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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 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 지라 둥근 수레바퀴 붉음을 내 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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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2: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
1.하나님의 풍성하신 긍휼
하나님을 움직이게 만든 것은 그분의 크신 긍휼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자기의 구원을 두고 공로 화 시켜서는 안됩니다.
이 큰 긍휼히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원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긍휼에 대한 소망이 있었습니다.
저들은 송아지나 양의 피로 속죄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소나 양의피는 사람의 죄를 씻지를 못합니다.
부패한 피는 죄를 씻을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짐승의 피로 속죄를 드리면서 아브라함의 후손 메시야가 오시면 자기들을 죄에서 구속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이었던 우리는 이런 소망도 없었습니다.
깜깜하였습미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더욱 넘치는 찬양을 드려 야 하겠습니다.
2.사랑
(1)성별 되는 사랑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벌을 받지 않는 이유는 사랑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비가 풍성하였습니다.
많은 민족 중에서 저들을 선택하여 제사장의 나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이 연약한 사람의 모습을 하시고 오셨습니다.
그분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폭포수와 같은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 폭포수 와 같은 은혜 가운데서 누구나 그 은혜를 받아 복으로 만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들 눈에 뵈는 모습으로 임재 하셨건만 사사건건 트집입니다.
단 창녀,어부,세리등 몇몇만 예수님을 친구로 사귀었습니다.
이런 큰 은혜를 배척한 저들의 이마에는 배은망덕함에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폭포수 같은 은혜가 임하는데 은혜받는이가 적음을 기이히 여깁니다.
그리고 그 중에 내가 은혜 받았음에 감격합니다.
(2)먼저 사랑하신 사랑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 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예화]
(엡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1.사람은 보은하기는 커녕 쉽게 은혜를 잊기에 바울이 삽입구에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바울은 우리가 허물로 죽은 우리라고 다시 한번 강조 합니다.
허물이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것,
가지 말아야 하는 곳을 가는 것을 허물이라고 합니다.
죄와 허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이라고 하면 육체적인 죽음을 의미하나
여기에서는 죄와 허물로 죽은 이라고 하였기에 영적인 죽음을 의미 합니다.
죄란[하말티아] 화살이 과녁을 벗어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적중된 삶을 살지 못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품지 말아야 할 생각을 품고
해야 할 일은 안하고 품어냐 할 생각은 품지 못하고
이런 것을 죄 라고 합니다.
영적으로 죽어버린 인간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사랑의 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수행할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또한 사람 속에는 선함이 하나도 없으며 마귀의 지배를 받고 조종을 받아서
산다고 하는 길이 죽음의 길이요
선한 일을 한다고 한 것이 도리어 마귀를 돕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마귀의 발아래 가슴과 머리등 온 몸이 짓 눌려 있을 때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죽어버린 우리는 생명으로 충만한 오직 한 곳으로 가야만 합니다.
생명이 충만한 그 곳!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으로 충만한 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가는 길은 예수 외에는 없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즉시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는 살아났습니다.
다시 살리셨다는 것은 우리들의 영적인 부활 입니다.
육체의 부활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날 우리의 썩을 몸도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때 즉시 거듭 났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상태가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바라보고 장성한 믿음의 분량을 얻기 위하여 달려가는 것입니다.
(엡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함께 라는 단어가 세 번 등장을 합니다.
영적으로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고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지옥에서 천당으로]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은 우리의 현실 적인 삶이 아무리 고달프고 어려워도 달라진 이 신분을 생각함으로 감사 찬송하는 일을 중단하지 말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골 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 3: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골 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
취었음이니라
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위엣 것을 생각하여 봅시다.
[1]우리의 시민권은 저 하늘에 있습니다.
(빌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마귀와 다를바 없고 짐승과 다를바 없던 우리를 저 영화로운 곳에 이르게 하시고 거룩한 천사들 틈바구니에 앉게 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를 일입니다.
[상호 아버지, 미군 부대 잡부이면서도 그것을 자랑하더라]
미국의 시민권을 얻으려고 얼마나 노력들을 합니까?
그 나라의 국민이 되면 나라로부터 여러 가지 혜택과 보살핌이 있습니다.
권리가 있습니다.
반면 의무도 생깁니다.
[2]천국입성의 확실성
우리 머리되신 예수그리스도가 확실히 저 하늘에 앉으셨습니다.
머리와 몸은 분리될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미 하늘에 앉게 된 것입니다.
비록 이 땅에서는 개구리처럼 기어다니고 거지 나사로처럼 살지는 몰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성경은
(딤후 2: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
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어느 회사원이야기]
우리는 바울 때처럼 예수 믿는다고 옥에 갇히거나 로마원형극장에 끌려가 사자의 밥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 몇 십 키로만 가면 되는 북한처럼 예수 믿는다고 공개 처형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개 적으로 이런 시험을 당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이다.
