 그렇게 서로를 감싸주는 보금자리가 있다는 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결혼생활의 매력이자, 그들을 하나로 묶는 힘이다.
두 부부는 종종 십년후의 계획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눈다. “십년 후에는 우리생활의 패턴이 달라져 있을 거에요. 외적이고 내면적인 모습 모두 한 단계 업그레이드 돼있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탁구라는 세상 안에서요.”
엄마 아빠가 서연이에게
서연아. 엄마 아빠는 서연이가 본받을 수 있는 좋은 엄마 아빠가 되도록 노력할거야. 우리 서연이가 예쁘게 자랄 수 있도록 늘 서연이 곁에서 지켜줄거고… 서연이가 커가면서 엄마 아빠랑 부딪치는 일도 많겠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 세 가족 사랑으로 똘똘 뭉치자. 서연이가 엄마 아빠 말도 잘 듣고, 몸건강하고 무엇보다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줬으면 좋겠어. 서연아‥ 엄마 아빠는 서연이 너무 사랑한다~!!
그리고 지금 서연이는 얼마전 아빠가 서연이를 위해 사온 꽃무늬가 화사한 침대에 누워 있다. 아직 조그맣기만 한 서연이에게는 침대라기보단 차라리 놀이방같다. 하지만 서연이가 조금 더 크면 색깔 예쁜 그 침대에 앉아, 누가 꽃인지도 모를만큼 어우러져 놀겠지.
탁구는 물론이고 서연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라면, 있는 힘껏 밀어주겠다는 서연이 엄마 아빠. 서연이가 어떤 꿈을 꿔나갈지 아직은 그들 부모도 모르지만, 그들같은 든든한 부모가 곁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서연이의 눈은 벌써부터 꿈꾸고 있는 듯 하다.
“결혼은 구속 아닌가요? 아직 매이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하던 스물일곱난 처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처녀와 사랑을 나누던 수줍은 총각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때 그 처녀는 지금 어느 노래제목처럼 아름다운 구속에 매어있는 것일까. 그런 구속이라면 세월을 담보로 영원히 저당잡혀도 좋기만 하겠지…
잘가라는 인사를 건네며 배웅을 해주는 서연이네 가족의 앞날에, 서연이 표정만큼이나 밝은 희망이 가득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