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습경보
요란한 사이렌이 신병교육대 전체를 울리고 있었다. 오랫동안 사이렌이 울렸고, 병사들이 황급히 내무반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내무반 옆에 있는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던 이문래 훈련병은 도대체 뭐가 뭔지 몰라서 그냥 주변을 지켜볼 뿐이었다. 무슨 일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었다. 너무 요란하게 사이렌이 울린 탓에 귀청을 뚫을 것 같은 매미소리도 멈춘 지 오래였다. 매미들도 아마 위기감을 느낀 것이리라.
신병교육대에 입소한 지 불과 삼일 만의 일이다. 그날은 일요일이라 특별한 훈련은 없었다. 내무반에서 텔레비전을 보든가, 이야기를 나누든가, 밖에서 내무반 주변을 돌며 산책을 하든가하였다. 아주 나른한 일요일 오후였다. 처음으로 맞는 신병교육대의 일요일이라 미처 적응도 못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하며 일요일을 보내야 할지 몰라 그냥 몸 가는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다고 늦잠을 자든가 아무렇게나 행동을 해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기상시간, 밥 먹는 시간, 점호시간 등은 다른 날이나 같았다. 다만 정해진 훈련이 따로 없다는 것일 뿐이었다. 그 때문에 평일 훈련을 하던 그 시간이 다만 자유시간이라는 것이다. 처음으로 맞는 일요일이었던지 따로 운동을 시키지도 않았다. 정말 식사를 빼고는 줄곧 빈둥대었다. 군대가 오늘 같기만 하다면 낙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고, 내무반에 켜둔 텔레비전에서는 실제상황이며 적기가 대한민국 상공을 침투했다고 했다. 인천을 지나 수원까지 왔다느니 하면서 법석을 떨었다. 바로 민방위본부에서 알리는 공습경보였다. 그러면서 국민여러분은 방공호 등의 안전한 장소로 대피를 하고, 휴가나 외출외박을 나온 군 장병은 바로 군부대로 복귀를 하라고 하였다.
“실제 상황입니다. 국민여러분은 지금 바로 적의 공습에 대비해서 안전한 장소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실제상황입니다. 적 전투기가 우리의 영공을 침범했습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의 모든 채널은 민방위본부의 실제상황 적기 출현에 따른 공습경보 방송으로 맞춰져 있었다. 그러면서 실시간으로 상황을 알려줬다. 텔레비전에 비친 전투기의 모습은 정말 전쟁이 난 것처럼 비춰졌다.
소대장과 두 명의 조교가 다급히 내무반의 열려진 문으로 들어왔다. 그러고 텔레비전의 볼륨을 낮추고, 자신들에게 주목하라고 하였다.
“다들 아시겠지만, 지금 적의 전투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해 왔습니다. 전쟁이 난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먼저 전쟁이 나면 여러분은 진지에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준비를 해야 합니다. 진지에 투입하려면 개인 군장을 꾸려야 합니다. 지금부터 모두들 나를 따라 하십시오.”
한가한 일요일 오후는 훈련병에게 공포였다.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훈련병에게 전쟁이 났으니 진지에 투입해서 전쟁을 하란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방송에서 호들갑을 떨지 않았으면 훈련병들은 모두 훈련이겠거니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방송에서도 실제상황이라고 하고, 사이렌도 길게 울리고, 조교들마저 내무반에 들어와서 전쟁이 났다고 하였다. 분명 전쟁이 난 것은 맞는 것 같았다. 다시는 부모형제를 보지 못할 것 같아 눈물마저 핑 돌았다.
조교는 관물대 위에 있는 군장 틀을 꺼내라고 하고, 모포를 돌돌 말아서 군장 틀 주위로 돌아가며 고정시키라고 하였다. 그리고 필요한 최소의 물품을 군장 틀 속으로 넣었다. 판초의도 개어서 군장 위에 얹었고, 야전삽과 반합도 군장 옆에 매달았다. 필요한 물품을 조교가 시키는 대로 군장에 싸고 나자, 조교는 군장을 어깨에 져 보라고 하였다. 그리고 군장의 끈을 자신의 어깨에 맞게 조정을 하였다. 완전군장을 하고 내무반 침상 끝에 앉아서 진지로 투입할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지시가 국방부에서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내무반에 켜놓은 텔레비전에서는 계속해서 민방위본부에서 전쟁에 대비한 행동요령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 적기가 대한민국의 영공으로 들어오는 장면을 내보였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군인들이 진지에서 경계근무를 서는 장면도 보여주었다. 국방부장관을 비롯한 군대 관련 주요 인물들도 발 빠르게 대처하는 모습이 비춰졌다.
내무반은 텔레비전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대장과 조교 및 훈련병은 모두 완전군장을 한 채로 상부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철모를 쓰고 손에는 소총을 든 채로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다. 초 긴장상태가 지속된 것이다. 시간은 아주 더디 흘렀다.
그렇게 두어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또 한 번 사이렌이 길게 울렸다. 훈련병들은 더욱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민방위본부에서 알려드립니다. 오후 3시 17분에 내려졌던 적 전투기의 공습경보를 해제합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공습경보를 해제합니다. 국민여러분께서는 일상으로 복귀하시기 바랍니다.”
“와!”
훈련병들은 갑자기 박수를 치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얼싸 안고 옆의 동료와 빙글빙글 돌기도 하였다. 얼굴에는 다시 희색이 만연하였다. 군대라는 것이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전쟁의 공포를 경험한 것이다.
텔레비전에서는 공습경보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중공군이 미그21기를 타고 귀순했다는 것이었다. 귀순하면서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아서 대한민국의 공군기가 뜨면서 한동안 영공에는 긴장이 돌았던 것이다.
그렇게 텔레비전에서 공습경보를 해제한 후 약 20여 분간 훈련병은 군장을 풀지 않고 내무반에서 그대로 대기를 하고 있었다. 군 당국의 지시가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조금 있으려니까 어떤 기간병이 와서 소대장에게 상황해제라고 전달을 했다. 훈련병들은 소대장의 지시에 따라 군장을 풀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훈련병들은 중공군 때문에 현장감 있는 훈련을 하였다.
그 당시는 중국과 수교를 하기 전이고, 이데올로기로 인해서 대치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북한이나 중국 또는 소련의 전투기가 영공을 침범하는 것은 곧 전쟁으로 인식되었다.
1983년 8월 7일 일요일 오후는 잊을 수 없는 하루였다. 그날의 남은 시간은 정말 꿀맛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