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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네임이란 개인의 비전(vision)을 함축한 이름(name), 곧 개인의 인생의 목적과 방향이 간단명료하게 요약한 이름입니다. |
흔히 모든 이름에는 이름(first name)과 성(last name, Family name)이 있는데, 사람에 따라서 종종 별명이나 애칭, 호 등 제3의 이름(third name)을 가지곤 했는데, 비전네임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별명(nickname)은 사람의 생김새나 버릇, 성격 따위의 특징을 가지고 남들이 본명 대신에 지어 부르는 이름을, 애칭은 본이름이 아니고 귀엽게 불리는 이름을, 호는 우리나라나 중국에서 본명이나 자 외에 허물없이 부르기 위해 그 대신 쓰는 이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의미합니다.
본명(실명)이 엄연히 있는데 사람들은 왜 굳이 별명이나 애칭, 호 등을 사용해서 상대방을 부르려고 했던 것일까요? 한 마디로 말하자면, 본명(실명)만으로는 그 사람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사람이 지닌 인생의 목표나 철학 등을 담기에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을 테고요.
* 성경 속 인물들은 비전네임을 사용했나요?
성경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제3의 이름(third name)이 존재하고 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직접 ‘개명 형식으로’ 제3의 이름(third name)을 붙여주신 경우입니다. 즉 하나님은 ‘아브람’이라는 이름을 ‘아브라함’(열국의 아비)으로, ‘사래’라는 이름을 ‘사라’(열국의 어미, 여주인)로 각각 고쳐주셨고(창17:4~6,15~16), 또한 ‘야곱’이란 이름을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김, 승리자)으로 바꾸어서 불러주셨습니다(창 32:28).
둘째, 예수님이 몇몇 제자들에게 제3의 이름(third name)을 붙여주신 경우입니다. 즉 예수님은 시몬에게 ‘게바, 베드로’(반석)라는 이름을, 야고보와 요한에게 ‘보아너게’(우뢰의 아들들)이라는 이름을 각각 더해주셨습니다(요1:42; 막3:16,17)
셋째, 사람을 통해 붙여지는 경우입니다. 즉 모세는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는 이름으로 불렀고(민13:16), 사도들은 레위족 요셉을 ‘바나바’라는 이름으로 일컬었습니다(행4:36).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에게는 별명이나 애칭, 호 등의 ‘제3의 이름’(third name)이 있습니까? 특히 자신의 비전을 함축한 이름, 곧 인생의 목적과 방향이 간명하게 포함된 이름(비전네임)을 가지고 있습니까? 없다면 이번 기회에 한 번 만들어 볼 수 있길 바랍니다.
* 비전네임을 사용하면 어떤 점이 유익하나요?
① 효과적인 자기소개
②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 후원, 모니터링
③ 인생의 우선순위 및 선택과 집중
* 비전네임을 작성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합니까?
비전의 파악입니다. 즉 자신의 비전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이를 함축하거나 요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비전이 아직 명확하지 않다면 무엇부터 시작해도 좋을까요?
닉네임(nick name)을 만드는 일입니다. 계속되는 비전 찾기 과정을 통해 서서히 구체화해나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현재 사용 중인 닉네임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그렇게 지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를 분석하는 작업이 곧 비전네임을 찾는 첫 걸음일 수도 있습니다.