그러나 나는 예수 믿기 때문에 주일 성수를 하여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술 담배를 안 합니다.
이렇게 고백하여야 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고백함으로 세상적으로 손해를 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늘의 새 생명으로 거듭나고 주님과 함께 왕노릇 할 재목들인 고로 고난도 감사히 감내 하여야 합니다.
[웨슬레의 천사같은 마음과 알렉산더 초상화]
(엡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를 보고 타인들도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하나님의 비파와 하나님의 수금이 되어야 합니다.
조그마한 미풍에도 아름다운 소리가 울려 나오는 민감한 하나님의 악기들이 되어야 합니다.
자그마한 것에도 감사가 넘치는 사람이 되는 하나님의 악기가 됩시다.
또 한편 다른 사람이 우리의 삶을 보고 찬양하는 악보가 됩시다.
세세토록 여러 세대가 우리의 생애를 보고 찬양을 하게 만듭시다.
우리 선진 중에 모세의 삶이나 다윗의 삶을 보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사무엘 다니엘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의 삶을 보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입어 하나님을 잘 섬겼는지요
세세토록 저들의 신앙을 인하여 하나님에게 찬양을 돌리고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자기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아들 삼아 선교사까지 만드신 분이십니다.
손 목사님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풍성한 은혜와 성결과 사랑의 풍성함을 부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분은 세세토록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만드는 훌륭하신 하나님의 악보가 된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 같은 경우 천년이상이 흘렀지만
그의 참회록을 보면 그 에게 역사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이지 않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어찌나 놀라운 언어와 정신으로 하나님을 찬양을 하였던지 목석 같은 사내도 몇 장 만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하나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찬양하며 변화된 삶을 사는 사람의 글만 읽어도
세세토록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하게 합니다.
여러분 우리도 동일한 풍성한 은혜를 받았으니 우리의 후세 대대로 우리를 생각할 때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합시다.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은 선물을 주시는데 하늘도 놀라고 땅도 놀랄만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또한 장래 예수님처럼 영화롭게 만들어 주시고
영생불사 낙원에서 행복을 누리도록 하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선물을 거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유에 나오는 왕의 초청을 거절하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다른 무엇인가에 배불렀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거식증]
병중에는 걸식증도 있지만 거식증도 있습니다.
이 병에 걸리면 모든 음식을 거부합니다.
종국에는 영양부족으로 죽는 무서운 병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들이려면 가난한 마음이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침노를 하는 사람이 빼앗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분은 적극적으로 은혜를 받기 위하여 은혜의 자리에 나갑니다.
반면 배부르고 거만한 마음은 은혜 받는 자리에 나오라고 권면을 하면 싫어하고 귀찮아합니다.
[라오디게아교회]
교회도 그렇습니다.
세상 적으로 너무 배가 부르면 하나님을 멀리 합니다.
그 교회는 물질적인 부요가 영적인 부요인줄 착각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책망을 들었습니다.
(계 3: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
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계 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
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계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계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
지 못하도다
(계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
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
심을 내라 회개하라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
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
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 3: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교회도 배가 부르면 예수그리스도를 밖으로 내 몰아 버립니다.
필요를 느끼지 못 합니다.
사람이 은혜를 받으려면 하나님에게 무엇인가를 기대 하여야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모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하나님을 멀리 합니다.
교회 예배에 나가야 되느냐고 반문을 합니다.
주일 낮에 한번 참석하여 졸아 주는 것도 목사를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난한 마음을 주십니다.
영적인 교만과 거짓된 포만감에 빠져 있을 때 부족함을 느끼게 합니다.
가난으로 때려 하나님을 찾게 만드십니다.
어느 때는 질병으로 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게 만드십니다
그러면 그때는 깨어지고 가난한 마음이 되어서 자원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합니다.
오늘 본문에 구원도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는 사람만이
이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을 넓죽 받아먹는 사람만이 믿음을 가지고 영생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자기에게서 조금이라도 구원받을 소망이 있다고 느끼면 믿지를 못합니다.
그 참회록이 왜 그토록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유도하느냐 하면 성 어거스틴이 자기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며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요 오로지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는 정신으로 글을 썼기 때문입니다.
오늘 새벽 예수님을 믿는 분만 아멘 합시다,
여러분은 그러므로 가난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하나님이 주신 분들입니다.
그 가난한 마음을 끝까지 잘 지키십시오.
우리의 구원이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인고로
하나님만 찬양하도록 합시다.
하나님에게 돌려야 할 영광의 한 호리도
내가 취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엡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자랑]
[1]자랑에 대하여 성경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를 자랑하다 보면 교만하여 지기 때문입니다.
