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여행(몽골 샌드~울란바토르~베이징)
8월 1일 일(몽골 샌드~울란바토르)
7시 기상했더니 낙타, 말, 양, 염소들은 이미 초원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8시에 식사를 하고 포장도로를 달린다. 도로변 마을에서 식수를 채우고 달리다가 초원에서 점심을 먹는다. 1인당 4,000투그릭을 걷어서 가이드와 운전기사에게 각각 10만 투그릭(약 10만원)을 Tip으로 주었다. 9일간 너무 고생을 하는 것 같았고 운드라는 대학생인데 아버지가 입원하였다고 하여 액수가 올라갔다. 너무 많이 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다음에 오는 여행자를 위해 적당히 주어야 하는데 말이다. 벨기에의 얀도 흔쾌히 좋다고 하여 돈을 건네주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울란바토르로 들어오는 길에서 양털을 가득 실은 화물차들을 볼 수 있었다.

카센터

타이어 수리센터


들꽃


물장수



차 그늘에서 점심을 먹고......,

기념 사진(나, 얀, 병주, 운드라, 기사, 아내)

양모 운반

울란바토르 외곽 지역
4시경 울란바토르에 도착해 서로의 갈 길이 바빠 감사와 안녕의 인사를 하고 우리는 내일 밤 21:50 베이징행 항공권(몽골 항공, 160불/1인)을 산다. ATM이 닫혀 있어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돈을 빌려 주변 시가지를 배회하다가 저녁 식사(안심 스테이크와 덤블링-10,900투그릭)를 맛있게 했다. 주방의 요리사가 한국 식당에서 일을 했다고 하더니 우리 입맛에 맞았다. 숙소는 도미토리를 1인당 5불에 이용하기로 하고 6인실을 배정 받았다. 방에는 이미 핀란드 대학생 두 명이 있었는데 성균관어학원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고 고국으로 들어가기 전 여행을 한단다. 미수다에 나오는 ‘따루’를 잘 알고 있었다. 얼마 후에 프랑스 여대생 두 명이 들어와 우리 방 인원은 다 찼다.
잠이 오지 않아 거실에 나와 TV를 보다가 옆에 있는 여자와 이야기를 한다. 오늘이 1일이라 금주(몽골인들이 너무 술을 많이 먹어 정부에서 정한 날로 술 판매가 금지됨)의 날인데 맥주를 먹고 있어 궁금한 것이 대화의 발단이다. 고비 사막을 6일 코스로 혼자(100불/1일) 가기로 하고 왔다며, 수원의 수성고에서 원어민 교사를 한단다. 반갑다고 인사를 했더니 외국인은 금주가 아니라며 주인에게 맥주를 사서 한 병을 건네준다. 미국에서는 항공료가 비싸서 오기 힘든 곳이며, 한국에서의 방학이 너무 짧아서 멀리 갈 곳이 마땅치 않아서 고비 사막으로 혼자 왔단다. 한국말을 조금은 하고 있었는데 원어민 선생님 덕분에 맥주로 시원한 밤을 시작했다. 제니스가 대한항공을 타러 갔다. 어느 회사의 부장 정도 되는 듯한 멋있고 깔끔한 청년이다. 그런데 왜 총각인지 모르겠다. 궁금증의 답을 꿈속에 기대한다.
8월 2일 월(울란바토르~베이징)
7시 아침을 먹는다. 빵과 잼, 커피 등으로 아침을 먹고 핀란드 대학생 두 명은 하르호린 투어를 운드라와 떠났다. 수성고 원어민 샘도 고비 사막 6일 투어를 출발하고, 프랑스 여대생고 어디론가 떠났다. 은행 영업시간을 기다리는데 광명시 하안중학교 원어민 샘이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간다고 인사를 한다. 몽골이 마치 한국의 원어민 샘들의 피서지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국말을 하는 몽골인, 그리고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지만 몽골로 여행 온 원어민, 그리고 우리와 병주 등 Idre's guest house는 낯설지 않았고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실감했다. 은행에 들려 돈을 인출하는데 되지 않아 하나로 마트 여직원을 따라 은행에 가서 돈을 인출해 병주에게 나누어(카드를 분실해 돈이 없음) 주고 게스트 하우스 주인장에게 여비를 지불했다. 병주 돈 때문에 충분히 돈을 인출(1일 한도 초과)하지 못해 점심은 위안화로 계산을 했다.
평화의 거리로 나가 국민 백화점을 둘러본다. 물가가 비싸고 한국 물품은 더 비싸다. 산업화의 초기라 물가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것 같다. 백화점을 나와 수흐바토르 광장으로 향하는데 등에 맨 배낭을 누군가 당기는 듯하여 돌아보니 10대 소년이 배낭 지퍼를 열면서 따라온다. 소년을 잡고 소리를 지른 다음 놓아주었다. 몽골에는 주로 3인조 소매치기가 많다는 말이 생각이 나서 더 이상 혼내질 못했다. 몇 m 뒤에는 경찰이 있었지만 못 본채 하는 것 같다. 도시로 모여든 유목민들이 일자리가 없어서 구걸과 소매치기로 생활을 한다는 보도를 보았었다. 캐시미어 상점에도 물가가 비싸다. 얼마를 깎아야 하는지 몰라 그냥 나온다.


