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국에 있는 대부분의사정에는 정간이라 적혀 있는 목찰이 하나씩 걸려 있는데 이 목찰을 정간이라 부르며 이것에 절을 하는 것을 정간배례라 하여 활터예절 중 가장 중요한 예절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필자도 단양 대성정에서 정간배례를 하면서 활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국궁에 흥미가 붙고 선배궁사님들과의 생활도 너무나 즐거웠기에 점점 활터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러다보니 몇몇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 끼리 국궁의 사법을 비롯한 국궁문화에 대하여 토론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서로의 생각이나 선배궁사님들의 말씀, 다른 지방 궁사들에게 전해들은 내용 등 활터에서 관심을 끌만한 모든 것이 토론의 무대 위에 올려지고 비교 검토하는 작업을 거친 후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는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토론 중에 의문을 해소해줄 참고서적은 거의 전무하여 선배궁사의 말씀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령의 선배궁사들이 작고한다면 국궁문화를 계승하고 발전하는데 정체성이 크게 훼손될 것은 자명한 일이었습니다. 이것을 크게 염려하여 발 벗고 나선 사람이 정진명 선생입니다. 전국의 해방 전후에 활을 배우신 국궁원로 선배들을 찾아뵙고, 대담․채록하여 정리하는 작업을 몇 년간 꾸준히 하면서 국궁에 대한 책을 몇 권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흉으로 크게 고생을 하고 이의 후유증을 치료하고자 단식을 몇 번씩 반복하면서 이루어낸 결실이기에 곁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본 저로서는 그간 정선생이 펴낸 몇 권의 책1)
그러나 이러한 노력의 결과가 정진명이라는 궁사에게는 시련의 단초가 될 줄은 누가 알았겠습니까? 모든 궁사들의 배례를 받고 있는 정간이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은 국궁계의 앞날을 위해서는 바람직한 일이지만, 정 선생 개인으로서는 불행한 일입니다. 「한국의 활쏘기」를 출판하고 우암정 월례회에서 정간의 실체에 대한 것을 설명한 것은 학자로서 최소한의 의무였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 국궁계의 상황에서 감히 정간을 떼어낸다는 생각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정간은 내려졌고, 이의 후 폭풍으로 정 선생과 우암정은 크나큰 시련을 겪게 된 것입니다.
머리말에 이처럼 장광설을 늘어놓는 것은 정 선생의 정간에 대한 결론이 단순한 개인적인 추측이거나 어떤 개인적인 의도에 의한 것이 아님을 밝히고자 함입니다. 정간에 대한 논의는 학자적인 양심을 가지고 역사적인 근거와 충분한 자료에 바탕을 두거나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어야 합니다. 자료의 검토도 충분하지 않은 채 자신의 지식을 동원하여 그럴듯하게 좋은 말로 포장하여 만든 정간론으로 국궁계를 호도하는 일들은 이제 그만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따라서 이 글은 그간 벌어진 이와 같은 그릇된 이론과 관점을 살펴보고 그것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쓴 것입니다. 남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잘못 된 것을 지적하여 국궁의 미래에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이 나타나기를 기대하려는 것입니다.
II. 현재까지 나타난 정간론과 그 비판
현재까지 나타난 정간론은 대한궁도협회에서 1986년 발간한 「한국의 궁도」와 2006년 3월 7일 대한궁도협회에서 각 사정에 보내온 공문에 의하여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의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호남설
가. 내용
정(正)이라는 것은 활 쏘는 사람이 진퇴주선 할 때 안으로 뜻을 바로잡고 밖으로 몸을 바르게 한 뒤 궁시를 가지고 각자 마음을 풀어 놓으면 활을 잡고 쏠 때의 자세가 매우 심고한 즉 발사하는 자세를 완전하게 갖추는 것을 이름이로다. 간(間)이라는 것은 천지도 한번 움직이고 한번 정지하는 순간이 있고 우리 인간도 일동일정지간이 있으니 이것이 천인합치이다. 천지가 그러한데 하물며 우리 인간이야 어떻겠는가. 그러므로 일동일정은 활을 쏘면 반드시 적중하는 그 순간이다. 이러한 이유로 활 쏘는 사람이 정간 아래에서 배례하는 의미는 발이필중을 기원함이로다.