얼굴이 잘나면 얼굴자랑
머리가 좋으면 지식자랑
노래를 잘하면 목소리 자랑
기도를 많이 하면 기도자랑
그렇게 되면 교만하여 집니다.
바울은 자랑을 하는 것을 어리석은 것으로 간주합니다.
고린도 교회에 할례를 자랑하는 사람이 생겨났고 족보를 자랑하는 사람이 있을 때 에 바울은 자기를 변호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고후 11:16)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
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나로 조금 자랑하게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고후 11:17)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없이 자랑하노라
(고후 12: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
리라
자기가 사도임을 드러내기 위하여 삼층천에 다녀온 것을 소개를 하고
(고후 12:11)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내
가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나 지극
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2]우리는 무엇을 자랑하여야 합니까?
1.자랑하여야 할때는 약한 것들을 자랑합시다.
(고후 11: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그러고 바울은 자기의 고생한 것을 자랑합니다.
이렇게 약한 것들을 자랑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렇게 약한 것들을 자랑하면 무엇이 유익합니까?
(고후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내가 연약하여 지면 그때가 주님이 강력하게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설교자들은 설교 전 까지 전할 내용이 없어 초조하다가 강단에 서면 폭포수 같은 은혜가 임하엿다고 합니다.
쿨만 여사는 자기가 피곤하고 지쳤을 때 하나님이 가장 능력을 강하게 나타내셨다고 합니다.
2.예수님을 자랑합시다.
고후 10:17)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찌니라
구약의 예레미야 선지자도
(렘 9:2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렘 9: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2]오늘 본문은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에 잇다고 말씀하고 잇습니다.
1.자기에게 구원받을 조건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여기면 온전히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2.내것을 비워야 하나님의 것을 채울 수 잇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묵은 술과 섞어서는 안됩니다.
내 공로 + 하나님의 은혜 이런 것은 없습니다.
내 입을 넓게 열어야 채워 주시듯 입에 뭐가 잇으면 채워 질 수 없습니다.
(엡 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
1. 하나님은 정성을 다하여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첫 사람은 뱀의 미혹으로 하나님의 작품을 망쳐 놓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망쳐진 작품을 더 멋있는 작품으로 재창조를 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아무리 뛰어난 화가도 백지에 자기의 작품을 만들기 더 편하지 망쳐진 작품은 예술품으로 다시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천지를 만드실 때는 하나님이 손가락으로 만들었다고 표현을 합니다.
(시 8: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
을 내가 보오니
그러나 전도되어 영혼이 거듭나는 것은 여호와의 팔이 필요하다고 표현을 합니다.
(사 53: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엡 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
1.하나님은 정성을 다하여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첫 사람은 뱀의 미혹으로 하나님의 작품을 망쳐 놓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망쳐진 작품을 더 멋있는 작품으로 재창조를 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아무리 뛰어난 화가도 백지에 자기의 작품을 만들기 더 편하지 망쳐진 작품은 예술품으로 다시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천지를 만드실 때는 하나님이 손가락으로 만들었다고 표현을 합니다.
(시 8: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
을 내가 보오니
그러나 전도되어 영혼이 거듭나는 것은 여호와의 팔이 필요하다고 표현을 합니다.
(사 53: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2.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시되 예수 안에서 창조 하셨습니다.
죄된 나를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을 박아버리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을 시키셨습니다.
3.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창조되었는데 선한 일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엡 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① 이 말씀은 예전에는 선한 일을 하기에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선은 지극히 순수한 선입니다.
이기주의가 없습니다.
오직 주님으로부터 불붙은 사랑 때문에 행하는 선행입니다.
② 주님으로부터 지으심을 받은 새 피조물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주고 얻은 새 작품이요
값비싼 희생을 치르고 만든 작품이 아닙니까?
주님은 어느 선행은 하고 어느 선행은 등한히 하라고 명령을 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오히려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
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말씀하셨고
(마 25: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마 25: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
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
느니라 하시니
우리는 구약의 성도들 보다 더 거룩하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만일 저분들이 우리가 받은 은혜를 받았다면 더 큰 일을 하였을 것입니다.
③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선행을 할 수 있는 감동, 능력까지 예비하였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선한 열매를 맺으시는 분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며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더욱 겸손하여야 합니다.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분들은 그 원인을 어서 찾아서 선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 무디의 결심
무디 선생이 세상적인 사업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헌신하기로 하는 경위를 알고 있다. 그가 보스톤 어떤 가게에서 일할 때였다. 그가 시카고에 갔었을 때 교회에서 긴 의자 몇 개를 빌려다가 길거리에 내어다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의자에 앉게 하였다.