* 비전네임의 실례
1. 성경 속에 나타난 비전네임 하나님의 안위자, 열국의 아비, 열국의 어미, 하나님의 승리자, 꿈꾸는 자, 하나님의 사람, 왼손잡이 구원자, 이스라엘의 어머니, 이스라엘의 주권자, 하나님의 대장장이, 전도자, 열방의 선지자, 이스라엘의 파수꾼, 길을 여는 자, 사람을 낚는 어부, 반석의 사람, 우레의 아들들, 그리스도의 증인, 위로의 아들, 이방인의 사도, 사랑받는 의사 등
2. 성경 속에서 간접적으로 도출해낼 수 있는 비전네임 하나님의 동행자, 하나님의 대변인, 믿음의 정탐꾼, 하나님의 동역자, 노래하는 사람, 비전가이드, 무너진 곳을 일으키는 자, 복음의 대필자, 하나님의 농부, 그리스도의 향기, 그리스도의 편지, 보배 담은 질그릇, 그리스도의 대사, 하나님의 중매쟁이, 십자가의 전달자, 그리스도의 군사, 믿음의 기도꾼, 선한 청지기 등
3. 신앙생활에서 흔히 사용될 수 있는 비전네임 가정 지킴이, 강한 용사, 고아의 아버지, 꿈 설계사, 꿈을 찍는 사진사, 꿈의 건축가, 꿈의 전략가, 낙타무릎의 전도자, 민족의 파수꾼, 복음 딜러, 복음의 막노동꾼, 복음의 우체부, 복음의 조력자, 복음의 첨병, 불평청소기, 비전 메이커, 사랑 나눔이, 사랑의 원자탄, 사랑의 전달자, 사랑의 해결사, 새벽이슬, 생명의 전달자, 선한 사마리아인, 소망의 징검다리, 소망의 항해사, 슬픔 처리반, 영혼의 미용사, 영혼의 수태자, 예수 마니아, 예수 밀수꾼, 예수 바이러스, 예수 선전가, 예수 혁명가, 이웃 섬김이, 인생 설계사, 전파선교사, 좋은 기별, 천국대변인, 천국문지기, 청소년 지킴이, 축복의 통로, 캠퍼스 지킴이, 크루세이드, 파워 리더, 파워 크리스천, 프론티어, 피스 메이커, 하나님의 옹기장이, 행복 감별사, 행복 딜러, 행복 바이러스, 행복 배달원, 행복 접착제, 행복 지킴이, 행복의 디딤돌, 행복재단사, 행복제조기, 환경 지킴이 등 |
강의 전 활동② -비전선언문(vision statement)
비전선언문이란 자신의 비전을 한 문장으로 간단명료하게 표현한 것 |
비전 선언문이란 자신의 비전을 한 문장으로 간단명료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자신의 비전을 표현하되, 굳이 한 문장으로 해야 합니까? 한 문장을 넘어서면 설명이 너무 장황해지고 또 그러다보면 그 핵심을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비전네임과의 유사점과 차이점
비전네임(vision name)과의 유사점은 무엇입니까? 두 가지 모두 자신의 비전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비전네임과 비전선언문은 공통적으로 개인의 비전을 집약하고 함축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반면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개인의 비전을 집약하고 함축하되, 비전네임이 한 단어로 표현했다면, 비전선언문은 이를 좀 더 풀어서 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잘 다듬어진 비전네임은 그 자체로도 이미 많은 것들을 말해줄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한 문장 단위로 풀어서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필요가 있습니다.
* 표현하지 않으면 사라지고 맙니다!
물론 비전선언문이나 비전네임 외에도 표어나 구호, 포스터, 브로슈어, 가훈, 사훈, 좌우명 등 개인이나 단체의 비전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들은 많습니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개인 또는 단체의 비전이나 목표, 진행방향, 취지 등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까지 표현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표현하지 않는 비전은 한 개인의 머릿속에서만 머물다가 사라지지만, 다양한 표현을 통해 공유된 비전이나 목표 등은 개인을 넘어서 가정과 교회, 직장, 사회, 국가, 세계를 움직여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비전선언문 작성 요령
① 찬양과 감사
우리에게 비전선언문을 허락하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
② 기도
우리에게 꼭 맞는 비전선언문을 주시도록 간구합니다. |
③ 이해하기
자신의 비전이 무엇인지를 먼저 정확히 이해하도록 노력합니다. |
④ 찾아내기
우리의 비전을 표현하는 핵심적인 단어들을 찾아냅니다. |
⑤ 연결하기
찾아낸 핵심단어들을 구슬을 꿰듯 비전선언문에 담아봅니다. |
⑥ 참고하기
성경 속 비전선언문의 사례나 오늘날에 흔히 사용되고 있는 비전선언문들을 살펴보면서 참고합니다. |
⑦ 작성하기
한 문장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너무 장황하거나 길지 않도록 합니다. 누가 읽어도 쉽게 이해하도록 간단명료하게 작성해야 합니다. 누가 읽어도 그 핵심을 알 수 있도록 핵심을 적어야 합니다. |
⑧ 피드백을 받기
작성한 비전선언문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명료성과 핵심 두 가지를 모두 담겨 있는지를 물어봅니다. 훌륭한 비전선언문은 언제나 끊임없는 피드백을 통해 다듬어지고 완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⑨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기
시간이나 여건이 된다면 다음의 방법들로 표현해도 좋습니다. POP 글씨 쓰기 캘리그라피(calligraphy) 붓글씨(서예, 書藝) 목판에 새기기 포스터 그리기 현수막이나 배너 등을 제작하기 |
⑩ 게시하기
가정의 거실이나 회사의 로비 등에서 전시하거나, 특정 장소를 빌려서 작은 전시회를 개최해도 좋습니다. |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자신의 비전선언문을 작성해보지 않으시렵니까? 비전이 구체화되었고 비전네임이 작성되었다면, 이제 비전선언문을 작성해볼 수 있길 바랍니다.
