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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사 한문불전승가대학원 금강경 사가해
제2강 4부(2011. 04. 19)
耳之者(이지자), 귀의 사람. 귀사람ㆍ귀사람. 이래가지고는 뭔지 모르지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豁然心開(활연심개)로다. 활연히ㆍ시원하게 마음이 열리게 하는 도다. 그랬습니다.
何止重輝佛日이리오 亦乃光揚祖道로다
(說誼 : 古人이 道하사대 三乘十二分敎에 體理得妙하면
何處에 更有祖師西來意리오하시니 則別傳之旨도
亦不外乎斯經이로대 尙爲言敎의 所攝하야 隱而不現이어늘
今諸祖가 稱實發揚하시니 非獨敎義全彰이라 別傳之旨도
亦乃昭然이로다
有云호대 單傳直指之旨가 豈斯敎의 所攝乎아하니
看於黃梅曹溪에 足可見矣니라)
何止重輝佛日(하지중휘불일)이리오
亦乃光揚祖道(역내광양조도)로다. 아, 좋은 말이지요? 어찌 그치겠는가?
무엇을요? 重輝佛日. 중국 사찰 순례하다 보면 重輝佛日. 이런 말 참 많이 봅니다. 부처님의 태양을 거듭 빛나게 하는, 부처님의 태양을 거듭 빛나게 하는데 그치겠는가? 그렇지요. 금강경을 잘 드러내는데 그치겠는가?
亦乃光揚祖道로다. 조사의 법. 조사의 법의 그 빛이 조사의 道를 아주 빛나게 드날린다. 그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금강경 사가해만 봐도요?
선불교가 그대로 무르녹아 있습니다. 선불교정신이...
왜냐? 선사들이, 선을 체득하신 선사들이 해석을 했기 때문에, 선의 안목에서 금강경을 해석했습니다. 그럼 금강경은 원문 그대로 있으니까
佛日. 부처님의 가르침도 충분히 이해하고, 그 다음에 조사스님들이 금강경을 해석하는 것을 빌미로 해서 당신이 깨달으신 그 깨달음을 거기다가 한껏 펼쳐 보인 것이 됩니다. 그래서 한 권의 책으로써 부처님의 가르침과 조사의 뜻이 잘 드러난 것은 “금강경 오가해다.” 이런 표현들을 합니다.
說誼.
古人(고인)이 道(도)하사대, 옛 사람이 말하기를
三乘十二分敎(삼승십이분교)에, 三乘十二分敎. 이것은 우리 불교경전을 분류할 때, 이렇게 三乘十二分敎로 분류하지요.
體理得妙(체리득묘)하면, 體理. 이치를 체달한다ㆍ체득한다ㆍ깨닫는다.
이런 뜻입니다. 體자. 불교에서는 그렇게 해석합니다.
서예학원에서는 “체 받는다.” 그래요. 글씨를 써주면 그것을 “체 받는다.” 그러는 것도 이 體자를 쓰는데요. 여기서 體理 하면 이치를 체득한다ㆍ깨닫는다. 그리고 그 미묘함을 얻으면, 三乘十二分敎에서 얻으면
何處(하처)에, 어느 곳엔들
更有祖師西來意(갱유조사서래의)리오시니, 다시 祖師西來意가 있겠는가? 그렇지요. 3승 12분교에서 이치만 제대로 깨달으면 어느 곳에서든지 그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 선불교의 아주 근본 종지지요. 근본취지. 祖師西來意. 달마스님이 서쪽에서 온 뜻. 와서 사실은 선불교를 창시했지요.
달마스님이 와서부터 사실 선불교가 생긴 것 아닙니까? 또 달마스님 당시 때는 썩 그렇게 꽃을 피우지 못했고, 후대에, 몇 대를 내려와서 비로소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요. 달마스님은 기껏 씨를 심은 정도에 불과 했습니다.
