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림 노래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엄마는 무심한 시선으로 서걱거리는 대숲을 훑고 있었다. 간혹 힐끔거리며 눈치를 살피는 걸 보니 분명 할 말이 있는 듯한데 애꿎은 무릎만 툭툭 쳤다. 한참 뒤에야 큰어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맏딸이 편치 않은 것은 당신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내맡기고 목소리 한번 높이지 못하는 엄마가 못마땅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가슴에 참을 인忍자를 새기는 엄마를 보면서 나는 큰어머니를 향한 불평과 불만을 키웠다. 세월이 흘러도 데면데면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엄마는 큰어머니의 병문안을 대신 다녀와 주길 바라고 있었다.
방문은 밖에서 잠겨있다. “어딜 그렇게 가고 싶은 건지. 도무지 감당이 안 돼” 사촌오빠는 묻지도 않은 말을 혼자 중얼거린다. 어미를 가둔 자물통의 써늘함에 짐짓 마음이 쓰인 모양이다. 암팡지게 문고리를 물고 있는 걸 보며 ‘오죽하면’이라는 핑계를 속으로 해 준 참이다.
문을 열자, 서늘함이 감도는 어둑한 공간에 큰어머니가 앉아 있다. 아들이 세 번이나 부르고서야 창 너머로 향해 있던 공허한 눈을 천천히 돌린다. 초점이 흐린 무표정한 눈빛은 속이 텅 빈 매미껍질처럼 흐릿하다.
올케가 수박을 들여오자, 감독의 큐 사인을 받은 연기자처럼 찰나에 표정이 풀리며 손이 움직인다. -이것 좀 먹거라. 오랜만에 왔구만 차린 게 없어 어짜노. 야야, 점심은 먹었나? 부산스럽게 허공을 젓던 손이 덥석 내 손을 잡는다. 삭정이처럼 거칠고 푸석하다. 들어본 적이 없는 다정한 말투와 부드러운 눈빛에 잠시 당황하며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원래 까칠한 성정이라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가 치매란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중증에 접어든 즈음이었다고 한다.
어렸을 적, 농사철이나 제삿날, 명절이면 엄마는 며칠씩 큰집에서 일을 거들어야 했다. 정신 사납다며 흔들어대던 큰어머니의 손사래에 네 남매는 끼 때가 되어서야 큰집을 기웃거렸다. 살금살금 뒤뜰로 들어가 툇마루에 앉으면 엄마는 서둘러 상을 내왔다. 눈에 띄지 않게 좌우를 살폈고, 달그락거리는 숟가락 소리에도 가슴을 졸였다. 어린 마음에도 자존심이 긁혀 끼니를 거르고 싶었지만 동생들을 굶길 수는 없었다. 툇마루에 물 한 바가지를 올려주고 급히 자리를 뜨는 엄마의 뒷모습에 늘 목이 멨다.
마당엔 온통 음식 냄새가 진동했다. 한쪽에 걸린 솥단지 앞에서 큰어머니는 유려한 솜씨로 유과를 튀겨냈다. 반대기가 하얀 꽃처럼 피어나는 마법 같은 장면에서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얼른 나가라는 언짢은 목소리를 모른 척하고 갖가지 음식 판을 다 돌고서야 대문을 빠져 나왔다. 동백기름을 발라 올 하나 흐트러짐 없이 단정한 머릿결에 단단히 쪽을 틀어 은비녀로 굳게 채운 그니의 표정은 한겨울밤 달빛만큼이나 차가웠다.
-니는 시집은 갔제? 뜬금없는 질문이다. 지천명을 넘긴 지가 언젠데 시집이라니. -네, 시집갔지요. -그래, 아는 몇이고? -둘입니다. 아들 하나, 딸 하나 뒀습니다. -잘했네, 그래 어데 사노? -포항 삽니다. -같은 포항에서 어째 그클 안 들따 보노? 무심하기는. -죄송합니다. 먹고 사는 것도 바쁘네요. -그래, 바빠야 제. 사람이 안 바쁘면 되나. 순간, 시선이 얽힌다. 큰어머니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흐르고 있다.
