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고후4:7-15절)
우리는 세상 살면서 환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환란을 당하여도 세상 사람들 볼 때 비참한데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입니다.끝내는 그것을 이겨내고 마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도리어 놀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게 핍박을 받고 억울해서 그 많은 상처 가지고 어떻게 사느냐고 걱정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마음이 평안합니다. 왜냐,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망하지 않습니다.
(시37:24)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여러분,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이 믿음 하나만 있으면 얼마든지 오뚜기처럼 될 수 있습니다. 오뚜기 아시죠, 넘어졌다 일어나고...믿음의 사람은 오뚜기 인생입니다.아무리 넘어트려도 다시 일어나는 오뚜기 같은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어떤 절망적인 상황이 온다하여도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기 위한 기회로 삼았습니다. (빌1:12)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결코 포기할 수 없는 신앙
첫째, 8절에서“우리가 사망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우겨 쌈을 당한다는 말은(들리보네노이)‘즙을 짜기 위해 포도를 짓누른다’는 의미의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세상으로 부터 그 만큼 고난을 당했다는 것을 말합니다.그런데 바울은 그런 우겨 쌈을 당하는 가운데서도 결코‘싸이지 아니한다’(짓눌림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런 일로 말미암아 결코 복음을 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으며 그런 일을 두려워하지도 아니한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둘째,‘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답답한 일이란 빠져 나올 길이 없는 막다른 길, 궁지에 몰려서 어쩔 도리가 없는 막막한 상황을 말합니다. 진퇴양난의 경우를 만나도 낙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빠져 나올 길을 열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전10:13)피할 길을 주심/(마10:22)환난을 감해 주심/(마6:13)건져주심/(계3:10)면하게 하신다.
바울은 9절에서“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는 그의 종들을 버리시지 않습니다. 사람들로부터는 버림을 당한다 해도 주님으로부터는 버린바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이세상사람 날 몰라줘도....” 주님이 붙들어 주시고 그 핍박으로부터 이끌어 내시는 것입니다.
셋째,‘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맞아 넘어져도 죽지 않는다는 뜻입니다.바울이 이런 말을 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행14:19)바울은 루스드라에 있었을 때,유대인들이 바울을 잡아 돌로 쳤는데 이때 바울이 죽은 줄 알고 성 밖에 끌어 내쳤지만 하나님께서 바울을 일으켜 다시 복음을 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의 종들이 무슨 죄를 짓는 것도 아니고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고 죽게 되는 위험에 처했는데 하나님께서 가만 놔두시겠습니까?.망하게 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망하지 아니한다는 말은 헛되이 죽음에 이르지 아니하신다는 뜻입니다.
혹시 주의 종들이 무슨 병에 걸려 죽는다 하여도 죄짓다가 걸린 병도 아니고 주의 일하다가 걸린 병인데 어찌 그 죽음이 헛된 죽음이겠습니까?.
국가를 위하여 일하다가 다친 사람 병든 사람 죽은 사람을 국가유공자라고 합니다(급수대로).
천국을 위하여 일하다가 다치고 병들고 죽었는데 천국유공자로 대우를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마5:10-12,계20:4,계2:20,20:12,롬2:6,말4:16-18)행위대로 갚아주고 특별대우를 받는다.
(2)우리 몸에 나타나는 예수의 생명
10절에서 그리스도인이 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죽은 것을 몸에 짊어진다는 말은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음을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갈1:24)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위해 그가 받으실 고난을 조금 남겨두셨다는 것입니다.이유는,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을 줄 알아야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게 하시려는 배려 차원에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마16:24)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롬8:17)자녀이면 또한 후사요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얻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거치지 않고는 면류관을 얻을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죽지 않고는 예수가 살 수 없고, 내 생각이 포기되지 않고는 예수님의 생각이 역사할 수 없고(고후10:4-6),불순종의 성품을 죽이지 않고는 하나님의 성품으로 거듭날 수 없습니다(엡5:4:22-24,롬8장).
우리가 이런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크면 클수록 예수의 생명이 우리 안에 활기차게 살아 역사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위해 주님의 고난에 동참 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겨야 합니다. 질그릇 같은 나를 통해 주님의 영광이 들어나게 하다가 마침내는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하게 되는 그런 날이 오기를 축원합니다.
(딤후4:7-8)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했습니다.
(3)부활의 소망
13절에서 바울이“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는 말의 인용은(시116:10)입니다. 바울은 어려운 역경이나 절망적인 위기에 처했을 때에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견고했고 대단했습니다. 바울의 믿음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여 그의 영광에 동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14절에서“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이 두렵지 않은 이유는 죽은 후에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활에 대한 믿음은 그리스도인의 절대적인 믿음입니다. 만약 기독교에서 부활을 제해버리면 아무도 예수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고전15:17).(고전15장에서)“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목적은 그를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시려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고전15:16절에서)“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 혼자 만의 부활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에게 부활이 없는 예수를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부활이 없는 복음을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하는 모든 것들이 오직 고린도 교인들을 위해서 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주의 종들이 이렇게 이런 고난을 받으면서도 복음을 전하는 것은 성도들이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부활의 소망을 갖게 하고 세상의 모든 고난을 이기게 하는데 있습니다. 사는 날 동안 세상에 물들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하는데 있다고 했습니다(15절,고전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