그러면서도 무디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 그것은 장로들이나 하는 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동안 그러한 일을 계속하는 가운데 주일 학교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무디는 처음에 숫자만 채우면 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숫자 채우기에 힘썼다. 그래서인지 학생은 1,000명 가까이 모이게 되었고 그 많은 학생을 지도하기에 노무 무거운 짐이 되었다. 학생이 1,200명에서 1,500명에 이르게 되자 기가 나서 의기가 양양해지기도 했다 한다. 그러나 그 많은 학생 중에 한 사람도 중생하는 아이들이 없었고 중생하는 아이들이 없기 때문에 염려하였다. 그런데 주일 학교에는 여자 반이 있었는데 그 여자 반은 거의 천한 모습의 여자아이들이었다.
어느 주일날 그 반의 담임 선생이 앓아 누웠다. 그래서 무디가 그 반 아이들을 맡게 되었다. 2반 여학생들은 무디의 얼굴을 보더니 깔깔대고 웃어 버렸다. 그 때 무디는 문을 열고 쫓아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보기도 싫었다. 그 다음주일에도 2반의 담임 선생님이 무디가 일하고 있는 가게에 찾아 왔었다. 그 선생님은 몹시 창백해 보였고 매우 편찮은 것 같아서 "어디가 아프십니까?" 하고 물으니 그 선생이 "나는 각혈을 했는데 의사가 말하기를 내가 더 이상 미시간 호수에서 살수가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나는 뉴욕주로 갈까해요. 저는 죽으러 집으로 가는 것이요, 그리고 여지껏 주일 학교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그 중에 하나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지를 못 했어요." 이 말을 무디는 이때까지 이러한 대답은 들은 적이 없었고 그 선생의 대답에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그 후에 무디는 이렇게 대답했다. "선생님 만일 선생님이 학급에 가셔서 지금 느끼고 계신 심정으로 학생들을 심방하면 큰 변화가 있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마차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그 여선생은 무디의 제안을 받아들여 함께 출발을 하였다. 마차를 타고 여학생들을 방문하여 학생들을 불러내어 그의 영혼에 대하여 열심히 이야기 해주었는데 이번에는 웃지 않고 잘 들었다. 그 여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학생들의 눈에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선생님이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고 우리와 같이 기도시간을 갖자고 말하면서 무디에게 기도를 시켰다. 그때 무디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하나님께 한 소녀의 구원문제를 놓고 기도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계속 다른 학생들의 집으로 방문하였다. 그 여선생은 힘들어 2층까지 올라가서는 숨이 차서 헐떡거리면서도 학생 하나를 만날 때마다 진지하게 자기가 방문한 목적에 대하여 설명하여 주었다. 학생들은 이내 회개하여 구원을 얻었다. 그 여선생님이 더 이상 심방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무디는 그를 하숙집으로 모셔다 드렸다. 그 다음날 또 계속했다. 심방을 다하고 여선생은 집으로 떠나는 날이 되자 그 날 저녁에 학생들을 모아 놓고 기도하는 모임을 가졌다.
그 여선생님이 요한복음 14장을 읽고 설교를 간단하게 하고 돌아가면서 기도를 했는데 그 때 큰 감명을 받았다.
그때 밖으로 무디가 나와서 혼잣말로 이렇게 고백하였다. "오 하나님 오늘밤 내가 받은 축복을 잃은 다면 차라리 죽게 하여 주옵소서."했다 한다.
그 다음날 여 선생님은 뉴욕으로 떠나게 되자 정거장으로 학생들은 모두 나와서 환송을 하였다. 서로 헤어지기 전에 노래를 불렀다. 그 죽어가던 선생님과 마지막 작별을 할 순간에 이르렀을 때 그 선생님은 기차 승강구 계단에 나와서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면서 학급 학생들에게 이 다음 하늘에서 만나자는 모습을 보는 순간 이때부터 무디 선생은 사업에 흥미를 잃게 되었고 상업을 하는 것이 싫증이 나게 되었다.
새로운 세계의 맛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는 돈 버는 일은 나에게 잃게 되었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헌신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엡 2: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과거를 생각하라]
1.은혜를 망각하지 맙시다.
[보싸미 이야기 ]
과부 팔자 양반집 딸 총각 보쌈하여다가 하루밤 재우고 죽임
백사 이항복 여인이 몰래 탈출시켜줌
늙어서 사례함
김 대감의 집안과 ...300년을 사이좋게 지냄
전북 임실 오수면에 오수 비가 있다.
2.과거의 비참함을 생각하라
정죄의식과 회개의 열매는 다릅니다.
마귀는 구원받은 성도에게 와서 너 구원을 받지 못하였다 라고 정죄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쫓아버려야 합니다.
