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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월 31일, 토요일, Caracas, Nuestro Hotel
(오늘의 경비 US $24: 숙박료 25,000, 저녁 9,000, 식수 1,000, 맥주 1,000, 버스 1,300, 11,000, 택시 12,000, 환율 US $1 = 2,600 bolivar)
아침 6시 반에 일어나서 방문을 열고 나가니 숙소주인 Miguel의 어머니가 나에게 커피를 같이 마시자고 한다. 어제 Puerto La Cruz에 장을 보러 간다기에 내가 애용하는 Nescafe 상표의 인스턴트커피가 떨어져서 사달라고 부탁했는데 못 찾았다 한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아침에 자기네 커피를 마시라는 것이다.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한 시간 이상 했다. 아들 Miguel의 아버지는 미국인인데 Miguel 어머니인지 아버지인지, 아니면 두 사람 다인지, 유고슬라비아 미국대사관에 근무할 때 만나서 결혼하고 Miguel이 탄생했단다. 그러니 Miguel은 (영어로는 Michael 혹은 Mike) 아버지 쪽으로는 미국인이고 어머니 쪽으로는 네덜란드인인 셈이다. Miguel은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나고 네덜란드에서 5년 동안 산 다음에는 쭉 베네수엘라에 살았다 한다. 베네수엘라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단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라 너무 끼고 길러서 그런지 제대로 사람 구실을 못한다고 한다. 51세인데 아직도 "my baby"라고 부른다. 근래에 독일인 부인과 이혼했다는데 자식이 있는 가도 안 물어봤다.
숙소 건물을 증축할 생각인데 2층에 식당을 들이고 방도 더 들일 생각이라 한다. 그런데 Chavez 정부의 정치 불안으로 시작을 못하고 있다고 한다. 몇 년 전에는 방 셋을 가지고도 여름 한 달에 $1,000을 벌었는데 요즈음은 방 다섯을 가지고도 한 달에 $400밖에 못 번단다. Chavez 정부가 들어온 후로 이 도시 치안 상태가 나빠져서 여행객들이 많이 줄었단다.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옆방 미국 청년들이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사기를 당했고 Miguel 얘기가 얼마 전에 손님 한 사람이 마을 산 쪽으로 뛰러 갔다가 목걸이를 빼앗겼다고 한다.
Miguel과도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누고 짐을 싸고 기념사진을 찍고 떠났다. Santa Fe에서 Puerto La Cruz까지 가는 길은 경치가 그만이다. 그러나 산 쪽으로는 계속 달동네가 보인다. Miguel 얘기가 베네수엘라 인구의 40%가 그런 달동네에 산다고 한다. 그리고 달동네는 범죄의 온상이라 한다. 이 나라는 세계 최대의 석유 수출국 중의 하나인데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한 해에 수출해서 버는 돈 수 백억 불은 위에서부터 슬금슬금 다 없어져버리고 밑에는 아무 것도 안 내려온단다. 그래서 학교, 도로, 병원을 세우고 쓰레기 수거, 치안 유지에 쓸 돈은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베네수엘라는 남미에서 제일 부패한 나라일지도 모른다. Chavez는 선거 때만 되면 돈을 풀어서 가난한 사람들 표를 긁어모아서 이기고 다음에는 딴 짓을 한다는 것이다. 아마 Chavez 정권뿐만이 아니고 과거의 모든 정권이 다 그랬을 것 같다.
범죄의 온상이 된다는 달동네는 어떻게 생긴 것인가? 여자 애들이 멘스만 시작하면 금방 애를 낫는다. 그리고는 결혼 안 하고 애를 낫다고 부모에게 쫓겨난다. 여자 애와 애 아버지 남자 친구는 달동네 한 구석에 오두막집을 짓고 살림을 시작한다. 1년 내내 반바지, 티셔츠, 샌들 차림이고 집이라야 네 나무 기둥 위에 비를 막는 지붕만 올리고 그 아래 해먹만 걸으면 되고 부엌은 큰 돌 3개만 놓으면 된다. 그렇게 10대 부부는 살림을 시작하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남자 친구가 사라진다. 여자 애는 금방 다른 남자 친구를 사귀어서 또 애를 낫는다. 그렇게 해서 여자 애는 20세만 되면 애들이 보통 다섯은 된다. 애들이 크면서 엄마는 잡일이라도 하러 집을 비우게 되고 애들은 저희들 혼자 크면서 마약을 하게 되고 마약을 구하기 위해서 범죄행위를 하게 되고 그렇게 몇 대가 지나서 이 나라는 인구의 40%가 달동네에 사는 나라가 되어 버린다.