나. 대한궁도협회의 설명
「한국의 궁도」에서는 이 같은 정간 해의는 예기(禮記) 사의편(射義篇)과 악기편(樂記篇)에 언급된 사(射)와 악(樂)에 대한 의미를 정간에 맞추어 풀어 놓은 것으로 정간 자체에 대한 의미로는 볼 수 없다고 비판하였으며, 2006년 3월 대한궁도협의 공문에서도 이와 같음.
2. 영남설
가. 내용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평간(平間)이라 하고 인간을 초원한 존재 즉, 신을 정간(正間)으로 풀이하고 있으며, 따라서 평간인 인간이 초월적 존재인 정간을 향하여 배례하는 것은 인간은 심약하고 무절제한 면이 있어 인간 이상의 큰 힘에 의지하고자 하는 본능 때문이며 인간은 이를 통하여 자기 인격완성을 추구해 나간다고 함.
나. 대한궁도협회의 설명
「한국의 궁도」에서는 이 영남설이 정간 자체에 대한 해석이 불확실하고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하였으며, 2006년 3월 대한궁도협회의 공문에서는 “정간을 신이라 풀이하고 있으나 정간은 한 건물의 중심 간으로 상위개념의 윗자리인 존엄처일 뿐 신이라고는 할 수 없으며 인간을 평간이라 한 것도 그 뜻이 모호할 뿐 정간에 대한 설명이라 할 수 없다”고 비판함.
3. 서울설
가. 내용
본래 정간은 정자 한 가운데 있는 간을 말하는 것으로 조선시대 무과를 치를 때 전관, 혹은 민간사정에서 사두가 앉는 자리를 말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간배례는 무과를 치르기 전이나 평소 사두 앞에서 활을 쏘기 전에 응시자 혹은 일반사원들이 전관이나 사두에게 절하던 것이 오늘날과 같이 변천되었다.
나. 대한궁도협회의 설명
「한국의 궁도」에서는 “정간이 사정의 중앙에 있는 간(칸:間)을 지칭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실제로 과거에 무과를 치를 때 혹은 민간사정에서 과연 그러한 예식이 행하여졌는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여 정간을 포함한 정간배례 자체가 확실하지 않다고 비판하고 있으며, 2006년 3월 대한궁도협의 공문에서도 이와 같음.
4. 강원설
가. 내용
정간이란 무극(無極), 음양(陰陽), 유강(柔剛), 인의(仁義)와 같은 뜻으로 궁도인을 인극이라하고 인극을 형상화하고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 태극기이고 이것을 글로 옮겨 놓은 것이 정간이다. 정간은 글자 그대로 바를 정(正), 사이 간(間)이다. 즉, 바른 사이 이다. 바른 사이란 무엇인가하면, 사이(間)에 도(道)가 있다고 말한다. 사이가 없으면 도가 설자리가 없다. 부자지간의 도는 친(親)이며, 군신지간의 도는 의(義)이며, 부부지간의 도는 별(別)이며, 장유지간의 도는 서(序)이며, 붕우지간의 도는 신(信)이 되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대할 때나 만사 사물을 대할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으로 대하면 정간이 된다.
나. 대한궁도협회의 설명
이 강원설은 1986년 출판된 「한국의 궁도」에 언급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는 아마 없었거나 주목받지 못하였는데, 2006. 3월 대한궁도협회의 공문에서 정간과 관계없는 “퇴계이황의 태극도설에다 정간을 결부시켜 놓았다.”고 비판하고 있음.
5. 충북설
가. 내용
正字는 바르고 원만하고 正直하며 正義롭고 公明正大하며 참 과 올바른 삶의 모습이요 바른 길이라 하였고, 間字는 空間과 中心으로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萬物의 平等한 相位關係이며 調和로, 正間은 곧 天地萬物의 生成造化와 陰陽의 原理이며 宇宙秩序의 不變의 法則으로 大自然의 根本이요 眞理의 殿堂이라 했다.
