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 회 함양 물레방아 축제 를 돌아보고
함양인의 화합과 전통 문화, 예술, 체육진흥을 위한 `제44회 물레방아 축제'가 10월14일 오후 5시 함양 상림공원 주변에서 열렸다.
10월 16일까지 3일 동안 계속된 이번 축제는 상림공원의 개막식에 이어 특별콘서트, 전국 변강쇠.옹녀 커플 선발대회, 전국 어린이 선녀와 나무꾼 선발대회, 청소년 페스티벌. 전국 풀피리 불기대회, 물레방아가요제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고, 신관사또 부임행차 모습재현, 섶다리 복받고 건너기, 전국 모형물레방아 공모전 작품전시, 전국 유명시인 시낭송 페스티벌. 연암박지원선생 서거 200주면 추모 학술대회 등이 열렸다.
누런 들판에서 초가을의 향기를 느끼며 우리 일행은 경남 함양 땅에 도착했다 도착하여 함양군의회 박성서 부의장 및 함양군청 동서 종친의 따뜻한 영접 속에 점심식사를 맛있게 하고 이번 행사가 열리는 상림공원을 둘러보았다.
축제가 열리는 상림공원은 함양읍 서쪽을 흐르고 있는 위천의 냇가에 자리잡은 호안림이며 신라진성여왕 때 고운 최치원 선생이 함양태수로 있을 때에 조성한 숲이라고 전한다.
당시에는 지금의 위천수가 함양읍 중앙을 흐르고 있어 홍수의 피해가 심하였다고 한다. 최치원선생이 뚝을 쌓아 강물을 지금의 위치로 돌리고 강변에 둑을 쌓고 그 둑을 따라 나무를 심어서 지금까지 이어오는 숲을 조성하였다. 역사적으로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의 하나라고 하는데 이날 행사 리어설 준비가 한창이었다
오후 4시부터 신관사또 부임행렬 퍼레이드가 함양보건소를 출발 시가지를 돌아 상림 행사장까지 벌어졌는데 부산 동주여상 고적대의 우렁찬 연주 속에 최치원 천령태수, 김종직 함양군수, 정여창 안음현감, 박지원 안의현감 부임 행렬로 이어졌다 우리 반남박씨는 대종중 정서 부도유사님를 필두로 연암선생께서 마치 안의현감으로 부임할 당시를 상상하며 자랑스런 마음으로 모두 포부 당당하게 연암 박지원 안의현감 부임형열 뒤에서 함께했고 우리 종친 행열 뒤에는 풍물놀이 패가 신관사또 부임행렬 퍼레이드를 더욱 빛나게 했다.
신관사또 부임행렬이 상림 특설무대 개막식장에 도착하니 개막식을 위해 모인 많은 내빈과 시민들의 환영 속에 입장하여 제 44회 함양 물레방아 축제 개막식에 참석하였는데, 이날 개막식은 박성서 군의회 부의장 (함양 물레방아축제 부위원장)의 개회선언으로 시작되었다.
함양군 천사령 군수의 개회사 등의 식순으로 이어졌고, 개막식이 끝나고 우리 종친들은 함양 시내로 이동하여 저녁식사를 하였는데, 이날 저녁 만찬은 함양지역 종친회 승규 회장님을 비롯 함양군의회 성서 부의장님, 함양군청 동서 종친님이 참석하여 오랜만에 함양지역의 종친과 대종중 정서 부도유사, 광주지회장 희서, 대종중 승호 총무유사, 춘서 상임유사를 비록 하여 광주,서울,경기,충청지역 종친과의 끈끈한 정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정겨운 자리로 이어졌다. 숙소로 이동하여 여장을 풀었지만 종원간의 반남박씨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애종심은 새벽공기를 가르지르며 계속됨을 보며 역시 반남박씨의 미래는 밝고 희망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침 복국으로 속을 풀고 함양부근의 반남박씨 유적지를 둘러보기로 하였다
먼저 함양군 수동면 효리에 있는 구천서원(龜川書院)을 방문 하였다. 구천서원은 숙종 27년(1701)에 창건하여 춘당(春塘) 박맹지(朴孟智), 남계 표치말(表治沫), 일노당 양관(梁灌), 금재 강한(姜漢), 구졸암 양희(梁喜), 우계 하맹보(河孟寶)를 연향(聯享)하였다. 고종 무진(1868)년에 훼철되었다. 지금은 춘당(春塘)공의 후손들이 수계하여 재와 비를 유허에 세우고 작헌례를 행하며 계명(契名)을 불망(不忘)이라 하고 재명(齋名)은 구천이라 한다. 정조 18년(1794)에 정진승이 구천강당기(龜川講堂記)를 지었는데 서원을 복원한 뒤 다시 새겨 걸었고, 1919년에 서원 터에 유허비를 세웠는데 정승현이 글씨를 썼다.