언제부터 이런 일이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한심한 나라가 아닐 수 없다. Chavez 대통령 역시 그렇게 태어나서 자란 사람 같다는 인상을 준다. 내가 과거에 알았던 베네수엘라는 남미에서 석유가 제일 많이 나는 나라, 그래서 남미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 세계 미녀대회를 석권하는 미녀의 나라 등, 긍정적인 나라였는데 와보니 현실은 너무나 다르다.
Puerto Santa Cruz 시내에 들어오면서 보니 여기저기 Chavez를 지지하는 "No!" 사인이 보인다. "Si - Yes!" 사인은 하나도 안 보인다. 그래도 Chavez가 질 것이라 믿는 사람들이 있으니 두고 볼일이다.
Miguel은 Taoism에 (도교) 심취되어 있다. 한국의 태극기가 도교의 원리를 표시한다는 것도 안다. 자기가 감명 깊게 읽은 도교 책을 소개하는데 아래와 같다.
The I Ching, or Book of Changes Richard Wilhem Translation. English version by Cary F. Baynes. Forward by C. G. Jung
Puerto La Cruz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갈아탔는데 이곳처럼 엉망인 곳은 처음이다. 오전 11시 버스가 제일 빨리 떠나는 버스라고 해서 버스표를 샀는데 12시 반에야 떠났다. 그리고 에어컨도 없이 창문을 열고 가는 3등 버스다. 그보다 더 일찍 떠나는 1등 버스가 있는 줄 모르고 고생되는 3등 버스표를 산 것이다. 요금 차이도 별 것 아닌데 실수를 한 것이다.
도로 공사로 길이 막혀서 Puerto La Cruz 시내를 빠져나가는데 한 시간이나 걸렸다. 그리고는 한 시간 정도 달린 다음에 주유소에 들어가서 휘발유를 넣는다. 조금 더 가더니 휴식 시간이라고 20분이나 선다. 주유소 근처에 술가게가 있는데 아예 문을 잠그고 장사를 한다. 철창 사이로 술병과 돈이 오고간다. 버스가 떠나고 조금 달리다 길가에 서있는 고장 난 버스의 손님을 태운다. 같은 회사 버스였다. 이렇게 가다가는 Caracas에는 언제 도착할는지 한심했다.
베네수엘라는 남미에서 브라질, 페루, 볼리비아, 콜롬비아, 파라과이, 가이아나와 함께 많이 망가진 나라다. 덜 망가진 나라는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정도인데 아르헨티나도 많이 망가진 쪽에 넣을 수 있는 나라다. 남미는 1820년 전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지배 아래 있을 때가 제일 적게 망가졌을 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가 너무 천천히 달린다. 버스는 금방 고장이 날 것 같은 상태다. 길가에 붉은 상의를 입고 붉은 색의 "No!" 깃발을 든 10여세 되어 보이는 애들이 10여 명씩 길 양쪽에 서있다가 우리 버스가 지나갈 때 깃발을 흔들며 소리를 지른다. 어린애들까지 선거에 동원하다니, 정말 정신 나간 나라다. 조금 더 가니 대형 트럭과 승용차 수십 대에 사람들이 꽈 차서 타고 흰색 기와 녹색 기를 들고 지나가는데 "Si - Yes!" 쪽인 모양 같은데 확실치는 않다. “Si - Yes!"는 Chavez를 대통령 자리에서 쫓아내자는 쪽이다. 국민투표는 아직 15일이 남았는데 그 전에 꼭 무슨 일이 날 것 같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Santa Fe 해변에서 나와 같은 숙소에 묵었던 미국 청년 3명은 재수 없게도 투표일인 8월 16일 Caracas 공항 출국인데 그날 잘못하면 공항으로 가는 도로가 막힐지도 모른다고 하루 전날 공항에 나가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8월 2일에 떠나니 다행이다.
이 버스는 음악을 안 틀어서 다행인데 경적 소리가 너무 커서 버스 좌석에서도 깜짝깜짝 놀랠 정도다. 임산부가 길에서 이 버스 가까이 있을 때 경적이 울렸다가는 뱃속의 애가 떨어질 정도로 크다. 엉망인 사회라는 또 하나의 증거다.
