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규 소천
소천일 : 2020.4.28.(화) 발인 : 2020.4. 30.(목)
장 지 : 순창읍 금화사
우리 친구 양승규가 2020년 4월 28일 가정에서 점심후 갑자기 심정지로 사망하였습니다. 양귀복친구가 카톡으로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27일에도 친구들과 언제나 만날까를 의논하였다는데 이렇게 아무 말도 못하고 갑자기 숨이 멎었으니 그의 죽음이 믿어지지 않고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가족들은 얼마나 황망하겠습니까? 심심한 위로를 드립니다.
우리가 항상 익숙하게 보아온 승규의 모습입니다. 4월 20일까지 우리에게 매일 아침 카톡을 보내왔었는데 이제는 보내지 않는답니다. 아니, 보낼 수가 없답니다.
미망인은 이경순님이고 양종원과 종혁 형제를 두었습니다. 종원은 박미숙과 결혼하여 양민욱 손자를 두었습니다. 둘째가 결혼을 하지 않아 편안하게 눈을 감기가 힘들었을 터인데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세상을 떴으니 어찌할까나!
친구들이 놀랍고 어수선하여 무슨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만 보내오고 있습니다.
중고등학교 카톡에도 모두다 놀라면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만 보내오고 있습니다.
문해원이 대표로 근조화환을 보냈습니다.
우리의 보모 양귀복이 부지런히 영안실을 들어다니며 심부름을 하고 있습니다.
양귀복 : 승규친구 빈소에 진례.광주친구들과 다녀왔습니다. 마음이 너무아팠
습니다. 친구님들 건강관리 잘하시기 바랍니다. 도채친구가 멀리 제주도에서 보내준 조화도 도착해서 자리를 지키고있었는데 깜박하고 카메라에 담지 못하고 왔네요.
양귀복 : 인순. 점자. 희종친구님께서 보내준 조의금 잘 전달했습니다.
고중록 : 우리 인생도 많이 달려 왔나봐 학교때 내리 같은 반이었고 지난번 무주여행에서 그리도 반겨 주더니만ᆢ 누가 생의 길고 짧음을 함부로 논할수 있겠는가
산 자 하루하루가 소중할뿐 친구여 다음 세상은 아픔없이 편안하게 지내기를 -
문해원 : 광주친구들 진례친구들은 장례식장다녀왔습니다 심정지가와서 우리곁을떠나갔습니다 안타안타깝습니다 건강관리잘합시다~~^^
서금숙 : 이렇게 봄볕이 좋은날 우리들 친구 양승규가 주민등록을 이전했습니다. 늘 다정했고 친절했던 친구 진심으로 명복을 빕니다. 광주 구호전 장례식장 발인 30일 순창금화사
구영숙 :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참말로 인생사 별거없네 참으로 좋았던 친구로 기억할 겁니다. 우리 인생이 다 되었다는 생각에 서글픔이 앞섭니다.
양승규가 최근에 보내왔던 카톡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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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승규가 보내온 카톡의 내용들 -
▪ 대구와 광주: 지방색
어제 MBC 뉴스에서 광주에 있는 사회복지단체가 대구 시민들을 위하여 마스크를 만들어 보낸다는 소식, 의료진이 부족하다니까 광주, 전남 의료진이 대구로 달려간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든 생각이다.
먼저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지역감정을 얘기하려니 나의 출신부터 밝혀야겠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성장했지만, 부모님은 경남 거창 출신의 경상도 토박이셨다. 서울서 60년을 사셨어도 “이를 우야꼬”라는 어머니의 사투리를 듣고 자란 사람이다. 거기다 가장 보수적인 교단 소속 교회에서 잔뼈가 굵은 3대째 모태 신앙인이다.
군대에서 병장 최고참이 경상도 출신일 때와 전라도 출신일 때 아래 것들이 당하는 것을 보았고, 그것들이 단체 회식만 하면 술에 취해 저지르는 폭력과 싸움을 보면서, 누굴 탓할 것도 없이 두 지방 모두 격하게 감정적이고 상당히 못돼 처먹은 인간들이라는 것을 느꼈었다. 나야 서울 출신 하사였기에 간섭 받지 않고 관망만 했지만 말이다.
나의 편견이 완전히 깨진 것은 미국서 공부를 마치고 10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서다. 군대시절 전두환이 전군에 배포한 김대중은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이고 빨갱이라는 안보교육 책자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분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다니! 이건 뭐지? 그때부터 나는 가정과 교회와 국가에서 지방색을 조장하는 얼마나 잘못된 교육을 받고 자랐는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미국에 살면서 종교적인 편협함과 우리만 옳다는 보수적 색채는 지워졌지만, 정치적인 균형 감각은 여전히 부족했던 거다. 그러고 나서 만난 노무현 대통령, 또 그렇게 허무하게 보낸 그 분은 내 생애 최고의 인간이면서 가장 쓰라린 손실이고 아픔이 되고 만다. (그 분만 생각하면 흐르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다.)
