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2월 15일 발간된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의 표지.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포착한 이미지에 10이라는 숫자를 표현했다. 이날 네이처는 2022년 과학계를
빛낸 인물 10명을 선정해 발표했다. ⓒNature
저명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는 올해 과학계에서 큰 역할을 한 인물 10명을 선정해 15일 발표했다. 인류 역사상 최대 천문학 프로젝트를 담당한 천문학자, 기후위기에서 지구를 구하기 위해 노력한 인물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나선 인물 등이 이름을 올렸다.
10대 인물을 발표하며 네이처는 “10대 인물은 수상이나 순위가 아니라 올해 과학의 주요 발견과 이정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제인 릭비 美 NASA 연구원, “스카이 헌터”
▲ 제인 릭비 미국 항공우주국(NASA) 연구원 ⓒNature
네이처는 제인 릭비(Jane Rigby) 미국 항공우주국(NASA) 연구원을 올해의 인물 중 첫 번째로 소개하며, ‘스카이 헌터(Sky hunter)’라는 별명을 붙였다. 릭비 연구원은 차세대 우주망원경인 ‘제임스웹 우주 망원경(이하 제임스웹)’ 운영 프로젝트 담당자다. 제임스웹은 제작에만 100억 달러(약 12조7,800억 원)가 투입된 천문학 사상 최대 프로젝트다.
지난 해, 크리스마스 우주로 떠난 제임스웹은 올해 1월 25일 지구에서 150만㎞ 떨어진 최종 목적지인 라그랑주점2(L2)에 도착했다. 라그랑주점2는 우주를 관측하기에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지구 궤도에서 고정된 것처럼 머무를 수 있고, 태양이 항상 지구 뒤에 가려져 있어 태양빛의 방해도 받지 않는다.
라그랑주점2에 도착한 제임스웹은 18개의 거울을 세밀하게 정렬하는 고난도 작업을 거쳤다. 릭비 연구원의 주요 임무는 각 거울 사이에서 빛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간극을 좁히는 작업이었다. 정렬이 잘 돼야 먼 관측이 정확해진다. 이 과정을 거쳐 7월 제임스웹이 포착한 첫 이미지가 공개됐다. 이후 제임스웹이 촬영한 이미지는 연일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사이언스 타임즈는 시리즈를 통해 제임스웹의 활동을 소개해왔다.
릭비 연구원은 제임스웹 담당 연구자지만, 망원경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다. 제임스웹은 아폴로 계획을 진두지휘했던 제임스 웹 전(前) NASA 국장의 이름을 땄다. 그런데 웹 전 국장이 재직 당시 동성애자를 차별 대우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성소수자를 대량 해고한 트루먼 정부에서 웹이 국무부 차관을 지냈고, 1964년 NASA 직원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해고될 당시 국장이었다.
릭비 연구원은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우주는 성 정체성을 근거로 나를 거부하지 않는다”며 “나의 정체성은 우주의 일부이고, 더 큰 이야기의 일부”라고 말했다.
차오윈룽 중국 베이징대 연구원, “코로나19 예측자”
ⓒ Nature
차오윈룽(Yunlong Cao·위 사진) 중국 베이징대 연구원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인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진화를 추적하고 돌연변이를 예측하는 데 일조했다는 점에서 ‘코로나19 예측자’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차오 연구원은 본래 단세포 유전학 분야 연구자였다. 학위를 마치고 베이징대에 연구교수로 자리 잡은 직후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졌다. 도시 봉쇄로 인해 연구실이 제대로 운영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차오 연구원은 이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연구로 사회에 기여하자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유전학 전문 지식을 활용해 대용량처리 단일 세포 시퀀싱으로 사스코로나바이러스-2 중화 항체들을 발견했고, 이를 기반으로 바이러스의 변이 방향을 예측할 수 있었다.
차오 연구원은 “내가 면역학과 바이러스학 연구를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며 “인류가 바이러스보다 앞선 건 이번이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살리물 후크 국제기후변화발전센터 소장, “기후 혁명가”
ⓒ Nature
살리물 후크(Saleemul Huq·위 사진) 국제기후변화개발연구센터장은 지난 11월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손실 및 피해 금융 자금’에 대한 협의를 이끌어내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기후 혁명가(Climate revolutionary)’란 수식어를 얻었다.
손실 및 피해 금융 자금은 그간 다량의 탄소를 배출해 온 선진국들이 기후변화의 직접적인 피해를 받는 저소득 국가들에게 손실과 피해를 보상할 기금을 만들자는 정책이다. 이번 COP27의 합의는 30년간 이어진 캠페인의 종점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0년간 후크 센터장은 이 캠페인의 비공식적인 지도자로서 손실과 보상 문제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노력해왔다.