다시 발길을 돌려 연암 박지원 선생께서 실용화한 시발지에 전국최고의 목재 물레방아를 복원해 놓은 함양군 안의면 용추계곡 연암 물레방아 공원에 도착했다. 함양군(천사령군수)은 조선시대 연암박지원 선생이 안의현감으로 재직 시 우리나라 최초로 실용화한 물레방아의 시발지에 연암물레방아공원을 조성하여 물레방아 역사성을 새롭게 조명하기 위한 연암 물레방아 공원을 2004년 경남 함양군 안의면 용추계곡에 조성했다.
총사업비 6억8천만원을 투입하여 2,000평의 부지에 물레 1식, 방앗간 1동, 디딜방아, 8각정자 1동, 목재산책로 88m, 관리사1동, 주차장 500평, 연못1식을 주변경관과 잘 어울리게 조성하여 보고 쉴 수 있는 여유 공간과 옛 정취의 풍경이 마련되어 있다 물레는 목재로서 지름 10m, 폭 2m로 우리나라 목재물레로서는 최고로 크다
연암 물레방아 공원 위편의 용추계곡은 아름다운 경치로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특히 용추사 아래에 있는 용추폭포는 규모가 크고 짙푸른 용추도 갈무리하고 있어 용추계곡의 백미로 꼽힌다. 용추폭포는 화난 용이 몸부림 치듯 힘차게 떨어지는 물줄기 앞에 서 있노라면 온갖 고뇌를 잊을 수 있듯. 폭포수의 굉음은 우뢰와 같았다. 폭포 옆 산속에 자리한 용추사는 옛날 장수사에 딸린 부속 암자 중 하나였으나 지금은 해인사의 말사다. 장수사와 함께 6.25전쟁 때 소실됐던 것을 1959년에 재건했으나, 최근의 불사인듯 옛 정취를 느낄 수는 없었다.
이번에는 안의면 소재지에 있는 광풍루(光風樓)에 도착했다. 안의면 광풍루는 조선 태종12년(1412)에 당시 이안현감 전우가 창건하여 ‘선화루’라 하였다가 이후 조선 세종7년 (1425) 김홍의가 현재의 위치로 이건 하였고, 조선 성종25년 (1494)에 안의현감 일두 정여창이 중건하여 광풍루로 개칭 하였다. 정유재란때 소실된 것을 조선 선조34년 (1601)에 심종침이 복원하였고, 조선 숙종9년 (1683)에 장세남이 중건하였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5량 구조 팔작지붕 겹처마 목조와 가로 되어 있다.
조선후기의 대문장가이며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반남박씨 19세손, 오창 東亮의 後孫)선생이 5년동안 이곳 안의현감을 지냈다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대표한 연암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러보아야 할 곳이 지금의 안의 초등학교이다. 안의 초등학교는 조선시대 안의현청이 있던 자리이다. 일제가 조선을 지배하면서, 면 단위마다 소학교를 세웠는데 그 위치를 옛날 현청이 있던 자리를 택했다고 한다. 조선왕조의 전통대신 신 문명을 전파하겠다는 일제의 명분이 가증스럽기만 하다.
