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의 중심지 월스트리트에서 식사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한 끼니가 아니다. 그들에게 식사는 비즈니스다. 부유한 고객과 마주 앉은 전문가는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판단 대상으로 삼는다. 그들은 식사 습관에서 성격까지 알아낸다.
월스트리트맨에게는 부자 고객과 식사 속도가 같아야 하며 무엇보다 음식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말이 별로 없는 부자와 한정된 시간에 최대한 표현을 많이 해야 하는 자산관리 매니저, 이들 사이에는 일 얘기가 오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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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영자들에게 부족한 것은
이런 비즈니스형 식사는 월스트리트에서만 통용되는 게 아니다. 시간이 돈인 경쟁사회에서 식사 시간은 자신이 가진 경쟁력의 품질을 결정한다. 글로벌 비즈니스에 완전하게 노출된 한국 경영자들에게도 식사는 더 이상 ‘먹는’ 시간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몇 분간의 의례적인 인사가 끝나면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우리 현실이다. 글로벌 비즈니스와 동떨어진 ‘우물 안 비즈니스’다.
“서양요리를 코스로 먹을 경우 길면 3시간까지 갑니다. 일 얘기는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이럴 때 나오는 얘기 주제들이 골프·와인 등인데 들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업가라면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도 중요하죠. 특히 요리에 관한 스토리를 알고 있다면 금상첨화지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는 없지만 3대 진미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송로(松露·Truffle)버섯은 훈련된 돼지를 이용해 찾아요. 주로 떡갈나무 숲 땅속에 있는데 냄새를 맡은 돼지가 땅을 파서 찾아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얘기를 들으면 옳다, 그르다 판단하지만 모르는 얘기를 할 때는 귀를 기울입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죠.”
송희라 세계미식문화연구원장의 말이다. 그런 점에서 9월 29일 저녁 서울 광장동에 위치한 국내 최초의 6성급 호텔인 W호텔 ‘나무’ 레스토랑에서 진행된 ‘음식평론 CEO 과정’은 주목할 만했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이 개설한 국내 최초의 이 학습 과정에는 바쁜 목요일 저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40여 명의 경영자가 신청했다.
이날 진행자는 국내 음식평론가 1호로 평가받는 송희라 원장. 그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분들과 식사해 보면 그들이 받는 사회적 존경에 비해 테이블 매너가 한마디로 형편없다는 것을 느낀다”며 “해외에 나가면 격에 맞는 행동을 해야 사업을 할 수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교육받을 기회도 없었을 뿐 아니라 회사에 신경 쓰고 일하다 보니 ‘아무렇게나’ 행동한다는 게 습관화됐다는 것이다. 송 원장은 “한국 경영자들의 테이블 매너는 평균 70점 정도”라며 “해외의 성공한 기업가들은 자연적이고 세련된 식사를 한다”고 말했다.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나무’ 레스토랑에서 시작된 음식평론 과정의 첫 시간. 주방장 매튜 찰스 울포드가 준비한 음식의 주제는 ‘아시아의 따뜻함’이었다. 폭넓은 몸매가 인상적인 울포드는 태국과 싱가포르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일급 주방장. 토마토로 만든 티(Tea)로 시작된 그의 음식이 차례로 식탁에 놓이고 송 원장의 설명이 이어지면서 식탁은 왁자지껄함으로 덮였다.
“이 과정을 꼭 들어보고 싶어 부여에서 3시간이나 달려왔다”는 김동희(72) 부여노인전문병원 원장은 “대한민국에서 이런 문화를 배울 수 있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 솔직한 고백으로 좌중의 수긍 어린 웃음을 자아냈다. 송 원장의 테이블 매너 강의가 시작되자 참석자들의 귀가 커졌다.
“가장 좋은 식사법은 자연스럽게 식사하는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실수하는 게 양팔을 좍 벌리고 식사하는 건데요. 의외로 이게 잘 안 됩니다. 어려서부터 교육받아야 하거든요. 어깨와 팔이 함께 아래위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손목의 스냅을 이용한 팔놀림을 해야 합니다.”
