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동산에도 뱀이 있다
손 광 성
젊어서부터 나의 꿈은 전원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사람 사귀기를 겁내는 성격 탓일 수도 있고 실향민으로서 뿌리 내리기 심리일 수도 있겠구나 싶다.
아무튼 볕이 바르고 경관이 수려한 곳만 보면 언젠가 거기에 집을 짓고 살아야지 했다. 경춘선을 타고 강촌역을 지날 때도 그랬고, 중앙선을 타고 간현역을 지날 때도 그랬다. 전주와 서울을 오르내리던 시절, 호남선을 타고 가수원역을 지날 때도 같은 꿈을 꾸곤 했다. 하지만 나의 꿈은 무정란처럼 매번 부화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다 금년 3월, 이곳에 조그만 쉼터를 마련했다.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있는 '따뜻한 남쪽나라'. 20여 호가 되는 작은 마을이다. 400평도 채 못 되는 과수원이지만 채소를 갈고 꽃을 가꿀 텃밭도 있다. 30평이나 되는 창고가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칸막이를 하면 오랫동안 바라던 작업실과 전시실을 함께 가질 수 있을 것이었다.
4월부터 두어 주에 한 번꼴로 내려와 공사를 하고 있다. 시골이라 일꾼을 구하기도 쉽지 않지만, 굳이 서둘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아서다. 지붕을 새로 이고 얼마 있다 천장을 낮추었다. 또 얼마 있다가 작업실과 화장실을 넣었다. 프란시스 잼의 시에 나오는 눈빛이 순한 당나귀 한 마리가 금방이라도 돌아서 나올 것 같은 그런 긴 돌담도 쌓았다. 이달 중순쯤 돈이 마련되는 대로 도배도 하고 바닥도 깔면 일 단계 공사는 마무리되는 셈이다.
지난 3월 처음 내려 왔을 때는 유채꽃이 환했다. 4월과 5월, 아침마다 새소리에 잠이 깼다. 작은 새들의 지저귐은 탄산음료의 기포가 터지는 소리처럼 상쾌했고, 침엽수가 내뿜는 공기는 아이스크림처럼 감미로웠다. 밤에는 별을 보다가 잠이 들곤 했다. 대도시를 탈출한 별들이 모두 이곳에 피신해 온 것은 아닐까 할 정도로 많았다. 어떤 별은 잘 닦은 놋주발만큼이나 하다. 고개를 젖히는 순간 와르르 무너져 이마 위로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 오랫동안 꿈꾸었던 나의 낙원이 비로소 현실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했던 건 물론이다. 가을에 펼쳐질 또 다른 풍경에 대한 기대도 가슴을 설레게 했다. 내 노년은 이제 오래오래 평안해도 좋으리라.
그런데 8월에 들어서면서 예기치 못한 문제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공사비가 떨어져 달포가량 오지 못했더니, 그새 쑥이며 망초며 명아주 같은 잡초들, 아니, 녹색제복의 군단들이 이미 과수원 접수를 끝내고, 바야흐로 나의 아지트인 창고를 포위 공격 중이었다.
'풀과의 전쟁!'
그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었다. 낫으로는 턱도 없을 것 같았다. 서울서 사 가지고 온 예초기를 급히 조립했다. 단칼에 요절을 내 주리라. 그러나 오산이었다. 아니, 자만이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 듯싶다. 이미 굵을 대로 굵어진 쑥대와 명아주는 예초기 날 사이에서 온 힘으로 저항하고, 강아지풀이며 달개비 줄기 같은 연약한 것들은 그것들대로 예초기의 회전축을 휘감아서는 기계도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뜯어내고 베고, 뜯어내고 베고… 수없는 반복. 그러나 몇 시간의 악전고투에도 불구하고 내가 수복한 영토란 고작 여남은 평에 불과했다. 인해전술(人海戰術)이 아닌 초해전술(草海戰術)! 백기를 들고 말았다. 풀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 건 난생 처음이었다.
그런데 나의 복낙원(復樂園)의 의지를 시험하는 건 잡초만이 아니었다. 밤에는 벌레들의 공격이 이어졌다. 손바닥만 한 나방이란 놈이 뺨을 때리고 달아나고 나면, 이번에는 매미만 한 풍뎅이가 봉당에 뛰어 들어서는 흙먼지를 자욱이 일으키며 막무가내로 일인시위를 벌이는 것이었다. 데모에 무감각해진 서울특별시민인 나라고는 하지만 여간 난처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떼거리로 몰려드는 모기들의 편대 공습이라니.