성령은 오셔서 겸손하게 만드시기 위하여 나의 부족함과 과거의 허물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주 과거의 죄를 기억함으로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고 자기를 부정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
[할례 당이 아니었다.]
1.할례를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영적인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1)아담이후의 모든 씨가 저주를 받았고 부정함을 제거하여야 된다는 교훈이 있습니다.
(2)본래 있던 것에서 잘려지지 않으면 거룩하여 지거나 순결하여 질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할례를 통하여 인간이 별 볼일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닳아라! 는 의미요
이방인에게는 우리는 할례도 못 받았으니 하나님에게는 더욱 갈만한 가치가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어 겸손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성례]
1.세례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세례를 통하여 나는 죽어 마땅한 죄인이요 씻김을 받아야 하는 죄인임을 고백하는 수단이 됩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모든 죄가 씻음 받았다는 표식입니다.
이미 모든 죄가 씻겼기에 하나님 존전에 그것이 기억 되거나 그것으로 형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치는 수단입니다.
또한 세례를 통하여 예수님과 연합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표 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었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 것을 마음으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표식을 갖는 행위입니다.
제 개인적인 견해로 침례를 받아야 더욱 생동감이 잇을 것 같습니다.
2.세례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첫째는 믿음에 도움이 됩니다.
둘째는 선언입니다.9마귀에게 서 놓여난 예)
3.성찬에 있어서도 성찬은 왜 하는 것 입니까?
4.성찬을 떼면 무슨 유익이 있는 것입니까?
(엡 2: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
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엡 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방인]
1. 이방인들은 예수 밖에 사람입니다.-노아의 방주에 아무리 훌륭한 박사라도 잘생긴 배우라도 죽듯이 ...
2.이스라엘 백성은 특혜를 받았는데 -상관 없는사람
3.언약 밖의 사람들 이었습니다.-예수 안에서만 성취됨
4.세상에서 소망이 없었습니다.
★ 세계 종말을 위한 소망이란 책을 쓴 홀 린세이는 그의 저서 서두에 이렇게 말하였다. 인간은 음식 없이 40일을, 물 없이는 3일을, 공기 없이는 8분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소망이 없이는 단 1분도 살 수 없다.
★ 위를 쳐다보고
어떤 두 사람이 죄를 지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같은 감방에 있으면서 철장을 붙들고 밖을 내다보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은 언제나 하늘을 쳐다보며 시 창작에 몰두했습니다. 푸른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쳐다보면서 주옥같은 싯글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 사람은 언제나 땅만을 바라보며 원망과 불평으로 하루하루를 지냈습니다.
비가 오면 진흙창이 되는 땅을 보고 원망하고 또 날이 개어도 항상 먼지만 자욱하게 일어나는 땅을 바라보면서 자학하며 자신을 파괴했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흘려 이 두 사람은 각각 출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을 보면서 아름다운 싯귀를 지은 사람은 한번의 시집을 출간하는 생의 보람과 환희를 맛볼 수 있었고 땅을 바라보며 자신을 학대하던 사람은 정신분열증을 일으키다가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처참한 상황속에 놓이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엡 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엡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허시고
[평화의 주님]
1.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다음 인사- 샬롬
제자들에게 전도하라고 명령하시고 난후 평안을 빌라
우리의 직책은 무엇입니까?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
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
셨으니
(고후 5: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
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우리는 평화하게 만들어 주어야 하며 화평하여야 합니다.
그 비결은 무엇 입니까?
★ 외정시대에 두 젊은 사람이 연락선을 타고 부산항에 도착했습니다. 부산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여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청년은 서울이 가까워지자 얼굴에 소망과 평화에 넘치는 얼굴인데 발로 그 옆에 있는 청년은 서울이 가까워지자 이상하게 당황하고 안절부절하고 있습니다. 이유인즉 만면에 웃음을 짓든 청년은 일본에 건너가서 피나는 고생 중에도 부지런히 노력을 하여 성공을 하였습니다. 많은 돈을 벌어 고국 부모 친척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돈을 가지고 집도 사고 땅도 사고 공장도 여러 곳에 지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을 떠나 서울에 있는 부모 친척 친구들을 만나게 되니까 그렇게 기뻐하고 한 울 쌍을 짓는 청년은 일본에서 잘못하여 흉악범으로 서울에 가서 사형 집회를 받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인생이 살아가는 생활 가운데 어떤 사람은 우리의 종착역인 죽음이 가까울수록 만면에 평강과 기쁨이 충만하지만 어떤 분은 죽음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얼굴에 울 쌍을 짓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고 평강을 얻으십시오.
