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수요일(3월 5일)
제1독서:요엘 2,12-18
제2독서:2고린 5,20―6,2
복 음:마태 6,1-6.16-18
사순 시기는 은총의 시기이다
묵상 길잡이:회교도들은 ‘라마단’이라는 회개와 금욕의 시기가 있고, 불교 국가에서는 2년 동안 종교 수행을 국방의 의무처럼 하도록 하는 나라도 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해마다 ‘사순시기’를 통해 주님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함으로써 또한 그분의 부활도 경험하도록 한다. 기도와 고행(단식)과 희사는 전통적인 통회와 보속의 방법이다.
1. 사순 시기의 기원
사순 시기에서 사순이란 40일을 뜻하는데, 초순(初旬) 중순(中旬) 하순(下旬) 이란 말을 보면 순(旬)이란 10일을 뜻하기 때문이다. 사순 시기는 엄격히 말하자면 ‘재의 수요일’부터 ‘성금요일’까지 주일을 뺀 40일이다. 사순 시기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거기에 동참함으로써 또한 그분의 부활을 체험하는 때이다.
교회의 전통 안에서 보면 40이라는 숫자는 중대한 사건을 두고 준비하는 기간을 뜻하는 것이다.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위해 40일 동안 시나이 산에서 기도하였고, 엘리야도 호렙산에 갈 때 천사가 주는 빵을 먹고 40일을 걸었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밟기 위해 40년 동안 사막을 헤매야 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공생활(公生活)을 시작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단식과 기도를 하셨다. 이렇게 40이라는 숫자는 항상 성서의 전통 안에서 볼 때 중요한 일을 준비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도
주님의 부활을 단순히 기념하는 것이 아니고 그 부활에 동참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주님의 수난에 동참해야 하는 것이다.
2. 사순 시기는 회개와 속죄와 보속의 시기이다
회교도들은 ‘라마단’ 기간을 통해 절제와 속죄를 실행한다. 그런가 하면 불교에서
모든 스님들은 하안거(夏安居:4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의 雨期)와 동안거(冬安居:음력10월 16일부터 이듬해 정월 보름까지)라 하여 특별히 종교적 수행(修行)을 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는 해마다 맞는 ‘사순 시기’가 자신의 죄와 허물을 보속하고 악습(惡習)에서 벗어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은총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예로부터 자신의 죄를 속죄하고 보속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그것이 바로 기도와 단식(고행)과 희사이다. 기도는 언제나 해야 하는 것이지만, 사순 시기에는 특별한
기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우선 아침·저녁 기도도 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이 기도부터 해야 할 것이다. 성서를 읽고 쓰는 것도 좋은 기도이다. 묵주 기도를 매일 5단씩 하든지 이미 5단씩 하던 사람은 15-20단씩 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리고 성체 조배를
매일 몇 분씩 하는 것도 좋다. 매주 공동으로 바치는 십자가의 길 기도에 함께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특별히 평일 미사를 하는 것은 더욱 좋은 일이다. 참으로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마주하는 사람만이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고, 또 고행(단식)이나 극기의 필요성을 깨달을 수 있다.
단식(고행)은 걷잡을 수 없는 욕망과 욕심에 재갈을 물리는 일이다. 단식을 하고, 커피와 담배를 끊고, TV를 끄고, 술자리를 피하고, 군것질을 삼가는 것 등은 자신을 다스리는 절제의 힘을 기르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과음(過飮)이나 과식(過食), 담배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참된 자유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상의 업무에서 오는 고통과 희생을 봉헌하는 것 또한 큰 희생이다. 그리고 화가 나거나 참기 어려운 일을 참는 것도 고행이다. 그러나 고행이나 극기가 단순히 자신의 끈기를 시험하는 것이라면 별 의미가 없다. 극기(克己)는 죄를 예방하는 보루(堡壘)라고
할 수 있다. 단식을 통해 배고픔을 체험함으로써 굶주리는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들과 하나 되려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고행(단식)에는 사랑이 스며들어야 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안대(眼帶)를 대고 하루를 살아 보면 앞을 못 보는 장애인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듯이 우리는 사순 시기의 고행을 통해 불우한 이웃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희사는 이웃 사랑이 스며든 고행이 지향하는 자연스런 결과이다. 단식이나 절제를 통해 절약한 것을 이웃에게 나눔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고행(단식)을 완성하는 것이다. 사순 시기 운동은 그래서 사랑 실천으로 결실을 맺어야 한다. 기도하지 않고 기쁘게 단식(고행)할 수 없고, 사랑으로 하는 단식은 희사로 연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기도와 단식과 희사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다.
3. 사순 시기는 화해와 인간성 회복의 시기이다
그냥 언제나처럼 “수난 기약이 다다랐구나! 조금 있으면 부활이 되겠구나!” 하는 식으로 구경하듯 보낸다면 사순 시기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느님과 화해한다.”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누구에게나 “하면 좋은 일인 줄 알지만, 하지 않고 있는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하느님 앞에 좀 더 새로워지기 위해 나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무엇인가? 그 일을 함으로써 하느님 앞에 다가가는 것 이것이 그분과 화해하는 길이다. 그리고 사순 시기는 절제와 희생을 통해 술 담배 등 뿌리뽑아야 할 것임을 알면서도 헤어나지 못하는 악습 등에서 해방됨으로써 나 자신의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시기이다. 사순 시기에 나를 더욱더 새롭게 할 구체적인 결심을 해야 한다. 내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는 만큼 나는 그분의 부활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사순
시기에 우리는 죽는 만큼 부활한다는 것을 깨닫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