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의 고백
인터넷 서점의 검색창에서 ‘타인의 얼굴’이란 제목으로 검색을 해보면 모두 세 권의 책을 만날 수 있다. 첫 번째 책은 소설가 한수산의 1991년도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타인의 얼굴』, 두 번째 책은 철학자 레비나스의 철학을 소개하고 있는 교수 강영안의 『타인의 얼굴』, 그리고 세 번째로는 올해 번역되어 출간된 아베 고보의 1964년 작 『타인의 얼굴』이다. 당신이 외국소설 리뷰라는 이 지면의 성격을 떠올린다면 내가 소개하려는 책이 아베 고보의 장편소설임을 아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앞의 문장에서 내가 ‘당신이’이라는 표현을 쓴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타인의 얼굴』의 맨 첫 문장이 ‘아득한 미로의 습곡을 빠져나와 드디어 당신이 찾아왔다’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며 화자인 남자가 그의 아내인 ‘당신’에게 쓴 노트 세 권과 메모, 그리고 아내의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남자는 대체 무슨 까닭으로 노트 세 권이나 되는 분량의 글을 아내인 ‘당신’에게 읽도록 한 것일까. 어째서 그녀에게 직접 이야기하지 못한 것일까. 그것은 ‘그’가 다름 아닌 가면을 쓴 남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가면을 쓴 남자이기에 그녀의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할 수 없는 운명을 갖게 되었다.
주인공인 남자는 고분자화학연구소의 소장 대리로 근무하던 중 액체공기가 폭발해버려서 얼굴을 잃어버린다. 켈로이드 흉터로 흉하게 변해버린 얼굴을 ‘거머리 소굴’이라 자조적으로 부르는 남자. 얼굴을 흰 붕대로 친친 감고 다니는 예민한 남자가 아내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이루어나갈 리 없다. 그는 얼굴 피부와 흡사한 가면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오랜 시간동안 연구를 거듭한 끝에 가면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렇지만 ‘거머리 소굴’ 위에 우연히 만난 한 남자의 얼굴을 본뜬 가면을 붙인 그는 그것이 자신의 얼굴인지 타인의 얼굴인지 회의하기 시작한다.
소설은 주인공 남자가 가면을 만들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아주 촘촘하게 보여주고 있다. 있을 법하지 않은 사건들은 치밀하게 물고 늘어지는 아베 고보의 묘사에 의해 사실성을 획득한다. 남자는 가면을 만들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으면서도 애써 가면을 효용성을 부정한다. “나는 인간의 영혼은 피부에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라고 주장하는 인공기관 제작자 K씨와 남자의 대화는 가면과 얼굴에 대한 작가의 고찰을 드러내고 있다. “얼굴이라는 것은 결국 표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표정이라는 것은……어떻게 말하면 좋을까요. ……요컨대 타인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방정식 같은 것이죠. 자기 자신과 타인을 연결해주는 통로 말입니다. 그 통로가 무너진다거나 해서 막혀버린다면, 모처럼 그 곁을 지나가던 사람도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라고 생각하고는 지나쳐버릴지도 모릅니다.” 라고 말하는 K씨의 말처럼 얼굴이라는 존재는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게 해주는 처음이며 끝인 걸까? 그의 말처럼 ‘인간이라는 존재는 타인의 눈을 통해서만이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걸까?
접착제로 얼굴에 가면을 붙인 남자는 가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처럼 말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치한 같은 행동을 하는 자신의 모습에 당혹감을 느낀다. 가면을 쓴 그는 공기권총을 구입하기도 하고, 아내의 뒤를 밟아 모르는 사람인 척 유혹하기도 한다. 낯선 남자로 위장하여 아내와 성적관계를 맺은 그는 아내가 가면을 쓴 자신에게 쉽게 유혹당했다는 사실 때문에 배신감에 휩싸인다. 제 발등을 찍고 고통스러워하는 격이다. 가면을 쓴 자신을 진정한 자신으로 인정할 수 없는 그는 타인의 얼굴, 가면을 질투한다. 그는 가면 쓴 자신과 아내의 관계를 ‘일인이역의 삼각관계’라고 생각하고, 질투심은 결국 그를 파국으로 몰고 갈 수밖에 없다.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만든 가면을 쓰고 도리어 그 가면을 질투하는 남자는 기이하다. 그는 ‘가면은 이미 당신을 되돌리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당신의 배반을 확인하기 위한 몰래카메라가 되고 있었다.’라고 절망하기에 이른다. 그는 김기덕의 영화 <시간(Time)>에서 사랑을 얻기 위해 성형수술을 통해 완전히 얼굴을 바꾸고 나타났으나, 결국 과거 자신의 얼굴을 질투하게 되는 여주인공과 닮아있다. 본래 내가 가지고 있던 얼굴과 낯선 나의 얼굴은 둘 다 내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 나의 영혼은 어느 곳에 깃들어 있는 걸까.
영화 <시간(Time)>을 보며 가졌던 궁금증을 아베 고보는 초현실적인 이야기 속에서 깊이 탐구하고 있다. 작가는 남자주인공의 뒤를 따르며 끝없이 얼굴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회의한다. 그 탐구에 동행하는 길은 고통스럽기도 하고, 괴기스럽기도 하다. 달착지근하고 가벼운 최근 일본소설들에 길들여진 독자라면 탐독이 만만치 않을 수도 있을 듯 하다. 그러나 얼굴과 가면에 대해 이토록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 소설이 있었던가.
‘얼굴 바꾸기’라는 철학적 소재를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로 그려낸 오우삼 감독의 영화 <페이스 오프(Face Off)>는 영화『타인의 얼굴』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타인의 얼굴』이야말로 ‘얼굴 바꾸기’의 원조가 아닌가. 가면 쓰기, 얼굴 바꾸기, 그보다 더 유혹적인 변신이 있을까? 우리는 누구나 때때로 다른 모습의 나를 꿈꾸고, 그 유혹은 강렬하다. 요즘 우리 시대를 휩쓸고 있는 성형 열풍의 뿌리에는 소설 속 주인공 남자와 같은 열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오현종 소설가는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와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9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소설집 『세이렌』, 장편소설 『너는 마녀야』,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