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업
천안신당고등학교 1학년 학생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 순간 참 많은 말들이 떠오르지만, 내신점수나 외모, 핸드폰, MP3 등에 매달려야 하는 여러분의 생활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는 수업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청장년이 되었을 때 가지기를 바라는 삶의 철학에 대하여 약 20분 정도 마지막 수업을 하며 퇴임사에 대신하겠습니다.
현재뿐 아니라 먼 미래에도 우리 인간은 자연과 사회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자연과 사회와 인간에 대한 올바른 철학을 가지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철학이라고 하면 거창하고 공연히 어려운 것 같지만 별 것 아닙니다.
가령, 여러분이 돈이나 물질보다 사람을 더 귀히 여기는 생각을 갖는다면 그것이 곧 철학입니다. 덜 갖고 덜 쓰는 생활을 하겠다는 것도 매우 훌륭한 철학입니다. 여러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곰곰이 따져보면 철학이 깔려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생각과 활동뿐만 아니라 책, 교육은 물론 건축물이나 의복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이 철학의 산물입니다. 여러분이나 부모님, 선생님들의 모든 언행도 철학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싫든 좋든, 의식하든 말든 철학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철학이 없이 산다는 것은 나침반 없이 항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교육과 학생, 대학, 사회에 대한 생각과 언행이 그때마다 들쭉날쭉하거나 서로 충돌한다면 그것은 철학이라고 부르기 어렵겠지요. 흔들림 없고 일관성 있는 체계적인 생각 , 즉 철학은 모든 가치가 요란하게 춤추는 21세기에 인생의 좋은 길잡이가 됩니다. 훌륭하고 올바른 철학을 갖는 것은 인생을 사는데 좋은 무기를 갖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을 잘 분별하고 일관된 철학을 가지면 소신이 있다고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오늘 나는 그 많은 철학 가운데 여러분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두 가지 삶의 철학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첫째, 나눔과 연대의 철학을 가지기 바랍니다. 사람은 누구나 미래의 행복을 꿈꿉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도 하고 매사에 준비하고 노력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한 단계 발전시켜 “배워서 남 주는 공부”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큰 생각은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게 만드는 출발점이 됩니다. 교육은 남들을 유익하게 하는 사회활동, 즉 이타행(利他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학기 중간고사 영어시험지 맨 뒷장 여백에 선생님이 써준 적이 있는, 미국의 초월적 명상주의자 Waldo Emerson의 시 ‘Success’를 기억해보세요. 우리에게는 류시화 선생의 번역으로 ‘무엇이 성공인가?’라고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 시의 중간 이하에서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 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그래요.
'살아 있는 동안 내 이웃의 단 한 사람이라도 행복해지도록 하고 싶다'는 아름답고 큰 꿈, 큰 포부, 큰 뜻을 품으십시오. 한자 단어로 대비원(大悲願)이라고 합니다. 평생을 좌우할 수 있는 청소년기에 대비원을 갖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학교시험 점수를 잘 맞는 것보다 훨씬 중요할 수 있습니다.
사랑과 나눔, 어려운 사람과 혹은 어려운 사람끼리 함께 손잡는 연대는 수많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일들은 꼭 국어, 영어 ,수학 점수가 높아야만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혼자 꾸는 꿈은 꿈으로 끝날 수 있어도 많은 사람이 함께 꾸는 실천적인 꿈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시인 박노해 선생은 갈파했습니다.
아직 어린 나무인 천안신당고 1학년 학생 여러분,
미국의 시인 사무엘 울만은 ‘지칠 줄 열정과 상상력, 자신의 꿈에 대한 의지’가 있으면 나이가 60살이어도 청춘이라고 노래했습니다.
사랑하는 신당고 1학년 학생 여러분,
여러분 삶의 주인은 여러분 자신입니다. 자신을 진실로 사랑하십시오.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제대로 사랑하기 어렵고 어느 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또한 진정 자신을 사랑한다면 시간을 아끼고. 현실의 역경과 눈 앞의 유혹을 뛰어 넘어 정의에 바탕을 둔 용기를 갖고 실천하십시오. 그래야만 어린 나무에서 어느 날 큰 나무로 성장해 있을 것입니다.
열정적인 의지와 준비, 즉 열정적인 노력 없이는 미래도 없습니다.
둘째, 존재보다 관계를 중시하는 철학을 가지십시오.
우선 가깝게는, 친구들을 배려하며 우정을 쌓은 일입니다. 능력이 좀 있다 해서, 시험 점수가 좀 높다 해서 나라는 존재를 친구들에게 과시하기보다는 친구들 또는 이웃과의 관계를 최고의 수준으로 유지, 발전시키려고 노력하십시오.
