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주 제10 구간(우두령-바람재-황악산-여시골산-궤방령-가성산-눌의산-추풍령)
2001년5월12일 날씨 맑음 구간거리 약30km.
지난 구간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영등포에서 오전 0시4분 부산행 무궁화다.
김천 도착시간 2시58분.
간단하게 라면을 하나 시켜먹고, 지난번에 신세를 졌던 기사에게 전화를 했더니
비번으로 꿈나라에 가 있는 모양이다.
신세를 갚고 싶었는데 어쩌랴!
다른 택시를 타고 신 새벽길을 내 달렸다.
택시기사가 우두령에서 일행이 기다리느냐고 묻는다.
"혼자 합니다" 했더니 나를 쳐다본다.
아직도 컴컴한 이 한 밤에 혼자 산을 기어오르려고 심심산골로 가고 있으니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사실 대간의 마루 금을 밟아 가면서 매번 느끼는 건,
어디 한 곳이라도 호락호락한 구간이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이다.
돈 버리고 시간 버리고 힘들고 그리고 세속적으로 생각하면
절대 돈 버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 이 짓이 그 사람 눈에도 온당하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괜찮다.
돈과 상관없지만 세상의 시작은 언제나 내가 눈뜨면 시작되고 눈감으면 잠시 쉬니까.
우두령(해발 720m) 도착시간 4시.
거금 25,000원이 들었다.
헤드랜턴을 챙기는 동안 택시는 헤드라이트를 잠깐 비춰주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가로등도 하나 없는 칠흙같은 어둠이 엄습해 온다.
오직 한 줄기 헤드랜턴 불빛만이 어둠을 뚫는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데다 해발이 높아서 한기가 스민다.
첫 삼각점 도착 4시55분. 동쪽으로 여명이 밝아 온다.
내 오른쪽으로 태양이 뜨고 있으니 분명 가고 있는 곳은 북쪽이다.
조망이 탁 트인 삼성산 도착 5시19분.
봉우리 밑 잘루목 오른쪽에 능선 바로 밑까지 비포장 소로가 숨바꼭질하듯 나 있다.
화주봉과 1,170봉이 보이고 우두령 고개가 구불구불하다.
정확히 5시24분에 일출이 쏟아 오른다.
능선에서 제대로 된 일출을 보기는 오늘이 처음이다.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면서 붉은 불덩어리가 불쑥 올라온다.
오른쪽 능선 중턱에 삼선암이 수도승처럼 숨어있고
정상 갈림길에서 우회전하면 헬기 장이 나오고 조금 더 가면
이동식 화장실 문짝이 내동댕이쳐져 있는 곳에는 중계손지 전봇댄지가 서 있다.
임도 인지 군사도로인지는 몰라도 도로가 정상에까지 올라와 있다.
화장실이 있는 지점에서 이어지는 비포장 도로가 대간 능선과 헤어지는 지점부터
바람재까지는 300m정도 바닥으로 내려꽂히는 급경사다.
바람재 도착시간 6시6분.
이 잘루목에 헬기 장이 있고 임도가 거미줄처럼 어지럽게 널려 있다.
아까 타고 온 택시 기사가 무선 햄 동호회 회원인데,
전국에서 이곳만큼 무전기로 막힘 없이 통하는 곳이 이곳이라고 한다.
바람재답게 바람이 드세다. 사람의 손을 타서 그런지 사막처럼 황량하다.
나는 이런 것들이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마구 파헤쳐지는 것이 싫다.
내 다음 세대들이 또 다시 사용할 이 강산을 그네들에게 물어 보지도 않고
멋대로 오염시키는 것이 과연 옳은가?
아들 딸을 포함해 다음 세대들에게 볼 낯이 없다.
넘겨 줄 것이 없어서 오염된 강산을 물려 줄 것인가?
나중에 뭐라고 말을 할 것인가 말이다.
내려선 만큼 급경사 오르막을 치고 올라야 한다.
지도에는 형제봉이라는 표지가 있는데 특별히 봉이라고 할 것도 없이 특징이 없다.
바람재에서 40분 소요.
여기서 10여분 올라서면 황학산 정상이다.
도착시간 7시3분.
높이는 1,111m다.
일땡이 두 개나 된다.
오른쪽으로는 논밭이 햇살에 반사되어 거울을 여러게 엎어놓은 것 같이 반짝인다.
산 높이에 비해 정상은 아담하다.
잡목에 싸여 조망이 썩 좋지가 않다.
쭈삣 쭈삣 고개를 늘여보지만 조망은 역시 '꽝' 이다.
정상 바로 밑에 헬기 장은 그래도 조망이 조금은 낫다.
