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스타일리스트 김진주의 신혼집
손꼽히는 현업 푸드 스타일리스트이자 푸드 코디네이터 아카데미 ‘라퀴진’의 강사인 김진주 실장. 그 화려한 이력으로 가늠했을 때 그녀가 직접 꾸몄다는 신혼집은 번쩍번쩍 빛나는 대리석 바닥에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세련된 가구들로 채워졌을 것이라 짐작하였다. 그녀는 누구보다 예민한 촉각으로 한 달에도 몇 번씩 트렌디한 작업을 완성하는 스타일리스트이니까. 그런데, 얼핏 구경한 사진 속 그녀의 집은 마치 도화지처럼 깨끗하게 단장된 벽에 앤티크 스타일의 소박한 가구들만이 편안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듯 인위적인 공간 대신 싱그러운 자연의 전망 또한 온전히 끌어안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 편안하고 내추럴한 신혼집을 꾸민 김진주 실장을 새로이 만나고 싶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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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집 셀프 개조에 나서다 작년 12월, 결혼을 앞둔 김진주 실장이 방배동 89.25m2(27평형) 아파트를 신혼집으로 정하자, 주변에서는 모두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것을 권하였다 한다. 한 달이 부족하게 바쁜 일정을 사는 그녀이기에 직접 공사를 진두지휘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라는 조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스타일대로 인테리어를 해볼 욕심이 있었는데, 첫째 큰 구조 변경을 할 생각이 없었고, 둘째 판에 박은 듯 똑같은 스타일의 인테리어가 싫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녀는 몇 년 전 본인의 작업실을 직접 개조했던 경험도 가지고 있었는데, 그때도 스스로 콘셉트를 정하고 시안을 찾았으며, 시공 인부를 불러 공사를 진행하였다. 그리하여 이번에도 겁 없이(?) 공사부터 가구, 패브릭까지 ‘내 스타일대로’ 집 고치기에 나서게 되었다.
컬러에서 시작된 인테리어 콘셉트 그런데,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개조 공사의 스타일이 오히려 신선하다. 작업실 공사 때도 그랬지만, 그녀는 먼저 자신이 원하는 인테리어 마감의 주조색을 정한다. 콘셉트라는 것은 달리 없고, 다만 각 공간의 컬러가 조화로운지를 깐깐하게 따진다. “원래는 디스플레이를 전공했어요. 그때부터 벽을 도화지로 생각하고 다양한 가구를 믹스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고요.” 컬러에 통일성을 주면 동서양의 어떤 가구를 믹스해도 전혀 이질감이 없다는 말. 반면, 화려한 디자인의 벽지를 잘못 선택하면 자칫 그 앞에 있는 가구가 초라해질 수 있다. 그래서 그녀는 도배 대신 벽 페인팅을 선택하였고, ‘그레이와 블루’를 메인 컬러로 정하였다. 짐 많은 살림에 비해 아무래도 집이 좁은 편이어서, 시원한 컬러를 떠올렸는데 재미있게도 그녀는 그레이 컬러 칩을 먼저 살폈다 한다. 블루 계열은 자칫 들떠 있는 듯 가벼운 느낌이지만, 차분한 그레이에 블루가 가미되면 칠했을 때 훨씬 부드럽고 세련된 공간을 만들어주기 때문. 거실, 침실, 주방에 이르기까지 그레이와 블루가 적절히 믹스된 신혼집은 그래서 평수답지 않게 시원스럽고, 동시에 너무나 감각적이다. |
1 김진주 실장은 요리에서 그릇으로, 그를 담는 테이블로, 또한 테이블이 놓이는 공간으로 관심이 넓어졌다고 말한다.
오른편 청동 거울은 미국에서 구입한, 작가의 작품인데 집 컬러에 맞게 블루 페인트를 덧칠하였다.
2 가변성이 있는 공간을 좋아하는 집주인은 벽에 못을 치지 않는다. 대신, 액자나 거울을 콘솔 위나 바닥에 배치하고
수시로 위치를 바꾼다. 오른편 큐리오 장은 그녀가 미국 앤티크 숍에서 구입한 것.
3 이태원에서 꽤 저렴한 가격에 구입한 태국 앤티크 장. 7~8겹 페이트를 다 벗겨내고 내추럴한 그린 톤으로 페인팅하였다.
처음에는 방법을 몰라 밤을 새우며 무식하게 벗겼는데, 최근에는 약품을 이용해서 수월하게 작업한다.
핸드 페인팅의 묘미
기자 또한 도배 대신 페인팅을 해보리라 마음먹은 지 오래지만, 경험자들은 모두 그 작업이 그리 만만치 다 말하였다.
그런데 김진주 실장은 과거 작업실 공사 때도 직접 벽지를 뜯어내고 샌딩 즉, ‘빠데’ 작업을 하였으며 페인트까지 칠하였다 한다.
처음에는 조금이라도 공사 비용을 아껴볼 요량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벽지를 뜯어내는 데만 3일, 샌딩 작업에 또 3일,
그리고 페인팅하고 다시 샌딩 작업을 하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비싼 인건비가 이해가 되었다고.
그래서 이번 신혼집 공사에서는 그러한 밑작업과 페인팅을 모두 철저히 시공 인부에게 맡기기로 하였다.