弓道人이 正間을 拜禮함은 天理와 人倫을 닦음이요 順應함이라 하겠다.
나. 본인의 비판
충북설은 2005년 3월 도협회장 명의로 충북 사정에 배포된 내용입니다. 여기서 도협회장은 “弓道人은 正間을 향하여 拜禮하고 弓道人의 求心點이 되어왔다. 그러나 正間에 대하여 언제부터 正間拜禮를 하여 왔으며 그 참 뜻은 무엇인지 口傳되어 왔을 뿐 그 說이 분분하여 正意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現實이다. 口傳되는 正間에 의미를 풀이한 것이 있어 옮겨본다.” 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간이 생긴 것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몇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국궁의 구심점 노릇을 해 왔다는 것에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럴듯하게 좋은 말로 꾸며놓은 이 정간론은 본인이 10년을 넘게 활을 배워왔으나 처음 들어봅니다. 정말 구전되어온 것인지 어느 분이 자신의 한학 실력을 발휘한 창작품인지 근거가 모호합니다.
6. 대한궁도협회 정간론(2006. 03. 07일자 공문)
가. 공문에 나타난 정간론 내용 요약
1) 정간이 무엇이며 언제부터 존재하였는가.
가) 정간의 정의
정간은 어떤 건물의 중심이 되는 한가운데의 간(間)이며 그 건물의 어떤 공간 보다 상위의 공간이고 이곳을 존엄처(尊嚴處)라고 정의함.
나) 정간 사상
정간 사상이란 건물의 중앙을 신성시하는 사상이라고 정의하고 우리 인간이 윤리와 도덕적 개념에 눈을 뜰 때부터 이미 정간사상은 존재하여 왔다.
정간사상은 활터뿐만 아니라 우리생활의 깊은 곳까지 뿌리가 내려진 생활의 일부분이었고 당연하고 일상적인 생활이었다. 옛 문헌들이 특별히 정간에 대하여 기록하지 않았던 것은 이와 같은 연유에서가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특히 황학정에도 엄연히 정간이 있었고 정간배례를 하였음에도 그 곳에서 저술과 편집이 이루어진 조선의 궁술에도 정간에 관한 언급이 없었던 것은 이와 같은 연유임이 틀림이 없다.
2) 정간의 존재를 확인해 주는 근거
가) 전주 천양정의 규례(1912) : 사원은 등정시 필히 먼저 정간에 배례하여야 한다.
나) 전주 천양정의 헌장(1958) : 정간은 선생안 또는 사장(射長)의 정좌(正座)를 상징하는 존엄처이므로 정간 또는 정간의 전면은 타인의 침범을 불허한다. 사원은 등정 즉시 정간에 경민한 태도로 배례하여야 한다.
다) 서울 황학정 : 정간에 황제의 어진을 모시고 정간배례를 함.
라) 남송정 : 정간에는 선생안이 모셔져 있었고 정간배례를 하였다고 증언함(김행윤 증언, 현재 작고함)
마) 만하정 : 정간에 선생안을 모시고 정간배례를 함.(울산지부장 김두회씨 자료 제공)
3) 현판과 정간배례
가) 정간과 현판 : 정간(正間)이라 새긴 현판은 다만 이곳이 이 정사의 정간(가운데 칸=존엄처)이라는 표시에 불과하며 정간이 아니라고 함.
나) 정간배례의 의미 : 정간이라는 현판이 있든 없든 정사의 한가운데가 정간이고 이곳이 존엄처이기 때문에 그곳에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배례하는 것이라고 주장함
4) 맺는 말
가) 정간의 존속 여부에 대하여 : 정간을 존경하고 신성시하는 것을 어찌 나무라겠는가 다만 현판 또는 액자를 걸어놓고 절하는 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 된다고 결론을 유보함.
나) 정간배례에 대하여 : 현판의 존재와 관계없이 미풍양속으로 권장할만하며 선현들에 대한 경배로 해석함.
