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코스는 응고롱고로, 지구에서 가장 큰 분화구다. 안개가 자욱한 새벽길을 헤치고 분화구를 향해 내려가는 길. 안개가 걷히며 먼 산의 이마가 환하게 드러난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 분화구에는 호수와 강도 있다. 무리 지어 어슬렁거리는 사자 떼와 그 뒤를 따르는 하이에나들, 늘 함께 다니는 누와 얼룩말, 먹이를 찾아 달리는 치타, 외로운 한 마리의 코뿔소...
인간이 변방으로 밀려난 자연의 모습
그렇게 초원의 시간은 나름의 질서 속에서 흘러간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세렝게티는 스와힐리어로 ‘끝없는 평원’ 위로 해가 떠오르고, 해가 지고, 별들이 내려오고, 달이 뜨고, 이울고... 그렇게 하루가 가고 또 다시 하루가 찾아온다. 텐트에서 잠을 깨 바라보는 초원의 새벽 풍경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이곳에서 시간은 다른 속도로 흘러간다. 몇 시간이 지나도 사자는 계속 가젤을 노리며 앉아 있고, 표범은 나무 위에서 계속 잠을 자고, 가젤은 계속 풀을 뜯고 있다. 사냥에 나선 동물들은 조심스럽게, 치열하게, 순간에 모든 것을 건다. 살아 숨 쉬고, 움직이고, 달리는 야생의 동물들은 아름답다. 인간이 변방으로 밀려난 자연은 경이롭기만 하다. 왠지 이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봐야 할 모든 것을 다 보았다는, 그런 느낌.
마음이 흔들릴 때면 눈을 감는다. 푸른 초원이 아득한 지평선을 이루고, 내가 사랑하는 기린이 긴 목을 우아하게 흔들며 걸어가고, 줄무늬 옷을 차려입은 얼룩말이 고개를 숙인 채 풀을 뜯고 있다. 멀리 지평선 너머로는 흰 눈을 인 킬리만자로의 이마. 우리보다 더 오래전에 지구에 왔던 이들이 온전히 살아남아 대대로 이어온 자연의 법칙을 지켜가는 모습을 그려본다. 살면서 사소한 것들에 마음 다치는 날이면, ‘견디는 힘도 힘’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다 지치는 날이면, 눈을 감는다. 그 끝없는 초원을 다시 불러오기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