풀을 베던 날 밤이었다. 탈진 상태가 되어 대충 저녁을 때우고 잠시 시들었다 일어나리라 했다. 그런데 내처 자고 말았다. 꿈도 없는 단잠. 그러나 아침에 깨어 보니 손등과 팔다리는 물론 얼굴까지 온통 빨간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추석 때만 해도 그렇다. 샤워를 하고 휘파람을 불며 테라스에서 보름달-이곳 달은 찬물에서 방금 건져낸 것 같다-을 구경하고 있었다. 잠시 후 방으로 들어가려는 참이었다. 그런데 낌새가 좀 수상했다. 발을 옮기려는 순간 손가락 굵기만 한 초록색 뱀 한 마리가 이미 내 발등을 타고 넘는 중이었다. 다 넘어갈 때까지 난 부동자세! 게다가 그 섬뜩함이라니! 한데 놈은 미안한 기색도 없이 유유히 돌담 쪽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수인사는 혀사 쓰것지라우?"
뭐 그렇게 이죽거리는 것 같았다. 잔뜩 부풀었던 나의 꿈과 기대와 낭만 여기저기에서 피식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꿈을 접을 수는 없는 일. 덫이며 농약이며 제초제 같은 걸 쓰면 어찌 되겠지만 그건 여기 온 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니 그럴 수는 없고. 궁리 끝에 겨우 도달한 해결책은, 일단 낙원에 대한 나의 관념부터 수정하는 일이었다. 다음은 그들을 또 다른 나의 이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끔 반갑지 않은 방문도 받아야 하고, 원치 않는 헌혈도 해야겠지만 적정선에서 타협하면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란 생각에서다.
하긴 에덴동산에도 분명 뱀은 있었으니까. 어찌 보면 풀이며 모기며 나방이며 풍뎅이가 없는 세상, 사람만 사는 세상. 그게 어디 진짜 낙원이겠는가 싶기도 하다.
첫댓글 그러게요. 그러한 미물들과 함께 가꾸어 가는 세상이 살아있는 세상이죠.
그렇지만 뱀이 발등을 타고 넘어가는 경험은 좀 사양하고 싶습니다.
꿈속에서 프란시스 잠의 눈빛이 순한 당나귀 꿈이라도 꾸는 날이면 더 행복할 것 같네요.
내가 꿈꾸는 낙원은 이 세상에는 없지 않을까요? 받는 것이 있으면 주는 것도 있지요.자연에서 느끼는 기쁨 만큼 불편함도 감내해야?
소희님, 수고하셨어요. 선생님 글 올려 주신 덕분에 잘 읽었네요.
신선한 느낌, 가슴에 오네요.
내년 봄쯤 아니면 가을쯤.
친히 손선생님 낙원을 방문하여 초록뱀과 놋주발만한 별과 찬물에서 금방 건져올린 달과
선생님을 항복시킨 잡풀과 곤충들...
테라스에서 만나보아야 겠네요. 만나면
"선생님이 겁도 많으시고 여리시니 심하게 놀리지 말아주세요."
살살 달래도 보고 적당한 부조도 하고 돌아와야겠습니다.
그곳의 쏟아지는 별들과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리는듯 해요~~ 뱀은 말고요ㅠㅠ
저희 동네 영아엄마가 눈 감고 울다시피 비명지르면서 뱀 잡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역시 모성은 강해, 했는데
아이들은 죽은 뱀 갖고 빙빙 돌며 놀았더랬어요.
그것도 벌써 오래된 이야기.
집이 많이 들어서니까 뱀이 제 영토 내주고 산으로 들어가더군요.
쩝...^^
하늘 아래 낙원은 없습니다. 그런 것 같죠?.
삶은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우리가 사는 바로 이 곳이 낙원일 될 수 있거든요.
언제?
"낙원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수정할 때, 모든 이들을 우리의 이웃으로 받아드릴 때"입니다.
드디어 선생님의 '복낙원'이 어디일까를 놓고 알아맞추기 게임이 시작되었습니다.(2011년 10월 13일 목요수업후 점심식사 자리에서부터) 혹 선생님은 우리들의 궁금증을 지켜보시며 이 또한 즐기실까? 아마 집짓는 과정을 글로 쓰실때 우리의 퀴즈게임도 책의 어느 모퉁이에서 한 몫하지 않을까 싶다.
글중에.. 8월에 들어서면-> 들어서서가 아닌가요?
신문에 탈자가... 제 임의로 고쳐넣었습니다.^^
선생님의 낙원에 뱀이 잠자고 있는 겨울에 가보고 싶네요. 아님 뱀이 백반을 싫어한다는데? 한봉지사들고 가든가
김치국 부터 벌껑 벌껑, 나만의 낙원을 만들어가는 것은 그것으로 행복으로 생각되네요. 선생님의 낙원에 아가위제자들도 초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