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도성의 동소문 혜화문 옆으로 큰 길이 났다.그 큰길로 도성은 잠시 멈춘다.
길건너 혜화동 신학교 뒤자락으로 서울도성은 다시 힘차게 뻗어가고 있다.
그 산세가 낙타등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타락산(駝駱山) 또는 낙타산(駱駝山)이라고 한다.
서울의 좌청룡(左靑龍)에 해당하는 낙산이다.
혜화문에서 낙산 방향으로는 천자문의 ‘來’자에서 시작하였다.
세종 4년(1422)에 토성 부분을 석성으로 고쳐 쌓는 등 대대적인 도성 수축공사가 있었다.
이때 낙산 구간에 해당하는 천자문의 ‘來’자에서 ‘歲’자까지 10구간의 석축 867척,
토축 4,387척을 모두 석축으로 개축하였다.




불과 4~5년전만해도 주택들이 밀집해 있던 곳으로 시민들이 찾기가 쉽지 않은 도성길이다.
주택은 일부 헐고 성곽도 보수하면서 그 성을 따라 시민공원과 산책길을 만들었다.
이곳 도성길의 경관은 서울 도성 둘레길 가운데 또하나의 명승(名勝)으로 꼽히게 되었다.




서울도성의 자리를 잡을 때 정도전이 올랐다고 한 보현봉이 멀리 보인다.
서울도성을 찾을 때마다 만나는 성벽의 음각문(陰刻文)이 이곳에도 있다.
영동(永同)으로 보인다.충북 영동에서 올라온 장정들이 축조한 도성이다.
그 아래는 경산(慶山)으로 읽힌다.경북 경산 장정들이 이곳의 공사를 했다.


도성길 동쪽아래 육중한 한옥이 눈에 들었다.
한성대 캠퍼스에 인접한 공원에 자리한 한옥이 골자기에 가득하다.

서울 한성대 옆 삼선공원에 있는 삼군부 총무당이 있다.
고종 5년(1868)에 건립된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의 본당이었던 총무당이다.
당초 광화문 앞 서쪽 현 정부종합청사 자리에 있었다.


조선 말기의 전형적인 관아 건물로 서울에 있는 관아에서 흔히 보이는 양식으로 되어 있다.
총무당은 그 좌우에 청헌당(淸憲堂)과 덕의당(德義堂)이 있었다.
덕의당은 그 흔적조차 없어졌고, 청헌당은 1967년 광화문의 현 정부종합청사 신축 때
육군사관학교 교내로 이전되었다. 이 건물에는 ‘總武堂’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이는 조선 말기의 정치가인 신헌(申櫶)의 글씨로 낙관이 선명하다.
낙관에 보이는 신관호(申觀浩)는 뒷날 신헌으로 개명하기 전의 이름으로,
최근에 서울대학교 도서관 소장 '금당초고(琴堂初藁)'에 실려 있는 '삼군부총무당상량문'이
발견되어 고종 5년에 건립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삼군부 청사는 고종 17년(1880)에 통리기무아문의 청사가 되었다.
고종 31년(1894) 갑오경장 이후로는 시위대 청사로,
1910년 이후에는 일제의 조선보병대사령부로 사용되었다.
1926년 순종황제가 승하한 후 폐지되고 총무당은 당시 돈암동 512번지 160호로 이전하였다.
이곳으로 옮겨진 총무당은 1942년 경기도 공무원연성장으로 사용되다가 서울시 직업훈련원
사무실로도 사용되었다. 건물이 낡고 퇴락하여 서울시에서 1979년 8월 17일 보수복원공사에
착수하여 그해 12월 20일에 옛 모습대로 복원되었다.

총무당 입구에 원불교 서울 최초 교당 터임을 알리는 표시석이다.
1933년 원불교에서 서울지역 최초 신축교당을 설립하여
오늘날 서울교화의 모태가 되었던 자리이다.





혜화문 앞 카톨릭신학대학 뒤 산등성을 타고 낙산 꼭대기까지 서울도성이 구비쳐 오른다.
성벽까지 혼잡하게 자리한 주택들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산책길로 만들고
곳곳에 답방객을 위한 쉼터와 시민공원을 조성하였다.
정상으로 갈수록 보현봉과 주변 봉우리들이 점차 모습을 드러내면서
명산으로 둘러 쌓인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빼어난 서울임을 다시한번 확인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