강의 1 - 첫 번째 전환점 ‘구원’
출생과 죽음
모든 사람은 반드시 두 가지 사건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것들입니까? 출생과 죽음입니다. 즉 모든 사람은 한 번 태어나서 또 한 번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불교의 ‘윤회설’은 그야말로 거짓된 이론에 불과합니다. 어째서입니까?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이 사람에게 정해진 바라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Q. 모든 사람이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두 가지 사건은 무엇입니까?
Q. 불교의 윤회설을 반박할 수 있는 성경구절을 적으시오.
구원과 비전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출생과 죽음 외에도 중요한 전환점이 둘이나 더 있는데, 이는 무엇입니까? 구원(회심)과 비전입니다. 오늘 이 시간은 모든 크리스천이라면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이 두 가지 사건들을 함께 살펴보고 도전 받기를 원합니다. 먼저는 구원 사건입니다.
Q. 크리스천은 이 두 가지 외에 또 무엇을 경험하게 됩니까?
구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2:8,9) |
구원이란 무엇을 가리킵니까?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의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역사입니다(엡2:1,5).
Q. 구원이란 무엇을 가리킵니까?
우리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는데 죽었었다니 이해가 잘 안 되신다고요? 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육체와 함께 영혼을 불어넣어주셨습니다. 즉 육체와 영혼을 모두 가진 존재로 만드신 것입니다(창2:7; 마10:28).
Q.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되, 무엇과 무엇으로 지으셨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이 영혼이 죽어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도 언젠가는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야만 했고요(창2:17; 3:19).
즉 육신은 멀쩡히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나, 영혼이 죽어버린 것입니다. 마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좀비(Zombie)처럼 말입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3:1 하)
어쩌다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까? 필연적으로 죄의 결과는 곧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6:23) /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으니라.”(약1:15)
Q. 죄의 결과 무엇이 죽어버렸습니까?
Q. 우리의 육신 역시 언젠가는 죽어서 무엇으로 돌아가게 됩니까?
Q.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영혼이 죽은 상태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무엇에 비유될 수 있습니까?
어쩌면 좋습니까? 우리는 이대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까? 영원한 형벌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단 말입니까? 물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구원의 도를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롬3:27,28).
다시 말하건대, 우리는 무엇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착한 일을 많이 행함으로써 입니까? 고행과 수련을 많이 쌓음으로써 입니까? 아닙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엡2:8 중)
Q.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구원 받을 수 있습니까?
Q. 착한 일을 많이 행하거나, 고행과 수련을 많이 쌓음으로써 구원 받을 수 있습니까?
헌데 이 믿음은 어떻게 생겨납니까? 믿어야지 해서 막 생겨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만 생겨날 수 있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엡2:8 상)
또한 믿음은 어떻게 생겨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Q. 이와 같은 믿음은 누가 무엇을 주셔야만 생겨날 수 있습니까?
Q. 믿음은 또한 무엇을 들음으로써 생겨날 수 있습니까?
한편, 믿음의 특징은 ‘반드시 입술로 고백되어진다’는 점입니다. 즉 마음속으론 믿는데 우리의 말과 행실로 고백되어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가진 믿음이 제대로 된 것인지를 의심해봐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Q. 믿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고백되어져야 합니까? 먼저는,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시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10:9)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Q. 예수님을 누구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까?
Q.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할 수 없습니까?
또한 하나님을 아버지시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이 경우 역시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도무지 그리 부를 수 없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롬8:14,15)
Q. 또한 하나님을 누구시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까?
명심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강력한 증거 중 하나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10:13)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부터,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시며, 영원토록 우리를 버리시거나 떠나시지 않으십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20 하) /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13:5 하)
그러므로 우리는 영접기도를 반복해서 할 필요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Q. 예수님을 영접하면, 그분은 언제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까?
Q.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반복해서 할 필요가 없습니까?
