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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지대계 한국교직원신문 (2007. 6.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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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곳곳에 서 있는
대한민국 곳곳을 다니다 보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도시”라는 문구를 가끔 마주치게 된다. 대개는 거대한 간판에 글자 하나하나가 암소만한 크기로 씌어져 도시 우회도로에 서 있다.
이런 간판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은 그 도시를 대표하는 사람, 곧 지자체장 일 것이다. 그런데 `지자체장'이라는 말이 어색하듯 기업이라는 명사에 `하다'가 붙어 동사를 이루는 게 아주 어색하다.
명사와 `하다'는 동사가 결합하는 경우 명사와 하다 사이에는 `을(를)'이 생략되어 있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가령 사랑과 하다가 합쳐지면 `사랑(을)하다'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기업하다'의 경우 `기업을 하는' 게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 대체로 기업은 `그냥 하는' 게 아니라 창업하거나 운영하거나 경영하거나 합병하거나 하는 식으로, 또 다른 명사와 하다가 결합된 형태의 동사를 필요로 한다.
그러니까 어떤 명사와 `하다'가 결합할 때 사랑, 증오, 우수, 불량 같은 관념이나 가치는 허용되지만 사람, 동물, 지방자치단체 같은 `존재'들은 `하다'와 어울리지 않는다. 동물 가운데 유일한 예외는 개다. 우리나라 일부지방에서 `개 + 하다'는 `개를 먹는다'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는 연장자가 아랫사람에게, 예컨대 딸과 결혼하게 해달라고 간청을 하러간 사윗감에게 미래의 장인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이 “자네, 개 허는가?” 하는 용례가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을 개로 동격으로 보면 `기업 + 하다'는 기업을 먹는다는 뜻이 아닌가. 토사구팽의 예에 따라 기업을 삶아먹으려면 솥이 좀 커야 되겠지만. 이렇건 저렇건 기업에는 `하다'는 말은 쓰는 게 아니다.
‘기업하다'가 안 된다면 대안은 뭘까. 기업을 유치하고 싶다는 심사를 다르게 표현하면 된다. 가령 `우리 △△시는 농축산 관련 기업을 창업하고 운영하는 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하는 것이나 `우리 ○○시는 도로와 환경이 우수하고 바다에 접한 땅값이 아주 쌉니다'도 괜찮을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최고'라고 별다른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너도 나도 소매 걷고 나서는 것도 이상하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하고 아무리 아름다운 목소리로 속삭여 봐야 그 사랑을 전혀 실감할 수 없듯이 그저 `기업을 창업하고 경영하기에 가장 좋다'고 해봐야 기업인에게는 별다른 설득력이 없을 것 같다.
오히려 뭘 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듯한 구태의연한 그 간판을 좀 치워버릴 수 없나 싶은데 한술 더 떠 진짜로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뽑는 대회까지 있다.
누가 이런 일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상을 받은 도시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렇다. 그리고 그 상을 내세워 또 다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도시'임을 홍보하고 있으니 거기 가서 기업 `하기도 안 하기도' 곤란한 노릇이다.
언어에 관련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 지나치게 예민한 게 아니냐, 뜻을 알면 됐지 뭘 그렇게 따져대느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뜻은 잘 알겠지만 기왕이면 적당하고 잘 어울리는, 뜻이 분명히 전달되는 표현을 쓰면 좋지 않겠느냐고 하면 알아들을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고 외치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이야기해서 언젠가, 이를테면 백 년 안이라도 지자체장들의 귀에 들어가기를 바랄 수밖에 없겠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있으니까. 그런데 왜 `백년하청'이라는 단어가 뒤이어 떠오를까.
성석제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