나. 본인의 비판
1) 「정간의 존재는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기록조차 불필요하기에 기록이 없다.」는 주장에 대한 비판
우리 조상들은 예절을 매우 중요시하여 사소한 예절도 규범으로 정하여 후세를 교육하여 왔고, 이 분야에 관한한 너무나도 많은 자료를 남기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우리민족의 어떤 문헌에도 “정간배례”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소설, 서간문, 전래동화, 풍속화, 전설 등에서 조차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정간배례라는 말이 최근에 생긴 것이거나 아주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되어 일반인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대한궁도협회의 주장처럼 너무나 보편적이고 일상적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대한궁도협회의 주장대로 정간배례가 옛날부터 존재하여 왔고 너무나 당연하여 기록할 필요조차도 없었다고 말한다면 이 때의 정간배례는 정 건물의 중앙이나 정간이라고 쓴 판자에 대고 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계신 어른께 인사하는 것을 이르는 말인 것이고, 그렇다면 정간배례라는 별도의 용어도 당연히 필요 없었을 것이고 대한궁도협회의 주장처럼 기록할 필요조차 없었겠지요.
2) 「정간사상」에 대한 비판
우선 정간사상이라는 것이 과연 있기는 있는가? 「정간」이라는 말도 극히 일부에서 사용되어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용어인데 하물며 「정간사상」이라는 말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또한 새로이 만든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세상 사람들이 편하게 살기위하여 애써 지은 건물을 신성하게 모시고 살아갈까. 과연 우리민족에 그런 희귀한 풍습이 있는가? 들어본 바 없습니다. 다만, 어른들이 기거하시는 곳에서 행동거지를 조신스럽게 하는 것은 우리들의 전통예절이지만 이것을 「정간사상」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건물 중앙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어른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3) 정간의 존재를 확인해 주는 근거에 대한 비판
황학정에 정간이 존재한다는 궁도협회의 주장을 옮겨봅니다.
모두들 황학정에는 정간이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황학정을 대표하는 사람들조차 황학정에는 정간이 없었다고 한다. 어떻게 황학정에 정간이 없었다고 할 수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황학정은 1992년 옛 등과정 건물을 옮겨와 18평 정도의 정사를 건립하였고 그곳에는 엄연히 정간이 있었다. 다만, 정간을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오해일 뿐이다. 황학정에는 정간에 황제의 어진을 모시고 정간배례를 하였다. 어떤 분들은 황제의 어진에 배례하였지 정간배례는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는 몰라도 한참 모르는 말이다. 황학정에는 정간에다 황제의 어진을 모신 것이지 황제의 어진에다 정간을 모신 것이 아니다. 전주 천양정에서 정간에다 선생안을 모시고 배례한 것이나 황학정에서 정간에 황제의 어진을 모시고 배례한 것이나 무엇이 다른가. 그런데도 어떻게 황학정에서는 정간배례를 하지 않았다고 하는가 이것이 모두 정간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데서 일어난 넌센스다.
