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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드러나고 이뤄진다
한 초등학생이 쓴 시(‘학교 가기 싫은 날’ 이하 잔혹시)와 그 시가 실린 시집(詩集 ‘솔로 강아지’)으로 인한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사회 윤리가 대립하기도 하고, 병리(病理)적 측면에서 분석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말과 글을 알고 특히 고상한 문학 작품을 이해할 만한 사람들 의견을 모두 들을 수는 없지만, ‘끔찍하다’는 반응이 더 많은 것 같다.
비판 여론에 밀려 출판사가 시집을 전량 폐기하면서 상황이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아이 부모의 소송과 취하가 이어지고, 몇몇이 시집 폐기가 우리 사회의 무지와 폭력 탓이라고 지적하면서 다시 복잡해지는 양상이다.
표현의 자유를 누구나 수용할 만하게 일률적이며 확고하게 규정할 수는 없다. 자신(들)을 비판(혹은 풍자)했다고 총을 쏴대는 부류나 파괴를 창조의 절대 조건이라고 떠드는 족속들까지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대와 상황, 그리고 여론에 따라 자연스럽게 결정되도록 방치하는 것이 최선일까? 우리가 잔혹시(시집 포함)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과연 그런 것이 있을 수나 있으며, 필요하기라도 할까?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미 거위(MOTHER GOOSE)’(이하 동요집)라는 서양 전래동요집을 들먹인다. 그 내용이 잔혹시보다 훨씬 끔찍한데도 수백년 동안 출판되고 있으며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고 강변한다. 서양 사람들이 잔혹해서 (그런 동요집을) 용인하겠느냐고 반문한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제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만큼 서양 작품(자장가!)이 절대적인가? 오히려 폭력성의 폐해가 드러난 단적인 사례로 그 동요집과 내용이 거론돼야 맞는 것 아닌가? 곧 죄악의 수렁에 빠지려고 하는 아이의 상태를 방치하고 타락을 조장하겠다는 속셈인가? 특히 괴물이나 짐승이 사람을 해칠 수도 있으니 ‘주의’하라고 가르치는 것과 자식이 부모를 찢어죽인다(혹은 그렇게 하자고 선동한다)는 것이 같다고 생각한다는 것인가?
그들은 또 잔혹시를 비판(난)하는 사람들이 시(詩) 혹은 문학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나무란다. 아이 부모는 숫제 증오와 저주를 퍼붓는다. 그 부모는 한 언론사에 보낸 ‘글’에서 ‘(이런 비판 탓에) 우리나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안 나온다’‘엽기 공포를 주제로 한 아동문학사에 의미 있는 동시가 한국에서 나왔다는 것을 유럽 미국에 알리기 위해 영어 번역도 했다’고 주장한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뜻은 저열하고 내용은 치졸한 데다 ‘글’의 최소 요건조차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 아버지는 변호사고 어머니는 시인이라는데 말이다. 그러니 이번 소란의 정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겠다. 자신들의 아귀(餓鬼) 같은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시를 써야 한다고 과외수업 시키듯 끊임없이 닦달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이가 오죽하면 그런 끔찍한 존속 살해를 생각했겠는가! 일본의 싸구려 잔혹 엽기문화가 상징하는 세계에 빠진 부모들이, 아이를 위협하고 유혹한 결과가 바로 잔혹시인 것이다.
‘생각하니까 존재한다’고 할 만큼 사람에게 생각은 중요하다. 오죽하면 ‘생각만 해도 죄(罪)’가 된다고 경고(警告)하겠는가. 사실 사람은 생각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생각을 중시(重視)하는 것은 바로, 말이 씨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고 또 말로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즉 사람은 생각하면 그것을 정리하고 말하고 실행하게 돼 있다는 것이다. 생각이라는 무형(無形)이 유형(有形)이 되고 결국 실현되지 않는가!
이번 소동과 관련해 확실한 것이 있다. 잔혹시에 표현된 것이 ‘사실의 전조(前兆)’라는 것이다. 천박하고 참혹한 현상이라는 일각(一角) 밑에는 상상하기도 두려운 퇴폐적이고 종말적인 생각이라는 거대한 빙산이 있는 것이고, 잔혹시는 그 작은 조각이 드러난 것일 뿐이다. 잔혹시가 좋은 작품이라고 찬양하는 패륜(悖倫)적이고 부박(浮薄)한 무리들에게 묻는다. 도대체 예술이 무엇인가? 권력자가 거대 도시를 불태우며 떠들어도 예술인가? 완벽한 조각을 만든다며 산 몸에 끓는 쇳물을 부은 것도 아름다운가?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고 완성한다며 집단 학살을 저지르는 자들도 선한가? 최소한의 논리와 윤리도 없이 그저 이름이 알려지고 돈벌이만 잘 하면 좋은가?
이번 사태를 보며, 언론 등이 경쟁적으로 어린애들을 동원하는 것이나 사회 전체가 관음증(觀淫症)·노출증으로 광분하는 것이 마침내 아동 매매의 파국적 상황에까지 이르렀다는 증거 혹은 징조는 아닌지 우려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 아이는 물론이고 부모 모두 즉각 정신과적 진단과 치료를 받을 것을 권한다. 그 어미가 아이에게 ‘앞으로 이런 시 짓지 마’라고 했다니, 파멸이 들끓고 있는 함정으로 들어가려는 아이에게 그저 ‘친절한 가르침’만을 내리는 꼴 아닌가. 참으로 두렵다. 과연 세상은 생각이 말씀이 되고 반드시 이뤄지는 것, 그 이치를 벗어나지 못하는 참혹한 결과가 우리 앞에 선연(鮮然)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 아닌가 말이다.
/sesan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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