눈빛만으로도 엄마를 제압했던 큰어머니가 눈살을 찌푸려도 어린 나는 꿈쩍하지 않았다. 큰집에 들어서면 큰아버지 옆에서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봤다. 과묵한 큰아버지가 간식을 요청하는 유일한 때이기도 했다. 곶감이며 유과, 인절미며 조청 등은 모두 나를 위해서였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음식을 내오는 큰어머니를 보며 우쭐하기도 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큰어머니가 꼼짝하지 못하는 유일한 사람은 늘 내 편이었다.
-그래, 잘 왔다. 니는 시집은 갔더나? 큰어머니는 처음인 양 질문을 해온다. 말투에는 그리움이 한껏 묻은 데다 한술 더 떠서 서운한 마음도 내비친다. 서로 간에 애틋한 기억이 없을 터인데? 서운함까지 드러내는 통에 어설픈 핑계를 찾아 덧붙인다. 반복된 질문에 똑같은 대답이 이어진다.
읍내 약국집 딸이었던 당신은 중매로 큰아버지와 연을 맺었다. 궁핍한 어촌에서의 결혼생활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친정과는 사뭇 다른 시댁의 환경, 어린 시동생을 책임지는 부담감까지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없는 살림에 자식은 왜 그리 낳느냐며 엄마를 타박했던 일 또한 그 모든 삶의 무게가 자신에게로 향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을지도.
-정아야, 니 시집은 갔나? 질문이 다시 시작됐다. 사촌 오빠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토라진 아이처럼 투덜대며 자리를 뜬다. 다시 대답한다. -네, 시집가서 아이 둘, 남매로 뒀습니다. -옳지 잘했다. 그래, 니는 어데 사노? 똑같은 타박을 들을 필요가 있을까. -네, 저는 서울 삽니다. 길이 멀어 자주 찾아뵙지 못하네요. 큰어머니 눈꼬리가 치오른다. -에잉, 가시나. 니 포항 사는 거 내 다 안다. 체머리가 크게 흔들린다.
순간, 폭소가 터져 나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치매에 시달리는 큰어머니와 내키지 않는 병문안을 온 조카가 마주 앉아 파안대소한다. 보이지 않게 그어진 경계가 순식간에 무너지고, 가슴에선 무겁던 누름돌 하나가 치워진다. 흐릿한 은매화 꽃잎이 얇아진 쪽머리 끝에서 달강거린다.
언젠가 수십 년을 마치 한 몸인 것처럼 당신의 뒤태를 지켜온 것이 은비녀가 아니라 짝퉁인 백동 비녀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적잖이 놀랐다. 꼿꼿한 목 뒤 풍성하게 말아 올린 뒷머리에 꽂힌 은비녀는 당신과의 경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징 같은 것이었다. 또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큰어머니와 나 사이에 세워진 견고한 벽이기도 했다.
치매는 이성을 죽이고, 본성은 도드라지게 한다는 말이 있다. 게다가 오랜 기억은 어떤 이유로 왜곡된 채 저장될 수도 있다는데 그니의 기억 속 나는 살가운 조카였을까. 팍팍한 환경은 동기간의 정도 메마르게 할 만큼 고단했을지도 모른다. 거짓말을 한 무안함에 큰어머니 손을 잡고 수박 한 조각을 건넨다.
하얀 쪽머리 아래로 주름 골이 깊다. 그 사이로 얼마나 많은 시련이 꼬깃꼬깃 접혔을까? 오랜 시간 단단히 굳었던 옹벽을 순간에 허물어뜨린 그 웃음은 약국집 처녀의 화사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따스하게 맞잡은 당신의 손 등에 핀 저승꽃이 짙다. 수박 한 입 베어 물자 큰어머니의 돌림 노래가 다시 시작된다.
-니, 시집은 갔더나?
계간『현대수필』 「134호 여름 」 발표
2026 『더수필』「가장빛나는 수필60」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