아무튼 선불교는 달마스님이 서쪽에서 옴으로부터 있었던 것이고, 그렇지만 그것을, 선불교를 불교의 완성이라고 이렇게 보잖아요. 불교의 완성이다. 불교가 선불교에 와서 완전히 이뤄졌고, 그 이상 더 지금까지 크게 진보가 없는 것으로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런 선불교도 결국은 8만 대장경 三乘十二分敎에서 이치만 깨달으면 다 있다.
則別傳之旨(즉별전지지)도, “敎外別傳(교외별전)” 그러지요? 敎外別傳. 교 밖에 따로 전하는 그런 뜻도 亦不外乎斯經(역불외호사경). 그랬습니다.
이 경전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밖에 것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敎外別傳ㆍ敎外別傳” 해서 선가에서 그것을 아주 높이 삽니다.
“우리는 8만 대장경의 길 하고 다르다ㆍ8만 대장경 밖에 따로 전하는 취지가 있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선불교의 특색 아닙니까?
하지만 여기 함허스님의 말씀을 보면, 亦不外乎斯經이라고 그랬습니다.
금강경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금강경 안에 다 있다 이 말입니다.
尙爲言敎(상위언교)의 所攝(소섭)하야,
오히려 그런데, 오히려 사람들의 言敎에, 말과 그 가르침에 攝한바가 되어가지고서 隱而不現(은이불현)이어늘, 숨어서 나타나지 않거늘
今諸祖(금제조)가, 지금의 여러 조사스님들이
稱實發揚(칭실발양)하시니,實에 맞추어서, 실법에ㆍ실다운 이치에 맞추어 가지고 稱. “칭합 시켜서” 그 말입니다. 稱實. 거기에 맞추어서, 진실에 맞추어서 發揚했다. “드러냈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非獨敎義全彰(비독교의전창)이라.
홀로 敎의 뜻이 온전하게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새겨야 됩니다.
敎義가, 敎의 뜻이 온전히 드러나게 했을 뿐만 아니라,
別傳之旨(별전지지)도, 敎外別傳. “선불교의 종지도” 그 말입니다. 선불교의 종지도 亦乃昭然(역내소연)이로다. 또한 이에 환하게 밝혔다.
그렇습니다. 참,금강경 이 사가해. 이것은 정말 이 두 가지를 다 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불교에는 선불교ㆍ또 부처님의 경전의 가르침이면 경전의 가르침. 그것이 이 한 권의 책속에 다 무르녹아 있다. 이런 뜻이지요.
亦乃昭然이로다.
有云(유운)호대, 어떤 이가 말하기를
單傳直指之旨(단전직지지지)가, 單傳. 한 사람ㆍ한 사람에게만 전해준, 예를 들어서 육조스님 제자도 무수히 많지요. 제자 중 마조스님 같은 이들은 몇 백 명이 될 정도로요. 그런데 대 수를 이어갈 때는 한 사람에게 전해진 것으로 그렇게 역사는 기록 됩니다. 그래서 單傳. ←이렇게 말합니다.
홀로 전하는 직지의 뜻이, 바르게 가르침. 그 뜻이
豈斯敎(기사교)의 所攝乎(소섭호)아하니,
어찌 이 교에 攝하는 바가 되겠는가? 선불교에서는 그렇게 말하지요.
지금도 그렇게 말하는 이가 많습니다. 이런 거 안 보니까요. ‘敎外別傳이 어찌 금강경에 있단 말인가?’ 이렇게 하는...
看於黃梅曹溪(간어황매조계)에 足可見矣(족가견의)니라.
黃梅 = 5조 홍인스님. 曹溪 = 6조 혜능스님. 이런 사람을 볼 것 같으면 족히 가이 그 이치가 드러날 것이다. 보게 될 것이다. 이런 뜻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특히 6조 스님께서 그야말로 떠꺼머리총각 나무꾼이 불교라는 불자도 모르고, 세상에 불교가 있는 줄도 몰랐던 사람이 금강경 한 구절을 떡~ 듣고는 그 순간 정말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게 되었지요.