2.화평이 깨진 이유
죄 때문 입니다.-아담하와의 예
자범죄등으로 평화를 상실함
3.예수님의 보혈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 부자간을 화목시킨 어머니
어느 지방에 외아들을 키우는 집이 있었는데 어찌 어찌하여 아버지와 아들이 원수가 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아버지와 같이 못 살겠다고 대판 싸움을 하고는 집을 나가 버렸다. 그 중간에서 가장 괴로움을 겪는 사람은 어머니였다. 한편은 남편이고, 한편은 자식이니 이러 지도 저러치도 못하는 가운데 어머니는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몇 년이 흘러가도 집 나간 아들은 돌아올 줄 모르고 소식조차 없었다. 그래서 그 어머니는 슬픔을 견디다 못해 중병에 걸려 죽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죽기 전에 아들을 꼭 보고 싶은데 남편은 "그 녀석이 집에 돌아오면 이번에는 내가 보따리를 싸서 나간다"고 하였다. 아들은 아들대로 "아버지가 집에 있는 한은 안 오겠다"고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내가 마지막 죽는 마당에 네가 보고 싶으니 내 소원을 들어다오. 너희 아버지는 그때 집에 안 계시도록 할 테다." 그리고 남편에게는 "당신은 내가 부르기 전에는 저쪽에 계시면서 절대로 내 곁에 오지 마셔요"하고 부탁을 해놓았다.
어머니의 편지를 받은 아들은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풀어 드리기 위해 집에 돌아왔다.
아들이 어머니를 보고 어머니의 손을 잡는 순간 어머니는 남편을 불렀다. 그러자 아들이 아버지를 안 보려고 손을 빼려했다. 어머니는 있는 힘을 다해 아들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남편의 손을 잡아다가 아들의 손을 맞잡게 했다. 그래도 남편과 아들은 등을 돌려 대고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손과 남편의 손을 얹어 놓고 "하나님 내 제물 위에 이 원수된 아비와 아들이 화목하게 하여 주시옵소서"하는 기도를 마치고 눈을 감았다. 갑자기 어머니의 팔이 사르르 풀어지자 등만 돌리고 있던 아버지와 아들은 어머니의 시체 위에 동시에 얼굴을 묻고 통곡하였다. 그때부터 아들과 아버지는 서로 용서하고 화목하게 되었다.
4. 성도간에 화목
(엡 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선물이 선물되려면 받는 사람이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1. 이방인들은 예수 밖에 사람입니다.-노아의 방주에 아무리 훌륭한 박사라도 잘생긴 배우라도 죽듯이 ...
2.이스라엘 백성은 특혜를 받았는데 -상관 없는사람
3.언약 밖의 사람들 이었습니다.-예수 안에서만 성취됨
4.세상에서 소망이 없었습니다.
★ 세계 종말을 위한 소망이란 책을 쓴 홀 린세이는 그의 저서 서두에 이렇게 말하였다. 인간은 음식 없이 40일을, 물 없이는 3일을, 공기 없이는 8분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소망이 없이는 단 1분도 살 수 없다.
★ 위를 쳐다보고
어떤 두 사람이 죄를 지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같은 감방에 있으면서 철장을 붙들고 밖을 내다보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은 언제나 하늘을 쳐다보며 시 창작에 몰두했습니다. 푸른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쳐다보면서 주옥같은 싯글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 사람은 언제나 땅만을 바라보며 원망과 불평으로 하루하루를 지냈습니다.
비가 오면 진흙창이 되는 땅을 보고 원망하고 또 날이 개어도 항상 먼지만 자욱하게 일어나는 땅을 바라보면서 자학하며 자신을 파괴했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흘려 이 두 사람은 각각 출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을 보면서 아름다운 싯귀를 지은 사람은 한번의 시집을 출간하는 생의 보람과 환희를 맛볼 수 있었고 땅을 바라보며 자신을 학대하던 사람은 정신분열증을 일으키다가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처참한 상황속에 놓이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메시야 작곡자 헨델 우리가 사진을 보면 알 듯이 - 가발을 썼다.
이발소 에 갔다가 연주하러 갔는데 가발을 놓고왔다.
연주때가 가까워 오자가발을 놓고 온 것을 알고 발만 동동거림.
이때 이발소 아가씨가 가발을 가져 왔다.
너무 예뻐 아무리 봐도 예뻐 결혼하고 싶은 생각마져 들었단다.
헨델은 이 아가씨에게 자기가 친히 작곡한 곡을 친히 써서 선물로 주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아가씨 악보를 볼 줄 모랐다.
어느날 헨델이 그 이발소에 가서 있는데 그 아가씨가 일을 하며 하는말이
가발을 말하야 하는데 악보하나 찢어와 ~
헨델 충격 받고 결혼을 포기함
(엡 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
(엡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 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허시고
[막힌담]
유대인은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나라요 제사장의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유대인은 구별된 백성으로 이방인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였습니다.
특별한 의식들이 있었습니다.
