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슬 메모리 (Muscle Memory) -11
미녀군단
드디어 1회 브라보 안산 상록수배 전국오픈 탁구대회가 개최 되었다. 2009년 1월 10일. 난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다. 새로이 탁구에 입문한지 만 3개월에서 조금 모자랐다. 학창시절 꽤 한다던 탁구가 '새 발의 피' 쯤 되는 실력이란 것을 그동안 뼈가 저리도록 느꼈다. 새로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적. 그러니까 아직 세상물정 모르던 그때, 아줌마 탁구의 무서움을 알았다. 그리고 다른 탁구장에서 열린 오픈 대회에서 탁구의 고수가 그렇게 많다는 것을 또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분들이 대단한 열정으로 가득했고 나는 그 열정에 푹 빠졌다. 잘하는 사람도 좋지만 열정이 가득한 사람은 아름답다. 열정은 내 피를 그렇게 자근자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이번 대회는 전국대회로 치러진다. 전국대회는 4부까지 밖에 없어서 그런지 5부에는 타 지역 남자들이 출전할 수 없다는 단서조항이 있었다. 그리고 8강 안에 들면 4부로 승급도 된다는 주최측의 당근이 보기만 해도 달게 느껴졌다. 경기 진행 방식은 개인전과 2단1복의 단체전으로 구분되었다. 단체전은 3명이 출전한다. 이날을 위해 우리 팀은 복식을 따로 준비해 왔다. 경기는 개인전을 먼저 하게 되어있다.
난 이날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여성분들과 게임을 해야 했다. 5부로 출전한 선수들 중 아마도 2/3가 여성분들이지 싶었다. 많은 타 지역 여성분들이 5부로 출전한 모양이다.
‘아 복도 지지리도 없는 넘.’
나는 순간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한 달 전 겪었던 아줌마 탁구의 아픈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이 기분을 뭐라 표현해야 할런지.
그러나 시합은 해봐야 아는 것.
예선 리그전이 시작되었다. 3명이 1조가 되어 한명이 탈락하게 된다. 내가 속한 조의 이름에 분명 여자 이름은 한 명이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나를 뺀 나머지가 다 아줌마였다. 한 아줌마 이름이 어지간한 남자이름 보다 더 남성스러웠다. 그 아줌마 서울서 원정 왔단다. 그리고 또 다른 아줌마는 6부였다. 내가 핸디 2점주고 시작해야 한다. 짧은 경험으로 6부 아줌마들과의 게임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5부 아줌마와의 실전경험이 없는 나는 그 정도를 알 수 없는 노릇이다.
6부 아줌마와의 첫 대결이다. 내가 머리에 털나고 탁구대 28대가 들어선 실내 체육관에서 탁구를 쳐보는 것이 처음이다. 긴장했던 탓인지 첫 세트를 지고 말았다.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두 번째 세트부터는 서비스를 바꿨다. 커트 위주의 서비스에서 화 횡회전 서비스를 주로 구사했다. 이 작전은 주요 했다. 관장님이 그랬다. 6부 여자들은 대부분 횡회전 서비스에 약하다고. 하긴 나도 고수들이 넣는 강력한 횡회전 서비스에 속수무책이던 기억을 생각하면 상대도 비슷한 심정이라는 것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나머지 세트를 어렵지 않게 따내고 1승을 챙겼다.
6부 아줌마의 아쉬움 가득한 얼굴이 안타까웠다. 횡 회전 리시브를 못해 게임을 망쳤다고 생각할 아줌마의 모습. 나는 게임이 끝나고 아줌마에 악수를 청했다.
“잘 쳤습니다. 잘하시네요.”
아줌마는 수줍은 듯 별 말없이 손만 짧게 내밀었다.
다음 경기는 6부 아줌마와 5부 아줌마의 대결이다. 5부 아줌마가 쉽게 이기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려운 게임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과는 5부 아줌마의 낙승.
드디어 맞장이다. 5부 아줌마와의 게임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아줌마가 바지와 상의를 벗었다. 바지 속에는 반바지가 상의를 벗은 모습은 반팔 탁구 복이었다. 그러면 아까 6부 아줌마와는 몸만 풀었다는 건가. 순간 내 모습을 상상해 봤다. 평소 신고 다니던 운동화와 츄리닝. 이때까지 나는 탁구화나 운동복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뭐 옷이 탁구 치는것도 아니잖아.’