마음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그것이 견성인지 뭔지 몰랐습니다. 그런 용어를 모르는 사람이니까요. 아무튼 마음이 환하게 밝아져 딴 세상이 돼 버렸습니다. 그것이 오로지 금강경 도리입니다. 또 황매산 5조 스님. 6조 스님 스승인 홍인스님은 자나 깨나 금강경만 가르쳤어요. 금강경만 가르쳤다고요. 그 분들이 다 敎外別傳之旨의 정통파고요. 單傳直指의 뜻을 고스란히 간직한 분들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그럼 어쩌란 말이냐? 이런 이야기입니다. 아주 중요한 대목이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교를 하면, 경학을 공부하면, 또 자기한 것에 집착하게 마련입니다. 왜냐? 자기가 거기에 정력을 쏟았고, 공을 많이 들였으니까, 자기 공 들인 것을 좀 아끼고ㆍ사랑하고ㆍ그것을 또 집착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경학을 안 보고 참선만, 참선일변도로 한 사람은 참선만 집착하고 참선만 좋은 것이라고ㆍ그것이 최고라고 아주 이렇게 집착하고요. 그것을 내세우는 경향을 우리가 많이 봅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그런 것을 많이 봐요. 또 근래에 남방에 가서 공부해온 사람들은, 한국에서 공부할 때는 아주 돈 받아가면서 공부합니다. 대접받아가면서 공부하고, 아무 어려움 없이 그냥 공부합니다.
그런데 남방에 가가지고 그 말도 서툰데 영어해야지, 그 지역 말 배워야지 얼마나 고생고생 합니까? 기후ㆍ음식 하나도 안 맞지요. 가서 죽을 고생을 하면서 공부해온 겁니다. 거기에서 한 철을 공부한 것이 우리나라에서 10년 공부한 것 보다 고생이 더 심해요. 공이 더 들어요. 그것을 한 10년 간 공부해가지고 우리나라에온 겁니다. 그래 이 사람 마음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거기에서 석 달만 공부해도 우리나라에서 10년 공부한 것 보다 고생이 더 심해요. 그런데 그것을 10년을 공부하고 왔습니다. 한국불교ㆍ선불교ㆍ대승불교, 아무 것도 눈에 안 들어옵니다. 하나도 눈에 안 들어와요. 왜냐? 자기가 공을 들인 것이 있으니까요. 그만치 고생 하면서 공부했고, 애착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 교리의 차원이 어떻고, 이것은 아무 관계없이 자기가 그만치 노력 들이고ㆍ고생했고, 고생고생 하면서 공부했다고 하는 이 사실 하나만 가지고 얼마나 집착한다고.
입에 침을 튀겨가면서 근본불교ㆍ근본불교ㆍ초기불교. “이거야말로 불교다.” 라고 이렇게 막 그냥 고집합니다. 이해합니다. 저도 거기 가서 그렇게 고생하고 왔으면 똑 같이 그렇게 아마 주장할 겁니다. 자기가 얼마나 마음을 쓰고, 공을 들이면서 공부했는가? 이 겁니다. 그 견해의 차이라든지, 교리의 차원 이라든지 이것은 아무 상관없다고요. 사람이란 그것이 우선입니다. 그것을 이해해 줘야 됩니다. 정말입니다. 그것을 이해해 줘야 돼요. 한국에서는 한 10년 간ㆍ20년 간 있으면서도 아주 편하게 공부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가치 없습니다. 선불교의 차원이 아무리 높아도 그 사람 의식 속에는 그것은 별로 관심 없습니다.
그래 그런 것을, 지금 남방에 가서 공부해온 분들의 숫자가 상당히 많고, 또 포교당 같은 것, 교육도량 같은 것도 많이 세우고 이렇게 하는데,
대승불교 내지 선불교를 공부한 입장에서 보면 사실은 비교도 안 될 그런 교리인데, 그것을 그렇게 우수하게 보고, 선불교를, 조사를 “중국에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하지요. 그런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제가 아는 도반입니다. “중국에 어떤 사람이 떠들어 놓은 글 가지고, 그걸 가지고 진짜 불교라고 하고 있다.” 선불교를 그렇게 말합니다. 야~, 신기하지요?