밖에 나갔다 오면 이방인들에 의하여 오염을 되었을까 하여 손발을 씻었고 옷을 터는 예식이 있었습니다.
몸에 할례를 행함으로 분리되어 나온 사람으로 자처하였습니다.
예배를 드림에 있어서도 이방인의 뜰이라고 하여 그 구분된 선을 넘을 수 없었습니다.
이방인들과 구별되기 위하여 높고 단단한 담을 쌓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예배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하여 이 방적인 것들을 추방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이방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저들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제 이방인에게도 넘치는 은헤가 임하였습니다.
유대인은 이방인과 구별될 필요가 없었습니다.
◇모두에게 은혜◇
여러분 어느 마음이 선한 부자가 양자를 들였습니다.
그 양자에게 가장 좋은 혜택을 끼쳤습니다.
어느 아들보다 많은 선물과 정성을 다하여 키웠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양자가 부모를 거역하고 멀리 떠나게 되었습니다.
허랑 방탕합니다.
부모의 얼굴에 먹칠을 합니다.
주인은 종 된 다른 사람을 양자로 삼으셨습니다.
얼마후 예전의 양자 된 첫 아들이 고생 고생하다가 후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착한 주인은 후회하는 이 아들을 데려와서 용서하여 주었습니다.
이제 두 종은 형제가 되었습니다.
막힌 담이 헐렸습니다.
둘 다 존귀하게 되었습니다.
(엡 2: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새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양자 됨을 말합니다
이방인에게 어느 때부터 은혜가 임하였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을 박힐 때입니다.
주님이 운명 하실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아래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쫙 하나님이 찢어버리셨습니다.
(엡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평화]
★ 목사와 외과의사
어떤 곳에 훌륭한 외과의사와 목사님이 아래 이웃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의사는 좋은 집에서 많은 지위와 물질을 소유하고 있었고 목사님은 가난하여 단칸방에서 5남매와 함께 어렵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외과의사는 물질 명성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나 날마다 싸우는 소리가 요란하였고 그와 반면 목사님 식구들은 가난하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찬송과 기도로 시작해서 즐겁게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외과의사가 목사님을 만나서 묻기를 〈우리는 목사님 가정보다 부유하고 좋은 집에 살고 있지만 화목치를 못하오나 목사님 가정은 가난하게 살지만 화목하면서 즐겁게 사는 비결이 어디 있는가〉 물었습니다.
목사님 대답하시기를 〈나는 예수님이 주시는 축복으로 살기 때문에 기쁨과 평안이 충만하지만 선생님은 인간 마음을 지으신 예수가 없기 때문에 불화합니다〉고 전도하자 외과의사도 예수 믿고 평안하게 살았다는 실화가 있다.
참된 평화는 예수 안에만 있는 것입니다.
참된 평화는 하늘 위에서 내려와야 하는 것 입니다.
예수 안에 있을 때 화목이 이루어집니다.
십자가는 불화를 조성하는 마귀를 멸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겸손하게 만들어 상대를 존중하여 줍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한 몸으로 만들어 하나님에게 드렸습니다.
(엡 2: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오늘 예수님은 당신이 평안의 복음을 전하였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사실 주님은 부활하시고 공적인 설교를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있는자나 먼곳에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노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가까이 있는 자들이란 하나님과 가까이에서 교제를 하는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또한 먼 데 있는자들이란 이방인을 말합니다.
복음이 주님이 직접은 전하시지않앗지만 예수님의 종들을 통하여 힘차게 증거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주님이 직접 가서 복음을 전하지 않아도 당신의 종들을 통하여 복음을 증거 하게 하시고
그 사역을 당신의 일로 간주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마 10: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 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눅 10: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 될 때 그 분이 비천하고 무식하여도 집사님이 말씀을 전하여도 복음이 증거 된다면 그 말씀을 무시하거나 모욕하여서는 안됩니다.
그 말씀을 무시하는 것은 주님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복음과 함께 그 분을 대접하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또렷이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 13: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2] 평안을 전하심
주님의 종들을 통하여 들려진 복음은 평화의 복음입니다.
하나님과의 평화를 말 합니다.
유대인들은 유대인데로 하나님을 섬기노라 하면서 우상을 숭배하고 율법을 가지고 잇으면서 죄를 범하엿고
이방인들은 율법이 없이 죄를 지어 하나님과 원수된 가운데 잇었습니다.
참 평안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입니다.
그래서 외부적으로 아무리 돈이 많아도 먹을것이 태산 같더라도 자식이 수 없이 많아도 평안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
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
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어떻게 예수님이 평안을 주셨는가?
[1]죄를 없이 하였습니다.
하나님과의 단절하게 하였던 죄를 없이 하시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롭게 만드셨습니다.
