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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재의 excite mountain
설악산 천화대 리지 역종주
고도를 기다리며
글 사진 이영준 기자
알피니즘이란 대체 뭘까. 사람들이 끝없이 산으로 가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평생을 찾아도 찾을 수 없는 그것은 전에는 분명 있었으나 이제 희미해져 버린 것일까, 아니면 비로소 한 세대가 끝난 다음에야 다음 세대의 눈앞에 나타나게 되어 평범한 누구도 알지 못하도록 은밀히 교차하는 걸까. 그런데 대체 그 이유라는 게 있기는 한 것일까.
문득 칼날 같은 바위 끝에 아슬아슬하게 선 너와 나는 어제도 오늘도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개념 없는 시간 속에서 무의미한 대화로 실낱같은 존재를 확인하려 몸부림치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손끝에 닿는 바위 돌기의 감촉과 반복적인 근육의 움직임만 있을 뿐. 해가 뜨고 해가 지기까지 그런 소소한 움직임 속에서 떠올리다 곧 망각하고, 그러나 가끔씩 우리가 그 속에서 찾으려 했던 것이란 바로 그곳을 오르려 했던 이유였던 것이었다는 생각과 함께.
천화대를 거꾸로 오르다
취재팀이 천화대로 향한 건 이제 막 더웠던 여름 끝에 가을 냄새를 몰고 오는 선선한 바람이 뒤따르고 있던 그날이었다. 미시령을 넘어서자 맑고 푸르던 하늘은 먹장구름 가득히 변해있었지만 “그래도 조금 전에 비가 그쳐서 등반하기에는 그만일 것”이라는 게 비선대 산장지기의 말이었다. 언제나처럼 늘 그렇게 맑고 싱그런 기운이 설악골에선 뿜어 나왔다. 우리는 천화대를 거꾸로 오르기 위해 이곳에 왔다. 매번 많은 사람들이 가고자 하는 천화대, 산 오르는 누구에게나 진한 로망이 되고 있는 설악의 심장이었지만, 왠지 그 ‘남들 다 가는 길로 오르는 것’이 내키질 않았다. 그런대봐야 지금 누구도 천화대를 내 집 안방처럼 드나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많아야 일 년에 한번, 마지막으로 갔던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질 않는 상황이었고 천화대가 초행길인 사람도 있었다.
유학재씨와 함께 한국산악회 등산학교 동문 박상훈, 이규성, 김용주씨와 김영미(강릉대산악부OB)씨가 그 길에 동참했다. 그들은 천화대를 거꾸로 가보자는 다소 부조리한 기자의 의견에 어쨌든 흔쾌히 동의했다. 앞으로 가건 뒤로 가건 ‘천화대’라는 그 세 글자에 담긴 설악의 모습에 대해 그들은 궁금해하고 또 기대하고 있는 듯 하기도 했다.
설악골을 거슬러 올라 좌골과 우골이 갈라지는 Y계곡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사실 천화대 등반은 당일로밖에 허가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등반 중에 잠을 잘 수는 없고, 대부분 비선대산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른 새벽에 나서 빠듯하게 하루를 등반하고 돌아온다. 그래도 인원이 5~6명을 넘어서면 희야봉을 넘어 범봉까지 가기란 야간등반을 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어쩔 수없이 중간 비박지에서 밤을 보낼 때도 있는데, 등반허가서에 적힌 범위를 넘어섰으니 불법일 수밖에 없다. 평소엔 하루 출입 인원을 50명으로 제한하고 단풍철이 시작돼 가장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지는 10월부터는 출입을 막는다. 산양이 번식하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가끔 그야말로 ‘운이 없는’ 사람들은 그 시기에 눈을 피해 등반에 나섰다가 설악골 입구에서 지키고 있는 공단 직원들에게 적발되기도 한다. 그들로 인해 산양이 새끼를 못 낳는 건지는 확인된 바 없지만 어쨌든 규칙을 어긴데 대한 벌금은 지워진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할 말이 있는 건 아니다. 천화대 등반은 인간에게 더 이상 산양의 삶보다 더 귀한 가치를 지닐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놀러’ 가는 것 아닌가.