그 사람도 한국에서 선방에 여러 해있었습니다. 우리 같이 살고 그랬는데요. 그리고 심지어 대승불교의 원산지 영축산. 영축산에 가면 법화경설한 이야기를 반드시 해야 될 것 아닙니까? 그 말을 하기 싫어서, 그 말을 안 하려고 영축산에도 신도들 데리고 안 갑니다. 그 밑에 주차장까지 갔다가 돌아와요. 제가 그 사람하고 인도여행을 같이 했거든요. 그렇다고요. 그만치 집착이 심하다니까요. 대승불교이야기를 안 하는 겁니다. 입에 안 담는 겁니다. 거기 올라가면 대승불교이야기를 입에 담아야하고ㆍ법화경이야기를 입에 담아야하고 하기 때문에요. 사람은 자기가 공을 들인데 따라서 그렇게 집착이 심하다는 것, 아주 참, 깊이 깨달았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골고루 다 섭렵을 해서, 아주 냉정하게 그 어떤 지견의 높고 낮음을 충분히 분별해놓고 자기가 애착 가는 불교는 자기가 애착 가는 데로 이야기하고, 아무리 높은 불교라도 애착이 안 가면 말 안 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렇지요. 그렇게 되어야지, 자기가 공을 들이지 않은 것이라고 무조건 배척을 하는 것은 안 맞는 말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다행히 이 금강경 사가해를 통해서, 정말 선불교와 대승불교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금강경을 겸해서 공부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것이 참, 얼마나 정말 다행인지 모르지요. 그런 이야기를 여기에 썼습니다.
我曹가 生于千載之下하야 得遇難遇之寶하야
手接目覩하니 幸莫大焉이라
(說誼 : 慶遇斯解也라)
我曹(아조)가, 우리들이
生于千載之下(생우천재지하)하야, 천년 밑에 태어나서, 그렇습니다.
우리들, 함허스님 당시 때니까요. 예를 들어서 6조 스님, 또 부대사 같은 분은 정말 한 천년 쯤 더 앞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대강 천년 밑에 태어나 가지고서
得遇難遇之寶(득우난우지보)하야, 정말 만나기 어려운 보물을 만나서
手接目覩(수접목도)하니, 손으로 직접 接하고, 책을 接하게 되고ㆍ눈으로 보게 돼서 幸莫大焉(행막대언)이라. 그 다행함은 막대한 바다.
다행함이 정말 막대하다. 더 이상 클 수가 없다.
說誼
慶遇斯解也(경우사해야)라.
이 解書(해서). 우리는 사가해지만, 여기로 보면 五家解지요. 五家解만난 것을 아주 경사스럽게 생각한 것이다. 간단하게 해석했습니다.
以此로 可以揚佛祖之餘輝며 以此로 可以延君國之洪祚로다
(說誼 : 儻因斯解하야 豁開正眼則法印이 在握하고
化道가 在己니라)
以此(이차)로 可以揚佛祖之餘輝(가이양불조지여휘)며,
가이 佛祖. 부처님과 조사가 남겨준 그 빛을, 남겨준 빛을 드날리며
以此(이차)로, 이것으로써
可以延君國之洪祚(가이연군국지홍조)로다.
君國. 임금과 나라의 큰 복을 더욱 뻗치게 延자. 뻗어 나게 했도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불교를 정말 제대로 공부하면, 우리 승려들ㆍ또 불자들, 본분에만 충실하면요? 본분이라는 것이 뭡니까? 공부하는 것이지요.
사실 이것은 장한 것, 아닙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공부하는 것. 이것이 사실은 본분입니다. 불자들의 본분인데... 본분에만 충실하면 불교는 저절로 잘 되게 돼 있어요. 그런 뜻이 여기 있습니다.
