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 인간의 실존적 문제
영화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는 아일랜드의 속담으로,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30분 동안이라도 천국에 가 있기를'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까 영화 첫 장면은 앤디의 행복한 부부관계의 모습이 나온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 부부는 행복했었다.
앤디의 아내가 뉴옥을 떠나기를 꿈꾸지만 않았어도, 앤디가 마약에 쪄들어 있지 않았어도 그들은 그래도 평범하게 살아가지는 않았을까. 앤디의 아내는 앤디에게 '평범한 삶은 싫다'며 어리광을 부린다. 앤디는 그의 재정 상태를 아내에게 말을 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아내 역시 남편에게만 의존하는 여성으로 나온다.
그런데 앤디의 아내는 행크라는 앤디의 친 남동생과 바람을 피고 있고 행크에게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대로가 좋다'는 말을 하며 행크와의 섹스를 즐긴다. 앤디와 행크가 만나던 시기가 딱 그 시점이 아닌가 싶다. 앤디의 아내와 행크가 섹스를 하던 그날 앤디는 행크에게 부모님 보석가게를 털자고 제안을 해온다.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부모의 가게를 턴다는 생각은 사실상 하지 말아야 했던 생각이었다. 아무리 돈이 궁하더라도 그 범행은 온전한 정신이 박힌 이들에게서는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 시놉시스에서는 행크가 친구 '바비'를 사건에 끼여들게 하여 불행이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60만불을 훔치려고 애초에 부모님의 가게를 털려고 했던 그 범행 계획부터 불행은 시작되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행크의 친구 '바비'는 가짜 총이 아닌 진짜 총으로 범행에 임하게 되었고 결국 그 시간에 우연하게도 어머니가 있었던 탓에 어머니와 바비는 서로의 총알에 의해 같이 죽게 된다.
그 뒤로 이 형제가 실수로 뿌려놓은 많은 증거로 인해 결국 바비의 아내 측근과 이 형제들의 아버지에게도 틀통이 나서 결국 앤디는 아버지의 의해 질식사로 눈을 감게 된다.
결국 비극이다. 아니, 그냥 비극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느낌이 살지 않는다. 아주 끔찍하다고 말할 만큼 소름이 돋는 영화다. 진중권 교수는 이 영화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기초하여 접근했다. 가령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다.
Tragedy too follows the very line of demarcation, in relation to comedy, for the later tends naturally to imitate men worse, the former to imitate men better, than the average.
(비극과 희극의 차이도 바로 여기에 있다. 희극은 실제 이하의 악인을 모방하려고 하고 비극은 실제 이상의 선인을 모방하려 한다.)
Tragedy, then , is an imitation of an action which is serious, I complete, and has bulk, its species separately in the parts of the play; with persons performing the action rather than through narrative [carrying to completion, through a course of events involving pity and fear, the parification of those painful or fatal acts which have that quality].
(비극은 진지하고 일정한 크기를 가진 완결된 행동을 모방하며 '쾌적한 장식을 가진 언어-율동과 화성을 가진 언어'를 사용하되 각종 장식은 '작품의 상이한 제 부분들에 의해 따로 따로 삽입된다-어떤 부분은 운문체에만 진행되고 어떤 부분은 노래에 의해서 진행됨을 의미한다'. 비극은 드라마적 형식을 취하고 서술적 형식을 취하지 않으며 연민과 공포를 환기시키는 사건에 의하여 카타르시스를 향하게 된다.)
Tragedy is an imitation not of men as such but of an action, a career, a man's happiness. [ and unhappiness lie in action] and the end of the story is a certain action, not qualities. The dramatic persons have certain qulities by virtue of their 'charaters,' but it is by virtue of I their actions that they are happy or the reverse. Hence they are not acting in order to represent their character; they include their characters (along with the actoin) for the sake of actions. Thus course of events, the plot, is the goal of tragedy, and the goal is most important thing of all.
(비극은 인간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 생애, 사람의 행복과 한몸인 것이다. 행동은 행복과 불행 사이에 놓여있고 이야기의 끝은 성질이 아니라 확실한 행동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들이 가진 성격의 힘에 의해 뚜렷하게 각인되는데 그것은 그들의 행복과는 반대로 행하는 행동의 힘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성격을 묘사하기 위해서 행동하지는 않는다-그들은 그들의 성격이 (행동에 따라) 행동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건, 플롯의 진행은 비극이 목표이고 모든 것의 가장 중요한 목표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지향하는 철저하게 짜여진 플롯에 의해서 영화는 만들어 졌다. 비극으로 향하는 어떤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의 비극은 너무나 안타깝다. 왜냐하면 부모님의 보석상에는 60만불보다 더 값이 나가는 다이아몬드도 분명 있을텐데 굳이 도둑질을 해서 이런 비극을 당해야 하는 것인가 때문이다. 만약 재정적으로 너무 어려웠다면 그것을 부모님께 말해서 빌리는 식으로 돈을 써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비극에서 그런 아픔을 당하는 인물들은 악한 존재들도 등장한다. 그런데 이 극과는 다르다. 시학의 내용 중에는 "비극은 실제 이상의 선인을 모방하려 한다."이다.