대구 신천지에서 코로나 사태가 확산된다는 소식을 처음 접하고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만약 광주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경상도 사람들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왔을까? 교만하고 권력욕에 찌든 일부 경상도주의자들의 평소 언행으로 유추한다면, “광주사태 일으킨 빨갱이들이 천벌을 받는구나,” “전라도를 봉쇄하고 폐쇄시키자,” “대구에 사는 전라도 사람들을 추방하자”는 말이 돌지 않았을까? 조갑제 같은 인간은 거론하지 않더라도, 바로 한 달 전에 광주 땅을 밟고 했던 전광훈의 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니 말이다. “전라도 사람들은 다 빨갱이다.” 이 말에 발끈 조차 하지 않고 웃어넘기는 광주 사람들의 여유를 생각해본다.
내가 겪어본 호남사람들은 그렇게 점잖고 온순하고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일 수가 없다. 5.18 광주민주항쟁에서 그처럼 억울하게 당하고 온갖 비난과 조롱을 들으면서도 38년 동안 나서지 않고 쉬쉬하고 살았던 정말 점잖은 사람들. 80년 5.18 이후 2개월 만에 입대한 나의 하사관학교 동기들 중 절반은 광주와 목포 병력이었다. 그들은 6개월간 동거 동락하는 훈련기간 동안 바로 몇 개월 전 그들의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대하여 나에게 단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그 당시 그들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아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런 아픔을 안고 40년 가까이 침묵하고 지낸 사람들.
이번 대구 신천지 코로나 사태를 접한 광주의 선한 사마리아인들이 고통을 함께 나누고 위로하고자 기꺼이 행하는 봉사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이번 기회에 대구 경북은 권력욕과 교만에 쪄든 지역이란 오명에서 벗어나 좀 더 겸손해지고 좁은 지역의 틀을 뛰어넘어 국가를 위해 제대로 선택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물론 나는 출신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고 개인마다 다르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도 이 내용은 정말 오랫동안 하고 싶은 말이었다. 대구경북 뿐 아니라, 지금 나라가 망하라고 발악을 하는 전국에 퍼져있는 사람들은 사악한 정치꾼들과 쓰레기 언론이 조장하는 가짜뉴스의 장단에 춤을 춘다는 사실을 하루빨리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지금 정부가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를 바로 알 수 있는데 왜 그게 안 되는 것일까?
🌹☘ 험담이 주는 상처 ☘🌹
어느 날
한 청년이 무척 화가 난 표정으로 들어와
화단에 물을 주고 있는 '아버지'에게 다가왔습니다.
“아버지
정말 나쁘고 어리석은 녀석이 있어요.
그게 누군지 아세요?”
그러자 아버지가 아들의 말을 막았습니다.
“잠깐
네가 남 이야기하려면 세 가지를 자문해야 한다.”
어리둥절해진 아들이 되물었습니다.
“세 가지요?”
첫째,
“아들아 네가 하려는 이야기가 모두 진실이냐?”
아들'은 머뭇거리며 대답했습니다.
“글쎄요, 저도 전해 들었을 뿐인데요”
그렇다면,
두 번째 “선(善) 한 내용이냐?
그 이야기가 진실한 것이 아니라면
최소한 '선'한 것이어야 한다.”
“글쎄요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운 것 같은데요”
그러면 세 번째로
“너의 이야기가 '꼭' 필요한 것이냐?”
아버지의 물음에 아들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자 아버지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네가 이야기하려는 내용이
'진실한 것도', '선한 것도', '꼭 필요한 것도'
아니면 그만 잊어버리거라”
또한
중요한 것은 남 이야기는
그 사람이 바로 옆에 있다고
생각하고 해야 된다.
타인에 대한 험담은 한꺼번에
세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욕을 먹는 사람과 욕을 들어주는 사람,
그리고 가장 심하게 상처를 입는
사람은 험담을 한 "자신"이다."
첫댓글 부처님 오신날 순창읍 금화사 절로 떠나게 되었네요. 코로나로 꼬옥 갇혀있다가 황금 연휴라고 모두들 어디론가 떠난다는데, 친구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는군요. 아무 말도 못하고 떠났으니 하고싶은 말이 얼마나 많을꼬. 그 말을 하기 위해 저승길을 어이 갈까나. 슬프고 슬프다. 친구여, 살아있는 사람들이 뒤돌아 보이제. 아쉬어 말게나. 살아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라도 살더라고. 자네가 보내준 카톡을 자네의 말로 알아듣고 살아가려네 69살이었네. 아홉수를 넘기지 못했구만.
아쉽고도 아쉽네. 자네의 사진을 카페에 올려놓았어. 보고싶을 때 마다 와서 보려네. 이 사진은 우리 귀복이가 찍어서 보내준 것이라네. 자네도 여기 카페로 들어와 함께 하세나. 자네가 그렇게도 사랑했던 사람들이 모두 자네의 죽음을 아쉬어 하는구만. 당연하제. 그렇게 갑자기 가면 못쓰제. 다음은 또 누구 차례랑가. 참으로 하루하루가 금싸라기처럼 느껴지는구만. 우리도 부지런히 나머지 일을 하려네. 잘 가시게나. 뒤돌아보면서, 안녕, 안녕,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