국민투표 사인은 Caracas에 가까워질수록 더 많아진다. 시골과는 달리 이제는 "Si - Yes!" 사인도 제법 많이 보인다. 그래도 "No!" 사인이 훨씬 더 많다.
힘들게 Caracas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어둑어둑해져서 택시를 타고 12km나 떨어진 호텔로 왔다. 택시는 30년은 묵은 1970년대의 미제 차인데 좌우 신호등과 정지 신호등이 작동이 안 된다.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푼 다음 밤 8시쯤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데 손님인지 호텔 직원인지 나에게 "Be careful - 조심하세요!" 한다. 호텔 근처가 번화가라 위험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근처에 술 가게가 두 군데나 있고 그 앞에 서성거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반대 방향으로 가다가 보니 중국 음식점이 있어서 들어가서 저녁을 먹었다.
남미를 떠날 날이 점점 가까워 온다.
숙소 주인 Miguel과 그의 어머니와 함께
엉망인 Puerto La Cruz 버스 터미널
1970대의 초대형 미국 차들, 석유가 많이 나는 나라라 큰 차가 많은 모양이다
국민 투표 사인, "No"는 대통령 Chavez 탄핵에 반대하는 사인이다
문을 잠그고 창살 사이로 술을 사고판다
2004년 8월 1일, 일요일, Caracas, Nuestro Hotel
(오늘의 경비 US $86: 숙박료 25,000, 아침 8,000, 점심 8,000, 저녁 18,000, 맥주 1,000, 지하철 1,200, 인터넷 1,000, 해먹 2개 $62, 환율 US $1 = 2,600 bolivar)
어제 밤엔 잘 잤다. 그런데 모기에 물린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 모기를 두 마리를 발견해서 한 마리는 죽였는데 내 것이 틀림없는 피가 가득했다.
아침 8시쯤 숙소 여주인에게 Caracas 관광에 관해서 물었더니 영어를 하는 사람을 부르겠다며 한 사람을 데려오는데 보니까 숙소 앞에 택시를 주차하고 있던 택시기사였다. 60대 노인인데 영어가 유창하다. 해먹 파는 상점, Sambil 쇼핑몰, 내일 공항 가는 택시 등에 관해서 정보를 얻었다. 해먹 파는 상점은 댓 블록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데 일요일이라 안 열었을 수도 있다고 한다. Sambil 쇼핑몰은 지하철로 갈 수 있는데 쇼핑몰은 12시나 되어야 연다고 한다.
우선 아침 식사를 하고 싶어서 가까운 곳에 있는 음식점을 물어보니 바로 길 건너에 있는 조그만 음식점이 이 근처에서 최고란다. 고맙다고 하고 음식점에 가보니 내가 첫 번째 손님이고 아직 청소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조금 있다가 아침 식사를 받고 보니 정말 최고의 아침 식사였다. 계란 프라이, 토스트, 버터, 베이컨, 기가 막히게 맛있는 오렌지 주스와 커피였다. 아침 식사를 하는데 잘 차려입은 사람들 10여명이 몰려 들어온다. 단골손님들 같고 일요일이라 교회나 성당엘 가는 사람들 같다. 택시기사 덕분에 오랜만에 아침 식사다운 식사를 했다. 그 동안 먹었던 아침 식사에 비하면 칼로리가 2, 3배는 되는 것 같다. 지금 내 몸무게가 58kg밖에 안 되는 것은 먹는 것이 신통치 않아서 그렇다. 그러나 불평할 것은 안 된다. 58kg은 나에겐 적정 체중이다.
Caracas 시내 구경을 하기 위해서 지하철역으로 갔다. 지하철 표를 3장을 샀는데 가격이 한 장에 우리 돈으로 150원 정도였다. 남미 다른 나라에 비해서 싼 편이다. 오늘 Lonely Planet에 나와 있는 Caracas 지하철에 관해서 읽어보니 어제 버스 터미널을 잘 못 선택해서 내린 것 같다. Caracas에는 버스 터미널이 동 터미널과 서 터미널 두 곳이 있는데 어제 나는 동 터미널에서 내리고 택시를 타고 한참 걸려서 호텔에 왔는데 서 터미널에 내렸더라면 택시를 안 타고 지하철만 타고도 금방 호텔까지 올 수 있었다. 잘못 내려서 쓸데없이 비싼 택시를 탄 것이다.
