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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택전 蔡澤傳]
- 관상을 보다
채택은 연나라 사람이다. 여러 나라에 유학하면서 크고 작은 여러 제후에게 벼슬을 구한 적이 많았으나, 그를 등용해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당거唐擧를 찾아가 관상을 보면서 말했다. “제가 들으니 선생께서 이태李兌의 관상을 보고, ‘백일 내에 국가의 권력을 장악할 것’이라고 하셨다 하는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당거가 말한다. “있었지요.” 채택이 또 물었다. “저와 같은 사람은 어떻습니까?” 당거가 자세히 살펴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선생은 들창코에 어깨는 높이 솟아 있고, 얼굴은 넓적한데 코와 눈썹은 한 군데로 몰려 있으며, 무릎은 구부러져 있습니다. 내가 듣기로는 성인聖人은 외모를 따지지 않는다 하는데, 아마도 선생같은 외모를 가진 분일 겁니다.” 채택은 당거가 자신을 놀린다는 것을 알고 말했다. “장래에 부귀를 얻을 수 있으리란 건 제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제가 모르는 것은 남은 수명이니,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당거가 말한다. “선생의 수명은 지금부터 43년입니다.” 채택은 웃으면서 사례를 하고 떠났고, 문을 나선 뒤에 자신의 마부에게 말했다. “내가 좋은 음식에 맛있는 고기를 먹고 말에 채찍질하여 빨리 달리며, 품에는 황금 관인官印을 간직하고 허리에는 자줏빛 도장끈(인수印綬)을 묶고 군주 앞에서 읍하고 사양하는 예절을 취하며, 고기를 먹고 부귀를 누리면서 43년을 더 살면 충분하지.” 그는 당거에게서 떠나 조나라로 갔다가 추방을 당했다. 이어서 한나라와 위나라로 갔는데, 도중에 강도를 만나 밥짓는 솥까지 약탈당했다. 그러다가 응후應侯가 정안평/왕계를 추천했는데, 그들 모두 진나라에서 중대한 죄를 저질러 응후가 속으로 부끄러워한다는 소식을 듣고 곧 서쪽으로 진나라로 들어갔다.
- 범저를 만나 유세하다
채택은 진소왕을 만나려 했는데, 먼저 사방에 사람들을 파견하여 응후를 자극하여 노하게 만들려고 이렇게 떠벌이게 했다. “연나라의 유세객인 채택은 재능이 뛰어나고 변론에 탁월한 천하의 지혜로운 인물이다. 그가 진왕을 한번 만나기만 하면 진왕은 반드시 상국을 곤란하게 하여 상국의 관직을 빼앗을 것이다.” 응후가 이 소문을 듣고서 말했다. “오제五帝와 삼대三代에 관한 일, 제자백가의 학설은 내가 이미 다 알고 있는 일이다. 여러 유세객들의 변론은 내가 모두 꺾어버릴 수 있는데, 이 자가 어떻게 나를 곤란하게 하고 내 자리를 빼앗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는 사람을 보내 채택을 불러오게 했다. 채택이 들어와 응후에게 읍揖을 했다. 응후는 본래 불쾌했는데, 만나서 보니 거만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채택을 꾸짖어 말했다. “자네가 나를 대신해 진나라의 승상이 된다고 떠벌렸다는데,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는가?” 채택이 답했다. “그렇습니다.” 응후가 말했다. “자네의 견해를 들어보고 싶네.” 채택이 답한다. “허! 상국께선 어찌 그렇게 식견이 뒤떨어져 있습니까! 저 네 계절은 순서대로 임무를 완성하면 곧 떠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는 육체의 각 부분이 강건하여 손과 발은 민첩하고 귀와 눈은 밝으며 정신은 지혜로운 것, 이것이 어찌 선비들의 바람이 아니겠습니까?” 응후가 답했다. “그렇다.” 채택이 말한다. “인의 덕을 근본으로 삼고 의리를 지키며 도덕을 시행하여 천하에 자신의 뜻을 실현시키면, 온 세상이 그를 그리워하고 좋아하며 존경하고 사랑하며 존중하고 사모하면서 모두 그가 군주가 되기를 바랄 것이니, 이것이 말재주가 뛰어나고 지혜로운 사람이 바라는 바가 아니겠습니까?” 응후가 답한다. “그렇지.” 채택이 다시 말한다. “부귀하여 명예를 드높이고 만물을 잘 다스려 각기 알맞은 자리를 차지하도록 합니다. 생명은 장수하여 하늘로부터 받은 수명을 다하고 요절하지 않습니다. 온 세상이 그 전통을 계승하고 그 업적을 잘 지켜 영원히 전수합니다. 명성과 실제가 완전히 일치하고 그 은택이 널리 전해지며 단절되지 않고 대대로 칭송을 받아 천지와 함께 영원히 존속됩니다. 이런 것들이 어찌 도를 실천하고 덕을 베푼 증표가 아니겠으며, 성인께서 말씀하시는 상서롭고도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응후가 답했다. “그렇지.”