‘필드 매뉴얼’대로라면 최악의 비박지인 계곡 한가운데였다. 하지만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는 없었고 하늘도 맑아 어스름해진 사이로 별이 떠올랐기에 각자 누울 자리를 고르고 침낭 속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나무사이로 비추던 희미한 불빛이 줄곧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맹수의 눈인지 동해의 오징어배 불빛인지 사람들 사이에선 의견이 갈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불빛이 머리 위로 두둥실 떠오르자 모두의 예측이 어긋났음을 알았고, 사위가 칠흑 같은데도 모두들 눈이 부셔 괴로워해야했다. 도심에서는 볼 수 없던 달빛의 선명함 때문이었다.
공룡능선으로 접근할 경우 옛길 따라야 갈수 있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을 떴다. 아직 이른 새벽이었다. 제법 싸늘한 기운이 코끝에만 남아있었다. 몇 번 움직거리다 허리를 일으켜 세웠다. 계획대로 진행된다 하더라도 하루가 빠듯했기에 서둘러야했다. 등반은 범봉에서부터 시작할 것이었다. 때문에 어떻게든 범봉 안부까지 가야 했는데, 실상 그곳을 거슬러 가본 적은 없었다. 결국 좁은 협곡 속에서 왼쪽 오른쪽을 헷갈려 하다가 길이 끊겨 한참을 부시를 헤치고 올라가다보니 공룡능선에서 뻗어 나온 작은 지릉이었고, 다시 숲을 헤치고 내려갔다가 너덜지대를 한참 올라 능선의 등산로에 닿을 수 있었다. 범봉은 보이지도 않고 이정표가 될 건 저만치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1275봉이었다. 발 아래를 굽어보니 좌골로 접어든다는 것이 언제부터 오른쪽 계곡으로 줄곧 진행해 온 것이었다.
잠깐 동안 공룡능선의 바위를 따라 오르내리다가 1275봉을 앞두고 일반 등산로로 내려서 안부를 넘었다. 여전히 범봉은 보이지 않았다. ‘20여년 전에 범봉 등반을 하고 공룡능선으로 접어들었을 때 1275봉 바로 근처와 만났다’는 유학재씨의 기억이 길을 찾는 유일한 단서였다. 다시 희운각 방향으로 한참을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범봉 방향의 바위를 넘어서 돌파해보려고 했지만 이도 여의치 않아 뒤돌아 오다가 ‘출입 금지’라 적힌 표지판 뒤의 희미한 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공룡능선이 예전과 다르게 우회로로 뚫려 있던 것이 길을 헷갈린 이유였다. 옛 공룡능선 길을 따라 가다 다시 완만한 슬랩을 넘어서고 하강 후 줄곧 범봉 방향으로 부시를 헤치고 가자 비로소 범봉 연봉과 만날 수 있었다. 비박지를 출발한 지 무려 8시간 만이었다. 아직 등반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모두 혀를 내밀고 말았다.
해가 저물기까지는 4시간 여, 어떻게든 어디까지든 가보는 게 상책이었다. 가스에 싸였던 범봉은 일순 뜨거운 햇볕을 받아 벌건 알몸을 드러냈다. 설악산이 아니라 알프스나 히말라야의 어느 거벽에 와있는 듯한 풍경이었다. 하강 흔적들이 있는 맨 왼쪽벽의 페이스와 크랙을 따라 유학재씨가 먼저 붙었다.
범봉은 1967년 요델산악회의 백인섭씨 일행이 초등했다. 백씨의 기록에 따르면 어느 날 대청봉에서 천불동으로 내려서는 길에 이 봉우리를 발견했고, 사냥꾼들이 ‘실탄 한 추럭(실탄 한 트럭분을 맞고도 살아있다는)’이라는 이름의 곰이 산다고 말하는 험하디 험한 잦은바위골을 3일 동안 거슬러 올라 비로소 범봉 아래에 닿게 된다. 크랙마다 지천인 에델바이스를 밟고 올라 5시간여 만에 정상에 선 그들은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던 모습 같은 이 봉우리를 ‘범봉’이라 명명했다. 이후 1969년 5월에도 백씨와 임청규 송준호 나경봉 오세진 홍경의씨 등 요델산악회 회원들은 범봉을 찾아 지금의 천화대 능선과 연결되는 범봉 연봉을 등반하기 이른다.
