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해독 산행
1.
양복 챙기려고 바스락 거리다 각시 잠을 깨워 간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차를 미아역 근처에 세워 두고 나홀로 사당역을 향했습니다.
대한 민국 천지에 악동이 나와바리 아닌 곳이 어딧겠습니까만
사당역 근처는 제가 홈처치(home church)하면서 2년 넘게 들락 거리던 곳인데
이른 아침부터 등산객들이 임대해 온 관광차들로 아주 분주합니다.
산행 시간이 어중간 했는지 이번 산행은 손서 대장이랑 딸랑 둘이서 했습니다.
관악산은 높이 629m. 서울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봉우리 중의 하나로
예로부터 수도 서울의 방벽으로 이용되어 왔답니다,
최고봉은 연주봉(戀主峰)이며, 서쪽으로 삼성산이 있다던데
저는 삼성산을 한 번도 못 가봐사 방향을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관악산은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화기(火氣)를 끄기 위해 경복궁 앞에 해태를 만들어 세우고,
이 산의 중턱에 물동이를 묻었다고 해서 화산(火山)이라고도 한답니다.
앗,해태는 해태 타이거즈의 원조 마스코트가 아닙니까,
등산로 초입에 들어서자 산 위에서 부는 바람에 향기가 나기 시작했지요.
다시 한 번 더 큰 숨을 들이켜서 마셔보니 흠~이것은 가을 향기가 분명합니다.
단풍이 아직 들지는 않았어도 여름 산과 다른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악동이가 2시간 가량 산을 탔는데 전혀 지루하지도,힘들지도 않은 것은
바위마다 홀더가,그리고 손서가 적당히 추임새를 넣어 준 때문일 겝니다.
바위 코스에서 지난번 리찌때 가오가 많이 상했는지 손서가 또 리찌화 타령을 했는데
착한 악동이는 아무런 말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대장 뒤를 좇아 갔습니다.
대장을 모시고 가는 쫄다구는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게 아니라고
신참들에게 꼭 충고해 주고 싶습니다.
어디선가 '야~호' 소리가 들려서 관악산은 초짜들이 오나 보다고 혼자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악동이가 아홉번 산행하면서 야호'소리는 처음 듣거든요.
사진 몇장 찍고 홀아비가 깍아준 배 반쪽을 먹으면서
3년 전에 대장이 관악산을 70번이나 올라온 얘기를 하길래
저도 은근히 치기가 발동해 불법 오락실을 하면서
하루에 천만원 벌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로 맞받아 쳤습니다.(아~싸)
관악산 하면 떠오르는 것이 서울대학교인데
대구 촌놈이 무모하게 서울대 원서 쓴 얘기를 할 때
워낙에 공부 못 한 악동이라 확인할 생각도 안하고 그냥 믿어 줬습니다.
두 시간여 되는 산행이라도 산에 갔다 왔다고 땀이 나줘서
어제 먹은 술 해독한 걸로 산행의 의미를 두자는데 모처럼 대장이랑 의기투합했습니다.
빨리 가서 샤워하고 헤리네 딸네미 결혼식 장에 가야합니다.
누가누가 왔을까 궁금합니다.
결혼식은 준비한 사람들이 할 것이고
악동인 우선 피죽 하나도 못 먹은 순대를 채우고
토룡이들과 함께 가을 사냥에 나서야 겠습니다.
2.
우리 나이에 장모가 된 혜리를 응원하려고 모여든 토룡이들이 거진 스무명이나 되었습니다.
등산복 입은 것만 보다가 빨간 타이에 검정 양복을 입고 온 라온이는
꼭 남아공에서온 선교사 같습니다.
직접 뜨게질해 입은 가빈이의 곤색 투피스와 구찌 안경이 세련돼 보입디다.
헤리 장모랑 거국적으로 건배 한 번 하고 우리들은 우이동 4.19탑으로 가을 사냥을 나갔습니다.
도토리묵에 막걸리를 먹는데 타이거가 도착했고
주차비가 6000원이 나오도록 열심히 놀았준 토룡이들이 밉지 않은 것은
악동이도 이제 서서히 나이를 먹어 가는 모양입니다.
나이트클럽,스카이웨이 커피타임 같은 건설적인 의견들이
부도수표 남발로 끝나버려서 조금 아쉽긴 해도 누구하나 불만이 없어 보입니다.
하기사 불만 있으면 어쩌라고,
정운,나나미,여백이가 얼굴이 빨개졌고
뒤늦게 발동 걸린 타이거가 한강이랑 진상 피우기 전에 얼른 도망가는 게 상책입니다.
현득아,빨리 타!
2009.9.13.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