대신 무엇 받기를 힘써야 합니까?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곧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로 오시는데, 그 성령께서 온전히 우리를 주장하시도록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 받도록 구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 “무릇 하나님의 영(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4) /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5:18)
Q.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어떤 분 역시 우리를 찾아오십니까?
Q. 우리는 날마다 무엇을 받기를 힘써야 합니까?
*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다시 한 번 복습해봅시다.
Q.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Q.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되, 무엇과 무엇으로 지으셨습니까?
Q. 죄의 결과 우리의 무엇이 죽었습니까?
Q. 우리의 육신은 죽어서 무엇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까?
Q.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영혼이 죽은 상태는 마치 무엇에 비유될 수 있습니까?
Q. 착한 일을 많이 행하거나, 고행과 수련을 많이 쌓음으로써 구원 받을 수 있습니까?
Q.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구원 받을 수 있습니까?
Q. 이 같은 믿음은 누가 무엇을 주셔야만 생겨날 수 있습니까?
Q. 또한 무엇을 들음으로써 믿음이 생겨날 수 있다고 했습니까?
Q. 믿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Q. 예수님을 누구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까?
Q.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고백할 수 없습니까?
Q. 또한 하나님을 누구시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까?
Q. 예수님을 영접하면, 그분은 언제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까?
Q.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반복해서 할 필요가 없습니까?
Q.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어떤 분 역시 우리에게 찾아오십니까?
Q.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무엇을 받기를 힘써야 합니까?
강의2 - 두 번째 전환점 ‘비전’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
크리스천에게 두 번째 중요한 전환점은 바로 비전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왜 지으셨습니까? 그리고 또 왜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까? 단순히 천국행 표 한 장 쥐어주시기 위함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그 이상입니다. 곧 우리를 통해 착한 일, 곧 비전을 시작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엡2:10 상)
Q. 하나님은 왜 우리를 자녀 삼아주셨습니까?
이 비전은 하나님께서 언제부터 준비하신 일입니까? 오래 전부터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엡2:10 중) 또한 왜 준비하셨습니까? 우리로 하여금 그 가운데에서 행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하) 즉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미리 다 준비하시고 때가 되매 우리를 그 비전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Q. 하나님은 언제부터 우리 각자의 비전을 준비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기만 하십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안에서 이 비전을 시작하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예수의 날까지 친히 함께 이루어가십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1:6)
Q. 하나님은 준비하시고 부르시기만 하시는 것입니까?
Q. 이 일을 시작하시는 분도, 또한 이루시는 분도 오직 누구십니까?
구원과 비전의 관계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8~10) |
에베소서 2장 8~10절을 통해 구원과 비전의 관계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원과 비전 중 어느 것이 먼저입니까 구원입니다. 구원 받은 후에(엡2:8,9) 비전을 만나기(엡2:10) 때문입니다.
혹 이 순서가 바뀔 수 있습니까? 그럴 순 없습니다. 구원 받은 사람만이 그리스도 안에서 인생의 참다운 목적, 곧 비전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Q. 구원과 비전 중 무엇이 먼저 입니까?
Q. 이 순서가 바뀔 수도 있습니까?
Q. 어째서 구원이 먼저이고, 소명은 나중인 것입니까?
Q. 구원받은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무엇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까?
그러므로 크리스천들을 굳이 구분한다면 어떻게 나뉠 수 있습니까? 비전을 이미 발견한 크리스천과 아직 발견하지 못한 크리스천입니다. 전자가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고 그 목적을 따라 살아간다면, 후자는 아직까지 그 목적과 방향을 찾지 못한 채 헤매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고전9:26).
Q. 크리스천을 굳이 구분한다면 어떻게 나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비전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어떤 소원을 두셨는지 살펴야 합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
하나님은 아무렇게나 인도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 안에 먼저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
Q.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행하시되, 우리에게 무엇을 두고 행하십니까?
Q. 지금 나에게는 이 같은 소원이 있습니까? 어떤 소원입니까?
소원 (열망) | 특정한 일에 대한 소원(열망)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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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
어떻게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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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원은 최소 6개월 이상 지속되는 것인가?
얼마동안 지속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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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원은 인생을 다 바쳐도 좋을 만큼 강렬한 것인가?
언제부터 강렬했으며, 얼마만큼 강렬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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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원은 구체적인 계획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인가?