위 내용은 정간에 황제의 어진을 모시고 정간배례를 하였기 때문에 이는 황제의 어진에 배례한 것이 아니라 정간에 배례하였다고 주장함과 다르지 않습니다. 황제의 어진이 정간에 들어가는 순간 어진은 정간의 부속물로 전락하여 권위를 잃는 것이고, 이곳에 배례하는 것은 모두 정간에 배례하는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게다가 위의 주장은 현장 조사를 전혀 하지 않은 채 경강부회한 것이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황학정 사두와 조선궁술연구회장을 지낸 성문영 공의 아드님인 성낙인 옹의 증언에 의하면 고종의 어진이 황학정에 붙은 것은 해방이 되고도 한참 뒤의 일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낙인 옹은 어진에 관해서 묻자 오히려 반문을 하더군요. 일제시대에 고종황제의 사진을 걸었다가는 큰일 날 것이라고요. 황학정에는 아득한 옛날부터 정간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붉은 곤룡포를 입은 칼라 사진이 걸려있지만, 그것도 몇 년 전에 흑백 사진이던 것을 교체한 것입니다. 결국 황학정에 정간 내지는 그와 비슷한 것이 존재했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지금도 가 보십시오. 정간과 비슷한 것도 없습니다. 사진은 정간이 아닙니다. 정간의 의미로 걸어놓은 것도 아닙니다. 이런 사실조차도 확인하지 않은 채 썼으니 위의 글은 기초조사조차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억지 주장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전주 천양정, 통영 남송정, 울산 만하정에서 정간에 선생안을 모시고 정간배례를 하였다는데 이곳에서도 선생안에 배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간에 배례를 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간에 사두님이 앉아계셔서 인사를 드리면 사두님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간배례가 되는 것입니다. 주객이 전도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정간배례의 실체라는 것이고 모든 궁사들이 지켜야할 전통예절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대한궁도협회에서 발간한 「한국의 궁도」에서조차도 정간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며 전라도에서 시작되어 서서히 전국으로 퍼져갔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해방 전부터 경상도에 있었다니, 앞뒤로 말이 맞지를 않습니다. 이것은 그렇게 말한 분들이 해방 전의 사실과 해방 후의 사실을 혼동하면서 빚어진 것이라고 단정 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점은 해방 전에 집궁한 분들을 만나서 몇 차례 확인한 정진명의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이미 나와있는 글에 대해서 면밀하게 검토하여 그것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반론을 펴는 것이 상식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이상의 글은 이미 나와있는 글조차도 면밀히 검토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에 맞는 내용만 추려낸 것입니다. 이래가지고야 바람직한 논쟁이나 토의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상대의 글에 대한 최소한의 학자적 예의가 없다면 발전적인 논쟁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남의 의견은 듣지 않고 자기주장만 늘어놓는다면 그것은 말싸움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기 공문에서 궁도협회는 태초부터 “정간이 신성한 곳”이기에 “이 정간에 어진을 모신 것이지 어진에 정간을 모신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천양정, 남송정, 만하정에서 정간에 선생안을 모신 것이지 선생안에 정간을 모신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황제 어진이나 선생안 또는 사두님께 하는 절이 결국 그 분들(사람)에게 절하는 것이 아니고 정간이라는 특정 장소에 절하는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사람이 아닌 특정 장소에 절한다는 것이 얼마나 낯설고 이상한 주장입니까? 예를 들어 부모님이 기거하시던 빈 방을 향하여 절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소위 ‘정간 사상’이라는 이러한 이상한 주장을 대한궁도협회는 “우리 생활의 깊은 곳까지 뿌리가 내려진 당연하고 일상적인”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정간에 절하여 모실 대상이 없으면 정간배례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황당한 주장을 하기 전에, 그 이전에 나온 글들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에 대한 반론을 먼저 내는 것이 논의의 순서가 맞을 것입니다. 자신의 주장만 되풀이해서는 논의가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III. 결론 및 제언
1. 결론
가. 정간의 출현
정간의 등장 과정에 대하여 추론한다면, 최초에 어디선가 어떤 의도를 가진 누군가에 의하여 정간이라고 쓴 현판이 달려졌고 이곳이 정간이니 인사하라고 시켰는데 그 역사는 길게 보아 20~30년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이것이 전국 활터에 확산되었습니다. 이러한 논의에 대한 글은 지금까지 정진명 선생의 책이나 온깍지궁사회의 논문집을 통해서, 혹은 지디털 국궁신문을 비롯한 사이버 매체를 통해서 많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정간의 뜻이나 정간배례를 하여야 하는 이유는 함께 전파되지 못하고 무비판적으로 정간이라 쓰인 현판만 내걸게 된 것입니다. 어째서 먼 옛날 일도 아닌데 처음 정간이라 새긴 표찰을 만들어 단 사람이 내가 처음 달았노라고 나타나지 않으며, 정간을 달게 된 근거나 의미를 제대로 설명하는 사람이 없으며, 어찌하여 정간의 의미가 전파되지 못했을까요?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은 대한궁도협회의 2006년 3월 7일자 공문에 나타납니다. 이 공문에서 정간은 「이곳이 정간임을 표시하는 목찰」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본래부터 표찰에 불과했던 정간이기에 누가 달았는가 하는 것이나, 표찰을 단 이유도 중요한 일이 아니었으며, 정간의 의미는 더욱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떡 보면 한 눈에 알 수 있는 것을 「이곳이 가운데 칸임을 표시한 것」이라고 설명할 필요하겠습니까? 우스꽝스러운 일이지요.