아~ 뭐, 나라에서 불교 못 알아준다고ㆍ무시한다고 막 그냥 꼭 어떤 세속에서 하듯이 그런 방법을 써가면서 알아달라고ㆍ알아달라고, 왜 푸대접 하냐고ㆍ푸대접 하냐고 그러는데, 우리 불자들이 불자로써의 본분에 충실하지 못해서 그렇다 하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것 보십시오.
以此로, 이 금강경 오가해 공부하는 것으로써 佛祖의 餘輝. 부처님과 조사스님들이 남겨준 그 빛을 드날릴 것이고, 또 이것으로써 나라도 잘 되게 한다. 이겁니다. 나라의 홍복이 된다. 君國의 큰 복을 뻗어 나게 하는 도다.
說誼
儻因斯解(당인사해)하야, 만일 이 해석을 인해서
豁開正眼則(활개정안즉), 바른 안목ㆍ바른 소견ㆍ바른 지견. 正眼을 활짝 열어 제친다면 法印이 在握(법인재악)하고, 진리의 도장이 내 손 안에 있고,
化道(화도)가, 교화의 도가 在己(재기)니라. 자기에게 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 한 구절만 가지고도 수십 가지로 부연설명을 할 수가 있고, 우리 현실에 적용시켜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누가 아주 잘 해석을 하고, 부연설명을 잘 해서 책을 한 권 써도 좋을 일이지요.
然此編集이 出於何人之手완대 而不現其名乎아
(說誼 : 歎不現夫編者之名也라)
然此編集(연차편집)이, 그러나 이 편집이, 금강경 오가해 편집입니다.
出於何人之手(출어하인지수)완대, 어떤 사람의 손에서 나왔기에, 이런 말입니다. 나왔기에
而不現其名乎(이불현기명호)아? 그 이름이 나타나지 아니 했는가?
함허스님 당시에, 함허스님께서 금강경 오가해 편집된 것을 만났습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누가 그렇게 엮었는지 이름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금강경은 해석을 한 사람들이 고전만 하더라도 수백 종류가 되지요. 또 요즘 책으로 나와 있는 것만 해도 57가해란 책을 제가 봤을 정도입니다.
57명의 해석이 한꺼번에 있는 것을 봤는데요. 그런 정도로 많습니다. 많은데, 특히 오가해만 추려가지고 금강경하고 이렇게 딱 편찬을 해놓은 것은, 함허스님 보기에 너무 이것은 위대한 저술 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說誼
歎不現夫編者之名也(탄불현부편자지명야)라.
편찬한 사람의 이름이 나타나지 아니한 것을 탄식한 것이다.
吾喜其爲一佛五祖師之心을 令一轉而便見也하노라
(說誼 : 一軸之內에 佛燈祖焰이 交光互映하야
可一轉而便見佛祖之心矣니 此所以爲喜也니라)
吾喜其爲一佛五祖師之心(오희기위일불오조사지심)을,
나는 기뻐하노라. 그런 뜻이지요. 그 한 부처님과 다섯 분의 祖師의 마음을
令一轉而便見也(영일전이변견야)하노라.
한번 굴림으로 해서ㆍ한번 굴림으로 해서 곧 다 볼 수 있도록 하게한 것.
다 보게 한 것을 나는 기뻐하노라. 그렇습니다. 이 오가해만 잘 보면 한 부처님과 다섯 祖師. 아니, 거기다 부처님의 제자 수보리까지 그것을 다 볼 수 있게 됐다.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루 동안, 아니면 일 년 동안ㆍ일생 동안 쓰는 그 많고 많은 시간 중에서ㆍ많고 많은 시간 중에서 어떤 시간들이 가장 값지고ㆍ소중하고ㆍ보람 있고ㆍ자기 영혼에 유익하겠는가? 이런 것을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필요 있습니다. 하루의 시간을, 아니면 한 시간을 어디에다 쓰는 것이 가장 유익하고, 보람 있겠는가? 진정으로 나한테 보람 있겠는가? 그것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우리가 성인의 말씀ㆍ성인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성인의 가르침에 골몰하고, 또 그것을 이렇게 천착해보는, 이렇게 해석해보고 저렇게 해석해보고 또 음미해보고 스스로 환희하고 기뻐하는 것. 여기는 吾喜. 내가 그러한 것을 기뻐한다. 그랬습니다.