국민 백화점
수흐바토르 광장은 몽골혁명의 아버지 수흐바토르가 1921년 7월 10일 울란바토르에 몽골 인민정부를 수립한 것을 기념해 1946년 7월 11일 몽골 정부가 그의 동상을 세우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울란바토르의 중심부에 있는 역사적인 광장으로, 이곳에서 동서로 피스 애비뉴(평화의 거리)가 뻗어 있고, 남으로는 토라강(江)이 흐른다. 울란바토르 시내를 한눈에 바라다 볼 수 있으며, 시내 중심부에 있어 울란바토르의 어느 지역이든 갈 수 있는 교통의 요지이다. 광장을 중심으로 정부종합청사, 독립 영웅들의 묘지, 역사박물관, 중앙우체국, 외무부 청사, 국립오페라하우스, 몽골대학교, 자연사박물관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또 멀지 않은 곳에 라마교 사원, 사원 박물관, 전승기념관 등 몽골의 행정기관과 박물관·교육기관 등이 밀집해 있다.[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수흐바토르 광장에는 관광객보다 현지인들이 더 많다. 수흐바토르 동상 주변에는 그림을 파는 상인들이 많았고, 정부종합청사 대형 건물 중앙 현관에 칭기즈칸의 동상이 자리 잡고 있다. 광장을 대 충 둘러보고 간식으로 등심 스테이크(5,500투그릭)를 나누어 먹고 집으로 돌아온다. 거리에서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청소년들이 자기네 나라 사람들의 목걸이를 강탈하거나 물건을 빼앗는 모습을 보았다. 여행자들은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오는 길에 하나로 마트에 들렸다. 박동완 사장님(전화 976-11-320421, birdcomsil@hanmail.net)은 환전이나 불편한 일이 있으면 도와주신단다. 마트에서 필요한 물품을 사 가지고 들어왔다.

수흐바토르 광장






수흐바토르 동상




놀러온 몽골인들


칭기즈 칸


돈이 없어 공항 택시를 못 타고 사장님 사모님 승용차를 타고 공항 가는 버스 타는 호텔 앞 정류장까지 이동했다. 사모님은 친절하게 정류장으로 가는 것을 확인하고 집으로 간다. 친절함이 넘친다. 공항 가는 버스(300투그릭) 11번은 만원이었다. 짐을 놓을 곳을 찾아 밀려들어가 자리를 잡고 여유를 부리는데 1시간을 간다던 차가 30분 만에 공항 건물이 보여 공항인가 보라고 우리끼리 말하는데 몽골 젊은이가 맞는다고 한국말을 한다. 함께 짐을 꺼내 내렸다. 이 젊은이도 한국에서 돈을 벌어 공항 앞 아파트를 사서 살면서 울란바토르로 출퇴근을 한단다. 한국에서 고생을 안 했냐고 했더니 재미있었다고 한다. 칭기즈 칸 국제공항에는 승객들이 별로 없었다. 체크인과 출국 신고를 원활히 마치고 21:50 이륙하면서 몽골 여행이 끝났다.

몽골 항공


공항 앞 아파트


칭기즈 칸 국제 공항
몽골 경비는 11박 12일 간 1,425,000원/2 명이다. 국경을 넘어 오면서부터 항공을 타고 베이징으로 나가는 것 까지이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여름 피서지로 알맞기는 하지만 여행비가 비싼 것이 과제이고 여행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지 않아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다음 편은 중국 여행이다.
12:00 베이징 공항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