어떤 계획들이 오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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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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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재능이나 은사를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정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며 보석을 깎아 물리며 여러 가지 기술로 나무를 새겨 만들게 하리라.”(출31:3~5) |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부르실 땐 이미 그에 맞는 지혜와 총명, 지식, 여러 가지 재주 등도 함께 허락하십니다. 즉 우리를 특정한 비전으로 부르실 때에는 그에 맞는 재능이나 은사를 미리 주셨으므로, 비전의 발견을 원한다면 기꺼이 그것들을 찾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Q. 하나님께서 비전으로 주실 때에는 무엇도 함께 주십니까?
Q. 지금 나에게는 어떤 은사와 재능을 주셨습니까?
재주와 재능은 드러내어야만 나타나는 것이고 꼭 필요한 일을 함으로써 개발되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도전한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여러분의 재능을 찾기를 시작해보십시오. 명심하십시오. 선천적으로 이것은 내 재능이야 라고 생각되는 것은 그리 많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대부분의 재능과 은사는 우리가 후천적으로 노력하고 힘쓸 때 뜻밖의 곳에서 뜻밖의 때에 '발견'되는 것입니다.
Q. 재능과 은사는 어떻게 개발될 수 있습니까?
Q. 선천적으로 이것은 내 재능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얼마나 됩니까?
Q. 찾지 못한 재능들을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재능 | 나의 재능들을 생각나는 대로 모두 골라보자. 아주 사소한 것이어도 좋다.
골프, POP, 가르치기, 가이드, 고치기, 공예, 과학연구, 관찰력, 구제하기, 그림그리기, 글쓰기(글짓기), 기계조작, 악기 연주, 꽃꽂이, 노래 부르기, 달리기, 댄스(춤, 율동), 독서, 동시통역, 드럼 연주, 들어주기(상담), 등산, 디자인, 만들기(손재주), 만화그리기, 메이크업, 모델, 목각, 문서편집, 물리학, 미용, 바이올린, 발레, 배드민턴, 베이스 기타, 볼링, 봉사(섬김), 분류하기, 분석력, 사진 찍기, 서예, 수영, 수학, 속기, 스쿼시, 아이돌보기(보육), 암기력, 암벽등반, 어쿠스틱 기타, 엔지니어(음향), 여행/탐방, 영상 촬영, 영어, 오카리나, 외국어, 웅변(연설), 요리하기, 웹디자인, 유도, 육상, 인명구조, 인테리어, 일본어, 의상디자인, 일렉 기타, 자원봉사, 작곡, 조경, 좋은 목소리, 중국어, 지구과학, 지도력(리더십), 차량 운전, 첼로, 축구, 캐리커처, 탁구, 태권도, 테니스, 특공무술, 플루트, 피아노(신디), 한문, 합기도, 행사기획, 회의진행 |
은사 | 나에게 주신 은사가 있다면 모두 적어보자. <은사의 종류> 도표를 참고할 것.
구제, 긍휼함, 담대한 믿음, 리더십(지도력), 말씀묵상(Q.T.), 방언기도, 방언통역(통변), 병 고침(신유), 분별력, 분위기메이커(희락), 상담하기, 설교하기, 성경공부인도, 오래 참음(인내), 온유함, 위로하기, 적극적인 선행(양선), 전도하기, 절제하기, 찬양인도, 충성스러움, 친절함(자비), 피스메이커(화평), 행정력, 헌신적 사랑, 친화력 |
<은사의 종류>
은사(헬, 카리스마타) ‘거저 주어진 선물’이란 뜻을 가진 ‘카리스마’의 복수형 성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릴 수 있고 행할 수 있는 모든 것 | ||
은사의 종류 | 관련구절 | 은사의 내용 |
지혜의 말씀 | 고전12:8 | 하나님의 뜻을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적용시키는 은사 |
지식의 말씀 | 복음의 진리를 깨닫는 이지적인 은사(주로 가르치는 직분) | |
믿음 | 고전12:9 | 그리스도의 고난에 구체적으로 동참하는 믿음(롬8:17) |
신유 | 효과적인 복음전파의 방편으로 나타남. | |
능력 행함 | 고전12:10 |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실천적인 능력 |
예언 |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아는 은사(지식의 말씀) | |
영들을 분별함 | 사탄의 거짓된 가르침을 분별하는 능력(요일4:1) | |
각종 방언 | 개인적인 영의 교제 또는 기도의 차원으로 나타남 | |
방언의 통역 | 공중예배 시 방언의 내용을 통역하여 밝힘(고전14:6) | |
섬김의 은사 | 롬12:7 |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는 은사 |
가르침의 은사 | 주의 교훈과 훈계를 잘 가르침 | |
위로의 은사 | 롬12:8 | 환난, 슬픔을 당한 이들을 위로함 |
구제의 은사 | 가난이나 장애를 입은 이를 구제함 | |
행정의 은사 | 교회와 그 기관들을 잘 다스림 | |
긍휼의 은사 | 긍휼이 여길 자들을 긍휼히 여김 | |
사랑의 실천 | 고전13장 |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은사(최고의 은사) |
재능 (은사) | 소원을 뒷받침할만한 재능이나 은사가 있는가?