채택이 말한다. “저 진나라의 상군商君(상앙), 초나라의 오기吳起, 월나라의 대부 문종文種 등의 인물들과 같은 결말을 바라시는 것입니까?”
응후는 채택이 유세를 통해 자신을 곤경에 빠트리려 한다는 것을 알고, 다시 짐짓 궤변적인 말을 늘어놓았다.
어째서 안된단 말인가?
저 공손앙公孫鞅(상앙)은 효공孝公을 섬기면서 종신토록 두 마음을 품지 않았고, 공실公室을 위해 충성을 다하면서 사적인 일을 돌아보지 않았네. 형벌을 집행하는 기구를 설치하여 간사하고 사악한 일을 막았고, 상과 벌에 신용을 지켜 훌륭한 통치를 이룩했네. 내심을 다 드러내고 진심을 다했으나 원한을 뒤집어썼고, 옛 친구를 속여 위나라 공자 앙卬을 사로잡아 진나라 사직을 안정시키고 백성을 이롭게 했네. 끝내 진나라를 위해 적장을 포로로 잡고 적군을 깨트려 천리의 땅을 개척했지.
오기吳起는 초 도왕悼王을 섬기면서 사사로운 정으로 공실을 해치지 못하게 했고, 참언이 충언을 가리지 못하게 했지. 말을 함에 있어서는 구차하게 영합하려 하지 않았고, 행동함에 있어서는 억지로 환심을 사려고 하지 않았지. 위험하다 해서 행동을 바꾸려 하지 않았고, 의를 실천하면서 어려움을 피하지 않았네. 그런데도 군주를 패자로 만들고 나라를 강하게 하기 위해서 재앙을 사양하지 않았지.
대부 문종文種은 월왕越王을 섬기면서, 군주가 비록 곤경에 처해 모욕을 당했으나 충성을 다하면서 게으르지 않았지. 비록 군주의 대가 끊기고 나라가 망하려 했으나 능력을 다 바치면서 떠나지 않았네. 공을 성취하고도 자랑하지 않았으며, 부귀하고도 교만하거나 게으르지 않았네. 이 세 사람은 진실로 의리의 극치이며 충성의 모범이었네. 그러므로 군자는 의를 위해서 재난에 목숨을 바치고, 죽는 일을 집으로 돌아가는 것같이 여긴다네. 살아서 모욕을 당하느니 죽어서 영예로운 것을 택하네. 선비는 본래 몸을 던져 명예를 완성하는 것이니, 다만 정의가 있는 곳이라면 죽어도 후회하지 않네. 어째서 그렇게 할 수 없단 말인가?
채택이 말한다.
