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으로 제시되는 불교 장례문화
- 자연장, 수림장 정성운 불교환경연대 집행위원
부처님은 인도의 작은 마을 쿠시나가르에서 입멸하셨다. 애제자 아난다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로 가서 부처님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 주실 것을 간청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쿠시나가르의 살라숲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한 쌍의 살라나무 사이에 자리를 마련할 것을 명했다. 부처님은 숲속의 나무 아래에서 육신의 마지막을 맞이하신 것이다.
우리네 삶 역시 생을 마감하면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남은 이들에게는 고인을 흙으로 돌아가게 하는 방식의 문제가 남는다. 장례문화는 고인을 기리고자 하는 남은 이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매장을 하거나 화장해 유골을 강산에 뿌리는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장면이었으나, 산골(散骨) 역시 매장과 마찬가지로 환경문제를 남겨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여기에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장례법이 바로 수목장이다.
현대의 수목장의 역사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1993년 스위스인 전기기술자인 우엘리 자우터(Ueli Sauter, 65)는 오랜 우정을 쌓은 영국인 친구인 마이클이 세상을 떠나자 친구가 생전에 했던 말을 기억해 냈다. “죽어서도 너와 함께 하고 싶으니 내가 죽거들랑 스위스에 묻어 주시게.” 자우터는 친구의 말대로 시신을 화장했으나 유골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자우터는 고민 끝에 친구의 골분을 잘 자란 나무 아래에 묻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 고인이 된 산림학자 김장수 교수의 장례가 최초의 수목장으로 알려져 있다. 임학계의 거목이었던 김 교수는 평소 자신이 학생들을 가르치던 경기도 양평군 고려대 연습림의 가장 아끼던
참나무 밑에 잠들었다. 그의 묘소가 된 나무 아래에는 봉분도 비석도 없다. ‘김장수 할아버지 나무’라고 적힌 작은 명패만 나무에 걸려 있을 뿐이다. 「목포의 눈물」의 가수 이난영의 유해를 노랫말 속에 나오는 삼학도로 이장하면서 장례를 수목장으로 치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수목장은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명제를 실천하는 장례법으로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인간이 나무로 돌아가고 나무는 숲이 되어 다시 인간의 삶에 도움을 주는 순환의 섭리를 실현하는 장례법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수목장에 대한 관심은 불교계에서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미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영천 은해사가 일찌감치 ‘수림장’(
http://surimjang.co.kr/)이라는 이름으로 수목장을 마련해 일반에 분양하고 있다. 은해사는 박물관 뒷산과 일주문 주변 경내지 소나무 군락지 5만여 평을 수림장 지역으로 지정해 가족·부부·개인 단위별 수목장 희망자의 신청을 받고 있다. 장례 의식을 마친 후 명패를 나무에 다는데, 윗면에는 고인의 신원, 아랫면에는 유가족의 신원을 기록해 표시한다.
올해 5월 11일 개원한 기림사 수목장(
http://www.sumogjang.or.kr)은 경북 경주 함월산 자락에 자생하고 있는 수령 100년 이상의 소나무와 잣나무 등 토종 식생숲을 수목장으로 제공하고 있다. 최근 문을 연 강화 전등사 수림원(
http://www.surimwon.org)은 수백여 년 된 조선송 등 정족산의 자연림을 추모목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등사 수림원은 우선 100여 년 이상 된 나무들이 자생하고 있는 지역을 ‘미타지역’으로 지정하고 수령 100년 이상의 나무 200그루를 추모목으로 분양하고 있다. 이밖에도 남양주 흥국사가 사찰 내에 수목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영림사 수목장 등이 참여하는 ‘대한불교 수목장 보급회’(
http://www. sumogjang.co.kr)라는 단체도 생겨나 “수목장을 비롯한 모든 시설을 무료로 제공하겠다”며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월 3천원의 관리비 60년 어치를 선납해야 하므로 실제 비용은 200만원이 넘게 든다.
한 사찰 수목림장의 경우 개인목은 2백만 원, 부부목은 3백만 원의 비용을 받는다. 4위의 영가를 모실 수 있는 가족목은 6백만 원이다. 여기에다 관리비를 내야 하는데, 대개 연 5만원, 10년치를 선납으로 받는다. 사십구재와 천도재 비용은 별도다. 경기도의 한 사찰 수목장의 경우 홈페이지를 통해 “1위당 2백만 원 이상이며, 추모목의 수령 및 위치에 따라 상향 조정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기도 하다. 일부 수목장의 경우에 한정되지만, 거목 한 그루당 2천만 원에 분양되기도 한다. 이쯤 되면 수목장도 납골당이나 납골묘와 비용면에서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현대 수목장의 시발점이라고 앞서 언급한 스위스인 자우터 역시 스위스와 유럽에서 수목장 방식을 특허출원하고 수목장림 관리 기업인 ‘프리드 발트(Fried-Wald)’사를 설립했고, 이후 스위스 25개 주에 수목장을 조성했다. 친구와의 우정에서 출발해서 ‘영업’ 활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수목장은 대안이 될 수 없는가. 수목장은 우리나라의 장묘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대안이다. 또 유족과 고인이 만나는 지점으로 숲을 설정함으로써 최대한 친환경적인 장례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처럼 아무런 법적 규제도 없이 ‘나무 분양’에만 열을 올린다면, 제2의 공동묘지, 제2의 호화 부도탑묘가 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현재 상업적으로 운영하는 사설 수목장은 10곳에 이르며, 법적인 제한이 이뤄지기 전에 영업을 개시하려는 업자들도 상당수 있어 난립이 우려되는 현실이다.
시급한 것은 관계 법령의 정비다. 보건복지부와 산림청은 지난 11월 21일 불법 수목장을 강력히 규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현재 상업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수목장을 사실상 허용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시민단체의 반발을 사고 있다.
수목장과 관련한 대표적인 시민단체인 ‘수목장을 실천하는 사람들’(상임운영위원장 변우혁 고려대 교수)은 수목장을 묘지가 아니라 산림으로 보는 발상의 전환이 요청되며, 사설보다는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에서만 운영토록 하는 공영화, 이 두 가지가 반드시 관계 법령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산림 훼손을 막고 건전한 장례문화를 이끈다는 취지이다. 지금처럼 관계 법령의 미비가 지속되고, 산림으로 보는 시각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산림 훼손도 우려된다. 실제로 일부 민간업자들이 운영하는 수목장에서는 나무 주위에 돌비석을 세우는가하면, 참배로를 조성하기 위해 무단 벌목을 해 고발당하는 등 애초의 수목장 도입 취지를 외면하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납골묘 또는 납골탑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불교계에서도 관계 법령에 대한 검토와 의견 개진이 필요하다. 수목장의 근본 취지를 널리 알리고, 이에 걸맞은 모범사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사찰 경내 숲의 나무들을 고가에 분양하는 데 열을 올리기보다, 사찰의 숲을 신도들에게 개방하여 자연스럽게 고인이 부처님 품안에 영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우선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