황악산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휜 길을 택해 줄 곳 내리막길을 타다,
백운봉을 지나(사실은 계속 내리막 길이고 봉 같지도 않아 지나치기 쉽다.),
운수봉 도착하기 바로 전에 황악산까지 2,260m남았다는 팻말이 있는 삼거리에서,
오른쪽 계곡으로 빠지면 백련암을 통해 직지사로 빠지는 길이다. 대간 길은 직진이다.
이 갈림길에서 이어지는 능선 길은 마치 낙타 등처럼 구불텅 구불텅 한다.
여기부터가 여시골 산 초입이다. 딱 여시에 홀린 것처럼 끝날 듯 끝날 듯하고,
궤방령이 보일 듯 보일 듯하며 홀리는 곳이다.
지도상으로 고만 고만한 봉우리가 자그마치 6개나 포진해 있다.
황악산 정상부터 이곳까지는 조망이 없다.
답답하고 신경질이 나는 코스다.
이 능선 길은 궤방령 바로 전까지 염장을 지르다가 궤방령까지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듯 대간이 내리꽂히는 곳이다.
특히 무릎을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
궤방령에 가까워질수록 돌 깨는 기계소리가 요란하다.
대간이 부서지는 소리 같다.
궤방령 도착시간 9시10분.
풀밭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먼 산을 바라본다.
한마디로 압축 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든다.
궤방령은 해발 310m고 황간과 김천을 연결하는 977번 지방도로다.
'령'이라고 하기에는 성이 차지 않을 정도로 초라하고 높이도 봐 줄 것이 없다.
뒷 동산 같은 능선 길을 올라 첫 봉우리 도착 10시19분.
도중에 약초를 캐는 노인 두 분을 만났다.
문득 백두대간을 살리느라 애쓴다고 하신다.
순간 눈물이 왈칵 나올 뻔했다.
내가 무슨 선구자나 된 양.
나는 그냥 이전 사람들이 어렵게 터 온 길을 따라 그냥 편하게 갈 뿐인데.
오히려 나는 백두대간이라는 시험대에 스스로를 올려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부터 한가지 숙제가 더 생겼다.
백두대간을 보존하는데 어떻게 일조를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순박함이 줄줄 흐르는 약초 캐는 촌노는 몇 가지 산나물을 표본으로 주시면서
혹시 가는 길에 보이면 따가라고 하신다.
이쪽 능선도 마찬가지로 조망이 하나도 없다.
날씨는 거의 여름 한복판에 서 있는 것 같다.
가성산까지는 고만 고만한 능선을 4-5개는 넘어야 한다.
고생만 직싸게 시키고 풍광은 인색하기 그지없다.
많이 지쳐 있다 보니 속도가 나질 않는다.
가성산 도착시간 11시44분.
높이가 710m로 안방처럼 콘크리트로 도배를 했다.
기둥하고 지붕만 언지면 바로 집이 될 것 같다.
눌의산과 장군 봉이 보인다.
장군봉은 가성산에서 급경사 내리막과 오르막을 거쳐야 하는데
왜 장군봉(606m)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장군하고는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도착시간 12시16분.
또 한참을 내려서다 다시 오르막을 지나면 헬기 장이 나온다.
도착시간 12시54분.
다시 한번 파도를 타면 정상에 헬기 장이 있는 눌의산(743.3m)이다.
도착시간 1시9분.
그동안의 답답한 조망을 보상이라도 해 주는 것처럼 추풍령 고개랑
그 너머 백두대간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헬기 장이 많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추픙령이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보인다.
전략요충이 될 만한 최고의 전망대다.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다.
잡목 숲을 따라 1시간 여를 내려서면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는 굴다리에 도착한다.
도착시간 2시20분.
바람도 시원하게 통하고, 쉬어 갈 겸 양말을 벗고 뭉친 근육을 풀고 있는데
동네 노인 두 분이 햇볕을 피해 그늘로 들어선다.
이곳이 농사 일하다 새참 먹는 장소라고 한다.
충분히 그럴 만 한 곳이다. 시간만 있다면 한 잠을 때리고 가는 건데.
노인 분들에게 남은 간식을 대접하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뭉친 근육을 풀었다.
노닥거릴 시간이 없어 인사를 드리고 출발했다.
이 다리 밑을 지나 철도를 건너서 왼쪽 길을 잡아 100m정도 가면
추풍령 노랫말이 새겨진 표지석 건너편에 대간 표지기가 나부낀다.
대충 위치를 파악하고(야밤에 오기 때문에 미리 파악해야 함) 김천행 버스를 탔다.
버스 요금 1,300원.
새끼 송충이 한 마리가 바지에 딸려 올라탔다.
김천 역 도착 3시50분.
4시40분 기차표를 사고는 맥주 두 캔을 해치웠다.
수면제 대용으로.
귀가시간 9시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