군주는 영명하고 신하는 현명한 것, 이는 천하의 가장 큰 복입니다. 군주가 현명하고 신하는 정직한 것, 이는 나라의 복입니다. 부친은 자상하고 자식은 효도하며, 남편은 신의가 있고 아내는 정숙한 것, 이는 가정의 복입니다. 그래서 비간比干은 충성을 바쳤으나 은나라를 보존하지 못했고, 오자서伍子胥는 지혜로웠으나 오나라를 보전하지 못했으며, 신생申生은 효도를 다했으나 진晉 나라에는 대란이 일어났습니다. 이들은 모두 충신이고 효자였는데, 나라가 멸망하고 혼란에 빠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현명한 군주와 현명한 부친이 있어 그들의 말을 들어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고, 그래서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군주와 아버지를 모욕하고 그 신하와 자식을 불쌍히 여긴 것입니다. 지금 상군/오기/대부 문종은 신하로서 그들의 행위는 옳은 것이었지만, 그들의 군주는 옳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는 그들 세 사람이 공을 세웠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좋은 세상을 만나지 못하고 죽은 것을 어찌 동경하겠습니까? 죽기를 기다린 이후라야 충성을 다하고 이름을 날린다면, 미자微子는 어진 사람이라 할 수 없고 공자孔子는 성인聖人이라 할 수 없으며 관중管仲은 위대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공적을 온전하게 성취하기를 바라지 않겠습니까? 목숨과 명성을 모두 보존하는게 상등上等입니다. 명성은 본받을 만하나 목숨을 잃는게 그 다음입니다. 명성은 욕되게 하고 목숨만 살아남는 것은 하등입니다.
그러자 응후가 채택의 말을 칭찬했다.
채택은 서서히 틈을 타서 기회를 이용하여 말했다. “저 상군/오기/대부 문종은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여 공적을 성취했으니, 흠모할 만합니다. 굉요閎夭가 문왕文王을 섬기고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을 보좌한 것이 어찌 충성스럽고 현명한 일이 아니었겠습니까?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따질 때, 상군/오기/대부 문종을 굉요/주공과 비교하면 누가 더 선망할만 합니까? 응후가 답한다. ”상군/오기/대부 문종은 그들만 못하지.“ 채택이 다시 말한다. ”그렇다면 승상의 군주께서는 자애롭고 인자함, 충신을 임용하고 옛 정을 깊게 생각함, 현명함과 지혜, 재능있는 인재들에게 정이 두텁고 친밀함, 의리를 추구하여 공신들을 배반하지 않음, 이런 점에서 진효공秦孝公/초도왕楚悼王/월왕越王越王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응후가 답한다. “어떤지 모르겠네.” 채택이 말한다. “지금 군주께서 충신을 가까이하는 것은 진효공/초도왕/월왕을 능가하지 못합니다. 승상께서 지혜를 발휘하여 군주를 위해 위태로운 국면을 안정시키며 혼란을 다스리고 군대를 강화시키는 것, 재난을 제거하고 우환을 극복하는 것, 토지를 확대하여 곡식을 심어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백성을 풍족하게 하는 것, 군주의 권력을 강화시켜 국가의 위상을 제고시키고 왕실을 빛나게 하여 천하의 누구도 감히 군주를 속이거나 침범하지 못하게 하여 군주의 위엄이 천하에 진동하게 하고 공적을 만리 밖에까지 빛나게 하고 명성과 광채가 천추만대에 전해지게 하는 것, 이런 점에 있에서 상군/오기/대부 문종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응후가 답한다. “내가 그들만 못하지.”
채택이 말하였다.