까슬까슬한 감촉이 아프게 살아있는 바위는 크게 어렵지만은 않았지만 선등자에게는 줄곧 정상으로 연결되는 길을 찾아야 하는 숙제를 풀어야 했다. 벽에는 어떤 등반 흔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1피치 40여m를 오르자 테라스에 하강을 위해 박아둔 볼트가 나왔다. 하강루트만을 따르자면 이곳에서 위쪽 하강포인트까지는 왼쪽 벽으로 올라야 하지만 각도가 수직 이상이라 수월찮아 보인다. 30여m 오른쪽 크랙을 넘어 테라스에서 팔목 굵기의 작은 나무 한그루에 확보한 유학재씨는 후등자가 올라오자 프렌드를 설치하고 확보지점을 보강했다. 신기하게도 크랙은 자연스레 연결됐고 적당하다 싶은 곳에는 확보할 수 있는 암각이 있었다. 총 3피치를 올라 2m쯤 작은 바위턱을 넘어서자 범봉 정상과 연결되는 칼날능선이 나왔고, 반대편,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등반루트로 사용하는 곳과 만날 수 있었다. 나무에 로프를 걸고 두 차례 하강을 하니 ‘작은 범봉’이라 부르는 바위 앞에 닿았다.
이제 어스름이 지고 있었기에 잘 곳을 찾아야 했다. 헤드램프를 켜고 닿은 곳은 석주 동판이 박혀 있는 희야봉 아래 안부였다. 골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오는 가운데 몸을 기대고 앉아 피곤했던 하루를 돌이킨다. 부시를 헤치고 오느라 상처투성이에 온몸이 뻐근한 건 둘째치고라도, 물이 부족한 것이 문제였다. 총 10리터 정도 물을 준비했지만 종일 헤매느라 많이 마셔버리고 알파미로 저녁을 먹고 나니 남은 물이 3리터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한팀은 등반에 나서고 일부는 물을 찾아보기로 했다. 죽처럼 끓은 알파미를 퍼먹으며 “맛이 어떠냐?”는 말에 “정말 죽 같습니다”라고 답하던 김영미씨의 농담이 아직 유효한 걸 보니 다들 정말 죽을 맛은 아닌 것 같았다.
왕관봉 제외하고 역종주에 큰 어려움 없어
물은 없었다. 1시간여쯤 계곡을 따라 가면 나오기야 하겠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지체됐다. 자는 둥 마는 둥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나지 않는 지난밤이었다. 물을 뜨러 다녀온 사이 이미 유학재씨는 석주 동판을 거슬러 올라 로프를 설치해놓고 있었다. 희야봉을 넘어서는 데는 총 3피치로 끊어야 했다. 평범한 크랙인 1피치는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수직벽에 깨질 듯한 덧바위를 잡고 올라야 하는 2피치는 고도감이 쏠쏠했다. 결국 후등 중 바위가 일부 깨져나가기도 했다. 암각에 확보를 하고 나면 오버행이 가로막고 있기에 왼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아보였는데, 그리로 가니 천화대와 석주길의 마지막 구간인 칼날능선이 나타났다. 마침 제대로 길을 찾은 것이다. 아슬아슬한 칼날능선을 클라이밍 다운해 내려가면서, 멀리 동해바다와 발 아래 장군봉, 울산바위, 화채릉과 봉화대 등 외설악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후로 왕관봉에 시선을 고정하고 줄곧 크고 작은 바위를 넘거나 우회로를 통해 그 앞까지 접근했다.
정상에서 오버행 하강을 해야 하는 왕관봉이 천화대 역주행의 관건이었다. 안되면 돌아가면 그만이었지만, 유학재씨는 이리 저리 루트를 살피며 오를 기회를 엿봤다. 가슴께까지 오는 오버행 턱을 채고 일어서는 게 크럭스였는데, 위쪽으로 확보물을 설치할 만한 곳이 전혀 없어서 추락이 매우 부담되는 곳이었다. 결국 마지막 5m가량을 올라서지 못하고 클라이밍 다운해 내려온 그는 오른쪽으로 난 우회로로 돌기로 했다.