품위의 온도계 포크와 나이프
송 원장의 컨설팅이 있을 때마다 참석자들의 일사불란한 벤치마킹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관행으로 굳어진 경직된 근육은 혁신의 장애물이었다. 혁신의 어려움은 기업 현장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굳어진 머리와 딱딱해진 혀를 풀고 이제까지 해오던 것과 다른 방식을 배우는 과정은 기업 혁신 이상의 일이었다. 다음은 송 원장의 특강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우선 와인 잔을 부딪치는 ‘토스트(TOAST·건배)’를 할 때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부딪치는 잔에 눈길을 둔다. 토스트는 잔의 부딪침을 통해 만남의 어색함을 해소하는 눈길을 교환하는 것이지 잔의 만남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기회 있을 때마다 잔을 부딪치는데 원래는 시작할 때 한 번만 하는 게 원칙이다. 굳이 멀리 있는 사람과 토스트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수고도 불필요한 행동이다. 특히 와인 잔은 깨지기 쉬워 조심해야 하며 부딪칠 때는 잔의 볼록 나온 볼 부분을 맞대야 소리도 좋다.
숟가락·젓가락을 사용하는 한국인이 자주 실수하는 게 포크와 나이프 사용법이다. 왼손에 포크, 오른손에 나이프를 잡고 고기를 자를 때 포크는 구부러진 안쪽(놓으면 위쪽)이 본인과 접시 바닥을 바라보도록 해야 한다. 말하는 데 열중한 나머지 포크나 나이프로 하늘을 찌르거나 상대방을 겨누는 이들이 간혹 있는데 절대 삼가야 할 행동이다. 가끔 왼손에 포크, 오른손에 나이프를 잡고 고기를 자른 후 오른손으로 포크를 잡고 자른 고기 조각을 먹는 경우가 있는데 이 또한 매너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한국인의 실수는 이 두 도구를 접시 위에 놓을 때 흔히 일어난다. 식사 중 포크와 나이프를 접시 위에 놓아야 할 때는 나이프가 아래로, 뒤집어진 포크가 위로 가게끔 가위표(8시20분 방향·그림1 참조) 모양으로 놓아야 하고 식사가 끝났을 때는 둘 다 4시20분 방향으로 나란히 놓는다.
이때 포크는 아랫부분이 하늘을 향하도록 뒤집어 놓고 나이프의 날은 상대방 쪽이 아닌 안쪽, 즉 포크를 향하도록 놓는다(그림2). 나이프를 놔두고 포크 하나만 사용하다 접시에 놓을 때는 포크 안쪽이 하늘을 향하게 놓는다(그림3).
또 한 가지 유념할 것은 식사하면서 식탁에 팔을 얹는 행동인데 이 또한 삼갈 일이다. 잔을 엎지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식사가 끝난 후에는 괜찮다. 제공되는 핑거볼을 갈증 해소(?)에 이용하거나 손을 세척하는 데 사용하는 이들이 있는데 사실은 손끝만 살짝 담가야 한다.
와인도 마시는 법이 있다
와인은 육감으로 마시는 술이다. 너무 격식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와인은 ①눈으로 즐기고 ②색을 감상하며 ③향에 취하고 ④혀로 맛을 본다. 이 중 향이 70%를 차지하고 맛의 역할은 20%쯤 된다. 마시는 법은 ①잔을 잡고 ②잔 위에서 아래로 잠시 내려다본 다음 ③향을 맡아보고 ④흔들어 냄새를 맡는다 ⑤ 소주 한 잔 정도의 양을 마신 후 ⑥입에 머금고 액체가 흘러내리지 않게 산소를 살짝 흡입한다. 산소와 섞인 와인은 독특한 맛을 낸다.
문화인류학자들은 인간이 친해지기 위한 세 가지로 식사와 목욕, 그리고 잠자기를 꼽는다. 본능을 ‘함께’ 충족시키는 ‘동료’인 까닭에 다른 무엇보다 짙은 친밀감을 단시간에 느낄 수 있다. 인류학자인 마크 밀러는 “음식은 경험을 통해 공유하는 언어이자 문화적 인식”이라며 “요리사가 하는 일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인식 시스템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적어도 9월 29일 밤 그 말은 옳았다. 사교 모임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40여 명의 참가자는 금세 친밀해졌다.