[2]하나님의 양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길을 잃은 어린아이에게 참된 평안은 무엇입니까?
어머니나 아버지를 찾았을 때 참 평안이 옵니다.
장남감을 사 줘도 울고
좋은 옷을 사 줘도 울고
맛있는 음식을 사 줘도 웁니다.
엄마 잃은 아이에게는 그 부모가 평안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평안은 하나님 아버지를 모실 때 평안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버지를 찾은 성도는 평안이 있습니다.
(2) 참된 평안은 천국에 소망이 밝을 때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모든 죄를 없이하시고 천국에 당당히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진 평안은 저 하늘나라를 넉넉하게 들어감에 있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자기들이 범한 죄로 양심이 불안한 가운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가 가진 평안은 예수님의 보혈로 모든 죄가 용서받고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졌으며 내가 받을 하나님의 심판을 예수님이 받으신 고로 저 하늘나라에 가는 날이 가까워 올수록 즐거운 것입니다.
며칠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같은 서울행 기차를 타더라도
서울에 가면 행복이 보장되어 있는 청년은 기쁨이 충만하지만 사형선고를 받은 청년은 종착역에 가까워 올수록 두려운 것 입니다.
(엡 2: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복음이 아무리 생생하게 전하여 진다고 하더라도 성령 님의 축복이 아니면 받지를 못합니다.
사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을 박히는 것을 직접 본 사람들도 성령 님의 축복이 없을 때는 예수님을 영접하지를 못하였습니다.
성령 님은 유대인도 예수 믿게 하시고 이방인도 예수 믿게 하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혈육보다 더 가까운 사이입니다.
에수님과 같은 피로 구원을 받앗고 에수님의 같은 살을 먹었으며 예수님의 영으로 거듭났으며 성령을 모십니다.
또 한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같은 성도끼리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성령이 덜 충만한 것입니다.
(엡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1]우리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권속이란 한 형제 자매가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한 집에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럼으로 교회는 아버지의 집입니다.
[2]하늘나라 시민입니다.
그 날 저곳에 가서 거룩한 천사들과 친구가 됩니다.
거룩한 성도들과 선지자들 사도들과 더불어 교제를 합니다.
수 많은 순교자들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눌 것입니다.
이땅은 찰나적입니다.
순간입니다.
어제 학교 다닌다고 하더니 벌써 머리에 센머리가 앉앗습니다.
(엡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엡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엡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엡 2: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엡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교회론]
1.하나님의 관심이 성전에 있었습니다.
(1)출애굽을 하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신 것이 성막을 지어라 !
(2)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고 작심만 하여도 일곱가지 축복을 주셨습니다.
(3) 포로 귀환 후 하나님은 학개와 스룹바벨등을 사용하여 성전을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성전의 종류
(1)저 하늘나라 성전이 있습니다.
(2) 이 땅위에 성전이 있습니다.
(3) 우리 개인 성도들이 성전입니다.
3.에베소 교인들에게 너희가 이제는 외인도 아니요 손님도 아니요 성도요 권속이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하고 잇습니다.
(1)이제는
예전에는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사람으로 취급을 안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은혜를 얻은 지금은 하늘의 천사들과 교제를 합니다.
거룩한 성도들의 틈바구니에 함께 앉아서 담소를 나눕니다.
하나님의 식구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4.성전이란 무엇입니까?
① 교회는 어머니라고 하는 분도 계십니다.
교회는 병원이다 라고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교회는 훈련소다 라고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교회를 예수님의 몸이다라고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②오늘 본문에 입각하여 봅시다.
교회를 신령한 건물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성전이요, 이 작은 성전들은 살아있는 신령한 벽돌들이라고 합니다.
또 성도끼리 연합하여 큰 성전이 되어가고 계속 커 가고 잇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성도가 성전입니다.
그러나 점점 자라는 성전입니다.
그러나 벽돌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다고 하여 건물이 아닙니다.
벽돌들이 차곡차곡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이 모퉁이 돌 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모퉁이 돌은 두 벽이 만나는 곳에 기둥이 있고 두 벽을 받히고 있는 돌이 모퉁이 돌이다.
이 모퉁이 돌은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예수 안에서만이 일치와 화합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화합된 성전들은 자라야 합니다.
어떻게 자랍니까?
특별한 비결이 있습니다.
성전의 벽돌이 되는 자격이 무엇입니까?
선지자와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진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자랍니까?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알아갈 때 자랍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몇 독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발견하는 것 이 중요 합니다.
성전이 되는 요건은 무엇입니까?
예수로 충만하고 성령으로 충만하면 주님의 몸된 교회인 것입니다.
개별적으로 성령님과 말씀으로 자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할 때 교회도 전체적으로 자랄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