아~! 금강경 오가해 읽으면서,
예를 들어서 금강경원문 척~ 읽고 그 밑에 다섯 조사 스님들의 낱낱이 개인적으로 이렇게 해석하고 저렇게 해석해 놓은 것을 읽으시면서, 환희에 차 있는 그런 함허스님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說誼
一軸之內(일축지내)에, 한 권의 안에
佛燈祖焰(불등조염)이, 부처님의 등불과 조사의 불빛이
交光互映(교광호영)하야, 交光. 함께 빛나고 서로서로 비춰서
可一轉而便見佛祖之心矣(가일전이변견불조지심의)니,
가히 한 번 굴려서ㆍ한 번 굴림에, 오가해 책은 한 번 굴리면 불조의 마음을 곧 보게 된다. 부처님 마음도 읽고ㆍ수보리의 마음도 읽고ㆍ다섯 조사의 마음까지도 읽게 되었으니,
此所以爲喜也(차소이위희야)니라. 이것이 내가 기뻐하는 까닭이다.
所嗟는 雖有彈絃之妙指나 未遇賞音之嘉聰이라
由是로 誤聽峨峨하야 作洋洋者가 多矣며
(說誼 : 三尺古琴에 妙音이 斯在하니 雖有妙音이나
若無妙指면 終不能發이요
縱有妙指하야 善能彈絃이나 聞而賞音者가 蓋難하니 賞音者가
難故로 誤聽峨峨하야 作洋洋者가 多矣로다
一部靈文에 妙理斯在하니 雖有妙理나 若非匠手면
孰能抽毫하야 稱實發揚이리오 雖有稱實發揚이나 目以善解者가
蓋難하니 善解者가 難故로 以淺爲深하고 以深爲淺者가 多矣니
是可歎也로다)
所嗟(소차)는, 그런데 내가 거기서 좀 섭섭하게 여기는 것은, 탄식하는 바는, 그런 뜻입니다. 내가 좀 슬퍼하는 바는, 슬플 嗟자지요? 슬퍼하는 바는
雖有彈絃之妙指(수유탄현지묘지)나, 비록 彈絃. 거문고를 타는 미묘한 기술의 손가락은 있지만,
未遇賞音之嘉聰(미우상음지가총)이라. 賞音, 그 음악 소리를 감상할 줄 아는 아름다운 聽力(청력). 들을 줄 아는 그런 수준.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을 나는 슬퍼한다.
由是(유시)로, 이로 말미암아
誤聽峨峨(오청아아)하야, 峨峨. 산 높을 峨자지요? 산이 높고 높은 것을 연주했는데 그것을 잘못 듣고 = 誤聽. 잘못 듣고
作洋洋者(작양양자)가 多矣(다의)다. 洋洋. 큰 바다 洋자지요?
바닷물이 출렁거리는 것을 염두에 두고 그것을 작곡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금강경을 소의경전이라 해서 무수히 공부합니다만, 정말 얼마나 그것을 부처님 뜻에 맞게 이해하는가? 문제가 참 많겠지요? 이것은 말하자면 백아와 종자기의 옛 고사에서 나온 이야기지요. 춘추 시대 촉나라에 거문고를 잘 타는 백아라는 사람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 사람이 거문고 소리에 높은 산을 실어서 연주하면 나무꾼인 종자기가 그것을 듣고는 무릎을 치면서 ‘야~ 그 산 참, 아름답고 장쾌하구나. 어쩌면 산이 저렇게 웅장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세상에 없는 산을 당신은 그렇게 멋지게 연주합니다.’ 이렇게 알아 맞췄습니다. 소리 아는 사람을 知音者(지음자)라고 그러지요. 그리고 또 백아라는 사람이 바다를 연주를 하면, 종자기가 또 태평양 바다의 그 출렁거림과 그 호환함과 그 속의 오묘한 바다의 의미를 그대로 다 듣고는 표현 하니까 얼마나 근사했겠습니까? 세상에는 그렇게 서로 속속들이 이해해주고 알아준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나중에 종자기라는 知音者가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백아는 거문고 줄을 잘라 버리고 다시는 거문고를 연주하지 아니했다. 하는 아주 멋진 고사에서 따온 말이지요.
