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을 할 때면 나도 모르게
기도가 샘솟는다
봄빛 손동작에 영감대(靈感帶)가 발동한 걸까
커다란 부스럼에서 피고름이 터져 나오듯,
속절없이 용솟는 고백의 파편들
아픔과 함께 시원함을 짊어진 그것은
차라리 본능이다
아무리 깨끗이 닦는다고 닦고
씻는다고 씻지만
얼마 못가 이 자리에 또 다시 벌거벗고 앉게 되는 것은
오염 때문일까
흙에서 왔기 때문일까
혹, 나의 몸뚱아리 전부가 죄악 덩어리는 아닐까
달빛의 차고 기움이 계속되는 한은
여자들의 별보기도 반추될 것이고
그에 따라 나의 허물벗기도 끝없이 이어지려나
비누와 샴푸, 그리고 바디 크랜저에 실려
물밀어가는 먼지와 때의 행진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나의 심혼(心魂)도 제발 순백해지기를 소망해 보지만
벗겨도 벗겨도 껍질 뿐인
양파인생!
허물벗기 2
목욕은 나로 하여금 죄인임을 가르친다
아무리 거룩한 척 발버둥쳐 봐도
며칠을 못버티고
먼지 풀풀 날리는 비포장도로로 주저 앉고 마는 것을
이럴때면 내가 이슬을 먹고 사는 신선이 아니라는 현실이
여지없이 밝혀진다
두문불출 방에만 틀어박혀 있어도
여전히 밀리는 때는
죄의 원인이 창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음을 일러 준다
스스로 더러운 인간임을 시인하며
들어가는 목욕탕
물과 세제가 아니고는 깨끗해 질 수 없는 육신을 통해
영혼도 스스로는 손댈 수 없는 지성소임을 깨닫는다
그 분의 살과 피가 아니고는
털끝만큼도 순결해 질 수 없는 우리
그러니, 치부를 드러냈다는 부끄러움과 그리고 그 알량한 자존심까지도
모두 벗어버리고
알몸으로 십자가에 매달릴 수 밖에
허물벗기 3
* 교회당 : 대중 목욕탕
* 성서 : 타올
* 기독 : 기가 막힌 세제
* 목사 : 때밀이
* 목욕탕 주인 : 하나님
* 특징 : 연중 무휴,주야 24시간 대기,무료,누구나 환영,출장도 가능
허물벗기 4
엊그제 깨끗해지기를 소망하며 때를 민 그 자리에
쥐었던 시간이 흩어지자 어김없이 시계불알처럼
다시 앉아 또 순결을 기원하는 나
분명 다시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 흐르리라 하였건만
나는 왜 늘 배고픔에 헐떡이는
알거지 되어 또 다시 이 자리를 찾는가
그 분이 거짓을 선포했을 리는 만무하고
그렇다면 내가
악한 선인, 회칠한 무덤,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 독사의 자식
정말 그런 것일까
우리가 지금 걷는 이 길은
내리막이 없는 오로지 오르막 외길
그러니 등산하는 각오로 높은 곳을 한 걸음 한걸음 내디딜 수 밖에
자, 한번 되돌아 보렴
늘 제자리 걸음인 줄 알았더만
이--- 만큼 성화되지 않았니?