있다면 어떤 것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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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하고 있다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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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하지 못한 재능을 찾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가?
하고 있다면, 어디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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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재능, 은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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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환경을 잘 살펴야 합니다!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절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그들이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삼하5:11,12) |
하나님은 우리 속에 두신 소원(열망)이나 재능(은사)뿐만 아니라, 우리의 환경을 통해서도 말씀하시므로, 비전의 발견을 원한다면 우리의 환경을 세심하게 잘 관찰해야 합니다.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살펴야 합니까? 소원(열망)이나 재능이 환경에 의해서 적절하게 뒷받침되고 있는지, 적절한 시점에 기회의 문이 열리고 있는지 등입니다.
다윗의 경우도 무엇을 통해 자신의 비전을 점검할 수 있었습니까? 열려지는 환경입니다. 즉 두로 왕의 협조 및 궁전의 순탄한 건축 등으로 ‘이스라엘의 주권자’라는 자신의 비전을 확인, 점검할 수 있었습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서 자신이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삼하5:11,12).
Q. 소원이나 재능뿐 아니라 무엇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까?
Q. 그러므로 비전의 발견을 원한다면 무엇을 자세히 살펴야 합니까?
Q. 우리의 소원이나 재능은 환경에 의해 적절히 뒷받침되고 있습니까?
환경 (상황) | 이 소원은 환경의 적절한 지원을 받고 있는가?
있다면, 어떠한 지원을 받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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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들은 환경을 통해 적절히 드러나고 있는가?
있다면, 어떤 식으로 드러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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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문제나 상처가 나를 어디론가 떠밀고 있는가?
있다면, 어떤 문제(상처)가 어디로 떠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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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사건이나 기회가 특정 분야로 이끌지는 않는가?
있다면, 어떤 사건(기회)가 어떤 분야로 이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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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앞에 열린 문, 곧 기회의 문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기회의 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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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문을 찾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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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환경은 | 나의 비전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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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적인 평가내리기
결국 비전의 발견을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동시에 살펴야 합니까? 소원(열망)와 재능(은사), 환경 세 가지입니다. 즉 이 세 가지를 ‘종합적으로’ 살필 때 자신의 비전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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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비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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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재능 / 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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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환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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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다시 한 번 복습해봅시다.
Q. 하나님은 왜 우리를 자녀 삼아주셨습니까?
Q. 하나님은 언제부터 우리 각자의 비전을 준비하셨습니까?
Q. 하나님은 부르시기만 하시는 것입니까?
Q. 이 일을 시작하시는 분도, 또한 이루시는 분도 오직 누구십니까?
Q. 구원과 비전 중 무엇이 먼저 입니까?
Q. 이 순서가 바뀔 수도 있습니까?
Q. 어째서 구원이 먼저이고, 소명은 나중인 것입니까?
Q. 구원받은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무엇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까?
Q. 크리스천을 굳이 구분한다면 어떻게 나뉠 수 있습니까?
Q.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행하시되, 우리에게 무엇을 두고 행하십니까?
Q. 지금 나에게는 이 같은 소원이 있습니까? 어떤 소원입니까?
Q. 하나님께서 비전으로 주실 때에는 무엇도 함께 주십니까?
Q. 지금 나에게는 어떤 은사와 재능을 주셨습니까?
Q. 재능과 은사는 어떻게 개발될 수 있습니까?
Q. 선천적으로 이것은 내 재능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얼마나 됩니까?
Q. 찾지 못한 재능들을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Q. 소원이나 재능뿐 아니라 무엇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까?
Q. 그러므로 비전의 발견을 원한다면 무엇을 자세히 살펴야 합니까?
Q. 우리의 소원이나 재능은 환경에 의해 적절히 뒷받침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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