50m를 2피치로 끊어 오른 7봉을 넘어 왼쪽 암각에서 사선크랙까지 2번 하강을 하고, 몇 차례 자그마한 바위들을 각자 올라서서 전진해가노라니 모두의 입에선 갈증이라는 말밖엔 나오지 않았다. 이제야 다들 탈출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 시작했지만, 앞서 가는 유학재씨는 아랑곳없다. 바위가 나오면 오르고 그늘이 나오면 잠시 머리를 식힐 뿐.
이제 줄곧 발 아래 가야할 길이 보였기에 바위턱을 올라서서 길을 잃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엉금엉금 기기도 하고 더듬더듬 오르기도 하며 간간히 발길에 뱀 허물이 채이는 가운데 저물녘이 되어서야 우리가 도착한 건 그저께 우리가 출발했던 그 계곡 그 초입.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짜증에 가득한 에스트라공에게 블라디미르는 이렇게 말했다. ‘이 모든 혼돈 속에서도 단 하나 확실한 게 있지. 그건 고도가 오기를 우린 기다리고 있다는 거야.’
혹여 고도를 기다린다는 것이란, 우리가 늘 높은 곳을 기다린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그 고도가 산을 오르는 이유라고 본다면, 그것이 있을지 없을지는 정말 장담할 수 없으나, 적어도 갈증에 지쳐 거의 반건조 상태가 되어 헐떡이는 나의 매우 약한 왼쪽 폐에도 불구하고 끄떡없는 오른쪽 폐 덕분에 설악골 맑은 물에 머리를 박고 벌컥벌컥 들이킬 수 있었던 데에서 잠시나마 영혼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던 그 기분. 그것이 즐거움이건 아니건 말이다.
‘자, 가자 / 갈 순 없어 / 왜? / 고도를 기다려야지 / 참 그렇지.’
유학재의 excite tip
하강 시 백업하기
등반을 하다보면 여러 명이 스스럼없이 볼트에 연결된 슬링이나 와이어에 확보줄에 의지해 매달려있는 모습을 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사람들에게 될 수 있는 한 확보물에 힘이 실리지 않도록 몸을 기대지 말고, 확보물은 선등자의 추락에 대비해 최종 하중을 잡아주는 최후의 지점으로 사용하라고 한다. 바위에 구멍을 뚫어 박은 확보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알 수 없으니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등반이 길어지고 힘이 들면 자연스레 확보물에 매달리는 것이 대부분이라 더 이야기하면 잔소리가 될 것 같은 때가 있다. 나는 여러 가지 변수에 대비해 슬며시 내 확보지점을 다른 곳으로 옮기곤 하지만, 서있는 자리가 불편하지 않다면 가급적 확보물에 의지하지 말고 그냥 서있는 것도 등반가가 갖추어야 할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하강 시 슬링을 이용하여 백업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누구나 하강이 능숙해지면 백업에 신경 쓰며 하강을 하진 않는다. 하강은 최소한 두 손 중 한 손은 꼭 로프를 붙잡고 있어야 제동이 된다. 하지만 간혹 하강 중에 생기는 여러 가지 돌발적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두 손을 놓고 움직여하는 하는 때가 있다. 처음 하강하는 곳이나 육안으로 하강 라인이 보이지 않을 때 혹시나 모르는 위기상황이 닥쳤을 경우나 다음 하강 포인트를 잘못 잡아 다시 올라가거나 하강 포인트를 만들어야 할 때, 두 손이 자유로워야 다음 작업을 수행 할 수 있다. 잠깐 동안이라면 로프를 허벅지에 감거나 한손으로 꼭 잡고 할 수 있지만 시간이 요구되는 작업에서는 보다 안전한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이때 로프와 슬링을 이용하여 간단하게 제동 장치를 만들어 내려가는 방법을 쓰면 편리하다. 특히 이 방법은 잘 모르는 루트를 내려갈 때 사용하면 안전을 보강할 수 있다.