물구나무 서서
가끔은 세상을 물구나무 서서 바라보자
그래야 하늘도 땅이 될 수 있음을 알지
한번 거꾸로 걷기도 해보자 넘어지면 넘어지더라도
어쩌면 그것이 바로 보고 제대로 나아가는 지름길인지 모른다
나무에게 있어
더위는 추위이고 여름은 겨울이다
태양의 신열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너무 추워 있는 대로 죄다 꺼내 입는다
남들은 홀딱 벗고도 진땀을 쏟아내는데
추워서 벌벌 떠는 꼴이란
그러나 가을을 떨구고 계절이 바뀌면
나무에게 있어
추위는 더위가 되고 겨울은 여름이 된다
찬바람이 거세게 몰아칠 수록
부끄러운 줄 모르고 다 벗어 제친다
마지막 속잎마저도 홀랑
남들은 얼어 죽겠는데 알몸으로 시원스레 겨울을 날다
여름엔 바보처럼 살다가
겨울이면 영웅으로 오롯하는 나무는
그러나 뫼비우스의 띠도, 청개구리의 화신도 아니다
오히려 더위는 추위로 막고 추위는 더위로 이겨내는
그 놀라움은 지혜 그리고 용기의 푯대이다
너무 쉬워서 차라리 어려운
여름 철새로 흥건한 세상
나무에게서 겨울 철새의 삶을 엿본다
어둠을 쪼아대는 빛처럼 밤에만 일하는 별들처럼
좋은 계절 다 나두고 하필 추운 계절에 찾아와선
부리가 터지도록 얼음을 녹이다
그리하여 새봄이 오면 또 다시 추운 동네를 향해 훌쩍 떠나는
도대체 그 낮아진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세상을 거꾸로 산 물구나무 인생들
사실 이들을 담보로
역사와 문화가 바로 서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닐까
"왼뺨을 때리거든 오른뺨도 돌려대라"
"속옷을 달라거든 겉옷까지 벗어주라"
"오 리를 가자하면 십 리까지 동행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살고자 하면 永滅하고 죽고자 하면 永生한다"
나무와 마주하고 있노라면
그 안에 그리스도가 달려 있음을 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술이면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배불릴 수 있는 능력이면
칭기즈칸이나 히틀러가 못다 이룬 꿈을 한 손에 틀어 쥘 수 있었으련만
어찌하여 그다지 무력하게도 골고다까지 끌려 갔을까
왜 손수 죄인이길 고집했나
바보처럼
그러나 물구나무 서서 보면 모든 것이 똑바로 보인다
참으로 이기는 것은 철저하게 지는 것
이것이 힘없음의 능력이요 인생의 참 길인가
비록 세상 것으로 살찐 몸이지만
어디 물구나무 서서 뒤로 한 번 걸어 보자
더러 엉덩방아를 찧더라도
십자가!
그것은 분명 고난임과 동시에 날개다
죽음이면서 부활이요 실패이면서 승리다
주님,간절히 소망하오니
죽어야 살고
비워야 채워지고
버려야 구해지며
썩어야 잉태되는
하늘의 진리를 깨닫게 하소서
그리고 작은 예수로 거듭나게 하옵소서
물구나무 서서
벽오동(碧梧桐)의 참회록(懺悔錄)
1
이쯤이면 달릴 만큼 달려 왔는데
아니, 너무 많이 뛰어서 탈이었지
人生이 하루살이였다면 이런 꼬락의 낙엽은 아니었을 텐데
태양은 지금 황해에서 피똥누며 잦아들고 있다.
좀 더 오래 살고 싶다는 자맥질일까? 아니면 밀물져 오는 어둠이 무서워서 일까?
은행잎에 매달린 靑鶴처럼 주름지고, 총명한 大地에 빗물 스미듯 꺼져가야 하는데
왜 이리 있지도 않은 치아(사용능력 초과하여 이촉까지 닳아 없어짐)가 주책없이
비포장도로에서 속력을 높일까
솔직히 무덤에 빠지는 것은 두렵지 않다.
움켜 쥔 태산을 못 가져가고, 강물에 이름 석 자 새기지 못해서가 아니다.
배탈이 나서 삼켰던 풋것을 토해낼 때의 부대낌같이
지나쳐 온 발자국을 스스로 반추(反芻)하는 형벌이 죽음보다 크기 때문이다.
매미의 일생이 한껏 부럽다.
육칠 년을 환도뼈로 한 땀 한 땀 공들여 빚은 선율.
그 환희의 解脫을 한 주일, 맘껏 늘려도 보름
그 동안만 선보이고 미련없이 돌아서는 때를 읽는 어여쁨이여
제아무리 거룩한 花草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치마를 벗어 내리는
自然의 말씀을 왜 진작 줍지 못했을까
마지 못해 피웠던 보랏빛 순형화관(脣形花冠)은
벌 나비를 꾀기 위한 商術의 거미줄이었고
원추화서(圓錐花序)의 값싼 웃음은 꿀을 담기 위한 독이었다.