게임은 박빙이다. 2:2 까지 가는 접전 동안 아줌마는 나에게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연이어 펼쳐지는 네트와 에지에 나는 공격다운 공격을 해보지 못했다. 내 공격은 잘 먹혔지만, 한 세트에 그런 공격은 2-3점이 전부였다. 역시 게임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할 수 밖에 없었다.
네트도 실력이라고 했다. 그만큼 낮게 콘트롤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지도 운이 따르는 것이기는 하지만 엄연한 실력임엔 분명하다. 그것이 탁구대 안으로 들어와 에지가 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받기 어려운 공임엔 틀림없기 때문이다. 공을 양 사이드로 그리고 후미로 칠 수 있다는 것은 쉬운 기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억울할 것 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아쉽다. 한 세트에 5개 넘게 들어오는 네트와 에지 때문이라고 애써 패인을 분석했지만 그런 것이 없더라도 내가 이길 수 있는 게임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 아줌마는 자기 범실이 나보다 훨씬 적었다. 동작도 간결했다. 아마도 내 큰 동작에 대응하는 맞춤형 인 것 같이 느껴졌다. 상대에 따라 전술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만만한 경지는 아니다. 게임이 끝나고 ‘네트 때문에 미안해요.’라는 아줌마의 격려에 ‘그거 아니었어도 제가 어려웠겠어요. 잘치시네요.’라며 인사를 나눴다. 그래도 예선은 통과했다.
나는 이날 본선 토너먼트 2차전 그러니까 32강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본선 토너먼트에서 만난 분들도 모두 여성분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예선과 시나리오도 똑같은지 모르겠다. 6부 아줌마와 5부 아줌마. 6부 아줌마를 이기고 올라가서 5부 아줌마에게 졌다. 그 5부 아줌마는 내 드라이브를 잘 받아냈다. 마음먹고 좌우로 찢은 드라이브를 이 아줌마가 아주 기가 막히게 블록킹했다. 폼이 큰 나는 연이은 공격을 하지 못하고 공 지나가는 것을 구경만 했다. 점수라고 생각한 공격이 보기 좋게 막힌 후 내 패이스는 급격히 떨어졌다. 공격에 자신감을 잃은 것이다. 공격 찬스의 공을 다시 넘겨주는데 그치는 상황이 반복된 것 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틈을 상대는 후 집고 들어왔다. 서비스 리턴을 그리 무리하게 하지 않으면서 공격적으로 돌변한 것이다. 몇 대 얻어맞은 나는 점점 전의를 상실해 같고 셋트 스코어 2:2 마지막 듀스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 게임에서 관장님은 나에게 계속 백 서비스를 넣을 것을 주문하셨다. 내가 넣는 화 서비스를 상대가 2구 공격으로 과감하게 나올 정도로 내 서비스는 밋밋했다. 공격이 되질 않아서인지 서비스에도 자신이 없었다. 나는 조금씩 다르게 섞어 넣는다고 넣은 그 서비스가 상대방은 다 읽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마음의 평정심을 잃은 나는 관장님의 주문을 소화하지 못했다. 이게 평정심을 잃은 건지 쓸데없는 고집을 부린 것인지는 모르겠다.
뭐니 뭐니 해도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미녀군단과의 단체전 토너먼트 2회전이다. 상대는 인천의 ‘미추홀 탁구클럽’의 여성 3인방이다. 인천은 당구도 짠데 탁구도 만만치 않다는 소문이 이쪽 지역에서는 파다하다. 하긴 그날 있은 개인전을 보니 인천 쪽에서 온 분들이 거의 싹쓸이 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탁구클럽의 이름이 예사롭지 않았다. ‘미추홀’이라 이건 예술 쪽 하는 사람들이란 생각을 팍 들게하는 짜릿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평소 ‘점쟁이 빤스’를 입고 다닌다는 나의 예상은 빗나가질 않았다. 양 팀이 마주 서 인사를 나누는데 우리 팀의 전의는 그 때 이미 허물어졌다.
“와~~ 이쁘다.”
우리 팀 P형의 첫 마디였다. 그리고 옆에 있던 L형과 나의 찢어지는 입은 이미 제어가 불가능했다.