사진에서처럼 하강기가 백업하는 슬링과 어느 정도 떨어져야 하기 때문에 퀵드로나 슬링을 이용해 하강기 위치를 올려줘야 한다. 그래야 다리 루프에 걸어 놓은 백업 슬링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요즘 나오는 다이니마 루프 슬링은 탄성이 없어 좀 더 많이 감고 고정을 시켜야 제동이 된다. 로프에 묶는 방법은 션트 등 자동 제동기를 사용하거나 마찰을 이용한 슬링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마찰을 이용하는 매듭(Friction Knots)은 고정된 등반 로프를 이용하여 오르내리거나, 여러 가지 위험에 대비한 보호 장치, 떨어진 사람을 임시로 묶어 둘 때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상시 특별한 상황에서 요긴하게 쓰는 매듭이므로 반드시 익혀 두어야한다 마찰을 이용한 매듭들은 매듭 끝 고리에 압력을 주면 매듭이 로프를 조이거나 꺾어 주 로프에서 움직이지 않고 고정이 되며 주어진 힘을 풀고 움직이면 상하 이동이 자유롭게 된다. 마찰을 이용한 대포적인 매듭으로 프루지크 매듭(Prusik Knot)이 있지만 이는 설치가 약간 번거롭기 때문에 나는 클렘 하이스트(Klem Heist Knot) 매듭을 선호하며 비슷한 바흐만 매듭(Bachmann Knot)도 자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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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천화대 리지 역종주
천화대 리지 종주는 이미 많은 내용이 알려져 있으므로 구체적인 설명은 웹사이트 등 기존 자료를 검색해보면 알 수 있다. 역종주는 범봉, 희야봉, 왕관봉 등 각 안부 상의 탈출로에서부터 시작해 거꾸로 내려오는 것이다. 설악골로 접근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지만 계곡이 복잡해서 익숙하지 않으면 길을 잃기 쉽다. 취재팀도 길을 헷갈려 공룡능선까지 돌아 접근하는데 7시간이 넘게 걸렸다. 꼭 위의 하산로로 여러 번 내려와 본 후 지도를 숙지하고 가기를 바란다. 오히려 잦은바위골로 접근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100m 폭포는 오른쪽 우회로로 오를 수 있다. 공룡능선에서 접근할 경우 현재의 등산로들이 최근 들어 새로 생긴 우회로들이기 때문에 초입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 1275봉에서 희운각쪽으로 내려가서 첫 번째 올라간 안부 50여m 못 미친 지점에 왼쪽으로 펜스를 넘어 오솔길을 따라 가면 옛 공룡능선 길이다.
범봉부터 시작하면 2인 1조로 빠르게 등반하더라도 하루에 모든 봉우리를 오르고 돌아오기는 정말 어렵지만, 역종주의 백미는 바로 범봉 등반이다. 거꾸로 가더라도 하강이 30m 이상 되는 곳은 없으므로 2명이라면 60m 로프 1동이면 된다. 등반장비는 캠 1조와 너트, 슬링 등이 필요하며, 확보지점은 가급적 암각에 슬링을 이용하거나 로프를 직접 두르는 것이 시간도 절약되고 안전성 면에서도 훨씬 낫다. 중간에 식수를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물 확보에 신경을 쓰는 것도 중요하다. 각각의 상황에 대처하고 루트 파인딩을 해 목표지점까지 헤쳐 가는 것은 힘들고 위험한 일이기도 하지만, 모두 등반가의 몫이기 때문에 자세한 정보는 적지 않는다. 미지의 세계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보라. 등반에 앞서 관리공단에 미리 등반자의 신상을 제출하고 허가서를 받아두어야 한다. 천화대는 하루 입산 인원이 50명으로 제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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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진멋있네요! 허리는 좋아지셨는지요? 건강에 유의하시기를!
아...멋지다 ..산이..설악산이 이렇게..멋지다니 ..아...멋지다..산이여..
이기자의 멋진 글이 기대되네...
ㅎㅎㅎ 저곳에 내가 있었다니....행복합니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