說誼
三尺古琴(삼척고금)에, 세 길이 나 되는 옛 거문고속에
妙音(묘음)이 斯在(사재)하니, 아름다운 소리가 거기에 있다.
雖有妙音(수유묘음)이나, 비록 아름다운 소리는 그 거문고에 있어요.
그런데 若無妙指(약무묘지)면, 그 거문고를 연주할 술 아는 그런 손가락이 없을 것 같으면
終不能發(종부능발)이요.
마침내 능히 그것을 표현할 길이 없다. 그렇습니다.
피아노가 아무리 있어도 칠 줄 모르면 아무 소용없지요.
縱有妙指(종유묘지)하야,
비록 아름다운 아주 묘한 재주를 가진 손가락은 있어서
善能彈絃(선능탄현)이나, 잘 능히 거문고를 타지만,
聞而賞音者(문이상음자)가, 듣고 그 소리를 감상하는 사람이
蓋難(개난)하니. 대개 없다.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
경전이야 두 말할 나위 있습니까? 조사들이 토해놓은 그 어떤 선문답이야 더 어렵겠지요.
賞音者(상음자)가 難故(난고)로, 소리를 감상하는 사람이 어렵기 때문
에 誤聽峨峨(오청아아)하야, 잘못 峨峨, 산 높은 것을 잘못 들어서
作洋洋者(작양양자)가 多矣(다의)로다. 큰 바다라고 짓는 사람이 많도
다. 一部靈文(일부령문)에, 한 部의 신령스런 글에
妙理斯在(묘리사재)하니, 아름다운 이치가 여기에 있으니
雖有妙理(수유묘리)나, 비록 아름다운 이치가 있으나
若非匠手(약비장수)면, 만약에 匠人(장인)의 손이 아니라면
孰能抽毫(숙능추호)하야, 누가 능히 抽毫. 붓을 뽑아가지고서
稱實發揚(칭실발양)이리오? 진실에 맞게 發揚하겠는가? 드러내겠는가?
雖有稱實發揚(수유칭실발양)이나,
비록 진실에 맞게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하나,
目以善解者(목이선해자)가, 그것을 보고 잘 이해하는 사람이
蓋難(개난)하니, 대개 어려움이니
善解者(선해자)가, 잘 이해하는 사람이
難故(난고)로, 어렵기 때문에, 만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 難故로
以淺爲深(이천위심)하고, 얕은 것으로써 깊음을 삼고
以深爲淺者(이심위천자)가, 깊은 것으로써 얕음을 삼는 자가
多矣(다의)니, 많으니
是可歎也(시가탄야)로다. 이것이 내가 탄식하는 바다. 그렇습니다.
오늘 여기까지하고 한번 읽겠습니다. 서문만 읽읍시다.
옛날 강원식으로 교육을 하기로 하면 딱 누구 지적해가지고 “읽어봐라.” 하고, 아니 “외워봐라.” 하고 이렇게 하는데, 그런 것은 생략하고 같이 읽겠습니다.
