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는 '서해'라고 부르기보다는 단연코 '황해'(黃海, Yellow Sea)라고 말해야만 안성맞춤인 듯 싶다. 이유인즉슨, 수평선 너머로 기울어지는 붉고 샛노란 태양 빛도 그러려니와 두텁게 펼쳐진 진회색 잿빛의 갯벌은 탁류의 바닷물과 어우러져 '황해'라고 불러야만 하는 고유명사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빛깔들이 섞이면 황해의 모습은 담백한 하나의 수묵 담채화를 떠올리 게 한다. 황해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많은 섬들 중에서 '석모도'(席毛島)를 수묵화로 담아낸다면 어떠할까?
천일염 생산하는 삼량 염전
강화도 끝자락에 위치한 선착장 외포리에 석모도로 향하는 배가 있다. '카페리호'라 불리는 이 배는 사람은 물론 차량의 탑재도 가능하며 약 10분의 승선으로 석모도 선착장에 이른 다. 짧은 탑승 시간이지만 어째든 섬인데 배를 타고 가야 제 맛이 나는 법. 관광객들의 새우깡 세례에 단련된 갈매기들이 뱃길에 동행한다.
선착장을 빠져 나와 매음리 방향으로 우회하여 진득이 고개를 넘으면 넓은 염전 공장들이 펼쳐진다. '삼량 염전'이라 불리는 이 염전은 1957년 윤철상옹이라는 사람이 삼산면 매음리 연안일대 240ha를 매립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원래 삼산면 본토와 떨어져 섬으로 존재했던 '어류정도'(현재 민머루 해수욕장 부근)가 삼량 염전의 출현으로 석모도와 합쳐져 석모도의 전체 모습도 바뀌었다. 삼량 염전은 우리 나라에서 몇 개 남지 않은 천일염전 중 하나로서, 정제된 소금이 아닌 햇볕에 바닷물을 증발시키는 원시적인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소금이 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 그러나 염분 농도가 많을수록 쓴맛이 강하기 때문에 좋은 소금이라 하면 염분이 그리 높지는 않은 소금을 일컫는다. 석모도 근해의 바닷물은 한강, 한탄강, 임진강 등이 합류되어 소금을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 염도를 지닌 바닷물을 만들어 낸다. 따라서 이곳 삼량 염전의 천일염은 그 품질이 전국에서 제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채산성이 떨어져 현재는 염전의 규모를 축소하고 있는 추세라서 올해를 놓치면 염전 구경하기 힘들게 된다.
취화선이 놀다간 잿빛 갯벌
염전을 지나면 바로 작은 만(灣)을 하나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민머루' 해수욕장이다. 폭50m, 길이 약1km의 작은 모래사장을 갖고 있는 민머루는 바닷물이 빠지면 수십만평의 갯벌이 나타나기 때문에 갯벌체험이 제격인 곳이다. 호미 같은 간단한 도구만 있다면 조개, 소라, 갯지렁이, 낙지 등 천연 무공해의 식량을 자족할 수 있어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현장학습을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때문에 최근 들어 생태관광의 중요성을 인식한 한국관광공사가 석모도를 생태관광지로 지정했던 것이다.
그림 같이 빼어난 화면을 담아낸 영화 '취화선'의 배경으로 이곳 민머루가 나오기도 했다. 속세를 떠나 석모도 갯벌에서 호미 하나로 조개를 채취하는 장승업의 스승 김병문과 방황하며 떠돌던 장승업이 재회하는 가슴 뭉클한 장면을 민머루에서 만들어 낸 것이다. 또 하나와 화폭과도 같은 이 곳 민머루엔 옛날 환쟁이들이 자주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고 하는 '백로'를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정말로 진경 산수화가 펼쳐지는 듯한 착각이 들게 만든다.
민머루 양쪽에는 두 개의 작은 포구가 있다. 아래쪽 포구를 '어류정항'이라 하는데 민머루 보다 훨씬 더 두터운 갯벌이 펼쳐져 있고 작은 고깃배들이 많이 모이기 때문에 횟집들이 많다. 특히 이곳 횟집들은 포장마차 형태로 어선 이름들을 딴 상호를 쓰고 있어 이색적인 포구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반면 민머루 위쪽에 위치한 '장구너머항'은 어류정항보도 규모가 작지만 포구를 둘러싼 산 때문에 요새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포구를 감싼 산들 중에서 작은 산 세 개가 마치 장구와 닮았는데, 그래서 포구의 이름을 '장구너머'라 칭했다고 한다.
