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맥(脈)을 잇는 사람들⑨ - 정악대금 진철호 보유자>
이러한 이야기가 전해내려 온다. 신라시대 신문왕 때에 동해에 자라 머리 모양의 작은 산이 있는데 그 위에 낮에는 둘로 갈라지고 밤에는 하나로 합쳐지는 대나무가 있어 왕이 이 대나무로 악기를 만들어 연주하니 가뭄 때는 비가 오고 거센 바람도 높은 파도도 잠잠해졌다고 한다. 이에 왕은 이 악기의 이름을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 부르고 국가의 보물로 정하였다고 한다.
청공에 갈대청을 붙여 그 떨리는 음색이 매력이며 유일한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 악기다. 대나무로 만들어 옆으로 부는 악기인 대금을 일컫는다. 대금은 우리나라 음악을 대표하는 관악기로 가로로 부는 악기 중에 으뜸이며 우리말로는 ‘젓대’ 또는 ‘저’ 라고도 하며 한자로는 ‘적(笛)’이라 쓴다. 삼국사기가 전하는 만파식적에 관한 전설은 대금의 아름다운 소리가 천재지변을 막고 사람의 마음도 움직였음을 설화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대금은 신라시대부터 소금, 중금과 함께 궁중음악이나 가곡반주에서 쓰였다. 악기는 황죽 혹은 쌍골죽이란 골이 양쪽으로 패인 대나무를 쓴다. 여기에 취구와 청공 그리고 6개의 지공, 칠성공을 뚫어 음을 맞춘다. 현재 대금정악의 주요 연주 곡목으로는 상ㆍ중ㆍ세영산ㆍ가락털이, 삼현ㆍ염불도드리, 타령, 군악 등 8곡으로 구성된 표정만방지곡(表正萬方之曲 : 관악영산회상)이 있다.
대금의 소리는 정악과 산조로 나뉘는데 정악대금이 서양 음악의 클래식이라면, 산조대금은 대중가요에 비유할 수 있다. 정악은 내면의 고요함을, 산조는 다채롭고 율동적인 표현 내용을 갖는다. 흔히 알려진 대금은 주로 산조의 것이 많다. TV의 국악공연이나 협연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 역시 산조대금이다.
반면 정악대금은 일반인에게 아직 낯설다. 애초부터 궁중음악으로 시작한 탓도 있지만 듣기도 접하기에도, 특히 배우기조차 쉽지 않음 때문이다. 하지만 차분하고 정적인 정악대금은 음악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이 모두의 마음이 고요해지고 차분한 명성의 세계로 인도하는 힘이 있다. 대중적인 면의 부족함에도 오히려 태교음악이나 명상음악, 음악치료용으로 널리 쓰이는 이유다.
이러한 정악대금은 1989년 12월 인천시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 김정식(1921~1998) 보유자 이후 진철호(57) 보유자가 전승과 보존에 힘쓰고 있다. 그는 원래 서양음악을 전공한 현직 교사다. 서양의 음폭을 이해한 탓일까, 그가 추구하는 음악의 세계는 대금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고민의 정도가 촉촉이 묻어난다. 진 보유자는 정악대금의 현주소를 대중에게로 옮겨놓고자 긴긴 노력을 해오고 있다.
매주 월요일은 남구 도화동 천지인한의원에서, 화요일과 목요일은 애관극장 뒤 능인사에서, 그리고 자택인 석남동에서도 정악대금 무료강습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그가 개발한 특수대금장 6호 역시 정악대금 대중화와 맥락을 같이 한다. 특수대금장은 악기 자체를 산조보다 지공을 적게 해 힘이 덜 들도록 했다. 특히 학생들에게 보급하기 위해 각별한 정성을 쏟는 그다. 숭의초등학교에서 전통민속학교를 운영,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전통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진철호 보유자는 “현재 초등과정에서 아이들이 5음에 해당하는 단소를 부는데 오히려 대금은 서양음악과 비슷한 12음을 갖추고 있어 학생들이 접근하기에 수월하다.”며 “따라서 대금 중 가장 크기가 적은 소금을 어릴 적부터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면 배우는 과정도 확보되고 아이들이 받아들이기에도 부담이 덜해 대금 전파에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전수의 어려움에 대해 진 보유자는 “정악대금 연주는 어깨 아래로 손이 내려가는 법이 없다. 여기에 곡 연주 시간도 보통 10분 이상을 넘어 연주기간 내내 팔이 대금과 함께 어깨 수평을 유지해야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있기에 힘으로, 정신으로 자세를 잡아주는 일 또한 보통 일이 아니”라며 “지공을 막기가 힘들뿐만 아니라 자세 또한 정적이어서 정악대금을 하려면 최소한 5~6년은 몰입해야 한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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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보유자는 학생들이 단소보다 음계가 풍부한 소금을 배우는 것이 더욱 유용할 것이라고 권한다. | |
향후 진 보유자는 무료강습 외에도 직장 단위로 대금을 배우는 기회가 많도록 활동 무대를 더욱 넓힐 계획이다. 포기하는 사람도 많지만 꾸준히 배우면 그 어떤 악기보다 진한 풍류를 즐길 수 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 진 보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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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 잘읽었습니다. 정말 멋지고 존경스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