我迦文이 得這一著子하사 普觀衆生이 同稟而迷하사
歎曰奇哉라하시고 向生死海中하사 駕無底船하시며
吹無孔笛하시니 妙音이 動地하고 法海가 漫天이라 於是에
聾騃盡醒하고 枯槁悉潤하야 大地含生이 各得其所하니 ←2강 - 1
今般若經者는 妙音之所流요 法海之所自者也라
以金剛之堅利로 剗我人之稠林하시고 照慧日於重昏하시며
開惑霧於三空하사
使之出斷常坑하야 登眞實際하며 敷萬行花하야 成一乘果케하시니
↑ 2강 - 2
言言利刃當陽이요 句句水灑不着이로다 流出無邊法門海하사
孕育無限人天師하시니 若大鑑能과 圭峰密과 冶父川과
傅與鏡此五大士者는 皆人天之所尊이요 法海之所歸者也라
各具通方正眼하사 直傳諸佛密印하시고 各出廣長舌相하사
開演最上宗乘하시니 一一威振河嶽이요
輝騰古今이라 遂使當世에 盲者로 得見하며 聾者로 得聞하고
啞者로 能言하며 跛者로 能行케하시고
旣而요 亦爲普覺將來하사 各自依經著解하야
以傳天下後世하시니 豈是彫文喪德이리오 可謂錦上添華며
↑2강 - 3
何止重輝佛日이리오 亦乃光揚祖道로다
我曹가 生于千載之下하야 得遇難遇之寶하야
手接目覩하니 幸莫大焉이라
以此로 可以揚佛祖之餘輝며 以此로 可以延君國之洪祚로다
然此編集이 出於何人之手완대 而不現其名乎아
吾喜其爲一佛五祖師之心을 令一轉而便見也하노라
所嗟는 雖有彈絃之妙指나 未遇賞音之嘉聰이라
由是로 誤聽峨峨하야 作洋洋者가 多矣며
많이 읽으십시오. 자꾸자꾸 읽는 것이 글을 빨리 이해하는 길이고,
宗旨(종지). 宗旨를 빨리 이해하는 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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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오늘 이 녹취는 순전히 묘심행 님을 위한 것입니다.
키보드 불나게 할 수 있는 힘을 주신 묘심행 님. 고맙습니다.
아이고~~ 이제야 시장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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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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誤聽峨峨하야 作洋洋者가 多矣며...고맙습니다 ()()()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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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아! 釋대원성님, 지음자가 따로 없네요!!! 제 마음 알아주셔서 이리도 애써 주시다니! 다 해 주신 글 읽는 것만도 저는 시간이 무척 걸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녹취록을 해 주시는 분은 가히 어떤 경지일까요? 참으로 존경합니다. 어제 밤 1시 가까이 까지 읽어도 다 못 읽어 오늘 새벽에 다시 마저 읽었습니다. 지금은 글을 읽기만도 급급하지만 점차로 나아질 것을 의심치 않으니 제가 스스로 기뻐하는 뜻입니다.ㅎㅎㅎ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
묘심행 님은 저에게 고마워 하시고, 저는 묘심행 님께 고마워 하고.
이것이 청정불국토지요?
이 댓글 쓰면서 눈시울 적시는 원인이 싸구려 감정이 정녕코 아님을 그대는 알리다.
雖有彈絃之妙指나 未遇賞音之嘉聰이라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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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豁開正眼則法印이 在握하고 化道가 在己니라..바른 안목을 열어 제친다면 진리의 도장이 내 손 안에 있고 교화의 도가 자기에게 있나니...釋대원성 님! 수고하셨습니다.. _()()()_
雖有彈絃之妙指(수유탄현지묘지)나, 비록 거문고를 타는 미묘한 기술의 손가락은 있지만, 未遇賞音之嘉聰(미우상음지가총)이라. 그 음악 소리를 감상할 줄 아는 아름다운 聽力(청력). 들을 줄 아는 그런 수준.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을 나는 슬퍼한다..._()()()_
正眼, 正見. 고맙습니다_()()()_
한 줄 한 줄 찬찬히 다시 읽어 봅니다. 자꾸자꾸 읽으니 내용이 빨리 이해가 되었습니다. 속도가 붙으니 더욱 재미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三乘十二分敎에 體理得妙하면 何處에 更有祖師西來意리오 _()()()_
묘심행님, 정말 열심히 하시네요..본받아야할 일입니다. 대원성님,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何止重輝佛日이리오 亦乃光揚祖道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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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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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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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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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剛般若波羅蜜經 - 四家解 - 第2講 4部 (何止重輝佛日이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