눈썹아래 새겨진 불좌상
석모도를 부르는 또 하나의 명칭은 '삼산면'인데 섬 안에 세 개의 섬이 있다하여 그렇게 부른단다. 북쪽 '상주산', 남쪽 '배명산', 그리고 중간에 '상봉산'이 자리잡고 있다. 삼산에는 끼지 못하나 상봉산과 견주어 나무랄 데 없는 '낙가산'(상봉산 바로 아랫자락)은 사찰 '보문사'(普門寺)가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굳이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찰에서 찾아보기 힘든 불좌상과 석실의 신비함을 체험해 볼만하다.
가파른 산자락을 10분 가량 걸어 올라가면 용이 또아리를 틀며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향나무(인천 기념물 17호) 뒤로 웅장한 석실 하나가 보인다. 신라 선덕여왕 4년 회정대사가 건립한 석굴사원으로 천연 동굴을 그대로 이용했다고 하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석실 안의 불상은 산라 선덕영왕 때 한 어부가 고기잡이 그물에 걸린 돌덩이를 이곳에 모셨더니 부처가 됐다는 전설이 전해내려 온다.
석실을 빠져 나와 왼쪽으로 사찰 하나를 비켜 가면 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400여 개의 계단이 올라 선다. 젊은 사람들도 한 번에 오르기 힘들지만 일단 큰 맘 먹고 400여 개단을 다 올라서면 석모도 전경은 물론 낙가산 정상 바로 아래 펼쳐진 '눈썹 바위'와 암벽을 볼 수 있다. 눈썹 바로 아래의 암벽에는 '마애석불좌상'(磨崖石佛左像)이 새겨져 있는데, 1928년 금강산 표훈사 주지 이화응과 보문사 주지 배선주가 조각했다고 한다. 가히 가파르기 그지없는 기괴암에서 만날 수 있는 불상은 더더욱 신비한 빛을 발해 무슨 소원이든 다 들어줄 듯하다.
젊은 연인들의 낙원 하리와 상리
석모도의 북쪽에는 영화 '시월애'로 유명한 '하리' 낚시터가 있다. 사실, 젊은 연인들은 '시월애'의 촬영지를 둘러보기 위해 석모도를 많이 찾는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영화 세트장은 바람에 날아가 없어진 상태이고 낚시터 근처도 개간 사업이 진행 중이라 별다른 볼거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당분간 하리 쪽은 찾아보지 않는 게 좋을 듯 싶다.
하리 건너편 마을을 '상리'라 하는데, 말 그대로 하리(下理)는 상리 밑에 있어서 아랫마을이고 (上理)는 하리 위에 있어서 윗마을인 것이다.
상리에서 산다는 마을 아저씨의 말이다.
"우리 위쪽 상리는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데 알고 보면 운치 있는 곳야. 특히 젊은 청춘들이 조용한 사랑을 나누기 좋지 뭐. 상주산에는 신기하게도 조개 껍질, 소라 껍데기가 있어 신비한 맛이 감돌고, 상주산을 넘으면 민머루 보다 넓은 갯벌과 바다가 펼쳐지기도 하지."
실제로 상주산 고개를 넘으면 인적이 드문 갯벌과 바다가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가는 길이 좀 험난하고 정식 해수욕장이 아니라서 샤워장이나 식당 등 제반 시설들이 하나도 없는 단점이 있다.
유난히 오지를 고집하는 사람들, 그리고 밀애를 즐기는 연인들이 들러 볼만한 곳이 상리와 하리인 것이다.
수묵화는 우선 굵은 뼈대의 획이 있어야 하고, 다음으로 묵의 농(濃)과 담(淡)이 어우러져 하나의 화폭을 완성한다. 석모도를 하나의 수묵화로 그린다면 우선 잿빛 갯벌의 굵은 밑그림을 그릴 수 있다. 이 밑그림 위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삼량 염전, 어류정항, 장구너머항, 그리고 민머루 해수욕장 일대의 강한 농과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상리와 하리의 담이 어우러져 석모도는 하나의 진경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