스비틀라나 크라코프스카 우크라이나 응용기후학연구소장, “우크라이나를 위한 목소리”
ⓒ Nature
유엔(UN)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우크라이나 대표단 수장인 스비틀라나 크라코프스카(Svitlana Krakovska·위 사진) 우크라이나 응용기후학연구소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 ‘화석연료 전쟁’이라고 명명하고 기후 위기와 연관시켰다. 러시아 전쟁 자금이 막대한 천연가스와 석유 수출에서 비롯됐고, 이 화석연료는 기후변화의 시발점이 됐다는 의미다. 지난 2월 열린 IPCC 회의 폐막 연설을 통해 크라코프스카 소장은 우크라이나의 입장을 강력히 대변하며, 다른 나라 대표단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러시아 대표단은 이에 사과하기도 했다.
러-우크라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131개 대학, 50개 이상의 연구소가 피해를 입었다. 우크라이나 국립과학아카데미 소속 연구자 1,300여 명이 나라를 떠났다. 이런 상황에서 크라코프스카 소장은 고국에 남아 우크라이나 과학 재건에 관한 회의를 주재하고, 지역 기후 모델링을 활용한 우크라이나의 기후 변화 예측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디미에 오고이나 나이지리아 니제르델타대 교수, “M두창 파수꾼”
ⓒ Nature
M두창은 원숭이두창바이러스에 감염돼 발생하는 감염병으로 주로 아프리카 지역에서 발생하는 풍토병이다. 그런데 올해 5월부터 풍토병 지역이 아닌 유럽과 북미 등에서 감염 사례가 이어지며 세계적 유행으로 번졌다. 디미에 오고이나(DIMIE OGOINA·위 사진) 나이지리아 니제르델타대 교수는 2017년부터 M두창을 연구해 온 인물이다.
2017년 나이지리아에는 40년 만에 M두창 환자가 등장했다. 오고이나 교수는 당시 첫 확진 환자를 진단한 의료진이었다. 본래 M두창은 야생동물과 접촉한 농촌 지역 어린이에게서 발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2017년의 M두창은 소시에 거주하는 중년 및 청년 남성에게서 주로 나타났다. 환자들의 확진 사례를 분석한 결과, 오고이나 교수 연구팀은 야생동물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아닌 사람들 간의 성적 접촉에 의해서도 바이러스가 감염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8만2,000명 이상의 감염과 65명의 사망자가 나온 상황에서 오고이나 교수의 연구는 전 세계에 위험 신호를 보내고, M두창 교육 및 예방 접종 캠페인을 가속화하는 데 도움이 됐다. 전 세계적 발병이 줄어들고 있지만, 나이지라의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바이러스의 확산을 통제하기 위한 치료제·백신 등의 공급은 선진국에 주로 국한되기 때문이다.
리사 맥코겔 환자 중심 연구협력체 설립자, “롱코비드 옹호자”
ⓒ Nature
코로나19 장기 후유증을 의미하는 ‘롱코비드’ 환자들로 구성된 미국의 자체 연구 조직 ‘환자 중심 연구 협력체(Patient-Led Research Collaborative)’의 창립자인 리사 맥코겔(Lisa Mccorkell·위 사진) 연구원도 주목받은 올해의 인물이다. 대학원생 시절 그녀는 식량 빈곤과 사회 안전망 등 사회정책에 기여할 수 있는 과학기술을 연구해왔다. 그러다 2020년 코로나19에 감염된 후 끝나지 않는 후유증으로 인해 고생했다.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그녀는 4명의 다른 여성 연구자와 함께 장기적 후유증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이를 토대로 200개 이상의 롱코비드 증상을 기록한 획기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코로나19가 국가적 의제에서 제외되고 있는 상황에서 협의체는 장기 후유증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이에 대한 연구 예산 확보를 도왔다. 현재는 롱코비드 증상과 함께 재감염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다이애나 그린 포스터 미국 UCSF 교수, “낙태의 진실 탐구”
ⓒ Nature
미국은 ‘로 대 웨이드’ 판결에 의해 1973년부터 낙태를 합법화해왔다. 30여 년만인 올해 미국 연방대법원이 헌법에 낙태 권리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한 후, 일부 주에서 낙태금지법이 발효됐다. 다이아나 그린 포스터(Diana Greene Foster·위 사진) 미국 샌프란시스코캘리포니아대(UCSF) 교수는 미국에서 화두인 낙태금지법에 반대하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주목받았다.