지금의 주상主上께서 충신을 가까이 하고 옛 정을 잊지 않으시는 것이 진효공/초도왕/월왕만 못합니다. 승상의 공적과 편애/신임/친근/총애 또한 또한 상군/오기/대부 문종만 못합니다. 그런데도 승상의 녹봉과 직위는 높고 많으며, 가산家産의 부유함은 그 세 사람을 뛰어 넘습니다. 그런데도 물러나지 않으시니 그 세 사람보다 심한 재앙이 있을까 걱정되고, 저는 마음 속으로 당신을 위해 위태롭다고 느낍니다.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태양은 한가운데에 오게 되면 기울고, 달은 차면 이지러진다.” 사물이 흥성하면 쇠퇴하게 되는 것은 천지의 보편적인 법칙입니다. 나아가고 물러나며 펴고 굽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것은 성인의 변함없는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나라의 정치가 ‘맑고 밝으면(청명淸明)’ 벼슬하고, 정치가 혼란스러워지면 은거한다.”고 한 것입니다. 성인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현명한 군주가 재위하면 세상에 나와 벼슬하는 것이 마땅하다.” “의롭지 않게 얻은 부귀는 내게 뜬구름과 같다.” 지금 승상의 원수는 이미 보복했고 은덕은 이미 보답했습니다. 심원心願이 이미 이루어졌는데도 변화에 대응하는 계책이 없으니 저는 마음 속으로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물총새/고니/무소/코끼리는 이들이 처한 상황이 죽음과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죽게 되는 것은 먹이에 유인되어 미혹되기 때문입니다. 소진과 지백智伯의 지혜로 수치를 피하고 죽음을 멀리하기에 부족한 것이 아닌데도 죽게된 것은 이익을 탐하여 멈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성인聖人은 예의를 정하여 욕구를 조절하고 백성들에게서 취하는 것을 절제하였으며, 백성들의 인력 동원을 때에 맞게 하고 백성들의 재물 사용에 일정한 한도를 두었습니다. 그러므로 목표는 과도하지 않았고 행동은 교만하지 않았으며, 늘 법도에 맞게 하여 어기지 않았고, 그렇게 하여 온 세상이 그 전통을 계승하여 단절되지 않았습니다. 옛날에 제환공이 제후들을 아홉 번 규합하여 천하를 바로잡았지만, 규구의 회맹에서 교만한 태도를 보이자 아홉 나라가 배반했습니다. 오왕 부차의 군대는 천하무적이었는데, 강대함을 믿고 제후들을 경시하면서 제나라와 진晉 나라를 모욕하다가 마침내 몸은 죽고 나라는 망했습니다. 하육夏育과 태사교太史噭는 한 번 호통치면 삼군三軍을 놀라게 할 정도였지만 평범한 사람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런 일들은 모두 (명성과 업적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자신의 처세가) 도리에 합당한지 돌이켜보지 않았기 때문이고, 자신을 낮춰 물러나며 검소하고 절약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재난입니다.
저 상군商君은 진효공을 대신해서 법령을 정비하고 죄악의 근원을 막았으며, 존귀한 작위를 취득한 자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고 죄를 저지른 자에게는 반드시 벌을 내렸습니다. 무게를 재는 도구를 균등하게 하고 길이와 부피를 재는 도구를 정비했고, 상품과 화폐를 조절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논밭 사이의 길을 제거하여 백성들의 생업을 안정시켰고 백성들의 풍속을 통일시켰습니다. 백성들에게 농경을 장려하여 토지의 효율을 극대화하였고, 매 가구마다 다른 일로 농업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도록 했으며, 농사에 힘을 써서 재물을 축적하게 하였고 전쟁의 진법을 숙달시켰습니다. 이 때문에 군대가 움직이면 영토가 넓어졌고, 군대가 쉬면 나라가 부유해져서 진나라는 천하에 적수가 없어져 제후들에게 위엄을 떨치게 되었고, 진나라의 패업을 성취했습니다. 공적은 이미 성취되었는데, 결국 거열형에 처해졌습니다. 초나라는 영토가 사방 수천리에 병사가 백만인데, 백기白起는 불과 몇 만의 병사를 거느리고 초나라와 전투를 벌여, 한 번 싸움에 언영鄢郢을 함락시키고 이릉夷陵을 불태웠으며, 두 번 싸움에 남쪽으로 촉蜀 지역과 한중漢中 지역을 병합했습니다. 또한 한韓과 위魏를 넘어 강력한 조나라를 공격하여 북쪽에서 조괄趙括을 생매장했으며, 40여 만의 병사를 도륙하여 그들을 장평長平의 성 아래에서 섬멸했습니다. 그들이 흘린 피가 강물을 이루었고 끓어오르는 (비명) 소리가 천둥이 치는 듯했습니다. 결국 조나라 수도인 한단을 포위하여 진나라가 제왕의 기틀을 다지게 했습니다. 초나라와 조나라는 천하의 강국이며 진나라의 원수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초나라와 조나라가 모두 두려워 굴복하여 감히 진나라를 공격하지 못한 것은 백기의 위세 때문이었습니다. 백기가 직접 항복시킨 성이 70여 곳이나 되었으니 공적을 이미 성취했는데도 결국 두우에서 검을 하사받아 죽임을 당했습니다.