‘미추홀. 아름다운 가을이란 뜻인가? 아니 그런데서 예술하는 분들도 탁구를 치네’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던 차에 P형의 말이 귀에 들어왔다.
“우리 악수라도 하죠.”
상대 미녀 3총사 분들도 쑥스러운 듯 두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 게임에서 나는 복식과 단식을 나가는 것으로 오더를 제출했다. 그러나 나의 단식 차례는 끝내 오지 않았다. 단-복-단 으로 치러지는 경기에서 첫 게임은 L형이 나섰다. 질기기로 소문난 형이다. 어지간한 공격은 잘 뚫리지 않는다. 어영부영 넘겨주는 것 같은 공이지만 뒤에서 왠만한 5부의 공격은 아주 잘 받아 넘기다. 그러다 보면 상대가 알아서 퍼준다.
그러나 상대는 쉐이크 양면 모두에 이질(핌플)을 장착한 잔다르크였다.
미녀 3총사는 우리팀의 찢어진 입과는 다르게 전의에 불타보였다. 한명이 다른 두 명보다 나이와 실력이 위인지 벤치까지 봤다. 잔다르크가 탁구로 환생했다면 아마도 저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L형은 핌플 러버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던 터에 아주 지대로 걸렸던 것이다. 연신 만세를 불렀다. L형의 리시브는 연신 하늘로 향했다. 잔다르크는 때리기 딱 좋은 높이로 나라오는 그 공을 칼을 후리듯 날카롭게 스메싱으로 응수했다. 그 소리가 얼마나 경쾌하던지 L형은 경기가 끝나고, 싸대기를 후려 맞는 기분이라고 했다. 탁구 예의 깎듯하고 마음 좋기로 소문난 형이 그날은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질인지 뭔지~~ 이런 러버~~ 없어져야 돼. 와~~ 미치겠다.”
그러나 어쩌랴 이게 탁구인 것을.
두 번째 복식은 나와 P형이 파트너를 이뤄 출전했다. 이 게임을 지면 여기서 끝이다. 그러나 첫빵에서 보기 좋게 나라가는 L형의 모습을 확인한 우리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쯤돼니 ‘미녀 삼총사’가 아닌 ‘마녀 삼총사’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까 벤치를 보던 분과 잔다르크가 파트너로 나왔다. 상대는 이를 악물로 덤볐다. 조금 과장하면 정말 탁구로 밥 벌어 먹는 사람 같았다. 한 점 한 점에 신중함이 건너편 탁구대의 내게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정말이지 장난이 아니었다. 상대의 신중함에 나도 숙연해졌다.
첫 서비스를 넣었다. 신중하게 컷트를 최대한 많이 넣어 보냈다. ‘앗뿔싸’ 그런데 그 공을 상대의 맏언니는 커트로 넘겨주지 않았다. 루프 드라이브. 탁구대 끝에 걸릴동 말동하는 그 짧은 컷트 서비스를 아무렇지도 않게 루프 드라이브로 걷어 올리는 폼이 예사롭지 않았다. ‘저런 폼 텔레비전에서 여자 선수들이 탁구 칠 때 봤는데’하는 생각에 나는 다음 공이 어디로 가는 지도 몰랐다. 그 폼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부드러워 감탄하기 급급했다. 커트로 한 번 더 넘겨주려 던 우리의 작전은 숲으로 돌아갔다. 이런 생각 처음 들었다. ‘우리 상대가 아니다.’
내리 3 세트를 맏언니와 잔다르크는 연습하듯 해볼 것 다 해보자는 듯 했다. 우리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그녀들은 아무래도 결승전을 염두하고 있는 듯 했다. 마치 귓속말로 맏언니는 ‘이번에 이거 함 해보자’하는 듯 했고, 그럴 때 마다 잔다르크의 칼은 그 얇디 얇은 탁구공의 정 가운데를 확 베듯 날카롭게 후비고 들어왔다. 아무래도 잔다르크는 ‘미추홀’에서 장구나 북을 치는 ‘고수’임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는 손목과 팔 힘이 저렇게 강력할 수 없다. 핌플 러버에서 저런 스피드와 파워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어쨌든 우린 보기 좋게 미녀군단의 재물이 되었다. 그리고 미녀군단은 그날 단체전 우승에 개인전 후승을 모두 휩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