나. 다양한 정간론의 출현
황학정에서 어진에 배례하고, 천양정에서 선생안이 모셔진 정간에 배례하는 전통을, 각 사정에서는 정간이라 쓰인 목찰에 배례를 하도록 후배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였고, 이 후 선배들은 「정간이 무엇인데 절을 하느냐?」는 후배들의 물음에 대답을 하여야 했습니다. 각 지역에서는 자신의 학식을 자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이들이 그럴듯하게 정간의 의미를 만들어 줍니다. 이 분들은 정간과 관계가 없는 옛 고전의 내용을 정간에 짜 맞추어 풀어 놓거나(호남설, 강원설), 역사에 무리하게 접목시키려고 노력하거나(서울설), 아예 자신의 학식을 이용하여 그럴듯하게 창작하고는(영남설, 충북설, 정간사상), 자신의 작품임을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고 한결 같이 예부터 전해내려 오는 구전이라고 하면서 억지 권위를 부여해 주었고, 이것이 각 지역에서 왜곡된 정간론이 출현하게 되는 사연으로 생각합니다.
다. 정간배례의 불필요성
현재 대부분의 사정에서 시행되고 있는 정간배례는 사두님을 비롯한 사정의 어른들을 제치고 정간이라고 쓰인 나무판에 배례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하지 않으면 예의 없는 망나니로 취급당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간배례는 어른을 받들어 모시는 예절이 왜곡된 것에 불과한 것으로 우리 민족의 전통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며 이를 두고 미풍양속 운운하는 것은 오히려 조상께 죄스러운 일입니다.
황제어진이나 선생안 또는 사두님에게 하는 절과 정간이라는 표찰에 하는 절은 다른 것입니다. 표찰에 배례하는 왜곡된 정간배례는 없어져야 합니다. 선생안도 없고 황제의 어진도 없는 정에서 표찰에 정간배례를 하다가는 언젠가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결국 어느 사정에서 정간배례를 한다면 이는 정간에 모셔진 어떤 대상을 향하여 절을 하는 것입니다. 황학정은 황제의 어진에, 천양정은 정간에 모셔진 선생안에 절을 하는 것으로 이는 이들 사정의 독특한 사풍으로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정간에 회원들이 받들어 모실 대상이 없으면 배례를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사정에 올라오면 반드시 지켜야할 전통예절이 있습니다. 바로 장소가 아닌 사정 어른들이나 사우들에게 인사하는 등정례가 우리들이 반드시 지켜야하는 예절입니다.
2. 제언
첫째, 자신의 학식을 바탕으로 정(正)자, 간(間)자를 파자하여 조합하거나, 글자의 좋은 뜻을 모아 정간론을 만들거나 또는 근거가 없는 무슨 사상이라든지 하는 것을 만드는 창작 활동을 그만 합시다. 그리고 이미 근거가 없다고 밝혀진 정간론을 더 이상 논하지 맙시다.
둘째, 정간에 어떤 대상을 모시고 배례를 하고 말고는 각 정의 회원들이 결정할 일이며 이는 각 사정의 독특한 사풍인 것입니다. 이를 타 정 사람들은 물론이고 대한궁도협회에서도 관여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다양한 각 정의 고유의 사풍은 국궁 문화를 풍성하게 만드는 일로 존중되어야 합니다. 획일화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만으로 최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정에 오르면 등정례가 있어서 웃어른께 예의를 차리고, 첫발을 낼 때, 초시례를 하면서 활 배우는 고마움을 일깨웁니다. 대회를 할 때에는 먼저 가신 선배궁사에 대한 묵념을 올립니다. 이 얼마나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예절입니까? 우리 모두 국궁예절을 전통예법에 맞게 확립하여 후세에 물려줍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