오기吳起는 초도왕楚悼王을 대신하여 법령을 제정하고 대신들의 위세를 삭감했으며 무능한 자를 파면하고 무용한 자를 제거했으며, 직무에 꼭 필요하지 않은 관리를 줄이고 사사롭게 청탁하는 길을 막고 초나라의 풍속을 통일시켰습니다. 떠돌아다니는 백성들을 막고, 농사에 힘쓰고 전쟁에 용감한 백성을 길러 남쪽으로는 양월楊越을 정복하고 북쪽으로는 진陳 나라와 채蔡 나라를 병합했습니다. 합종 연횡의 관계를 깨트려 유세가들이 입을 열 수 없게 했고, 파당派黨을 금하여 백성들을 격려함으로써 초나라의 정치를 안정시켰으며, 군사력이 천하를 진동시켜 제후들이 그 위엄에 복종했습니다. 그러나 공적은 성취했지만 끝내 사지四肢가 잘렸습니다. 대부 문종文種은 월왕을 위해 원대한 계책을 제시하여 회계會稽의 위험을 벗어나게 함으로써 멸망의 위기에서 나라를 존속하게 했고, 모욕을 받았으나 영예를 성취했으며, 황무지를 개간하여 성읍을 충실하게 하고 토지를 개척하여 곡식을 심었습니다. 사방의 백성들을 통솔하고 상하의 역량을 단결시켰으며, 현명한 구천을 보필하여 원수인 부차에 보복하여 끝내 강력한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월왕으로 하여금 패자가 되게 했습니다. 공적이 이미 명확하게 드러났는데도 구천은 끝내 은혜를 배반하고 그를 살해했습니다. 이 네 사람은 공적을 성취하고도 떠나지 않아 재앙이 이러한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이른바 펼 줄만 알고 굽힐 줄은 모르며,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날 줄은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범려는 이런 이치를 알았기에 초연히 세속을 벗어났으며, 오래도록 도주공陶朱公으로 불리워진 것입니다. 승상께서는 저 도박하는 자들의 모습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어떤 사람은 돈을 크게 걸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나누어서 걸려고 합니다. 이런 일들은 승상께서 모두 분명하게 아시는 일입니다.
지금 당신은 진나라의 승상으로서, 의견을 제시해도 자리를 벗어날 필요가 없고 책략을 결정해도 조정을 벗어날 필요가 없으니, 앉아서 제후들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그 이익이 삼천三川 땅까지 이어져 의양宜陽 지역을 충실하게 합니다. 양장羊腸 비탈의 험준한 요새를 끊어 태항산의 길을 가로막고, 옛 범씨와 중항씨 땅의 길을 차단하여 여섯 나라가 합종하지 못하도록 하였으며, 잔도棧道는 천리에 걸쳐 이어져 촉 땅과 한중 땅까지 통합니다. 그렇게 하여 천하의 모든 나라가 진나라를 두려워하게 되었으니, 진나라의 바람은 달성되었고, 승상의 공로도 극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때 또한 진나라가 판돈을 나누어 걸어야 할 때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물러나지 않으면 상군/백기/오기/대부 문종의 말로와 같아질 것입니다. 저는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물을 거울로 삼으면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길흉을 알 수 있다.” {서경書經}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공적을 성취한 곳에서는 오래 머물지 말라.” 이 네 사람의 재난을 승상께서는 무엇 때문에 겪으려 하십니까? 승상께서는 어째서 이 기회를 이용하여 승상의 관인을 돌려주어 현자에게 양보하고, 물러나 동굴에 은거하며 시냇물을 감상하지 않으십니까? 그렇게 하면 반드시 백이伯夷와 같은 청렴한 명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고, 오랫동안 응후應侯의 작위를 누릴 것이며, 대대로 왕후王侯로 칭해질 것입니다. 허유許由나 연릉계자延陵季子(계찰季札)가 현인에게 양보한 명예나 왕자교王子喬나 적송자赤松子처럼 천수天壽를 다하는 것과 재앙으로 일생을 마친 이들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나을까요? 