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전차가 도입된 것은 부산진과 동래 남문간 경편철도가 부설되면서부터이다. 1909년 6월 29일 부산진~동래 남문간 경편궤도 부선권을 허가받아 1909년 11월 궤도공사가 준공되어 동년 12월 2일 영업을 개시하였다.
1910년대 증기기관차 모습
1912년 4월 20일 부산진~동래 남문간 경편철도 개량과 1915년 10월 31일 부산진~초량간 경편철도가 연장 개통되면서, 동년 11월 1일 경편열차와 전차를 겸용되면서 본격적인 전차 운행이 시작되었다.
1916년 9월 22일 대청정선(부산역~부산우편국~대청동~보수동~토성동)이 부설되었고, 1917년 12월 19일 장수통선(부산우편국~광복동~토성동 한전 앞)이 개통 운행하게 되었다. 1920년에는 대신동에 공설운동장이 개장되면서 공설운동장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이 늘어나면서 1928년 9월 대신정선(도청~부용동~운동장)이 연장 개통되었다. 1935년 2월 목도(영도)선(대교통~영도대교~남항동시장)이 복선으로 연장 개통되면서 영도다리를 지나 영도 남항동시장까지 운행되었다.
부산에서 운행되었던 전차(1920년대)
1936년에는 부산공설운동장(현 구덕운동장) 남쪽의 동대신동 3가 173번지 자리가 전차종점이 되면서 차고가 되었다. 이후 시내를 누비던 모든 전차는 공설운동장 앞의 전차차고로 집결하게 되었다. 공설운동장 앞 차고에 있던 전차는 새벽이면 어김없이 출발하여 시내를 누볐다. 지금은 옛 종점이 있었던 자리에 서구청에서「전차종점터」표석을 세워 그 흔적을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이곳은 전차의 시발점이자 종점으로, 전차의 정비도 함께 이루어졌다.
또한 영도에 전차가 개통된 것은 영도대교가 가설된 다음해인 1935년 2월이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인구의 급증과 교통량이 증가되면서 영도다리는 1966년 9월 1일부터 도개를 폐쇄하였다. 1968년 5월 시내 전차운행 폐지와 선로가 철거되면서 영도지역 대중교통의 역할을 담당했던 33년간의 전차운행이 그 막을 내렸다.
당시 영도 전차종점은 남항동 2가 244-1번지였다. 영도구청에서는 1991년 12월 영도전차종점 자리에 지난날의 대중교통에 크게 이바지한 전차와 함께 옛 추억을 되새기며 역사의 현장에「영도 전차종점 기념비」를 세웠다.
1935년 영도다리 위를 달리는 전차 모습
중앙동 부산우체국앞~동래까지 전차가 개통된 것은 1915년이었고, 동래에서 온천장까지 연장 된 것은 1927년이었다. 그 이후 공설운동장과 영도에까지 확장되면서 시민교통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온천장이 공설운동장이나 영도보다 전차노선이 일찍 개설된 것은 온천장을 찾는 일본인 온천객들의 교통편의 제공에 있었다. 온천객을 위한 인력거나 택시도 있었으나 인력거는 기생전용이나 다름없고 택시는 부자들의 전유물이었는데 반해 전차는 시민상대의 서민의 발이었다.
온천장 전차 종점은 오늘날의 온천사거리 부근 온천1동 180-4번지 부산은행 온천장지점 자리에 있었다. 당시 정류소는 얼마간의 높이의 축대를 쌓아올린 자리에 건물을 세웠는데 40~50평이 되었다고 한다. 온천장 전차 종점 터에 기념표석을 세우지 못한 것은 협소한 도로와 주변지역 여건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부산의 전차는 도시의 팽창으로 인구 및 교통량 증가로 협소한 도로 한 가운데로 전차가 운행되면서 일반 차량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여 교통사고가 잦았다 한다. 1968년 5월 20일을 기해 전차운행이 폐지와 철로의 철거로 자동차 전용도로로 바뀌었다. 당시 운행되었던 전차의 실물은 동아대학교 대신동캠퍼스에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