그나마 주렁한 삭과는 로비 명목의 비자금이었고
심장형의 큰 손은 땡볕을 잡아 두기 위한 늪이었다.
제대로 씹을 겨를도 없이 일단 넘기고 보는 부지런함에
물찬 풍선처럼 불러오는 배꼽의 평수가 헉 헉 가쁘다.
먹을 줄만 알았지 미처 배설하는 기쁨을 몰라
이제는 동맥경화에 고혈압, 당뇨까지 위험 수위를 육박하고 있다.
그릇된 바벨탑은 누가 건드리지 않아도 저절로 쏟아져 내리는 법
갈릴리 호수와 死海의 차이점을 뒤늦게 만지작거리는 이 어리석음
3
주여, 십자가상의 강도처럼 내달아온 이 죄인을 받으소서
늘 비취로 두루말은 몸통의 가죽은 하늘을 닮으려는 사무침에 얻은 聖衣가 아닙니다.
한 개라도 더 갖겠다는 다툼 끝에 수확한 멍울입니다.
거울의 窓에서 오동빛 껍질을 벗겨내면 다시 눈알같은 유리로 오롯하듯,
누렇게 돈에 찌든 이 놈의 창자와 황금색 심장마저 꺼내시고
生命도 비우고, 靈魂조차 버리게 하옵소서.
비우면 비울 수록 더 맑은 가락이, 버리면 버릴 수록 보다 많은 사람의 心琴을 사로잡는
음악이 잉태되기 때문입니다.
자린고비의 遺言처럼
이 몸은 비록 죽사오나 靈感의 노래를 분만하는 인어의 가슴으로 復活하여
천 년 만 년, 뱀이 다시 두 발로 걸어다니는 그 날까지
하늘의 빛 돋우는 아름다운 그림자이고져 합니다.
이젠 죽어도 행복할
이름으로
이름으로 산다 하면서
늘 얼굴로 살아간다
이름을 부르면 될 텐데도
손발이 먼저 나간다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는 데도
나는 서 있다
날이 흐리고 비가 오고 천둥이 치는 데도
나는 그대로이다
이름으로 이름으로 이름으로
영혼의 골짜기까지 가기에는 너무 멀다
주여, 하늘을 밟고 살게 하여 주소서
길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게 조여야
넘어갈 듯 넘어갈 듯
넘어가지 않게 살아야
하늘을 끌어내릴 수 있음을
암실,인생이 현상되는 산실에서 목도한다
남이 밟은 눈은 이미 겨울이 아니지
나만의 후각과 촉수로 가야한다
피빛 조명도 필요하겠지
물빛 용액도
아름다움은 그렇게 해서 생명을 머금는 것
大 地
- 어머니 그리고 하나님
사막의 계절에 힘겹게 생명을 잉태하고
혹 된바람에 얼어 죽을까 알집을 보듬고 또 보듬고
마침내 봄의 양수 힘입어 살을 찢는다
아픔은 잠깐 오히려
햇살처럼 밝아지고 뜨거워지는 대지의 얼굴 그리고 가슴
젖과 꿀, 살과 뼈 온몸인들 아까우랴
어미를 찢고 태어나는 살모사 새끼처럼
어미를 먹고 성장하는 거미 새끼처럼
흙을 먹고 대지를 밟고 일어서는 초목
위로 위로만 걸어 올라간다
한번쯤 뒤를 돌아볼 만도 한데 그럴 만도 한데
하루가 다르게 키를 더해가는 바벨탑
어느새 무성한 잎새 사이로 아름다운 꽃이 벙그러지고
꽃을 피우면 제일 먼저 대지에게 선보인다던 약속을 잊었는지
초목은 하늘이 입맞춤해주길 소원하며 크게 입을 벌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