그러니 승상께서는 어느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연연해 하면서 스스로 떠나지 못하고, 망설이면서 스스로 결단하지 못하면 반드시 위 네 사람과 같은 재앙을 겪게 될 것입니다. {역易}에 “용이 가장 높은 곳까지 날아 올랐을 때, 내려가려 해도 할 수 없고 움직이면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올라갈 줄만 알고 내려갈 줄을 모르며, 펼 줄만 알고 굽힐 줄은 모르며,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날 줄은 모른다는 말입니다. 승상께서는 깊이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응후가 말했다. “훌륭한 말이오. ‘욕망만 있고 만족을 모르면 모든 욕망을 잃게 된다. 차지할 줄만 알고 멈출 줄을 모르면 차지한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말을 들었소. 선생께서 다행히 가르침을 주셨으니, 나는 삼가 가르침을 받겠소.” 그리고는 곧 맞아들여 좌석에 앉게 하고 상객上客으로 삼았다.
- 채택을 추천하고 사직하는 범저
범저는 며칠 후에 조정에 들어가 진소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최근에 산동山東(효산崤山 동쪽)에서 온 친구가 있는데, 이름을 채택이라 합니다. 이 친구는 언변이 뛰어난 변사辯士로 삼왕三王에 관한 일이나 오패五伯의 업적에 대해 잘 알며 세상의 변화에 통달해 있으니 진나라의 정무를 맡길 만합니다. 소신이 수많은 사람을 만나 보았으나 이 사람에 미치지 못하고, 신 또는 그만 못합니다. 신은 감히 보고하여 들려 드립니다. 그러자 진소왕이 불러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고는 크게 기뻐하면서 객경客卿에 임명했다. 응후는 병 때문에 사직한다면서 승상의 관인을 반환할 것을 청했다. 소왕이 강력하게 응후를 만류했지만, 응후는 병이 위중하다고 말했다. 범저는 승상에서 면직되었고, 소왕은 채택의 새로운 책략을 좋아하여 곧 진나라 승상으로 임명하고 동쪽으로 향하여 주 왕실을 멸망시켰다.
채택이 진나라의 승상이 된 뒤 몇 달이 지나 어떤 사람들이 그에 대해 나쁜 말을 했다. 채택은 피살될 것을 두려워하여 병을 핑계대고 승상의 관인을 반납했고, 진왕은 그를 강성군綱成君으로 봉했다. 진나라에 10여 년간 머물면서 소왕/효문왕孝文王/장양왕莊襄王을 섬겼고, 마침내 시황제始皇帝까지 섬기다가 진나라를 위해 연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3년 뒤에 연나라에서는 태자 단丹을 진나라에 인질로 보냈다.
[사마천의 평론(史遷評論)]
태사공은 말한다.
한비자韓非子가 “소매가 긴 옷을 입은 사람은 춤추기에 유리하고, 돈이 많은 사람은 장사하기에 유리하다.”고 했는데, 믿을만 하구나! 이 말이여. 범저/채택은 세상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유세객이다. 그런데 제후에게 유세하는 유세객들이 흰 머리가 될 때까지도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지음知音)을 만나지 못하는[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은 계책이 졸렬해서가 아니고 유세를 통해 성과를 얻을 조건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이들 두 사람이 타국 출신으로서 진나라에 들어가 앞뒤로 이어서 재상이 되어 천하에 업적을 떨친 것은 본래 국세의 강약의 차이 때문이다. 그러나 변사辯士들 또한 우연히 기회를 잡을 수도 있는 것이니, 능력있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이들 두 사람처럼 자신의 재능을 다 펼치지 못하는 이들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 두 사람이 곤경을 겪지 않았다면, 어떻게 분발하여 성과를 낼 수 있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