그녀의 가장 유명한 연구는 일명 ‘배역(Turn-away) 연구.’ 2018년 발표한 이 연구에서 포스터 교수 연구팀은 1,000여 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를 통해 낙태 시행 여부가 개인의 정신적·신체적·경제적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낙태를 원했지만 거부당한 사람들은 건강과 복지 및 재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주변 가족에도 해를 끼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가난하게 살 가능성이 더 높으며, 자녀를 혼자 양육하거나 아이의 생명이 위협받을 정도의 치명적인 질환이 유발될 가능성도 더 높았다.
포스터 교수는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정책입안자들이 자신이 속한 주에서 낙태를 합법화할지 여부를 결정할 때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대법원의 판결에 이어 주정부 역시 과학적 증거를 무시한다면, 다음 연구는 정책적 결정이 개인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에 대한 분석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위기 외교관”
ⓒ Nature
“우리는 기후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에 있다.” 지난 11월 열린 유엔 기후정상회의에서 안토니오 구테흐스(ANTÓNIO GUTERRES·위 사진) 유엔 사무총장의 말이다. 각국 대표들 앞에서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 선진국 지도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역할을 했다.
또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이 막힌 상황에서 곡물 수송을 위한 보호 통로 설치에 나섰다. 세계 시장으로 수출되는 밀, 보리, 옥수수 및 해바라기유의 최소 30%는 우크라이나에서 나온다. 우크라이나 수출의 90%가량은 흑해를 통과하지만, 적대 행위로 인해 수송 경로가 차단되면 식량 가격이 치솟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기아에 시달릴 위험이 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총대를 멘 ‘흑해 곡물 수출협정(black sea grain initiative)’이 체결된 후 식량 가격의 10%나 떨어지며 안정화됐고, 1,110만t의 곡물과 식량이 흑해를 통과했다.
무하마드 모히우딘 미국 메릴랜드대의대 교수, “이식 선구자”
ⓒ Nature
무하마드 모히우딘(Muhammad Mohiuddin·위 사진) 미국 메릴랜드대 의대 교수는 올해 1월 유전자 편집된 돼지의 심장을 심장병 말기 환자에게 이식한 인물이다. 장기 기증자의 부족으로, 돼지 등 다른 동물의 장기를 이식하자는 아이디어는 수십 년 전에 나왔다. 문제는 인체의 면역 체계가 다른 동물의 장기를 거부한다는 점이다.
최근 10년간 유전자 편집 기술의 놀라운 발전 덕분에 급속 장기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단백질과 당을 제거하여 장기가 인체와 더 호환되게 하는 연구가 진행됐고, 여러 회사에서 이 목적으로 유전자 변형 돼지를 기르고 있다. 올해 1월 7일. 모히우딘 교수 연구팀은 미국 식품의약청(FDA)의 임상 시험 긴급 승인을 받고, 57세 남성에게 심장 이식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 초기, 환자는 순조롭게 회복하는 듯 했지만 두 달 후 이내 사망했다. 사망자의 몸에서는 돼지 거대세포 바이러스 DNA가 발견됐다. 사전에 돼지에게 바이러스가 있는지 검사했지만, 잠복한 채 숨어있는 바이러스를 찾아내진 못했다. 웨인 호손 국제이종이식협회장은 “비록 환자는 사망했지만, 이종이식 분야에서 중요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알론드라 넬슨 미국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장, “정책 주체”
ⓒ Nature
알론드라 넬슨(Alondra Nelson·위 사진) 미국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장은 장벽 없는 과학정보를 제공하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넬슨 실장이 임명되기 전, 전임자가 직장 내 괴롭힘 협의로 사임하며 미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 상황이었다. 사회학자인 넬슨 실장은 과학과 기술의 사회적·인종적 함의에 대한 연구로 명성을 쌓아왔다. 넬슨 실장의 임명은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인종 차별과 불평등을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이행할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로 여겨졌다.
주요 행보는 과학기술 학술정보의 장벽을 없앤 것이다. 2013년 시행된 지침에 따라 미국의 과학자들은 약 20개 정부 기관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출판된 연구에 대해 1년 이내 모든 사람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해야 했다. 넬슨 실장은 정부의 지원을 받은 연구가 출판 즉시 대중이 완전히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한다는 정책을 이끌었다. 1년의 유예 기간을 없앤 것이다. 이 행보는 ‘오픈 액세스’ 지지자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