하지만 거실과 다이닝 룸의 포인트 벽만은 포기할 수 없어, 그녀의 취향에 맞게 직접 핸드 페인팅을 하였다.
“저는 뿜칠 즉, 스프레이로 페인트를 곱게 뿌리는 것보다 붓으로 얼룩덜룩 칠하는 것을 좋아해요.
이렇게 손맛을 살려 작업하면 아늑한 느낌을 줄 수 있지요.” 집주인의 세심한 배려 때문일까?
보일 듯 말 듯 은은한 펄이 가미된 벤자민 무어의 포인트 벽은 다른 집의 페인팅 벽과 달리 전혀 차갑지가 않았다.
알고 보니, 그녀의 페인팅 실력은 10년 전 뉴욕 유학 시절부터 다져진 것이라 한다.
학생 시절 벼룩시장에서 오래된 가구를 구입한 뒤 밤새 페인트를 벗겨내고 새로운 컬러를 칠하곤 하였는데,
그 경험이 쌓여 지금은 거의 전문가 수준이 되었다는 것.
실제로 다이닝 룸의 인상적인 스웨디시 앤티크 콘솔은 아이보리 컬러였던 것을 블랙으로 칠한 것이고,
침실에 놓인 초록색 티베트 장도 그녀의 솜씨라 하여 그 실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1 부엌 냉장고 옆 장은 1백 년 된 중국 앤티크 가구.
옛날에는 장 위쪽에 얼음을 채우고 아래쪽에 생선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을 그릇장으로 쓰고 있다.
2 오른쪽 창문 밖으로 낮은 산을 마주하고 있는 다이닝 룸.
그래서 밖에서는 내부가 보이지 않고 안에서는 밖이 내다보이는 독특한 소재의 헌터더글라스 블라인드를 설치하였다.
베그너의 ‘Y’ 체어와 팬톤 ‘Fun’ 팬던트는 에이후스에서 구입(02·3785-0860).
방을 없애고 다이닝 룸을 만들다
그녀는 신혼집을 결정하기까지 수많은 집을 보았는데, 이 집을 본 뒤에는 단 5분 만에 계약을 결정하였다.
그런데, 그 이유가 흥미롭다. 보통 20평대 아파트에 입주하는 사람들이 방의 개수에 신경 쓰는 것과 달리 요리 전공자답게
오히려 방 하나를 줄이고 다이닝 룸을 만들 수 있는 구조를 원했던 것.
이 집의 경우, 부엌 옆 방이 미닫이 문이어서 벽 철거가 용이했고, 창밖으로는 낮은 뒷산의 풍경도 이어졌다.
저녁이면 노을도 지기 때문에 다이닝 룸의 위치로는 제격이었다.
심지어 그녀는 결혼을 결심하고 나자 제일 먼저 ‘다이닝 룸에는 Y체어를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렇게 중요한 공간인 만큼 가구의 조화에도 세심하게 신경을 썼는데, 스칸디나비아 출신인 Y체어와 앤티크 콘솔 모두에
어울리는 식탁을 구하기 위해서는 항상 줄자를 품고 다녔고,
결국 미국의 앤티크 숍까지 가서야 어울리는 테이블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국내의 앤티크 숍에도 좋은 테이블은 많았지만, 스웨디시 앤티크 가구의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
오히려 미국에서 구입하는 것이 훨씬 저렴하였다 한다.
또한 아일랜드 식탁과 조리대의 높이를 기성 제품보다 30cm씩 높여 주문했는데,
키 큰 남편이 요리와 설거지를 돕게 하려는 아내의 재치가 숨어 있다.
1 오른쪽 장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스웨디시 앤티크 콘솔.
크림 베이지 컬러였던 것을 컬러 콘셉트에 맞게 직접 블랙으로 페인팅하였다.
2 그녀는 안방 키큰장을 직접 도안해서 주문하였다. 문을 열었을 때,
멋 없는 가구의 옆면이 노출되는 것이 싫어 진열장이 결합된 디자인을 생각해냈다.
앤티크를 모으는 취미
“저는 기능적이고 편리한 물건보다, 옛날 사람들의 재치가 느껴지는 물건을 발견했을 때가 더 기뻐요.”
그녀는 10여 년 전 뉴욕에서 공부하던 시절부터 앤티크 소품과 가구들을 수집하였다.
미국에서는 혼자 사는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마치 벼룩시장처럼 유품들을 판매하는데 대부분 한국 학생들은
그러한 물건들을 찝찝해하였다고. 하지만 80년 된 코렐 접시, 1백 년 된 문 손잡이 등 재미있는 물건들을 보면 그녀는
마치 보물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었고, 그렇게 하나 둘 모은 물건들을 지금까지도 소장하고 있다.
진정 낡은 것을 좋아하고 이해하는 그녀의 성향은 집에 대한 정의로까지 이어진다.
‘익숙하고 좋아하는 물건들이 놓인 공간이 가장 편안하다’는 것.
침실은 물론 화장실까지 잠금 장치가 없는 앤티크 문 손잡이를 사용하면서 그 정도의 불편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는 감성.
진정 그녀의 집에서는 가짜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진한 인간미가 배어났다.기획 홍주희 | 포토그래퍼 김성용 | 레몬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