물론 영화가 더 비극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들 가족간의 애증 때문이다. 아버지와 앤디, 앤디와 엄마의 관계, 앤디와 행크, 또 아버지의 관계 이런 복잡한 가족관계로 인해 영화는 비극으로 가지 않아도 되는 문제이면서도 비극으로 가버려 안타까웠다.
1. 감독 : 시드니 루멧
광화문 씨내큐브에서 5월14일 개봉했다. 83세에 이 영화를 찍었다.
2. 연기파 배우들.
<다우트>의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배우이자 감독, 작가인 에단 호크,<더 레슬러>의 마리사 토메이,<에린 브로코비치>의 알버트 피니.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다.
3. 세계 주요 영화제 11회 수상, 12회 노미네이트.
4. Before the devil knows you're dead
MAY YOU BE IN HEAVEN HALF AN HOUR
BEFORE THE DEVIL
KNOWS YOU'RE DEAD
30분간은 천국에 있기를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전에
영화가 시작하면서 검은 화면에 하얀 글씨로 제일 처음에 뜨는 문장이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앤디(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와 지나(마리사 토메이)의 정사씬.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정사씬은 충격적이다. 둘은 매우 행복해 보이고, 영화는 바로 범행 하루 전날로 넘어간다.
악마가 죽음을 알기전 30분간의 천국, 그 순간이다.
아일랜드의 건배(?) 문구에서 비롯된 말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May you have food and raimnt,
a soft pillow for your head.
May you be forty years in heaven
before the devil knows you’re dead.
'너에게 의식주가 보장되길..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전에 40년간은 천국에 있기를...' 라는 뜻.
5. 시놉시스
마약 중독에 분식회계로 돈이 궁한 앤디(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그의 동생 행크(에단 호크)는 자녀 양육비조차 제대로 대지 못해 더 심각한 상태다. 그 와중 회계 감사에 압박을 느낀 앤디는 행크에게 부모님의 보석 가게를 털자고 제안을 하고, 역시 돈이 필요한 행크는 망설임 끝에 동의를 한다. 소심한 행크가 과격한 친구 바비를 끌어 들인다. 모든 비극의 출발점이다.
6. 장남의 비극
이 영화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가족관계다. 어찌보면 모든 비극의 시작은 가족관계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의 보석상을 털자는 생각을 한 앤디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해있는 장남이다. 잘난 자식보다 못난 자식에게 더 애착이 가는것이 부모 마음인지라, 마냥 아이같은 둘째 행크에게만 향하는 아버지의 사랑에 외로움을 느끼는 장남이다. 책임감이 강한 능력있는 첫째 아들이면서 가지고 있는 불만은 표출하지 못하는 비운의 인물. 그는 가장 불운한 장남을 대표하고 있다.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나고 아버지는 그동안 신경쓰지 못한점, 관심을 덜 준것에 대해 앤디에게 사과한다. 앤디는 돌아가는 차에서 "It's not fair!!"를 외치며 오열한다. 한 평생 외롭게 자랐는데 이제와 미안하다는 한 마디로 그 모든 것을 덮으려 한다는 것이, 그렇게 되는 것이 억울하다는 것이다. 보면서 괜히 같이 울컥했다. 정말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연기는 대단했다.
7. 결핍의 문제
앤디는 아버지에 대한 애정결핍이자 친구하나 없는 외톨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부부관계도 제대로 갖지 못한다. 앤디 동생 행크는 능력없고 우유부단한 소인배로 자신감 결핍이다. 게다가 그가 처한 재정적인 궁핍도 비극으로 치닫는 길을 여는데 한 몫한다. 앤디에게서 남편의 다정함을 전해받지 못하는 지나도 남편사랑결핍으로 행크와 관계를 갖는다. 앤디와 행크의 아버지, 찰스는 아내를 잃고 그에 따른 결핍감을 범죄자를 쫓는데 모두 쏟는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되고 아들을 죽이는 극단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너보다 아내를 더 사랑했다."는 마지막 말은 슬프면서도 잔혹하다.
8. 잘 쓰여진 드라마는 캐릭터가 이야기를 결정짓는다. 하지만 멜로 드라마에선 스토리가 캐릭터를 결정짓는다.
시드니 루멧 감독
9. 그리스 비극
영화를 그리스 비극으로 풀어냈다. 그리스 비극의 특징인 엘레오스(연민-상대의 아픔이 마치 나의 아픔인양 느끼는 감정)와 포보스(공포-나도 저런 비극에 처할 수 있다는 두려움)가 영화 전반에 깔려있기 때문에 관객의 입장에선 불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엘레오스와 포보스를 느끼는 이유는 주인공이 우리와 다른 악인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앤디를 악역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의 범죄 동기와 계획은 악인이라고 몰아붙이기엔 모자라는 면이 있다. 그의 계획은 아무에게도(보험사를 제외하고) 해가 되지 않는, 이상적인 범죄라고 할 수 있다. 돈이 정말로 급할 때 누구라도 생각해봄직한 범죄라는 것이 이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범죄는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고, 그것을 통제 못하는 앤디와 행크는 결국 파멸의 길로 접어든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이 팽배한 시대에 "너의 이야기가 될 수 있어"라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