연암 박지원 선생이 5년간 이곳 안의현감을 지냈지만, 이곳 안의 초등학교에서 연암의 흔적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전국 어느 초등학교에나 계신 이순신장군과 세종대왕의 동상 한켠 교정화단에 연암 박지원 사적비가 세워져 있고 그 옆에는 세워진 의도를 파악하기 힘든 장승 한 쌍이 서있다. 연암 박지원 사적비는 여느 사적비처럼 규격에 맞추어 제작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는 없다.
연암은 원래 서울이 고향이지만, 현대화를 위한 개발의 심장부인 현재 서울에서, 그의 흔적이 남아있기를 바라는 것은 애초부터 희망사항에 불과한지 모르겠다. 연암이 은거한 연암계곡도 황해도(경기도 장단)이므로, 휴전선 남쪽에서 연암과 인연을 맺은 땅은 이곳 함양 안의 땅이 유일 할진데, 안의 초등학교에 덩그러이 사적비 하나로 남아있는 연암의 흔적은 연암의 삶과 정신을 기리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안의 초등학교 연암 박지원 사적비를 둘러보고 갈비탕으로 점심식사를 했는데 옛날 시골 5일장이 설 때 시골장터에서 먹던 시골의 맛 ,고향의 맛 바로 그 맛의 갈비탕 이었다. 오후의 일정 관계로 서둘러서 상림의 인물공원을 방문하여 연암 박지원 선생 동상 앞에서 대종중 정서 부도유사님을 비롯한 종친 모두는 선조에 대한 묵념을 하고 다시 한번 연암선생의 음덕에 감사 드렸다.
상림공원안에있는 인물공원에는 의재(義齋) 문태서 (文泰瑞, 1880~1912), 뇌계 유호인 (兪好仁, 1445~1494), 연암(燕巖) 박지원 (朴趾源, 1737~1805), 옥계(玉溪) 노 진 (盧禛, 1518~1578), 점필재(占畢齋) 김종직 (金宗直, 1431~1492), 고운 (孤雲) 최치원 (崔致遠, 857~925), 덕곡(德谷) 조승숙 (趙承肅, 1357~1418), 개암(介庵) 강익 (姜翼, 1523~1567), 일두 (一蠹) 정여창 (鄭汝昌, 1450~1504), 일노당(逸老堂) 양관 (梁灌, 1437~1507), 진암(眞庵) 이병헌 (李炳憲, 1870~1940) 등 11분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다시 발길을 독촉하여 이번 함양물레방아축제에서 종친들의 관심을 모았던 행사중의 하나인 학슬대회가 열리는 함양군청으로 발길을 옮겼다.
물레방아 축제를 맞이하여 당대의 선각자이며 개혁자이고 사상사요 실학의 대가로 함양 안의 현감을 지내신 연암 박지원 선생의 서거 200 주년을 맞이하여 그의 사상과 주장을 재조명해 보고 그 정신 그 사상을 이어 받아 민족문화와 지역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 져 열린 [ 연암 추모 학숳회의 ]가 15일(토) 오후 2시부터 군청 대회의실에서 함양문화원 ( 김성진 문화원장)주관으로 많은 관심과 참여 속에 『 연암선생의 개혁사상 』란 주제로 열였다 이날 기조발표는 이동환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의 “ 18세기의 거인 연암 박지원 선생의 偉績과 風貌 ” 에 뒤이어, 이헌창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의 “연암 박지원의 경제사상에 관한 연구 “, 김영 인하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의 연암을 읽는 두 가지 코드『사기』와『장자』 “, 이종묵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의 은거의 땅 연암협, 실학의 땅 안의 란 발표가 있었다. 한편 4시부터 이어진 토론은 좌장인 김남형 계명대학교 교수를 비롯 토론자로 이상필 경상대학교 교수, 윤호진 경상대학교 교수, 김윤조 계명대학교 교수 발표자와 함께 참석했다.
가을의 그윽한 국화향기와 울긋불긋 아름답게 물들어 가는 상림공원의 단풍, 누렇게 변한 황금들판의 가을추수, 숲. 하천 등의 아름다운 조화로움이 가을밤 멋지게 장식되고 이와 함께 펼쳐진 물레방아축제는 함양문화의 깊이와 특성을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 등이 다양했고 "종친들과 함께한 아름다운 가을축제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퍼온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