천안신당고 1학년 학생 여러분,
낙락장송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고 해서 숲이 되지 못 합니다. 이 세상에 혼자 잘난 사람은 없습니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벌거나 제법 권력을 가진다고 해서 ‘내가 어떠어떠한 사람이다’라고 큰소리치는 ‘존재’가 되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존재를 내세우기보다는 자연과 지역사회와 이웃 속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사느냐 하는 것, 그것이 여러분의 미래와 행복을 결정해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어려운 이웃과 사회 그리고 질곡의 세월을 살아온 우리 민족의 역사를 돌아보며 ‘나눔과 연대’, ‘존재보다 관계’라는 열 한 글자의 철학을 늘 가슴에 간직하고 어려운 이웃과 사회에 시원한 그늘을 주는 큰 나무가 되기 위한 작은 실천과 구체적인 준비를 시작하십시오.
여러분도 잘 알고, 선생님도 아주 존경하는 분 가운데 한 분이 마더 테레사 수녀입니다. 그 분은 철이 들고부터 평생을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나누며 손잡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 분을 배우고 기억하며 삽시다.
끝으로 역사와 사회의 진보, 그리고 개인의 발전은 나눔과 연대, 존재보다 관계의 실천이라는 비단길을 밟고 찾아오는 연인이라는 것을 항상 명심합시다. 앞으로 늘 건강하고 끊임없이 자기 성찰을 하며 어려운 이웃과 더불어 사는 행복을 평생 누리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여러분 부모님 중에 선생님을 아는 분들이 계시는데, 안부 전해주기 바랍니다.
여러분, 1학기 동안 수업에 협조해주고 지금 경청해주어 고맙습니다. 동시에 개교의 기쁨을 함께하고도 1년을 끝까지 책임지고 중간에 마치지 못하게 되어 대단히 미안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더 성장한 뒤에 어려운 이웃과 나누며 연대하는 삶의 현장에서 선생님과 함께 자주 만날 수 있으면 그보다 큰 행복도 없겠습니다.
늘 건강하고 가치 있는 일에 혼을 불어넣는 마음으로 열정을 기울이는 멋진 신당고인들이 되기 바랍니다.
이 자리에 함께하시지 못한 여러분의 부모님께도 선생님이 오늘 퇴임을 했다는 말씀을 꼭 드려주기 바랍니다.
자랑스러운 신당고 1학년 학생 여러분,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하는 동료 선생님, 그리고 학부모님들께 말씀드립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발걸음 하나라도 어지럽히지 말라.
오늘 내가 걸어가는 발자취가
뒷사람의 길잡이가 될 테니.
김구 선생님이 어려운 일을 결행하실 때마다 법명이 휴정인 사명대사의 이 시를 읊으셨다고 합니다.
저도 1976년 11월 3일 태안여중에 새내기 교사로 선 이후 30년 가운데 후반 20년을 몸 담아왔던 전교조운동과 민주단체, 장애인. 빈민 등 시민사회운동을 하면서 늘 이 시를 떠올렸습니다.
'정말 비틀거리지 말고 운동의 대도를 후배 선생님들이 본받아 따라올 수 있도록 일거수 일투족 조심하면서 바르게 걸어가자. 그들이 실망하게 하서는 안 된다'라고 제 스스로에게 암시하면서 당시에 '큰 바위 얼굴'이셨던 전국의 훌륭한 선배교사들을 흉내내어 나름대로 시대의 아픔과 민족과 민중의 고통을 끌어 안고자 노력했습니다. 깜냥대로 치열하게 살려고 했고, 그래서 오늘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지금까지 교사나 사회운동가 또는 자연인으로서의 제 활동과 삶에 대한 평가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앞으로 교육위원으로서의 삶과 활동은 또 미래에 여러분께 평가 받겠습니다.
그간 변변치 못하고 부족하기 짝이 없음에도
교육위원에 당선되도록 도와주시고 보살펴주시고,
오늘 이렇게 분에 넘치는 성대한 자리까지 준비해주신
교장, 교감 선생님과 모든 동료 선생님,
특히 존경하는 이순자 부장님, 김흥구 부장님, 행정실장님과 직원 여러분
그리고 신당고 학부모님들께 충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사실을 말씀드리면
'교육위원직이 권력이 아니라 권한인만큼 조용히 떠나겠다,
특히 제 아버님을 비롯하여 평교사로 평생을 바친 교단을 떠나신
역대 선배교사들처럼 소리없이 퇴임하겠다'고
여러 번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
오늘 아내만 이 자리에 참석하게 한 것도 바로 그런 까닭입니다.
아무튼 정말 고맙습니다.
눈에 밟히는 아이들을 아주 떠나 낯설고도 새로운 길을 갑니다.
교육위원 선거 때 선거 유세와 선거 공보를 통하여 밝혀드린 대로
올곧은 열정으로 살아온 30년 경력의 교사답게
절대로 인사 청탁과 이권에 개입하지 않겠습니다.
소신과 원칙을 지키며 활동하겠습니다.
20년간 담임하거나 사회복지시설을 찾아다닐 때 그랬듯,
따뜻하고 섬세한 마음으로, 겸손한 자세로 일하겠습니다.
지역과 현장을 찾아다니며 어려운 점을 듣고 대안을 만들어내겠습니다.
충남교육의 새로운 미래와 희망을 열기 위하여
주변 분들과 손잡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학기 내내 보살펴 주신데 대하여 다시 한 번 큰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항상 건승하시고 내내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2006. 8.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