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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5월 30일 (일)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자꾸만 시계를 보게되는구나. 지금 시각이 저녁 8시 15분이다. 일석 점호 준비하느라 바쁘겠지? 내무반장이 군기를 잡으려고 심하게 하지는 않느냐? 괴롭힌다고 생각지 말거라. 긍정적으로 새악하라는 말이다. 바로 이런 것이 나 자신을 강인한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좋은 기회이며 아울러, 자신의 한계를 점검해 보는 계기로 해석하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이 위안이 되면서 편안해 질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아빠는 지금 너의 건강 상태가 좋을 것이란 전제로 이렇게 생각을 해본다. 고된 하루 일과가 끝나고 길었던 하루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저물고 땅거미가 질 무렵이면 아마도 집에 있는 식구들의 얼굴을 하나둘씩 떠올리면서 그리움을 달래고 있을거라고... 옛날에 아빠도 그렇게 군대생활을 했었기 때문에 더욱더 너의 모습을 자꾸만 그려보게 되는구나. 군대생활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그 심정을 이해하겠느냐?
아들아, 네가 가족을 그리워하는 것 이상으로 너를 생각하면서 이런저런 감상에 젖어보기도 한단다. 6주간의 신병교육 기간을 5월 28일부터로 해야 하는지 29일부터로 계산해야 하는지 모르겠구나. 6주, 42일간이면 대략 7월 9일 정도로 예상하는데, 그 동안에는 편지 쓸 기회를 전혀 주지 않는지 궁금하구나. 엄마는 빨리 편지라도 받아서 너의 안부를 알고 싶어 학수고대하고 있단다. 날씨는 더워지고 점점 교육은 강도가 높아질텐데, 무엇보다도 건강하고 특히 소화도 잘되고 용변보는데 지장이 없어야 하고 발바닥과 피부가 악화되지 않기를 기원한다. 땀이 많이 나고 하면 집에서는 착용치도 않던 안경이 얼마나 불편하겠느냐? 담배도 지급해 주겠지? 훈련병 중의 담배는 향수를 달래는 유일한 수단인 것 같기도 하더라. 자랑스런 아들아! 부디 네게 거슬리는 모든 감정을 억제하면서 참고 또 참으면서 흔한 군댓말로 "그래도 세월은 간다?라며 느긋하게 아주 편안하게 생각하여라. 너의 창창한 앞 날을, 파아란 희망의 멋진 설계를 해보면서 말이다. 물론 능히 잘 해낼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만, 자꾸자꾸 마음이 써 지는구나. 언제나 처럼 평소에 별로 말이 없고 과묵하기만 하던 너이기에-----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라는 표현을 그렇게도 삼가던 너이기에, 심중이 깊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것도 잘 알고 있으나 한편 답답함이 없지 않았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아빠는 네가 밖에서라도 소외받거나 의기소침해질까봐서 많지 않은 용돈이라도 늘 주고 싶었고 마음 또한 진정 그러했음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소위 신세대라고 일컷는 젊은이들은 몹시 이기적이고 부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매우 부족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아직 너에게 이런 충고를 하기엔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음을 알고 있단다. 그러나 이제 정식으로 부모형제 곁을 떠나서 혹독한 훈련과 싸우면서 그리고 또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하며 새롭게 개조된 인간 탄생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살면서 과오가 많은만큼 어려운 상황에서 반성과 참회를 더 많이 하게 되는 법이란다. 아들아, 지금 이 순간 순간들이 가장 소중한 것임을 인식하여라. 가족도 친구도 애인도 지금 이 순간에 너에겐 아무런 도움이 돼주질 못한다. 너 자신만이 스스로를 지켜준다는 점에 생각을 환기해야 한다. 현 위치에서 너와 함께 고생하고 있는 동료들과의 따뜻한 관계 유지가 더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건강에 유의하고 군의 모든 규칙을 준수하면서 모범적이고 솔선수범하는 병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
내일이 5월의 마지막 날이이로구나. 또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엔 제식훈련을 하게 될지 모르겠다. 밤낮의 기온차가 심한데 몸을 움직여서 체온과 혈액순환이 잘 되도록 하고 늠름한 모습을 보여라. 목소리도 크게 키워라.군대는 반복교육이다.안되면 될 때까지 반복한다. 그리고 안되는 일은 없다. 무엇이든지 모두 성사되도록 하는 데가 군대생활이다. 지금은 밤 9시 13분, 점호를 받겠구나. 사랑하는 아들아, 여기 아빠가 있다.너를 위해 최선을 다해 간절한 마음을 네게 보낸다. 늘 편안하여라, 장한 나의 아들아. 99. 5. 30. -건강을 빌며 집에서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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