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교육자이고, 자녀는 교육을 받는 피교육자입니다. 교육자인 부모가 피교육자인 자녀들의 속사정과 형편을 먼저 아는 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많은 문제가 대부분 부모가 자녀를 모르는데서 옵니다. 모든 것이 빠른 high tech.의 현대입니다. 세대 차이에 문화 차이까지 겹쳐 서로의 세계가 엄청나게 다릅니다. 이런 어려운 처지에 불구하고 눈앞에 건강하게 말없이 왔다 갔다 보이면, 아무 이상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자녀에게 신경을 별로 쓰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면, 서로가 얼굴만 마주칠 뿐 익숙한 듯 하나 전혀 서로를 모르는 만남의 점이 없는 이방인이 됩니다. 더욱이 이민자인 경우 언어의 문제, 이질 문화의 차이가 큽니다. 우리 자녀들이 자라는 미국의 교육 환경은 일세들과 너무나 거리가 멉니다. 문제는 자녀들이 부모의 수준으로 올라와 주길 바라지만… 꿈은 야무지나 실현 가능성이 힘듭니다. 부모 쪽에서 자녀들 쪽으로 내려가야만 합니다.
대학생 모임을 주관하는 가운데 한 목사 자녀를 상담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장래 문제와 외로움의 문제로 크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한국말로 알아 듯 든 말든 일방적으로 자기 말씀만 하시고, 한국말로 대답하길 기대하셨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영어는 익숙하나, 부모님들이 너무 교회 일에 바빠 자기와 시간을 가질 시간이 없다보니, 그나마 미숙한 한국말이 퇴보했습니다. 영어로 대답할 수밖에 없어 손짓 발짓 생활에 필요한 것은 어찌어찌 해서 충당하나 정작 마음을 터놓을 길이 없어 고아 같은 심정이라며 외로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두 누나들도 모두 미국 남자와 결혼해 각자 자기 일에 바쁜데 누나들에게도 갈 수 없고… 가끔 집에 가 아버지 교회를 가면 어릴 때 같이 자란 친구들은 다 뿔뿔이 헤어졌습니다. 대학생이라곤 혼자라 어른 예배에 들어가야 아무 것도 못 알아듣겠고, 중 고등부에 들어가자니 그렇고, 미국 교회 가자니 그것도 싫고…
자기는 오갈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 왜 살아야 하는지 삶의 의욕을 잃어, 때때로 자살의 충동이 생길 때 감당키가 매우 어렵다는 기가 차지도 않은 하소연을 들었습니다.
그 부모님은 한국 교계에 널리 알려지시고 매우 활동적이신 분들이어서 대외적으로는 성공의 이름표를 달고 계셨습니다. 얼마나 많이 성공적인 주님의 사업을 이룩하셨는지는 몰라도 등잔 밑이 어둡다고… 정작 이런 아드님의 기막힌 사정은 짐작이라도 하시는지?
그저 겉으로 큰 탈없이 학교 잘 다니고 교회에도 가끔 보이니 no problem 아드님이 잘 지내는 것으로 여기신 것입니다. 이렇게 기막힌 아드님의 사정을 꿈에조차 상상치도 못하시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르시는게 차라리 약이지요'라고 생각해야 할지, 아이를 위해 귀뜸을 해드려야 할지 참으로 심경이 착잡해 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생각하다 말씀드려야 어차피 의사 소통이 되지 않아 자존심만 건드리고 긁어 부스럼이나 만들지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결국 조용히 그 아이의 영적인 엄마 되어 어느 정도 안정해 제 길을 가는 것 보기까지 한 동안 돌봐주었습니다.
교포 사회에 모르긴 해도 이런 비극이 실제 심각한 수준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들이 자기 코가 석자라… 자기 생활이 벅차기는 해도, 너무나 무심하다 느껴졌습니다. No news is not good news. (아무 눈에 보이는 말썽 없이 조용하다는 것이 아이들이 과연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은 아닐 수도 있지요) 일방적이고 무심한 부모님입니다.
부모가 있으나 한 지붕 아래있는 하숙생들이지 실제 부모 부재중인 고아 아닌 고아들이 주위에 너무나 즐비합니다. 부모의 돌봄의 부재가운데 우리의 귀중한 아이들이 TV, Video, Computer, 음악, 영화, 마약, 포르노 잡지 등 지극히 자극적이고, 퇴폐적이고 음란, 과잉 폭력의 감각 문화에의 노예화되어 있는 그 위험 수위가 극심합니다. 더 이상 방치해선 아니 될 것입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가방 내동댕이치곤 TV나 Computer앞으로 직행합니다. 아무도 뭐라는 이 없이 몇 시간이고 눈이 새빨개지도록 매달려 있습니다. 큰 중증 환자들입니다. 중독 증세는 자기 의지의 힘이 조절이 불가능해진 상태를 말합니다.