Caracas 지하철은 제법 좋다. 오일 머니로 만든 것이다. 노선이 셋이고 역도 39개나 된다. 남미 지하철 규모는 대강 이 정도로 서울에 비하면 아주 작은 규모다. 인구가 서울보다 많은 브라질의 Sao Paulo 지하철도 이 정도 규모 밖에 안 된다. 서울보다 훨씬 전에 처음 개통했지만 돈이 없어서 더 늘이질 못한 모양이다.
지하철을 타고 Caracas 중앙광장인 Plaza Bolivar 광장으로 갔다. Caracas는 남미 독립의 아버지로 불리는 Simon Bolivar 판이다. 한 블록 떨어져서 Simon Bolivar의 생가와 박물관이 있다. 이 두 곳은 Simon Bolivar의 성전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Simon Bolivar의 동상이 광장 한 가운데 있고 근처 큰 빌딩에는 Simon Bolivar 덕택에 독립을 했다는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와 파나마 6개국의 표시가 있다. 광장 옆에 있는 성당 안에는 Simon Bolivar 가족의 기도실이 따로 있고 그 안에는 Simon Bolivar가 자기 부모와 부인의 묘 앞에서 슬퍼하는 모습의 동상도 있다.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Simon Bolivar 생가는 큰 규모의 저택인데 모든 방에 Simon Bolivar의 일생을 그린 벽화가 있었다. 한 벽화에 Simon Bolivar의 공식 이름이 쓰여 있는데 “Simon Jose Bolivar de la Santisima Trinidad Bolivar y Palacio"이다. 당시에는 지체가 높을수록 이름이 길었던 모양이다. 미국은 유명한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모두 간단한 이름인데 남미는 지체가 높은 사람은 모두 Simon Bolivar처럼 이름이 길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그런 전통은 남미에서 처음 생긴 것이 아니고 유럽에서 유래한 것인지도 모른다.
Roraima 산을 오를 때 만난 베네수엘라 친구의 말이 베네수엘라에서 미녀를 보려면 Caracas에 있는 Sambil 쇼핑몰을 가야한다고 해서 지하철에 다시 올라서 Sambil 쇼핑몰을 찾아갔다. 한 시간 정도 쇼핑몰 구경을 했는데 특별한 미녀는 못 봤다. 베네수엘라는 미녀의 나라로 알려져 있긴 하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미인대회에서 1등을 제일 많이 한 나라다.
Caracas에 오니 사람들이 덜 까만 것 같다. 아마 카리브 해안에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멕시코, 벨리즈, 과테말라, 콜롬비아, 니카라과 등) 흑인 인구가 많은 모양이다. Caracas 날씨는 어제 떠난 Santa Fe 해변에 비하면 덜 습하고 훨씬 덜 더웠다. 오히려 Los Angeles 날씨와 비슷했다. 알고 보니 고도가 900m라 그렇단다. Caracas는 서울 비슷하게 산이 많이 보인다. 그런데 산은 대부분 달동네로 덮여있다. 달동네에 포위되어있는 듯한 Caracas 풍경이 별로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해먹 상점에 가니 다행히 열었다. 두 개를 샀다. 큰 것은 미국 딸네 집에 주고 작은 것은 서울 내 아파트 베란다에 걸어놓고 가끔 즐길 생각이다.
Plaza Bolivar 광장
남미 독립의 영웅 Simon Bolivar 생가
생가 내부
Caracas 시내 풍경
베네수엘라에도 흑인 피가 섞인 사람들이 많다
Chavez를 지지하는 국민투표 선전이 대부분이다
Chavez 지지 선전 포스터, 무엇이 베네수엘라를 구할 수 있을까? Chavez는 아닌 것 같다
2004년 8월 2일, 월요일, 미국 도착
(오늘의 경비 US $61: 아침 12,000, 공항 택시 30,000, 공항 세금 $45, 환율 US $1 = 2,600 bolivar)
장장 11개월의 남미 여행을 무사히 끝내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남미 여행 끝! Los Angeles 공항에서
Los Angeles 여동생 집에서 이틀을 보낸 다음에 Hawaii에서 가족과 함께
아름다운 Hawaii 해변을 즐기니 여독이 풀리는 것 같다 (오른 쪽으로 만삭인 딸이 큰 외손녀와 함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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