오늘의 상식 … 유럽 상류층은 수프를 먹지 않는다! 엄격한 계급사회를 유지했던 조선시대에 양반이 아닌 계층이 난이나 매화 같은 사군자를 키우면 곤장을 맞았다. 식물에도 계급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흥미로운 ‘법’이 서양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암흑기라고 하는 중세시대 귀족들은 동식물에도 신분을 매겼다. 척박한 땅에서 나는 양파·양배추·부추 같은 채소는 서민용이었고 신이 존재하는 하늘과 가까운 곳에 있는 사과·복숭아 등의 나무 열매는 귀족용이었다. 육류도 마찬가지였다. 귀족들은 집에서 키운 날짐승과 사냥으로 포획한 동물을 먹은 반면 하층민들은 돼지·양 같은 덩치 큰 짐승의 내장과 도살 찌꺼기로 식사를 했다. 당시에는 사냥이 엄격하게 제한돼 사냥 자체도 특권을 상징했을 뿐 아니라 계절에 따라 사냥할 수 있는 멧돼지와 노루 등은 포획자의 용기와 사냥술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유럽 최고의 레스토랑 메뉴에 비둘기·메추라기·야생오리가 들어 있는 것에는 이런 시대적 배경이 있다. 식사와 관련한 또 하나의 차별 도구는 빵을 굽는 전용난로. 당시 빵을 만들려면 난로는 기본이고 석탄 화덕, 석쇠, 구이용 꼬챙이, 놋쇠 그릇, 주전자, 팬 같은 ‘복잡하고 값비싼’ 주방기기들이 필요했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에게는 훌륭한 장비, 숙련된 요리사가 필요 없는, 냄비에 고기 부스러기나 야채 등을 넣고 끓이면 되는 게 가장 효율적이었다. 그들은 부엌도 따로 없었기 때문에 난방용으로도 쓰이는 화덕에 냄비를 얹었다. |
참석자(가나다순) 강정호 전 한국선물거래소 이사장, 강한영 선우엔터테인먼트 대표, 구본홍 고려대 석좌교수, 김동희 부여노인전문병원 원장, 김민아 테라스 대표, 김백선 백선디자인 대표, 김운주 충북대 교수, 김은아 인터메츠 대표, 김정애 젬마김 대표, 김준한 신세계개발 대표, 김철호 국제변호사, 남수정 선앳푸드 대표, 노유라 자르뎅블루 디자이너, 문훈숙 유니버설 발레단장, 박경희 아름샘병원 과장, 박인순 한국스파이렉스사코 대표, 박주석 심크리에이티브 대표, 백정후 백선디자인 실장, 신정안 아틀리에 디안 주얼리 대표, 신철호 성신여대 교수, 심재혁 인터컨티넨탈호텔 대표, 오원자 좋구먼 한정식 대표, 오진권 이야기가 있는 외식공간(전 ㈜놀부) 대표, 유성현 이담 대표, 윤충렬 디지털 조선애드 대표, 음희화 ING생명 컨설턴트, 이광만 간삼파트너스 대표, 이낙토 동우통상 대표, 이동원 차앤박피부과 압구정점 원장, 이상엽 청담몸사랑치과 원장, 이재우 아웃백스테이크 부사장, 이재형(엑센추어 명예회장) 슈어파트너스 대표, 조규연 라보테가 대표, 조병규 그리곤엔터테인먼트 대표, 조안준 조안준디자인어소시에이트 대표, 조원장 다니스코코리아 대표, 차미경 차앤박피부과 양재점 원장, 최등규 대보그룹 회장, 최현옥 장락원천문대 실장, 표현명 KTF 부사장, 한송이 W여성전문클리닉 원장, 홍태선 야마사키코리아 대표(42명) |
이코노미스트 2005년 10월 18일 808호 / 2005.10.24 11:14 입력 / 2005.10.24 11:15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