2세 전도사들과 함께 일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첫 아이 돌잔치에 영광(?)스레 초대 받아갔습니다. 거의 2세 신학생들은 다 온 것 같았습니다. 식사가 겨우 끝난 후 하나 둘 어디론가 사라져 집에를 밥만 먹고 가는가 생각했습니다. 화장실 가다 사라진 전도사들이 한 방에 Computer앞에 새카맣게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그 눈들이 완전히 스크린에 고정 되어 넋이 다들 빠져 있었습니다. 도대체 뭐에 저리 정신이 나갔는지 드려다 보니 Computer게임이었는데 정말로 그 풍경이 가관이었습니다. 넋 나간 꼴을 보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전도사라는 사람들이 저 모양이니 저들 밑에서 영향받고 자라는 2세 정신 세계는 어느 정도일까? 참으로 아찔했습니다.
자극적인 감각 문화를 하나도 여과하지 않고 비판도 없이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이런 아이들의 정신상태는 극도로 개인화 된 자기 성 속에서 독불장군입니다. 1세 부모님들이 어린 시절 누리던 따뜻한 정을 나누는 인간미라는 것은 저들의 정서에는 찾아보기 힘이 듭니다.
함께 놀 때조차도 같이 논다는 것이 고작해야 Computer나 TV앞에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이 같이 노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또한 싫어합니다. 보는 문화의 특징은 머리를 사용하는 능력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국가 시험을 보아도 계산기를 사용합니다.
인간의 기본 능력인 사고 기능이 저하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글로 자기 의사를 발표하거나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표현하는 것을 잘 못합니다. 충동적, 즉흥적이어서 사고 능력이 떨어집니다. 자연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무척 짧습니다.
이런 감각 문화와 극도화된 개인화의 영향으로 건전한 사회성 발달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바람직한 인간 관계를 이루기 위해선 이해심과 인내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인스턴트 시대의 특징은 얕은맛의 손쉬운 즉석 TV. 디너나 라면 문화입니다. 참지 못합니다. 급합니다.
이런 자녀들을 1세 부모들은 어떻게 대합니까? 대부분 저들의 의견이나 형편을 감안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부모 생각대로 한국식의 학원 과외들로 학교 성적 올리는 일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주입식 아닌 이해 위주, 대화, 토의 위주의 미국식 교육 속에 미국 학생들은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열 올립니다. 주고받고 자기 의사 표시를 시원히 해 오히려 실력보다 높이 평가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곳에서 태어난 2세 아이들인데도 학교에서 자기 주장을 잘 표현하지 못하여 손해를 많이 봅니다. 권위주의식 주입식 가정 환경 속에서 아이들의 의견이 별로 중요시되지 못하고 자기 표현을 바로 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자녀들에게 최고 학군의 좋은 환경 주기 위해 하루 온 종일, 주의 6,7일 힘들게 일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바빠도 한국 비디오 몇 개쯤 보지만, 반면에 자녀들과 함께 보낼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것 저들의 입장으론 납득이 안가는 부모의 위선입니다.
어른이니까 내 맘대로 한다는 횡포일 뿐입니다. 이런 속에서 우리의 자녀들은 부모가 바라는 건전하고 바른 아이와는 거리가 먼 이기주의, 쾌락주의, 개인주의, 물질적인 사람으로 자리가 굳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의 막연히 바라는 건전한 가치관 위에 선 자녀관 가운데서가 아닌 현대의 퇴폐적 감각문화의 찌꺼기로 우리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멀쩡히 눈을 뜬 채 자녀들을 세상에 도적 맞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합니다. 신성한 자녀 교육의 권리를 포기하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는 죄책감도 큰 몫을 합니다. 시간을 내주지 못하는 죄책감을 물질 공세로 때우려 합니다. 필요 이상의 돈을 주고 괴로운 양심의 소리를 끕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던 거절하지 않습니다. 기가 죽는다고 오히려 너무 지나치게 떠 받혀 키웁니다. 어느 누구 하나 싫은 소리하는 이 없이 제 맘대로 큰 아이, 과연 이런 아이들이 커서 사회에 나가 어떠한 인물이 될까요?
왕따 제일 후보생입니다. 아무 짝에 쓸모 없는 허세나 부리는 자신의 모습 냉정한 사회 속에서 고생 좀 하다 철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자칫하면 인생 낙오자가 됩니다. 지나치게 물질적으로 Spoil된 아이들, 일 전도 아까워 쓰지 못하는 검약한 부모와는 정 반대로 낭비성의 소비 지향적인 물질 만능, 쾌락적인 타락의 길로 빠져들게 됩니다.
저들이 막상 대졸 후 사회에 나오면 처한 자기의 봉급현실은 저들의 씀씀이를 당해내지 못합니다. 소수만이 주류 사회 속에서 성공하는 2세들입니다. 많은 2세들은 뱅뱅 돌다 Cash가 많이 들어오는 부모의 사업을 물려받기도 합니다. 물론 부모의 사업을 물려받는 것도 감사함으로 잘 할 수 있다면 좋지요.
직장에서 성공 못한 경우라면 실패감도 있고, 자신의 선택이 아니기에 부모의 사업터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매사에 투정부리며 불성실하기도 합니다. 전문인으로 각 분야에 뛰어나던가, 부모님의 일을 물려받든, 아니 뛰어나지 않은 평범한 회사원일지라도 자족하며 주님의 복음을 누리는 성공하는 2세들을 키우는 것이 우리 부모의 책임이 아닐까?
첫댓글 또 다른 사회를 보는 듯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정말 좋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공감이 갑니다.
잘 참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